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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모기지 거인의 법정관리, 그리고 이후의 향방에 대한 메모

프레디맥과 패니메에 대한 법정관리 조치에 대해 시장근본주의자들은 혹평을 서슴지 않고 있다. 우선 공화당의 Sen. Jim Bunning 의원은 상원은행위원회(The Senate Banking Committee )의 발언에서  미국에서 사회주의는 여전히 살아 있고 훌륭하게 기능하고 있다고 비아냥거렸다. 또한 Cato Institute는 Fannie and Freddie: Socialist from the Start라는 글에서 두 회사가 시작부터 사회주의적인 것이었고 사기업이었던 적도 없거니와, 이번 사태는 ‘시장의 실패’가 아닌 ‘정부의 실패’라고 맹비난을 퍼부었다. 이러한 비난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중앙은행의 역할, 공기업이 가지는 역할, 그리고 그 정치적 함의에 대한 해묵은 논쟁의 연속선상에서의 해프닝일 뿐이다.

즉 극단적인 시장근본주의자들은 시장이 고유의 모순으로 인한 실패 때문에 정부로부터 구제를 받을 경우 이를 시장의 자율과 자정기능을 해친 것이라고 보고, 이를 사회주의적(주1) 조치라고 비난한다. 심지어는 정부가 회사의 부실을 책임져야할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경우에도 종종 그렇다.(주2) 종내는 그러한 역할을 주도하는 중앙은행, 미국의 경우에는 Fed의 존재의의 자체를 부정한다.

이러한 주장들은 주로 그들이 존재한 적이 없는 완전한 자유방임의 자본주의를 이상향으로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정부가 파수꾼이나 서는 그야말로 야경국가를 바라지만 자본주의 역사에서 그런 적도 없었거니와 앞으로도 있을 것 같지 않다. 총자본에게 있어 그들의 방패막이로서의 국가의 역할은 무엇보다 소중하기 때문이다. 국가의 존재는 일단 일련의 의사결정이 모든 계급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뿐 아니라 납세자들의 돈을 모아 유사시에 자본의 위기를 방어해주는 지원병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따지고 보면 ‘이익은 사유화되고 비용은 사회화된다’는 점에서 패니와 프레디는 자본주의의 사생아가 아니라 적자(嫡子)다.(주3)

한편 진보진영에서는 이번 조치가 실제로 주택소유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만큼 채권자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측면도 있다고 지적하면서, 단순히 사기업의 이익을 보호해주는 차원에서 머물기보다는 좀 더 급진적이고 실질적인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단순히 회사의 경영 상태를 정상화시키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정부가 직접 나서서 강화되는 금융조건으로 인해 지불능력이 떨어지고 있는 모기지 이용자들의 자금을 저리에 재융자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진보를 위한 센터(the Center for American Progress)’의 Andrew Jakabovics는 대공황 시절 정부가 직접 유동성을 공급했던 Home Owners’ Loan Corporation의 경험을 참고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부동산 시장의 충격을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헨리 폴슨도 이야기하고 있다시피 이번에 정부의 손아귀에 놓인 두 기업들의 미래는 차기 정부가 결정할 것이다. 존 매케인은 알란 그린스펀이 내놓은 안대로 두 회사를 정상화시킨 후 비싼 값에 시장의 되판다는 일종의 재민영화안을 확고히 지지하고 있다. 반면 오바마는 아직 무엇을 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다. MotherJones.com은 그와 민주당이 급진적인 조치를 취할 경우 미국에서는 금지된 단어인 s-word 즉 사회주의(socialism)적인 조치라는 비난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개연성,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 돈줄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망설이고 있다고 진단했다.(주4)

결론적으로 이번 부동산 시장에서 촉발된 신용위기는 대공황 시절의 그것과 닮아있으면서도 미국의 막대한 쌍둥이 적자, 금융의 증권화 및 세계화, 원자재 가격 급등 등과 맞물려 그 폭발력이 더욱 광범위해질 개연성이 크다. 1930년대에는 미국만의 문제였지만 이제는 전 세계 금융시장이 저당 잡혀 있다. 따라서 이번 美행정부와 차기 정부의 어떻게 대안을 제시하느냐에 따라 향후 전 세계 자본주의의 모습이 크게 바뀔 것이다.

(주1) 물론 더 극단적인 이들은 ‘공산주의’니 ‘빨갱이’와 같은 표현을 쓰겠지만

(주2) 이런 이들은 십중팔구 자본과의 물적인 이해관계의 공유 차원이 아니라 “진정으로” 학문적으로나 이념적으로 순수한 시장근본주의자들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분들이 몇 명 있긴 한 것 같다.

(주3) 우리나라의 허다한 공기업 설립이나 운영역시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데 그 중 한예를 들자면 포항제철을 들 수 있다. 포항제철은 설립당시 그 비용의 절대다수를 일본으로부터의 배상금에 의존하였다. 이 금액들은 항일독립유공자들이나 피해를 입은 국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이었으나 박정희 정부는 포항제철 설립에 투여해버린 것이다. 소위 ‘조국의 근대화’라는 명분 때문에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항변할 수는 있겠지만 그럼 그 조국 근대화에서 정당한 피해보상을 받았어야 했던 이들이 얼마나 혜택을 입었는가 하는 문제는 별도로 생각해보아야 할 사안이라 할 수 있다.

(주4) 프레디와 패니가 민주, 공화 양당에 얼마나 집요한 로비를 펼치는가는 이 기사를 참고할 것

美모기지 시장의 두 거인, 법정관리 임박?

미행정부와 Fed가 마침내 프레디맥과 페니매라는 미국 모기지 시장의 두 거인을 법정관리하기로 결정내린 것으로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 등 주요 신문들은 버냉키와 폴슨 등 주요관련자들이 모임을 가지고 이러한 방침을 굳혔다고 보도하였다. 언론은 집값 폭락이후 “정부가 행하는 가장 중대한 개입(the most significant intervention by the government)”이라 할 수 있는 이 조처로 주택 및 금융시장의 악화를 경감시킬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이에 대한 향후 전망과 투자자들의 치열한 눈치작전에 대해서는 다음 기사를 참고하시길

기사 중 나의 흥미를 끄는 대목은 다음과 같다.

민주당의 대권후보 오바마 의원은 그 회사들이 “기묘하게 섞여 있다”고 말하면서 “만약 그들이 공기업이라면 이윤을 내는 사업을 하면 안 되었고, 만약 그들이 사기업이라면 우리는 그들을 구제해주지 않아야 한다.”

Sen. Barack Obama, the Democratic nominee, has said the companies are a “weird blend” and that “if these are public entities, then they’ve got to get out of the profit-making business, and if they’re private entities, then we don’t bail them out.”

언뜻 명쾌한 논리인 것처럼 보이나 실은 수익성 사업을 영위하는 공기업은 꽤 많으며, 아무리 자유방임을 표방하는 정부일지라도  시장을 크게 교란시킬 정도 파괴력을 가진 대마(大馬)를 어떤 식으로든 그대로 방치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지나치게 교조적(?)이거나 단순하거나 또는 순진한 발언으로 느껴진다.(물론 공적자금을 투입하면서도 기존 주주나 대주의 이해관계를 그대로 지켜주는, 또는 더욱 확대시키는 것이 다반사인 자본주의적 국가개입의 이중성에 대한 비판은 또한 늘 있어왔다)더군다나 미국 모기지 시장 아니 미국 자본주의의 뿌리를 흔들지도 모르는 이런 거인들을 내버려둔다? 그들을 국유화해서 쪼개 팔자는 그린스펀이나 매케인의 안이 차라리 현실적으로 들린다. 오바마씨 진심은 아니겠지요?

모기지론의 허와 실

서민동네에서 서민을 대변할 진보정당의 입후보자가 서민이라고 주장하는 귀족에게 깨진 현실에 대해 뭐라 몇 마디 쓸까 하다가 짜증이 치밀어 관뒀습니다. 그 대신 한 5년 전쯤에 끼적거린 글을 퍼 나릅니다. 대충 읽어보니 그 해프닝의 원인과 대충 연관이 있을 것도 같고 해서 말이죠.

■ 모기지론(mortgage loan)이란?

“정부가 이르면 내년부터 만기 20년 이상의 장기주택담보대출(모기지론·mortgage loan) 제도를 도입하기로 함에 따라 주택시장에도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모기지론은 고정 금리인 데다 원리금의 장기 분할 상환이 가능, 미국·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가장 보편적인 주택 구입 수단으로 자리잡고 있다. 모기지론 제도는 목돈이 없더라도 쉽게 내집 마련을 할 수 있고, 경제침체기에 집값 폭락을 막는 안전장치 역할을 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수도권 아파트 가격 안정될듯, 조선일보, 2003-04-07]”

바야흐로 내년이면 우리나라도 선진국형(?) 주택대출제도가 시행될 전망이다. 모기지론이 이전의 대출과 크게 다른 점은 고정 금리에 장기 분할 상환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또한 많게는 집값의 70%까지 대출을 해주기 때문에 산술적으로 3천만원이 있으면 1억원 짜리 집을 살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사실 그간 정부에서 실시하던 최초구입주택대출도 이와 유사한 제도였으나 이 제도는 새로 지어지는 주택에 대해서만 대출을 해주었다는 점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 실수요자에게 어떠한 매력이 있는 제도인가?

우선적으로 모기지론 이용자는 심리적인 안정을 느낀다는 점에서 이익이다. 우리나라처럼 주택가격이 하루가 멀다 하고 널뛰기를 하는 곳에서는 집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자신의 삶이 안정되었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또한 고정금리라는 점이 매력적이다. 일반 시민들은 사실 IMF 이전까지는 금리의 형태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으나 IMF 시절 폭발적인 금리폭등 사태에 이자율의 변동이 자신들의 삶에 얼마만한 영향을 끼치는지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자를 고정시킨 다는 것은 굉장한 메리트라 할 수 있다. 단 고정금리는 변동금리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일종의 버퍼(buffer) 역할을 하는 위험보상률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장기대출이라는 역시 매력적이다. 이전 주택담보대출은 최장 3년짜리였기 때문에 만기가 되면 환금성에 문제가 생기고 가계에 큰 부담이 되었다. 그러나 모기지론의 경우 20년 장기상환이기 때문에 단기간에 돈을 상환하고 이를 재차입하는 번거로움과 이로 인해 발생하는 추가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만약 집을 구입한 이후에 집값이 상승한다면 현명한 재테크를 한 자신이 뿌듯할 것이다.

■ 모기지론의 경제파급효과

부동산 전문가들은 모기지론 도입으로 인한 효과로 우선 집값 안정을 꼽고 있다. 즉 이전의 주택대출의 일반적 형태인 단기성 대출 형태는 급매물 증가 등으로 이어져 집값이 폭락할 우려가 있었으나 모기지론의 경우 그러할 염려가 적어 집값 안정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한편 부작용을 지적하는 전문가도 있다. 즉 모기지론 제도로 일반인의 주택 구입시기가 빨라지는 등 주택 수요를 대폭 늘려 집값을 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또한 금리가 하락할 경우 추가적인 수요를 촉발해 집값이 상승할 것이라는 것이 그들의 예측이다.

여하한의 예측에도 불구하고 정책당국자들에게 있어 이 제도의 가장 큰 장점은 현재의 비정상적인 부동산 가격의 모순을 소비자들의 미래소득으로 전가시켜버릴 수 있다는 점이다. 뒤에 좀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결국 모기지론을 이용하는 이들은 현재 자신들이 용납할 수 없는 수준의 부동산 가격의 현실을 인정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이고 이는 적어도 부동산으로 인한 체제모순이 상당부분 경감된다는 매력이 숨어 있는 것이다.

■ 모기지론 뒤에 숨어 있는 기존모순

일단 모기지론은 이용자들로 하여금 기존의 비정상적인 주택 가격을 그대로 인정하고 들어가게 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즉 실질가격 기준으로 대만이나 홍콩의 2배를 초과하는 국내의 비정상적인 주택가격은 계층간의 주요 갈등요인으로 자리잡고 있는데 모기지론은 바로 주택구입자의 미래소득을 은행에 저당 잡혀 현재의 주택 가격을 수용하게 함으로써 체제내 부동산 가격의 모순을 체제내화시켜버리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모순은 지난 몇 년간의 부동산 폭등시 저금리의 주택대출 제도를 이용하여 무리하게 집을 산 이들에게도 역시 적용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즉 그들은 한편으로는 터무니없는 주택가격을 보며 토지의 사적소유가 근본적으로 모순임을 직감적으로 느끼면서도 나 혼자만 뒤쳐질 수는 없다는 자본주의 적자생존의 원칙에 충실하여 무리하게 집을 구입하였고 수도권과 행정수도 예상지 등에서 자신들의 배팅에 성공을 맛본 이들은 자신의 선견지명에 뿌듯함을 느꼈을 것이다.

내일 망할 벤처기업의 주식가격이 주당 천만원이라 하더라도 더 오를 가능성이 있으면 빚을 내서라도 주저 없이 사는 투전판이 삶의 터전인 주택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모기지론은 그러한 주택의 일종의 소외(?)를 더욱 가속화시킬 것이다.

즉 이제는 모기지론이라는 대단히 합리적인(?) 제도를 통하여 대다수 서민층들이 그에 대거 가세하여 또 한번의 부동산 골드러쉬를 기대하게 될 개연성이 크다. 반상회가 집값 담합의 회의장소가 되어버렸다는 이 땅에서 빚으로 빚어진 집을 소유한 이들은 그 빚으로 인해 오히려 더욱 보수화 되어버리는 아이러니를 연출하게 될 것이다. 이를 비롯하여 예상되는 부작용을 다음에서 좀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겠다.

■ 예상되는 부작용

모기지론은 또 하나의 계층간의 갈등을 불러올 소지가 있다. 즉 부동산 소유자와 부동산 미소유자간의 갈등. 물론 이는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집값의 30% 정도만 가지고 집을 구입할 수 있게 된다면 어느 정도 자산여력이 있는 서민계층 역시 이전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주택 구입에 몰려들 것이고 그러한 여력마저 없는 이들을 또 다시 체제 밖으로 밀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모기지론 이용에 또 하나의 조건이 있는데 이는 이용자들이 일정 정도의 고정수입을 증명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20년 만기 대출금 1억원을 은행에서 빌리려면 월소득 수준이 230만원 이상은 돼야 한다. 이는 결국 고정수입이 없거나 또는 월소득이 상기 금액에 미치지 못하는 대다수의 도시 빈민은 제도에 소외된 채 반영구적인 무주택자로 방치해버리는 결과를 낳게 될 개연성이 높다.

또한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모기지론 이용자들은 그 계급적 구성이 어떻든지 간에 체제 내로 보수화될 개연성이 높아진다. 즉 빚으로 부동산이라는 자산을 소유하게된 이들은 오히려 순수하게 자신의 자산으로 집을 구입한 이들보다 더욱 집값 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고 대체로 집값의 추가상승을 바라게 된다. 그들이 바라는 상승추이는 최소한 그들의 금융비용을 초과하는 선에서 정해진다. 이는 여하한의(비정상적인 시장요인에 의한 것이라도 상관없다) 요인에 의해서라도 집값이 상승하는 것이 그들의 삶의 질을 후퇴시키는 요인을 제거해주기 때문에 비정상적이고 반민중적인 집값 상승에도 애써 눈을 감을 것이다.

이는 또한 모기지론을 이용하여 주택을 구입한 이들마저 경제적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말해주고 있다. 예로 집값의 30%(5천만원)를 미리 내고 1억5천만원짜리 서울 강북지역 25평형 아파트를 구입하였을 경우 나머지 금액은 20년 동안 매달 68만원씩(연6.8% 고정금리 기준) 갚아나가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전체 상환기간에서 보면 이자는 원금의 두세배에 달한다). 결국 현실의 비정상적인 집값을 용인하고 지불한 현재가치가 지속적으로 엄청난 가계부담으로 전가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가계부담으로 인한 수혜자는 전적으로 은행이다.

사실 은행의 입장에서는 아쉬울 것이 하나 없는 거래이다. 물론 금리폭등으로 인한 역마진이 우려되기는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주택이라는 매력적인 담보를 가지고 있고 이를 통해 주택저당증권을 발행하여 이를 중개기관에 팔아 대출자금을 회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20년 동안 꼬박 이자를 받아먹기 때문에 그야말로 땅짚고 헤엄치는 장사라 할 수 있다.

■ 선진시민의 우울한 자화상

빚은 화폐가 존재한 이후로 계속하여 사람들의 옆에 존재하여왔다. 그 빚이 때로는 삶에 보탬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삶을 옥죄는 면류관이 되기도 하였다. 빚의 정치경제학적 함의를 살펴보는 것이 별로 새로울 것이 없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함에도 현재진행형으로 모기지론이 우리에게 새로이 던져주고 있는 의미는 주택이라는 우리의 삶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자산의 구입에 우리의 인생이 합법적으로 체제에 저당 잡힐지도 모르는 큰 금액을 빌리는 제도라는 사실이다.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무산자 계급은 그들의 현재소득과 얼마 되지 않는 가용재산에 가용재산의 몇 배에 해당하는 돈을 빌려 주택을 구입하게 되는 그 순간 소득의 상당부분을 은행에 고스란히 바치면서도 한편으로는 주택가격의 폭락과 폭등에 일희일비하는 ‘잃을 것이 많은’ 무산자 계급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이는 개인의 도덕성이나 진정성의 문제가 아니다. 그 자체가 자본주의의 역학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가야 하는 자본주의 선진시민의 우울한 자화상이다.

국내 부동산 시장 어떻게 될까

벌써 한참 전부터 계속되어 온 이야기지만 전국적으로 미분양 사태가 심각하고 이로 인해 중견 건설업체의 연쇄부도가 염려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간 지방에서 주로 발생하였던 미분양이 점차 군포, 파주 등 수도권으로 밀려오고 있고 심지어 서울에서조차 안정적인 분양을 기대하기 어렵다.

다음에서 부동산 시장의 주요 참여자인 건설업체, 가계, 금융권 등의 역할 및 행동양식을 간단히 살펴보고 이들이 시장에서 어떻게 결합되어 움직이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그리고 현재의 부동산 시장 침체 양상에서 서로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우리 경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진단해보도록 하겠다.

건설업체

건설업체는 – 특히 주택공급을 전문으로 하는 건설업체는 – 사업의 특성상 현금흐름이 중요하다. 건설업이 공급하는 상품이 공급에 장기간이 소요되고 금액이 크기 때문에 공급시점에서 수요가 받쳐주지 않으면 애물단지 재고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금은 확보되지 않아 하도급 업체의 결재가 지연되는가 하면 심할 경우 부도로 이어진다.

우리나라는 주택공급의 특성이 대규모 공동주택을 위주로 하였고 그 판매가 주택의 완성 뒤에 되면 현금 확보가 어려운 측면이 있기 때문에 이른바 선분양 제도가 일반화되어 왔었다. 이러한 방식이 많은 부작용이 있긴 했지만 원활한 주택공급에는 좋은 처방이었기에 정책당국에 의해 오랜 기간 유지되어 왔다.

하지만 주택가격의 폭등 등 여러 사회병리 현상은 결국 주택시장이 후분양으로 전환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추세에 부합하여 발달한 것이 바로 부동산 금융시장이다. 부동산 금융은 그동안 주로 가계에서 이용하여 왔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주택시장의 변화 등에 따라 건설업체가 부동산 금융의 큰 손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요즘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부동산 PF’다. PF 는 ‘ 프로젝트파이낸스 (Project Finance 혹은 Project Financing)’의 이니셜이다. 짧게 설명하자면 금융을 기업의 신용으로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개별 사업의 사업성을 근거로 일으킨다는 의미다.

우미건설 등 몇몇 중견업체가 PF를 통하여 많은 사업을 성공시켰다. 회사 입장에서는 회사의 신용도에 상관없이 자금을 조달할 수 있고 은행 입장에서는 기업금융보다 높은 금리를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이해관계 속에 각 업체들은 각종 개발사업에 경쟁적으로 부동산PF를 이용하여 왔다.

가계

한편 전통적인 부동산 금융의 이용자 가계는 어떠한가.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은 경제성장과 더불어 거의 예외가 없다고 할 정도로 지속적인 상승세를 이어왔다. 특히 강남과 분당 등 수도권 남부는 전국의 부동산 가격 상승을 주도하여 왔다. 2000년 대 들어 이러한 현상이 심화되자 가계는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돈을 빌려 집을 사기 시작했다. 그것은 놀라운 가수요를 불러일으키며 집값 폭등을 불러왔다.

가계의 손익분기점(?)은 집값 상승이 이자비용과 세금 등 기타비용을 웃도는 선이다. 지난 몇 년간의 부동산 상승추이와 저금리의 지속으로 말미암아 주택소유자는 이러한 인플레이션을 느긋한 마음으로 즐기기 시작했고 소비도 더불어 증가하였다. 솔직히 정책당국도 경기부양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가끔 신도시 토지보상, 제2의 강남 등의 호재를 터뜨리며 부동산 시장을 가열시켰다.

특히 우리나라는 가계가 그저 느긋한 시장관망자의 역할이 아닌 적극적인 시장참여자로 가세하는 모습을 띠기도 했다. 극단적인 모습일지 몰라도 이른바 아파트 부녀회라는 단체가 박정희 대통령 이래 우리의 고유한 전통인 반상회를 아파트 가격 협의체로 탈바꿈시켰다는 의혹이 짙다. 이를 통해 호가 조정 등의 적극적 행동에 나서 사회적 지탄을 받기도 했다.

금융권

외환위기 이후 많은 은행들이 민영화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그 중 많은 시중은행들이 외국의 투자자본의 손에 넘어갔다. 더불어 외국계 은행들도 국내에 안착하였다. 이들은 이전의 관치금융과는 다른 행태를 보였다. 괘씸하게도(!) 금융당국 등 정책당국의 정책노선을 잘 따르지 않았다. 그들이 제일 먼저 취한 행동은 가계대출의 증가였다.(주1) 어설픈 중소기업에 돈을 빌려주느니 주택을 담보로 한 대출이 더욱 알찼기 때문이다.

더불어 앞서 말한 부동산PF에도 경쟁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개별 사업의 타당성을 담보로 하는 금융조달방식이라는 특성이 얼핏 금융기관의 채권회수가 기업금융보다 어려워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사실 금융기관은 사업시행자, 시공자들로부터 기업금융에 준하는 수준의 담보를 제공받는다. 그리고 금리도 더 높다.

그렇기에 사실 부동산 PF는 ‘위험의 분담(risk sharing)’이라는 프로젝트파이낸스의 기본원리에 별로 부합하지 않는다. 얼마 전 부동산PF 사업에서 분양부진으로 피해를 본 대주건설이 대출자금 상환에 늑장을 부리다가 신용평가기관으로부터 신용등급을 강등당하는 등 험한 꼴을 보고는 결국 대출금을 상환하였다.

여하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권 역시 부동산 경기 위축에 있어서 안전지대는 아니다. 채무자가 배째라고 하면 그들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한 증권사는 7일 “금리 상승이 개인과 기업의 대출원리금 상환 부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부동산PF 등 일부 대출의 부실 염려도 커지고 있다고” 전망했다. 은행주는 사지 말라는 소리다.

국내 부동산 시장은 어떻게 될까

이상에서 서술한 부분을 표로 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결국 현재의 국내 부동산 시장을 단순히 도식화하면 가계, 금융권, 건설업체가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상황이다.

그런데 현재 주식펀드의 인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등 다양한 변수에 따라 은행이 자금곤란을 겪고, 이에 따라 CD금리가 급등하면서 대출금리도 더불어 상승하고 있다. 집값은 보합세를 유지하고 있는 듯 보이나 거래시장은 얼어붙고 있다. 건설업체는 미분양으로 말미암아 부동산PF 상환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종합부동산세 등 각종 제반비용도 주택소유자에게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 상황이 만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비교할 때 그나마 위안이라면 미국의 경우 부동산 채권을 각종 파생금융상품으로 전환시켜 시장참여자가 늘어남에 따라 오히려 ‘위험의 분산’이 아닌 ‘위험의 동참’의 역효과를 가져왔다면 우리는 아직 관련 상품시장의 미발달로 인해(주2) 그러한 모습의 동반자살 현상까지는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시장의 미성숙이 오히려 위안이 되고 있는 셈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교훈

부동산 시장이 냉각기로 접어들 것인지 아니면 다시 폭등세로 이어질 것인지는 점칠 수 없다. 시장이란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므로 섣부른 점쟁이 노릇은 금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예측을 하고 싶은 유혹은 뿌리치기 어려운데 분명한 것은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은 미국과 전 세계의 부동산 시장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점이다.

전 세계의 부동산 시장은 저금리를 바탕으로 금융권이 개인과 기업에 신용을 창출시켜줌으로써 지탱해온 시장이었다. 사람들은 자산의 상승에 따라 소비를 늘렸고 기업은 시장에서 소화가 되는 한도까지 공급가격을 높였다. 금융권은 그런 흥청망청 파티에 뒷돈을 대주고 천문학적인 이자를 거둬들였다.

그리고 지금 그 거품이 ‘팡’하고 터졌다. 출발지점은 어딘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완만할지라도 지속적인 부동산 가격의 하락이 가계와 기업을 서서히, 그러나 분명한 의지로 현금흐름 악화의 방향으로 밀어붙였다. 연체율이 급등하고 은행은 해당 채권을 악성자산으로 분류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마침내 미국에서는 ‘금리 동결’이라는 초유의 反시장적인 조치를 단행하였다.

우리 부동산 시장도 이런 악순환 고리의 전형으로 접어들고 있다. 시장은 얼어붙었고 가계와 기업의 대출금 상환능력은 떨어지고 있다. 금융시장 미성숙 관계로 미국보다 못한 통계치가 상황을 호도할 수는 있겠지만 은행의 악성채권이 늘어가고 있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쯤 되면 부동산 시장이 낙관적이라고 말할 용감한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좀 더 큰 그림에서 현재의 상황을 바라보고 끝을 맺도록 하겠다.

“88만원 세대”라는 유행어가 말해주듯 소비자의 구매능력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젊은 세대들도 언젠가 결혼을 해야겠지만 월급모아 집산다는 공식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빚을 얻지 않고서는 집을 살 수 없다. 그러나 그 빚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야 한다. 집값이 평당 1천만 원을 훌쩍 넘은 현재 시장에서 그렇게 구매능력이 뛰어난 미래세대가 그리 많지 않다. 현재 30~40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상황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주택소유자들은 한껏 부풀려진 자신들의 주택을 누군가가 구매해주어야 할 텐데 이제 아무도 그 주택을 건네받을 여력이 없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계속 그 가격을 고수할 것인가. 현재의 부동산 시장을 보고 있으면 마치 폰지게임을 보고 있는 것 같다. 모두가 망할 때까지 가격을 올려놓고 보는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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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씨티은행은 사옥도 빌려쓰고 있다고 한다. 사옥살 돈으로 대출을 하겠다는 자세다.

(주2) 물론 우리나라 부동산PF에서도 유동화 증권을 발행한다

모기지금리 동결이라는 초강수를 둔 미국

시장지상주의의 천국 미국이 가장 반시장적인 조치를 취했다.(사실은 시장지상론자가 반시장적인 조치로 위기를 돌파하는 경우는 흔하지만) 조지 부시 대통령이 현지시간으로 6일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대한 종합대책을 직접 발표했다. 그만큼 중대한 사안이다.

이번 대책의 핵심은 모기지론을 끌어다 써서 내년에 3~4년차에 접어들어 이자 상환액이 커지는 대출자들을 대상으로 앞으로 5년 정도 현 수준의 낮은 금리를 더 적용해주는 내용이다.(주1) 이렇게 다수의 대출자를 대상으로 국가가 나서서 사금융의 금리를 동결시키는 것은 사상초유의 사태가 아닐까 싶다.

금융권에 따르면 이번 대책을 통해 약 200만 명이 혜택을 입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상환금 부담이 현재보다 30%가량 늘어날 예정이었는데 이를 줄여줌으로써 연체에 따른 각종 신용위기로부터 일단 유예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 대책의 문제는 분명하다. 전형적인 임기응변식 해법이라는 것이다. 금융위기가 5년간 유예될 뿐이다. 대출자들은 지금 갚지 않은 이자는 5년 후에 더 많은 이자로 갚아야 한다. 그 사이 그들의 소득이 크게 올라가거나 집값이 올라서 그 사이 집을 팔아 현금유동성을 확보하지 않는 한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리 없다.

또 하나 채권자들의 압력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들로서는 기대수익률이 대출자들의 혜택만큼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뜩이나 정크본드가 되어버릴 위기의 채권이 이제 수익률까지 떨어진다면 채권자들이 가만있을 리 없다. 벌써부터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서두에 말했듯이 이번 금리동결 조치는 자본주의 천국 미국에서 취해질 만한 조치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비시장적 조치이긴 하지만 사실 그리 낯선 장면은 아니다. 미정부와 연방준비제도이사회 등은 항상 금리정책 등을 통하여 거시경제를 조절하여 왔고 단기적 위기의 순간에는 사기업들 간의 중재자 역할 및 자금유통자 역할을 수행해 왔다. 이번 조치도 그 중 하나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그 대책이 기준금리의 조절을 통한 시장금리의 유도가 아니라 직접 시장금리에 손을 댔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상황이 다급하다는 것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문제는 앞서도 말했다시피 대책이 여전히 근본적인 치료와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이다. 근본적인 대안은 아마도 이자유예가 아니라 실질적인 이자감면 정도나 되겠지만 금융자본주의 천국 미국에서 가당키나 한 대안인가.

사족

미래를 한번 들여다보자. 한미FTA가 효력을 발휘하는 한반도에서 만약 비슷한 사태가 일어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즉 미국계 금융기관이 우리나라에서 신용등급이 불량한 이들에게 모기지론을 빌려주었다. 그런데 주택경기가 하락하면서 연체가 늘어났고 금융기관이 큰 손해를 입게 되었다. 국가경제가 위기에 처했음을 감지한 한국 정부가 금융기관을 모아놓고 금리동결을 지시했다. 그러면 미국계 금융기관이 취할 다음 행동은?

그들은 십중팔구 얼씨구나 하고 한미 FTA 에 포함되어 있는 “투자자-국가 분쟁 절차(Investor-State Dispute : ISD)”에 착수할 것이다. 이 제도는 투자자 쪽이든 투자 대상국 쪽이든 특정한 국가의 국내법이 아닌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것으로 믿어지는 국제법의 여러 규칙들을 준거로 하여 투자자의 투자를 국가가 침해하였는지 가리는 제도다. 비록 국가가 그것을 공익성에 근거한 조치라고 주장하여도 투자자는 시장가치로 투자를 보호받을 수 있다. 아마도 한국 정부는 금리동결 조치는 써먹을 수 없을 것이다.

참고할 글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30071205164417

 

(주1)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특이한 금융구조라 할 수 있는데 2년차까지는 낮은 금리를 적용하다가 그 이후부터 금리가 높아진다. 일종의 조삼모사식 미끼다.

전 세계의 금융 위기, 파국을 부를 수도 있다.

오랜만에 중앙일보에서 좋은 칼럼을 읽었다.(한 가지 흠이라면 기고자가 외국인이라는 점이다.) 전 프랑스 총리 미쉘 로카르(주1)가 기고한 ‘세계 금융위기, 보고만 있을 것인가’라는 제목의 칼럼은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가 직면하고 있는 모순을 단순하고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더불어 이러한 체제모순이 현재 무기력한 각국 정부나 경제학자들에 의해 방치되고 있으며, 하루빨리 이러한 무기력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문을 담고 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오늘 날의 자본주의는 30년 전의 그것과 상이하다. 선진국들이 연평균 5%에 달하는 성장을 구가하던 1945~75년 동안의 기간은 오늘 날과 같은 금융 위기가 존재하지 않는 완전 고용의 시대였다. 그리고 “이처럼 성장과 행복이 공존했던 것은 강력한 사회복지 시스템과 케인즈의 학설을 따른 경제정책 덕이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특히 그의 발언 중 주목하여야 할 부분은 “모든 선진국은 고임금을 지급해 소비를 촉진하고 성장을 이끌어내는 정책을 취했다. 주주들은 오늘날에 비해 형편없는 배당금에 만족해야 했다.”라는 설명이다. 이는 오늘 날 소위 주주 자본주의라 불리는 사회 체제가 자본주의의 고유속성이 아니며 고임금을 포함한 복지정책이 경제 선순환의 필요조건임을 잘 말해주고 있는 발언이다.

좀 더 살펴보자면 20세기 중반의 고성장은 적어도 제1세계의 노동자들에게 만큼은 적절한 대가를 지불하였고(물론 고전적인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비추어 보면 착취는 여전하지만) 이것이 소비의 진작을 불러 일으켜 제조업이 성장하는 선순환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늘 날의 ‘고용 없는 성장’과 대비되는 ‘분배 있는 성장’이었던 셈이다.

이는 로카르 총리도 지적하였듯이 유럽의 사회주의적 정권을 비롯한 선진국 정부들이 케인즈 주의적인 경제정책을 시행하였고 전 세계적으로도 아직 금융자본의 존재감이 뚜렷치 않았던 사회풍토 덕택이기도 했다.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이러한 사회체제는 닉슨 정부에 의한 달러의 금태환 정지 선언 및 이어지는 각종 금융자유화 조치로 서서히 붕괴하게 된다.

금융시장에서는 금태환 정지 및 이에 따른 변동환율제 실시에 따른 위험을 분산시키겠다는 명목으로 각종 파생금융상품과 금융기법이 발달하기 시작한다. 이후 국경을 넘어서는 금융투자, 파생금융시장의 발달, 적대적 M&A시장의 융성 등 제조업과는 별개의 동력을 갖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오늘 날 펀드자본주의라고 불릴 정도로 온갖 종류의 금융자본이 난무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래서 이를 통해 오늘날 시장은 한층 안정적이 되었을까. 모순되게도 개별 자본에게는 그렇게 되었을지 몰라도 – 예를 들면 통화스왑이랄지 이자스왑을 통해 – 그것이 총자본으로 합계가 되면 경제는 전체적으로 더욱 혼란스럽고 위험이 높아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위험의 분산이라 보이는 것들이 이번 서브프라임 사태에서 보듯이 오히려 동일한 위험으로 각 주체들이 줄줄이 연결되어 버리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주주 자본주의의 강화로 주주는 엄청난 배당을 누리는 반면 노동자는 고용이 불안해지고 실질임금은 낮아지고 있다. 이른바 ‘고용 없는 성장’의 시대가 된 것이다.

로카르 총리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 대해 “시간이 흘렀고, 주주들은 이런 시스템을 내던졌다. 연금·투자·헤지펀드에 혁명이 일어났다. 지난 25년 간 선진국 경제는 크게 성장했지만 임금과 사회복지 수준은 그대로 유지되거나 오히려 삭감됐다. 결과적으로 허약한 기반 위에 이루어진 성장이라는 것이다.”라고 축약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경제 규제 완화에 따른 금융 위기의 증폭이 오늘 날의 인터넷 버블과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불러왔음을 실토하고 있다. 유력한 자본주의 국가의 총리였던 이의 입에서 나온 발언치고 상당히 강성이다.

어쨌든 이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문제는 현재 서구의 금융위기가 일시적이 아닌 근본적인 모순이라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그 모순이 여태껏 금융시장 내부뿐 아니라 제조업과 복지 등 사회 곳곳에 악영향을 미쳐왔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사회복지를 통한 경기부양이 아닌 빚으로 소비를 진작시켜 경기를 지탱해온 모기지론 시장이나 크레디트카드 시장이다.

그 결과 선진국들의 집값은 크게 올라 국민들의 부가 증대된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신기루에 불과하였고 이제 그 집값을 떠안아줄 신규 소비자가 나타나지 않는 상황에서 집값은 허물어지고 있다. 이로 인한 서브프라임 사태의 피해액은 아무도 추정할 수 없을 정도다. 수백 억 달러에서 수천 억 달러까지 제각각 추측이 난무하다. 거기에다 빚은 개인만 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라도 빚이 장난이 아니다. 미국은 매일 20억 달러를 빚지고 있다. 미국의 총부채는 39조 달러로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3.5배를 넘는다.

이전의 유사한 금융위기와 다른 점은 그래도 중국, 인도, 러시아 등이 꾸준히 성장하고 있고 외환보유고도 든든히 쌓아놓아 전 세계적인 신용경색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지만 세계 최대의 소비국가 미국의 경제침체는 이들 국가에게도 결코 좋은 일만은 아니다. 특히나 20세기에 비해 더욱 더 개방화되어 있는 세계 자본시장은 특정 시장의 혼란이 더 빠른 속도로 전염되는 경향이 있다.

한 예로 미국 금융위기의 여파로 국내 금융계도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영향받고 있다. 주식 펀드의 인기, 달러 유동성의 감소, 채권의 투매 등 서브프라임 사태와 직간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는, 다양하지만 상호 연결되어 있는 복잡한 변수들로 말미암아 금융시장 및 주식시장이 그야말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란을 겪고 있다. 대출금리 인상과 아파트 미분양 사태도 이어지고 있어 미국의 부동산 폭락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결국 이러한 다양한 혼란상에 대해 로카르 총리는 “44년 열렸던 브레턴우즈 회의가 그랬던 것처럼 오늘날 제멋대로 돌아가고 있는 금융 시장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긴급 회의를 소집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그때보다 훨씬 파워가 강해진 금융권력을 적절히 통제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여러 대안이 있을 수 있겠지만 국가 간 금융거래의 통제(주2) 와 금융거래에 대한 규제(주3)의 정비가 핵심이지 않을까 싶다.

국내 상황도 마찬가지다. 앞서 말했듯이 대출금리 인상, 미분양 사태 지속, 묻지마 주식펀드, 또한 얼마전 문제가 된 부동산PF의 무분별한 추진 등이 잠재해있는 복병이다. 이러한 요인들이 상호작용을 미치며 화학적 반응을 일으킬 때에는 금융교란이 올 수도 있다. 정부는 보다 정밀한 금융대책을 강구하여야 할 시점이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해결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주1) 프랑스의 정치가. 프랑스 총리를 지낸 정치가이다. 1974년 F. 미테랑의 사회당(PS)으로 복귀하고 계획·지역개발 장관, 농림 장관 등을 지냈다. 미테랑의 정책에는 현실주의적 입장에서 비판적이었으나 1988년 대통령 선거에서 미테랑의 재출마를 지지하여 그해 5월 총리에 임명, 취임하였다.

(주2) 이와 관련하여 가장 인기를 얻고 있는 대안이 단기성 외환거래에 부과하는 세금인 토빈세일 것이다.

(주3) 일례로 서브프라임 모기지에서 사용된 기법인 SIV(구조화 금융) 등 각종 금융기법은 금융기관에 대한 국가의 규제를 벗어나는 교묘히 고안된 장치들이다. 이것이 개별금융들에게는 틈새시장에서의 기회를 제공할지 몰라도 이번처럼 수많은 금융기관이 답습하고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엄청난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만다.

월스트리트의 위기, 그리고 시사점(2)

위기에 처한 월스트리트

파이낸셜타임스의 10월 27일 기사에 따르면 메릴린치의 CEO Stanely O’Neal 이 이사회의 사전승인 없이 합병 등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미국에서 네 번째로 규모가 큰 은행인 Wachovia를 접촉하였다는 사실 때문에 CEO자리를 뺏길 위험에 처해있다고 한다. 이미 공격적인 사업추진으로 회사에 엄청난 손실을 안겨준 만큼 그의 이러한 독단적인 행동이 이사회의 분노를 촉진시킨 것으로 추측된다.

문제는 지난번 관련 글에서도 지적하였듯이 이러한 메릴린치의 사상 초유의 손실이 CEO의 공격적인 사업추진 스타일이나 사업상의 실수만이 아닌 보다 깊은 구조적 원인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바로 현재 미국의, 그리고 미국화된 전 세계의 취약한 금융 시스템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자산담보부증권이란

메릴린치 뿐만 아니라 여타 월스트리트 은행들도 3분기 실적이 형편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Bank of America, Bear Stearns 등도 손실이 현저히 불어났다. 메릴린치가 그 중 가장 손실이 컸을 뿐이다. 그것은 메릴린치가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연계된 이른바 자산담보부증권(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s : CDOs)의 최대 인수자(underwriter)였기 때문이다.

자산담보부증권은 금융기관·기업 등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을 담보로 발행하여 제3자에게 매각하는 증권으로 자산유동화, 즉 투자 또는 대출금의 빠른 회수를 위하여 고안된 장치다.

단순하게 보면 주택을 사고 싶은 소비자가 돈을 은행으로부터 빌린다. 은행은 주택을 담보로 잡고  일정요율의 이자의 돈을 대출해준다. 그리고는 그 주택담보를 자산으로 한 증권을 발행하여 다른 금융기관 혹은 개인투자자에게 이를 당초 요율보다 조금 낮은 이자율에 판매한다. 그리고 중간에 이자의 갭을 챙긴다. 기업과 개인은 이를 보유하기도 하고 때로 재판매하기도 하여 위험을 분산시키고 투자를 회수한다. 이렇게 발행된 증권은 쪼개지고, 묶여지고, 다시 패키지화되고, 재판매되며 시장을 종횡무진 한다.

개별기업 차원에서는 위험을 분산시키고 투자를 조기에 회수하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고위험의 CDO가 시장을 돌아다니며 시장 전체의 위험은 증가되는 측면이 있다는 점이다.

부실채권이 되어버린 CDO, 이어지는 가혹한 인원감축

미국 내에서 CDO의 발행규모는 2001년 520억 달러에서 2006년 3,880억 달러로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이 돈은 일종의 리버리지 효과를 노린 주택구입자의 주택구입비용에 충당되었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미국의 집값은 큰 상승세를 기록한다. 거품은 작년 여름부터 꺼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 CDO의 담보인 주택의 담보능력이 현저히 저하된다. 이른바 부실채권이 된 것이다.

극단적인 시장옹호론자들이 흔히 하는 말이 부동산투기를 욕하지 말라고들 한다. 그들과 같은 위험감수자(risk taker)가 없으면 시장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위험감수자들이 노리는 것은 “high risk, high return”이다. 일정 수긍이 가는 말이다. 문제는 이것이 탈법적이거나 심지어 규제가 약한 곳에서 시장의 궁극적 목적을 교란시키면서 진행되는 경우이다.

지금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에 처해있는 금융기관과 모기지를 이용하여 주택을 구입한 이들이 바로 비슷한 처지다. 금융기관은 정부의 탈규제 경향을 틈타 기존의 대출상품과 또 다른 교묘한 상품을 만들어 수익의 극대화를 시도하였고, 부동산 시장은 그로 인해 부풀어 올라 주택구입자들의 마음은 풍요로워졌다. 현재 그 거품이 꺼지는 순간 그들은 다시 정부가 나서줄 것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 마치 예전에 금융시장을 붕괴시킬 뻔 했던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의 그 뻔뻔한 금융천재들처럼 말이다.

여하튼 시장의 침체는 금융노동자들에게 가혹한 시련으로 다가온다. 이미 모기지 회사에서는 수십만의 인력이 일자리를 잃었다. Bank of America 는 투자금융 부문의 인력 3천명을 해고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여타 금융기관의 대량해고를 예고하는 발표가 될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Bear Stearns, Citigroup, JP Morgan 등도 인원감축에 동참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리나라의 부동산 PF

현재 우리나라의 부동산 시장에서는 부동산PF(project financing) 혹은 자산담보부기업어음(Asset Backed Commercial Paper : ABCP)이 서브프라임 사태와 유사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소비자가 아닌 건설업체에게 빌려준 자금이라는 점이 차이가 날뿐이다. ABCP는 대출로 간주되지 않는 일종의 틈새상품으로 신보출연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등의 장점으로 말미암아 이자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상품이기에 그동안 인기리에 팔렸다. 여하튼 각 금융기관이 소유하고 있는 ABCP 역시 미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부동산 시장이 냉각될 경우 건설업체의 상환능력 상실, 더 나아가 부도로 이어질 경우 부실채권으로 전락하여 금융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뒤늦게 관계당국이 현황을 파악하느라 난리법석을 피우고, 총괄적인 관리에 나서고, 행정지시를 내리는 등 한동안 분주했다. 그리고 금융기관들도 이런 행정지시를 어느 정도 수용하는 한편 자체적인 위험관리에도 나선 것으로 보인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금융기관이 당국의 지시를 수용하는 것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금융의 순기능을 유도하는 시스템

금융은 국가경제의 동맥과 같은 존재다. 피가 안 통하는 곳에 피를 통하게 하여 건강한 국가경제를 만들어가는 필수조건이다. 그런데 올바른 뇌에 의해 적절히 통제되지 않은 채 부동산 시장과 같은 생산적 부의 창출과는 거리가 있는 부문으로만 집중된다면 몸의 불균형은 심화된다. 적정규모의 금액이 건실한 중소기업으로 흘러가고 이것이 국부를 창조하여 금융부문을 통해 재순환되는 선순환 구조를 이루어가야 한다.

이런 당위는 현재 개별기업과 투자자의 경제적 자유주의 논리, 주주자본주의 논리, 부동산 소유자들의 투기 심리에 밀려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물론 현대 물질문명 사회에서 투자는 당연히 이윤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사실은 자명한 상식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국가경제라는 공동체에 선순환적으로 기여하여야 한다는 것 또한 자명한 상식이다.

현대 금융의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인 여러 파생금융상품을 일방적으로 죄악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것은 분명히 생산기능의 효율화와 참여주체의 위험분산에 기여한다. 이러한 것들을 잘 활용하면 우리는 이전의 제도나 상품에서 상상할 수 없었던 많은 효율적인 개발이 가능하다. 문제는 그것이 순기능 하게끔 하는 통제시스템이다. 그것이 과거에는 권위주의적인 관치의 형태로 존재하였고 현재 많은 이들은 그러한 관치에 대해 본질적인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또 다른 시스템을 개발하여야 한다. “잘못된” 통제가 싫다고 “통제” 자체를 없애버리면 그것은 “무질서”를 용인 내지는 조장하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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