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지론의 허와 실

서민동네에서 서민을 대변할 진보정당의 입후보자가 서민이라고 주장하는 귀족에게 깨진 현실에 대해 뭐라 몇 마디 쓸까 하다가 짜증이 치밀어 관뒀습니다. 그 대신 한 5년 전쯤에 끼적거린 글을 퍼 나릅니다. 대충 읽어보니 그 해프닝의 원인과 대충 연관이 있을 것도 같고 해서 말이죠.

■ 모기지론(mortgage loan)이란?

“정부가 이르면 내년부터 만기 20년 이상의 장기주택담보대출(모기지론·mortgage loan) 제도를 도입하기로 함에 따라 주택시장에도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모기지론은 고정 금리인 데다 원리금의 장기 분할 상환이 가능, 미국·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가장 보편적인 주택 구입 수단으로 자리잡고 있다. 모기지론 제도는 목돈이 없더라도 쉽게 내집 마련을 할 수 있고, 경제침체기에 집값 폭락을 막는 안전장치 역할을 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수도권 아파트 가격 안정될듯, 조선일보, 2003-04-07]”

바야흐로 내년이면 우리나라도 선진국형(?) 주택대출제도가 시행될 전망이다. 모기지론이 이전의 대출과 크게 다른 점은 고정 금리에 장기 분할 상환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또한 많게는 집값의 70%까지 대출을 해주기 때문에 산술적으로 3천만원이 있으면 1억원 짜리 집을 살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사실 그간 정부에서 실시하던 최초구입주택대출도 이와 유사한 제도였으나 이 제도는 새로 지어지는 주택에 대해서만 대출을 해주었다는 점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 실수요자에게 어떠한 매력이 있는 제도인가?

우선적으로 모기지론 이용자는 심리적인 안정을 느낀다는 점에서 이익이다. 우리나라처럼 주택가격이 하루가 멀다 하고 널뛰기를 하는 곳에서는 집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자신의 삶이 안정되었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또한 고정금리라는 점이 매력적이다. 일반 시민들은 사실 IMF 이전까지는 금리의 형태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으나 IMF 시절 폭발적인 금리폭등 사태에 이자율의 변동이 자신들의 삶에 얼마만한 영향을 끼치는지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자를 고정시킨 다는 것은 굉장한 메리트라 할 수 있다. 단 고정금리는 변동금리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일종의 버퍼(buffer) 역할을 하는 위험보상률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장기대출이라는 역시 매력적이다. 이전 주택담보대출은 최장 3년짜리였기 때문에 만기가 되면 환금성에 문제가 생기고 가계에 큰 부담이 되었다. 그러나 모기지론의 경우 20년 장기상환이기 때문에 단기간에 돈을 상환하고 이를 재차입하는 번거로움과 이로 인해 발생하는 추가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만약 집을 구입한 이후에 집값이 상승한다면 현명한 재테크를 한 자신이 뿌듯할 것이다.

■ 모기지론의 경제파급효과

부동산 전문가들은 모기지론 도입으로 인한 효과로 우선 집값 안정을 꼽고 있다. 즉 이전의 주택대출의 일반적 형태인 단기성 대출 형태는 급매물 증가 등으로 이어져 집값이 폭락할 우려가 있었으나 모기지론의 경우 그러할 염려가 적어 집값 안정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한편 부작용을 지적하는 전문가도 있다. 즉 모기지론 제도로 일반인의 주택 구입시기가 빨라지는 등 주택 수요를 대폭 늘려 집값을 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또한 금리가 하락할 경우 추가적인 수요를 촉발해 집값이 상승할 것이라는 것이 그들의 예측이다.

여하한의 예측에도 불구하고 정책당국자들에게 있어 이 제도의 가장 큰 장점은 현재의 비정상적인 부동산 가격의 모순을 소비자들의 미래소득으로 전가시켜버릴 수 있다는 점이다. 뒤에 좀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결국 모기지론을 이용하는 이들은 현재 자신들이 용납할 수 없는 수준의 부동산 가격의 현실을 인정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이고 이는 적어도 부동산으로 인한 체제모순이 상당부분 경감된다는 매력이 숨어 있는 것이다.

■ 모기지론 뒤에 숨어 있는 기존모순

일단 모기지론은 이용자들로 하여금 기존의 비정상적인 주택 가격을 그대로 인정하고 들어가게 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즉 실질가격 기준으로 대만이나 홍콩의 2배를 초과하는 국내의 비정상적인 주택가격은 계층간의 주요 갈등요인으로 자리잡고 있는데 모기지론은 바로 주택구입자의 미래소득을 은행에 저당 잡혀 현재의 주택 가격을 수용하게 함으로써 체제내 부동산 가격의 모순을 체제내화시켜버리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모순은 지난 몇 년간의 부동산 폭등시 저금리의 주택대출 제도를 이용하여 무리하게 집을 산 이들에게도 역시 적용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즉 그들은 한편으로는 터무니없는 주택가격을 보며 토지의 사적소유가 근본적으로 모순임을 직감적으로 느끼면서도 나 혼자만 뒤쳐질 수는 없다는 자본주의 적자생존의 원칙에 충실하여 무리하게 집을 구입하였고 수도권과 행정수도 예상지 등에서 자신들의 배팅에 성공을 맛본 이들은 자신의 선견지명에 뿌듯함을 느꼈을 것이다.

내일 망할 벤처기업의 주식가격이 주당 천만원이라 하더라도 더 오를 가능성이 있으면 빚을 내서라도 주저 없이 사는 투전판이 삶의 터전인 주택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모기지론은 그러한 주택의 일종의 소외(?)를 더욱 가속화시킬 것이다.

즉 이제는 모기지론이라는 대단히 합리적인(?) 제도를 통하여 대다수 서민층들이 그에 대거 가세하여 또 한번의 부동산 골드러쉬를 기대하게 될 개연성이 크다. 반상회가 집값 담합의 회의장소가 되어버렸다는 이 땅에서 빚으로 빚어진 집을 소유한 이들은 그 빚으로 인해 오히려 더욱 보수화 되어버리는 아이러니를 연출하게 될 것이다. 이를 비롯하여 예상되는 부작용을 다음에서 좀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겠다.

■ 예상되는 부작용

모기지론은 또 하나의 계층간의 갈등을 불러올 소지가 있다. 즉 부동산 소유자와 부동산 미소유자간의 갈등. 물론 이는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집값의 30% 정도만 가지고 집을 구입할 수 있게 된다면 어느 정도 자산여력이 있는 서민계층 역시 이전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주택 구입에 몰려들 것이고 그러한 여력마저 없는 이들을 또 다시 체제 밖으로 밀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모기지론 이용에 또 하나의 조건이 있는데 이는 이용자들이 일정 정도의 고정수입을 증명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20년 만기 대출금 1억원을 은행에서 빌리려면 월소득 수준이 230만원 이상은 돼야 한다. 이는 결국 고정수입이 없거나 또는 월소득이 상기 금액에 미치지 못하는 대다수의 도시 빈민은 제도에 소외된 채 반영구적인 무주택자로 방치해버리는 결과를 낳게 될 개연성이 높다.

또한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모기지론 이용자들은 그 계급적 구성이 어떻든지 간에 체제 내로 보수화될 개연성이 높아진다. 즉 빚으로 부동산이라는 자산을 소유하게된 이들은 오히려 순수하게 자신의 자산으로 집을 구입한 이들보다 더욱 집값 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고 대체로 집값의 추가상승을 바라게 된다. 그들이 바라는 상승추이는 최소한 그들의 금융비용을 초과하는 선에서 정해진다. 이는 여하한의(비정상적인 시장요인에 의한 것이라도 상관없다) 요인에 의해서라도 집값이 상승하는 것이 그들의 삶의 질을 후퇴시키는 요인을 제거해주기 때문에 비정상적이고 반민중적인 집값 상승에도 애써 눈을 감을 것이다.

이는 또한 모기지론을 이용하여 주택을 구입한 이들마저 경제적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말해주고 있다. 예로 집값의 30%(5천만원)를 미리 내고 1억5천만원짜리 서울 강북지역 25평형 아파트를 구입하였을 경우 나머지 금액은 20년 동안 매달 68만원씩(연6.8% 고정금리 기준) 갚아나가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전체 상환기간에서 보면 이자는 원금의 두세배에 달한다). 결국 현실의 비정상적인 집값을 용인하고 지불한 현재가치가 지속적으로 엄청난 가계부담으로 전가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가계부담으로 인한 수혜자는 전적으로 은행이다.

사실 은행의 입장에서는 아쉬울 것이 하나 없는 거래이다. 물론 금리폭등으로 인한 역마진이 우려되기는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주택이라는 매력적인 담보를 가지고 있고 이를 통해 주택저당증권을 발행하여 이를 중개기관에 팔아 대출자금을 회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20년 동안 꼬박 이자를 받아먹기 때문에 그야말로 땅짚고 헤엄치는 장사라 할 수 있다.

■ 선진시민의 우울한 자화상

빚은 화폐가 존재한 이후로 계속하여 사람들의 옆에 존재하여왔다. 그 빚이 때로는 삶에 보탬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삶을 옥죄는 면류관이 되기도 하였다. 빚의 정치경제학적 함의를 살펴보는 것이 별로 새로울 것이 없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함에도 현재진행형으로 모기지론이 우리에게 새로이 던져주고 있는 의미는 주택이라는 우리의 삶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자산의 구입에 우리의 인생이 합법적으로 체제에 저당 잡힐지도 모르는 큰 금액을 빌리는 제도라는 사실이다.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무산자 계급은 그들의 현재소득과 얼마 되지 않는 가용재산에 가용재산의 몇 배에 해당하는 돈을 빌려 주택을 구입하게 되는 그 순간 소득의 상당부분을 은행에 고스란히 바치면서도 한편으로는 주택가격의 폭락과 폭등에 일희일비하는 ‘잃을 것이 많은’ 무산자 계급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이는 개인의 도덕성이나 진정성의 문제가 아니다. 그 자체가 자본주의의 역학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가야 하는 자본주의 선진시민의 우울한 자화상이다.

15 thoughts on “모기지론의 허와 실

  1. ㅡ,.ㅡ

    중산층의 위기와 맞벌이 쇼크의 주된 원흉이기도 하지요 🙂

    ‘집 모기지와 자동차 할부금, 애들 교육비 대고나니 남는게 없어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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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eagle2

    5년전에 말 그대로 모기지의 허와 실을 정확하게 짚으셨군요! 저는 당시엔 ‘내 집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이 늘겠군’ 생각하며 마냥 좋아했었드랬지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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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J준

    시드니에선 이자율의 증가로 인해 많은 가정이 모기지를 갚기 위해 끼니를 거른다는 말을 하더군요. -_-;; ㄷㄷㄷ
    그냥 내 집 없이 살아야하나…하지만 10년뒤만 내다보면 더 궁핍해져 있을 처지가 그랜드캐년 절벽끝에 서있고 떨어지면 나이아가라 분위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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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그랜드캐년과 나이아가라가 합쳐지면 ㅎㄷㄷㄷ 암튼 인간은 참 불쌍한 존재입니다. 새들은 나뭇가지로 대충 엮어서 집 한 채 뚝딱 만드는데 인간은 별별 쑈를 다해서 겨우 하나 가지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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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Magicboy

    모기지의 어원을 분석하면 죽을때까지 갚아야 한다는 의미가 있다더군요.. 모르(Mort) .. 를 죽을때까지로 보느냐..아니면 다르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암튼.. 장르는 호러군요..-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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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저도 그 이야기를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나네요. 말씀대로 해석 여하에 따른 것이라 생각됩니다만 암튼 시사하는 바는 있지요.

      장르는 호러지만 즐기시는 취향에 따라서는 코미디도 될 수도 있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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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밝은악마

    모기지론이 도입되었을때 현금주고 집사서 비싸게 팔고 빠졌어야 했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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