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의 금융 위기, 파국을 부를 수도 있다.

오랜만에 중앙일보에서 좋은 칼럼을 읽었다.(한 가지 흠이라면 기고자가 외국인이라는 점이다.) 전 프랑스 총리 미쉘 로카르(주1)가 기고한 ‘세계 금융위기, 보고만 있을 것인가’라는 제목의 칼럼은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가 직면하고 있는 모순을 단순하고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더불어 이러한 체제모순이 현재 무기력한 각국 정부나 경제학자들에 의해 방치되고 있으며, 하루빨리 이러한 무기력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문을 담고 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오늘 날의 자본주의는 30년 전의 그것과 상이하다. 선진국들이 연평균 5%에 달하는 성장을 구가하던 1945~75년 동안의 기간은 오늘 날과 같은 금융 위기가 존재하지 않는 완전 고용의 시대였다. 그리고 “이처럼 성장과 행복이 공존했던 것은 강력한 사회복지 시스템과 케인즈의 학설을 따른 경제정책 덕이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특히 그의 발언 중 주목하여야 할 부분은 “모든 선진국은 고임금을 지급해 소비를 촉진하고 성장을 이끌어내는 정책을 취했다. 주주들은 오늘날에 비해 형편없는 배당금에 만족해야 했다.”라는 설명이다. 이는 오늘 날 소위 주주 자본주의라 불리는 사회 체제가 자본주의의 고유속성이 아니며 고임금을 포함한 복지정책이 경제 선순환의 필요조건임을 잘 말해주고 있는 발언이다.

좀 더 살펴보자면 20세기 중반의 고성장은 적어도 제1세계의 노동자들에게 만큼은 적절한 대가를 지불하였고(물론 고전적인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비추어 보면 착취는 여전하지만) 이것이 소비의 진작을 불러 일으켜 제조업이 성장하는 선순환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늘 날의 ‘고용 없는 성장’과 대비되는 ‘분배 있는 성장’이었던 셈이다.

이는 로카르 총리도 지적하였듯이 유럽의 사회주의적 정권을 비롯한 선진국 정부들이 케인즈 주의적인 경제정책을 시행하였고 전 세계적으로도 아직 금융자본의 존재감이 뚜렷치 않았던 사회풍토 덕택이기도 했다.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이러한 사회체제는 닉슨 정부에 의한 달러의 금태환 정지 선언 및 이어지는 각종 금융자유화 조치로 서서히 붕괴하게 된다.

금융시장에서는 금태환 정지 및 이에 따른 변동환율제 실시에 따른 위험을 분산시키겠다는 명목으로 각종 파생금융상품과 금융기법이 발달하기 시작한다. 이후 국경을 넘어서는 금융투자, 파생금융시장의 발달, 적대적 M&A시장의 융성 등 제조업과는 별개의 동력을 갖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오늘 날 펀드자본주의라고 불릴 정도로 온갖 종류의 금융자본이 난무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래서 이를 통해 오늘날 시장은 한층 안정적이 되었을까. 모순되게도 개별 자본에게는 그렇게 되었을지 몰라도 – 예를 들면 통화스왑이랄지 이자스왑을 통해 – 그것이 총자본으로 합계가 되면 경제는 전체적으로 더욱 혼란스럽고 위험이 높아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위험의 분산이라 보이는 것들이 이번 서브프라임 사태에서 보듯이 오히려 동일한 위험으로 각 주체들이 줄줄이 연결되어 버리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주주 자본주의의 강화로 주주는 엄청난 배당을 누리는 반면 노동자는 고용이 불안해지고 실질임금은 낮아지고 있다. 이른바 ‘고용 없는 성장’의 시대가 된 것이다.

로카르 총리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 대해 “시간이 흘렀고, 주주들은 이런 시스템을 내던졌다. 연금·투자·헤지펀드에 혁명이 일어났다. 지난 25년 간 선진국 경제는 크게 성장했지만 임금과 사회복지 수준은 그대로 유지되거나 오히려 삭감됐다. 결과적으로 허약한 기반 위에 이루어진 성장이라는 것이다.”라고 축약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경제 규제 완화에 따른 금융 위기의 증폭이 오늘 날의 인터넷 버블과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불러왔음을 실토하고 있다. 유력한 자본주의 국가의 총리였던 이의 입에서 나온 발언치고 상당히 강성이다.

어쨌든 이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문제는 현재 서구의 금융위기가 일시적이 아닌 근본적인 모순이라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그 모순이 여태껏 금융시장 내부뿐 아니라 제조업과 복지 등 사회 곳곳에 악영향을 미쳐왔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사회복지를 통한 경기부양이 아닌 빚으로 소비를 진작시켜 경기를 지탱해온 모기지론 시장이나 크레디트카드 시장이다.

그 결과 선진국들의 집값은 크게 올라 국민들의 부가 증대된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신기루에 불과하였고 이제 그 집값을 떠안아줄 신규 소비자가 나타나지 않는 상황에서 집값은 허물어지고 있다. 이로 인한 서브프라임 사태의 피해액은 아무도 추정할 수 없을 정도다. 수백 억 달러에서 수천 억 달러까지 제각각 추측이 난무하다. 거기에다 빚은 개인만 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라도 빚이 장난이 아니다. 미국은 매일 20억 달러를 빚지고 있다. 미국의 총부채는 39조 달러로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3.5배를 넘는다.

이전의 유사한 금융위기와 다른 점은 그래도 중국, 인도, 러시아 등이 꾸준히 성장하고 있고 외환보유고도 든든히 쌓아놓아 전 세계적인 신용경색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지만 세계 최대의 소비국가 미국의 경제침체는 이들 국가에게도 결코 좋은 일만은 아니다. 특히나 20세기에 비해 더욱 더 개방화되어 있는 세계 자본시장은 특정 시장의 혼란이 더 빠른 속도로 전염되는 경향이 있다.

한 예로 미국 금융위기의 여파로 국내 금융계도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영향받고 있다. 주식 펀드의 인기, 달러 유동성의 감소, 채권의 투매 등 서브프라임 사태와 직간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는, 다양하지만 상호 연결되어 있는 복잡한 변수들로 말미암아 금융시장 및 주식시장이 그야말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란을 겪고 있다. 대출금리 인상과 아파트 미분양 사태도 이어지고 있어 미국의 부동산 폭락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결국 이러한 다양한 혼란상에 대해 로카르 총리는 “44년 열렸던 브레턴우즈 회의가 그랬던 것처럼 오늘날 제멋대로 돌아가고 있는 금융 시장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긴급 회의를 소집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그때보다 훨씬 파워가 강해진 금융권력을 적절히 통제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여러 대안이 있을 수 있겠지만 국가 간 금융거래의 통제(주2) 와 금융거래에 대한 규제(주3)의 정비가 핵심이지 않을까 싶다.

국내 상황도 마찬가지다. 앞서 말했듯이 대출금리 인상, 미분양 사태 지속, 묻지마 주식펀드, 또한 얼마전 문제가 된 부동산PF의 무분별한 추진 등이 잠재해있는 복병이다. 이러한 요인들이 상호작용을 미치며 화학적 반응을 일으킬 때에는 금융교란이 올 수도 있다. 정부는 보다 정밀한 금융대책을 강구하여야 할 시점이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해결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주1) 프랑스의 정치가. 프랑스 총리를 지낸 정치가이다. 1974년 F. 미테랑의 사회당(PS)으로 복귀하고 계획·지역개발 장관, 농림 장관 등을 지냈다. 미테랑의 정책에는 현실주의적 입장에서 비판적이었으나 1988년 대통령 선거에서 미테랑의 재출마를 지지하여 그해 5월 총리에 임명, 취임하였다.

(주2) 이와 관련하여 가장 인기를 얻고 있는 대안이 단기성 외환거래에 부과하는 세금인 토빈세일 것이다.

(주3) 일례로 서브프라임 모기지에서 사용된 기법인 SIV(구조화 금융) 등 각종 금융기법은 금융기관에 대한 국가의 규제를 벗어나는 교묘히 고안된 장치들이다. 이것이 개별금융들에게는 틈새시장에서의 기회를 제공할지 몰라도 이번처럼 수많은 금융기관이 답습하고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엄청난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만다.

4 thoughts on “전 세계의 금융 위기, 파국을 부를 수도 있다.

  1. 독자

    이미 알고 계실 듯 하지만 사회주의 학자들은 거슬러 올라가면 폴 스위지로 시작해 지금까지 금융 자본주의의 위험성에 관해 꾸준하고 강하게 경고해왔었죠. 위기는 주택시장의 붕괴를 시작으로 노출될거라고 예견했었구요. 케인즈 주의를 통해 위기를 해결 할 수 있느냐 아니냐에 관해선 칼럼의 필자와 의견이 다르지만 좌파들의 진단에 관심이 있는데 혹시 안 읽어 보셨다면 아래의 논문들은 일독할 가치가 있습니다.

    http://journal.jinbo.net/jsboard/read.php?table=translate&no=2101

    http://dli.nodong.net/RUN/mgr/library_mgr.php?&act=view&code=jrs&uid=612

    Reply
    1. foog

      칼럼 필자는 아무래도 미테랑 정부 사람이었으니 케인스적인 해법을 기대하고 있겠죠. 하지만 세상이 변했으니 쉽진 않겠지요. 자본주의 호황기가 과연 정말 다들 그렇게 생각하듯 케인스식 경제정책이었는가 하는 문제도 있고 말이죠.

      현재 시장의 급격한 변동은 하여튼 이전의 양상과 사뭇 다른 모습이어서 개인적으로야 흥미롭지만 그 안에 사는 우리들이 피해를 입게 될 것이 두렵기도 합니다.

      여하튼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좋은 글 링크시켜주신 것도 감사하고요. 🙂

      Reply
  2. 류동협

    최근 미국신문에 실리는 글이나 이코노미스트 칼럼을 보더라도 최근의 위기는 좀 심각한 것 같더군요. 경제 침체가 장기적으로 갈거라는 전망이더군요. 중국이 미국의 역할을 떠맡기는 아직 무리고, 새로운 경제모델이 나와야 할때가 아닌가 싶네요.

    Reply
    1. foog

      네 특히 이코노미스트가 자꾸 현재 경제의 심각성에 대해서 환기를 시키더군요. 이전과의 차이점은 경제의 심연에서 모순이 차곡 차곡 누적되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새로운 경제모델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죠.

      Reply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