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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d의 “저렴한” 수고비

블룸버그 뉴스는 오늘 중앙은행이 미국의 납세자들을 대신하여 은행들에 빌려준 1.5조 달러의 대출에 대한 담보로 받은 증권을 연방준비제도가 공개할 것을 연방법원에 요구하였다. 원고의 첫 진술에 따르면 이 소송은 연방관리들이 정부서류를 언론과 일반대중이 이용 가능하게끔 하여야 한다고 규정한 연방정보공개법에 의거한 것이다. “미국의 세금납세자들은 미국의 금융업에 대한 전례 없는 정부의 구제금융이 지니고 있는 리스크, 비용, 그리고 방법론을 알 자격이 있다.” 이메일에서의 뉴욕 블룸버그의 한 단위인 블룸버그 뉴스의 편집장 매튜 윙클러의 의견이다.[Bloomberg Sues Fed to Force Disclosure of Collateral]

2008년 11월 7일자 블룸버그 기사다. 그리고 마침내 연방법원의 명령에 따라 최근 Fed는 대출서류를 공개했고, 신문은 그 내용을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Fed는 PDCF(Primary Dealer Credit Facility) 프로그램을 통해 월街 금융회사의 1,180억 달러에 달하는 정크본드, 부실대출, 등급이 알려지지 않은 증권 등을 현금으로 바꿔줬다고 한다.

이 금액은 리만브라더스가 망한지 2주 후인 2008년 9월 29일 돈을 빌릴 회사들이 Fed에 제공한 1,643억 달러의 담보의 72%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이를 통해 은행들은 총 1,557억 달러를 빌렸다고 한다. 이 말은 또한 담보완충(collateral cushion)이 불과 5.49%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신문은 전하고 있다(계산식은 [1,643-1,557]/1,557).

이중 위험한 담보를 계산해보자. 담보의 43.6%인 717억 달러는 단순 대출이 아닌 위험부담이 높은 자본금(equity)이고, 11.2%인 184억 달러는 이미 부실화된 대출을 포함한 ‘고위험대출(High- yield debt)’(이를테면 구조화된 금융에서 상환순위가 더 늦은 대신 더 높은 금리를 받는 부분), 17%인 280억 달러는 등급이 알려지지 않은 담보였다.

완충담보가 “인수된 담보의 위험에 비해 너무 작다” Pirrong(휴스턴 대학의 재무 교수)이 말했다. “시장의 휘발성이 엄청났던 시기에 정크거나 부실화된 대출과 자본금이 담보라는 것은 무척 놀라운 것이다.”[Fed Let Brokers Turn Junk Into Cash at Height of the Financial Crisis]

그럼 누가 이 엄청난 금액을 빌렸을까? 모건스탠리가 613억 달러로 1위다. 메릴린치가 363억 달러로 2위다. 이들 담보는 전체 담보와 유사하게 상당한 비중의 자본금, 등급이 없는 증권들, 정크 또는 부실화된 대출을 포함하고 있다. 결국 구제금융은 대마불사의 원칙하에 움직였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문제점을 살펴보자면 – 돈을 번 것이 문제라기보다는 돈을 번 원인이 문제지만 – 첫째, 그들이 상업은행의 흉내를 내서 돈을 버는 것은 전통적인 Fed의 목적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그들은 지금 언제 부실화될지 모르는 채권들을 손에 들고 돈을 벌었다. 일반은행들도 비록 부실자산으로 염려되는 여신일지라도 작년 한해 이자율 상향조정을 통해 많은 돈을 벌었다. 워싱턴포스트의 지적대로 연방은행이 해당 채권들을 팔려고 할 때 자본이득(capital gain)을 취하기는커녕 시장에서 소화가 될지도 모르는 채권이 상당수라는 것이 문제다. 결국 미래의 예상손실을 현재 따먹고 있는 것일 뿐일지도 모른다.[2009년 가장 장사를 잘한 은행]

2010년 1월, 내가 작성한 글이다. 당시 알려진 바에 의하면 Fed는 450억 달러의 수익을 올려 전 세계 은행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번 은행이 되었다. 어떤 이는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Fed의 시의적절한 구제금융이 금융시장을 위기에서 건졌고, 어려움에서 벗어난 시중은행들이 빚을 갚으면서 상황이 정상화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용한 내 글에서 이야기하고 있듯이 수익의 창출원은 “언제 부실화될지 모르는 채권들”이었고, 블룸버그가 보도한 내용은 그러한 예측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즉, PDCF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빌려준 금액이 이미 1,557억 달러이고 이들 금액에 대한 담보가 부실한 상황에, 담보의 27%만 부실화되어도 2009년 수익이 몽땅 날아가는 것이다.

은행의 수익창출 방법은 간단하다. 레버리지를 높여 더 많은 신용을 창출하고 이자를 받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위기가 도래할 때 과다한 레버리지와 질낮은 담보가 은행의 목을 죄고 결과적으로 은행은 망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최종대부자인 Fed가 금융회사가 망하지 않게 하려 엉터리 담보를 떠안은 것이다. 사상 최대 수익은 그 “저렴한” 수고비다.

‘로널드 리건’이 ‘로널드 레이건’이 된 사연에 대한 고찰

한국어는 여러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적혀진 한글에 대한 발음에 있어 거의 이론의 여지가 없는 편이다. 자기 이름을 ‘유인촌’이라 써놓고 사람들이 ‘유인촌’이라고 부르니까 “내 이름을 유인촌 말고 문익촌이라 읽어 달라”라고 억지를 부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표음문자(表音文字)의 특징이다. 문익촌도 나쁘진 않지만.

그런데 알파벳은 같은 표음문자라 하더라도 좀더 변용이 많은 편인 것 같다. 특히 이름과 같은 고유명사의 발음에 있어서는 기존 관행 또는 본인의 의지에 따라 달리 발음하기도 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팝가수 ‘샤데이’는 스펠링이 Sade다. ‘세이드’라 발음해야 할 것 같은데 나이지리아 국적인 그녀가 그렇게 불러 달래서 샤데이다.

한편 미국 대통령 중에선 희한한 케이스가 하나 있는데 ‘로널드 레이건’이다. 그의 이름은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는 ‘로널드 리건’이라 불리었다. 그런데 대통령이 된 날 ‘로널드 레이건’으로 표기가 바뀌었다. 알파벳 스펠링은 ‘리건’일때나 ‘레이건’일때나 여전히 Ronald Reagan 인데 말이다. 대통령이 될 때쯤인 1981년의 신문을 보자.

(이하 네이버 디지탈뉴스아카이브 캡처)

이때까지만 해도 ‘리건'(1980년 7월 17일 동아)

경향신문의 1981년 11월 6일자 보도에 따르면 ‘한국신문편집인협회보도용어 통일심의회(韓國新聞編輯人協會報道用語 統一審議會)’라는 거창한 단체에서 여태 ‘리건’이라 써오던 표기를 ‘레이건’으로 바꿔 쓰기로 했다고 한다. 누구 맘대로? 아무리 단체 이름이 거창해도 감히 미국의 대통령 이름을 멋대로 바꿔 쓸 수는 없다. 본인이 허락하지 않은 한은.

너무 거창한 단체 이름!(1981년 11월 6일 경향)

그런데 동아일보는 경향이 그런 사실을 보도하기 하루 전에 이미 그를 ‘레이건’이라고 표기했다. 왜 그렇게 했냐고? “본인의 희망에 따라” 그랬다는 보도도 있다. 동아는 이미 발빠르게 ‘한국신문편집인협회보도용어 통일심의회’가 바꿔 쓰기로 결정하거나 말거나 “본인”의 희망사항을 확인했다는 이야기다. 역시 그때부터 대단한 신문이었던 듯?

본인의 희망이라잖아~(1981년 11월 5일 동아)

그때 아직 소년시절인지라 많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 사실만큼은 기억한다. 여태 ‘리건.. 리건..’하던 미국의 대통령 각하의 이름이 어느 날 갑자기 ‘레이건’으로 바뀐 그 순간 말이다. 그때 기억을 더듬어 보면 동아의 말마따나 그리고 ‘샤데이’의 경우처럼 본인이 “이제 멋없는 리건이라는 이름대신 레이건이라 불러라. 에헴!”한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1985년 11월에 고르바초프와 레이건의 미소 수뇌회담이 열렸다. 언론은 양자가 화해하여 동서대립이 해소된 것처럼 요란하게 보도했다. 그러나 당시 수행자들이 누구였던가? 레이건의 감시자로서 세계최고의 원자력발전소 건설회사 벡텔 사의 사장 조지 슐츠와 세계 최고의 투자은행 메릴린치의 도널드 리건이 각각 국무장관과 수석보좌관의 직함을 들고 동행하지 않았던가. [중략] 이 가운데 리건 보좌관은 재무장관에서 자리를 옮긴, 최고 실력자라 부를만한 인물이었다. 레이건이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그때까지 로널드 리건이란 이름의 발음을 로널드 레이건으로 바꾼 것도 이 헷갈리기 쉬운 스폰서인 도널드 리건을 장관으로 맞이하는 예의로서 대통령이 한발 양보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제1권력, 히로세 다카시 지음, 이규원 옮김, 2010년, pp481~482]

JP모건과 록펠러 집안이 미국과 전 세계의 권력을 좌지우지한다는 히로세 다카시의 음모론 책을 읽고 있는 와중에 만난 대목이다. 이 주장대로라면 ‘레이건’ 씨는 비록 스펠링이 Regan으로 다르긴 하지만 발음은 구분할 수 없는 차기 재무장관을 배려(?)하여 대통령으로 당선되자마자 표기를 바꿔달라고 요구한 셈이다. 대단 대단!

변방의 신문은 전체 이름을 ‘도널드 리건’이라 하기도(1980년 3월 13일 경향)

그런데 여하튼 ‘도널드 리건’이 재무장관 자리에 확정발표된 것은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지 한달이 지난 후였으니 딴에는 히로세 다카시가 오버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그림자 내각이야 이미 확정되었을 수도 있고 그깟 이름에 대한 음모론은 전체 거대 음모론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하기는 마이클 무어의 신작 ‘캐피탈리즘:러브스토리’를 보면 도널드 리건이 보통 인물이 아니기는 하다. 대통령이 된 후 증권거래소를 찾은 레이건이 연설을 하는 와중에 노령인 탓인지 말이 상당히 느렸다. 이때 뒤에 있던 리건이 끼어들며 “빨리 좀 말하세요.”라고 하자 레이건이 “오호~”하며 놀라는 장면이 나온다. 단순히 부하직원의 충고였을까?

한국어로 잘 감이 안오면 영어로 표현해보자. “you’ll have to speed it up.” 이것이 그가 한 말이다. “have to”라는 표현이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입각하기 바로 직전까지 세계 최고의 투자은행(이었던) 메릴린치의 CEO ‘리건’과 변방국가의 신문조차 이름을 헷갈려 하는 전 캘리포니아 주지사 ‘리건’의 대화 톤이 굳이 주종관계를 따질 게재가 있을까?

어쨌든 답은 알 수 없다. 진실은 한 사람이 – 혹은 두 사람이 – 알고 있을 텐데 둘 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호사가의 가십거리에 불과하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소위 레이거노믹스가 투자은행, 나아가 미국 자본가들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졌는가, 그리고 그것이 소수 지배계급에 의해 획책되었는가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위키피디어를 볼 것 같으면 레이거노믹스를 주장한 것은 사실은 ‘도널드 리건’이다. 그러니 사실 레이거노믹스의 옳은 표현은 원래 발음대로 <리거노믹스>일지도?

p.s. 한편 옛날신문을 살펴보다가 한 가지 재미있는 보도를 발견했다. 1960년대에 CIA가 광범위한 불법 활동을 자행했다는 1974년 뉴욕타임스의 보도에 따라 포드 대통령이 진상조사를 위한 위원회를 꾸리는데 그 위원회 이름이 위원회를 이끈 ‘넬슨 록펠러’의 이름을 딴 ‘록펠러 위원회’였고 ‘로널드 리건’이 이 위원회에 낀 것이다. 당연히 ‘넬슨 록펠러’는 록펠러 집안의 사람이다. 과연 ‘로널드 리건’은 록펠러 집안의 하수인이었을까? 🙂

‘록펠러 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여한 ‘로널드 리건'(1975년 1월 15일 동아)

최근의 유가폭등, 그리고 휘발성

금융 쓰나미가 전 세계를 덮치는 광경을 관전하는 동안 유가 또한 극적으로 폭락했다. 타임紙는 폭락의 이유를 크게 수요 감소와 투기세력의 후퇴를 들고 있다.

미교통부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8월에 전년도 동월 대비 150억 마일, 또는 5.6%나 덜 주행했다. DOT는 이는 1개월로 치면 년 단위로 역사상 가장 큰 폭의 하락이라고 말했다. .. 경제학자들이 “수요 붕괴”라고 부르는 것들의 명확한 증거다.
According to the U.S. Department of Transportation, Americans drove 15 billion fewer miles in August, or 5.6% less than they did the year before. DOT says it’s the largest ever year-to-year decline recorded in a single month. .. – sure proof of what economists call “demand destruction.”

“OPEC은 중국이 성장률을 유지하는 것을 확인해야만 한다.” OPEC 회담 전에 워싱턴의 유라시아 그룹의 에너지디렉터인 로버트 존슨이 한 말이다.
“OPEC needs to see China maintain its rate of growth,” Robert Johnston, energy director for the Eurasia Group in Washington said before the OPEC meeting.

금융기관들, 투자은행과 투기세력들이 석유선물에서 돈을 빼내는 바람에 유가 하락이 가속화되었다. 이것이 가격이 수요보다 더 빨리 떨어진 원인이다.
Banks, investment banks and speculators have pulled money out of oil futures, further driving oil prices down; that’s one reason why prices have fallen far faster than demand.

상징적인 두 국가의 수요는 모두 그동안 거칠 것 없이 오른 유가와 세계적인 금융위기 탓에 크게 줄고 있다. 금융기관과 펀드들 역시 금융위기를 맞아 디레버리징(deleveraging) – 투자청산이라고들 표현하는데 현금 확보라는 표현도 괜찮을 것 같다 – 열풍에 따라 석유선물 시장에 뛰어드는 것을 자제하고 있을 것이다. 이래저래 산유국들은 추운 겨울을 보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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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il well” by Original uploader was Flcelloguy at en.wikipedia – Originally from en.wikipedia; description page is/was here..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러시아, 이란, 베네수엘라 등 그들의 예산을 높은 유가에 맞춰놓은 국가들은 당장 재정적자가 예상된다. 유가폭락을 부추긴 금융위기가 또한 그들의 실물경제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므로 이중고에 시달릴 것이다. 최근 그루지야와의 분쟁 등 여러 안보적인 문제로 해외자본의 급격한 이탈에 시달리고 있는 러시아는 삼중고에 시달릴 것이다.

여기에서 살펴보아야 할 부분은 현재의 금융위기나 급격한 유가변동의 공통점이다. 즉 그것은 영어로 volatility로 표현되는, 우리말로 하자면 ‘가격변동성’ 정도로 해석되는 개념이다. 개인적으로는 volatility의 형용사격인 volatile이 ‘휘발성의’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에 착안하여 ‘휘발성’이라고도 표현하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이 말이 더 와닿는다. 즉 현재의 세계경제는 휘발성이 지나치게 높은 편이다.

이는 크게 ‘증권화’와 ‘유동화’, 그리고 ‘경제통합’과 관련 있다고 생각된다. 증권화/유동화에 대한 개념은 이 블로그에서도 여러 번 설명했고 다른 경제관련 글에서도 빈번하게 등장하듯이 현대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가격을 매길 수 있는 모든 것을 증권으로 만들어 유동화 시키는 것이 현대 금융자본주의의 특징인데 투자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이면에는 극도의 ‘휘발성’으로 시장변동폭을 가늠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리고 경제통합, 특히 금융시장 통합은 이 휘발성의 전염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다시 석유로 돌아가서 메릴린치가 배럴당 200달러까지 갈 거라고 큰소리치던 때가 엊그제인데 1/4토막 났다. 우리와 같은 자원빈국으로서야 천만다행이지만 문제는 이 유가가 언제 또 튀어 오를지 예측이 한층 어렵다는 사실이다. 미국인의 자동차 운전거리가 짧아진다니 그러려니 하지만 석유선물 시장은 여전히 모든 투자자들에게 열려있고 또 언제 그들이 메뚜기 떼처럼 달라붙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이러한 변동리스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중장기적으로야 석유로부터 자율적인 경제, 대안에너지 생산체제 구축 등에 힘써야겠지만 – 현 정부는 원자력 사용증대를 통한 녹색성장이라는 어이없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OTL – 더 큰 틀에서는 금융시장의 증권화/유동화를 적절히 통제할 수 있는 금융규제의 틀 – 사실 유가변동성이 아니라도 시급한 일이지만 – 을 마련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멜라민이 식품첨가물이 아니어서 현행법으로 규제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 어이 없는 상황은 현재의 금융시장도 비슷한 것 같다.

폭풍전야의 월스트리트

주말을 맞이하여 금융회사들의 빅세일이라도 있는지 하나하나가 신문경제면의 탑을 달릴만한 사건들이 연달아 벌어지고 있다. 리만에 대해서는 바클레이와 Bank of America가 집적거리고 있다가 일단 BofA는 한발 물러섰는데 이번에는 메릴린치를 살까 궁리중이라고 한다.(관련기사 1. 2.)  이에 따라 금융가는 유사시 리만이 부도를 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분위기라고 한다.(관련기사) 한편 AIG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관련기사) 美증시도 그렇거니와 화요일  개장되는 국내증시도 또 한번 요동을 칠 것 같다.

월스트리트의 위기, 그리고 시사점(2)

위기에 처한 월스트리트

파이낸셜타임스의 10월 27일 기사에 따르면 메릴린치의 CEO Stanely O’Neal 이 이사회의 사전승인 없이 합병 등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미국에서 네 번째로 규모가 큰 은행인 Wachovia를 접촉하였다는 사실 때문에 CEO자리를 뺏길 위험에 처해있다고 한다. 이미 공격적인 사업추진으로 회사에 엄청난 손실을 안겨준 만큼 그의 이러한 독단적인 행동이 이사회의 분노를 촉진시킨 것으로 추측된다.

문제는 지난번 관련 글에서도 지적하였듯이 이러한 메릴린치의 사상 초유의 손실이 CEO의 공격적인 사업추진 스타일이나 사업상의 실수만이 아닌 보다 깊은 구조적 원인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바로 현재 미국의, 그리고 미국화된 전 세계의 취약한 금융 시스템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자산담보부증권이란

메릴린치 뿐만 아니라 여타 월스트리트 은행들도 3분기 실적이 형편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Bank of America, Bear Stearns 등도 손실이 현저히 불어났다. 메릴린치가 그 중 가장 손실이 컸을 뿐이다. 그것은 메릴린치가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연계된 이른바 자산담보부증권(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s : CDOs)의 최대 인수자(underwriter)였기 때문이다.

자산담보부증권은 금융기관·기업 등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을 담보로 발행하여 제3자에게 매각하는 증권으로 자산유동화, 즉 투자 또는 대출금의 빠른 회수를 위하여 고안된 장치다.

단순하게 보면 주택을 사고 싶은 소비자가 돈을 은행으로부터 빌린다. 은행은 주택을 담보로 잡고  일정요율의 이자의 돈을 대출해준다. 그리고는 그 주택담보를 자산으로 한 증권을 발행하여 다른 금융기관 혹은 개인투자자에게 이를 당초 요율보다 조금 낮은 이자율에 판매한다. 그리고 중간에 이자의 갭을 챙긴다. 기업과 개인은 이를 보유하기도 하고 때로 재판매하기도 하여 위험을 분산시키고 투자를 회수한다. 이렇게 발행된 증권은 쪼개지고, 묶여지고, 다시 패키지화되고, 재판매되며 시장을 종횡무진 한다.

개별기업 차원에서는 위험을 분산시키고 투자를 조기에 회수하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고위험의 CDO가 시장을 돌아다니며 시장 전체의 위험은 증가되는 측면이 있다는 점이다.

부실채권이 되어버린 CDO, 이어지는 가혹한 인원감축

미국 내에서 CDO의 발행규모는 2001년 520억 달러에서 2006년 3,880억 달러로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이 돈은 일종의 리버리지 효과를 노린 주택구입자의 주택구입비용에 충당되었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미국의 집값은 큰 상승세를 기록한다. 거품은 작년 여름부터 꺼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 CDO의 담보인 주택의 담보능력이 현저히 저하된다. 이른바 부실채권이 된 것이다.

극단적인 시장옹호론자들이 흔히 하는 말이 부동산투기를 욕하지 말라고들 한다. 그들과 같은 위험감수자(risk taker)가 없으면 시장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위험감수자들이 노리는 것은 “high risk, high return”이다. 일정 수긍이 가는 말이다. 문제는 이것이 탈법적이거나 심지어 규제가 약한 곳에서 시장의 궁극적 목적을 교란시키면서 진행되는 경우이다.

지금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에 처해있는 금융기관과 모기지를 이용하여 주택을 구입한 이들이 바로 비슷한 처지다. 금융기관은 정부의 탈규제 경향을 틈타 기존의 대출상품과 또 다른 교묘한 상품을 만들어 수익의 극대화를 시도하였고, 부동산 시장은 그로 인해 부풀어 올라 주택구입자들의 마음은 풍요로워졌다. 현재 그 거품이 꺼지는 순간 그들은 다시 정부가 나서줄 것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 마치 예전에 금융시장을 붕괴시킬 뻔 했던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의 그 뻔뻔한 금융천재들처럼 말이다.

여하튼 시장의 침체는 금융노동자들에게 가혹한 시련으로 다가온다. 이미 모기지 회사에서는 수십만의 인력이 일자리를 잃었다. Bank of America 는 투자금융 부문의 인력 3천명을 해고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여타 금융기관의 대량해고를 예고하는 발표가 될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Bear Stearns, Citigroup, JP Morgan 등도 인원감축에 동참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리나라의 부동산 PF

현재 우리나라의 부동산 시장에서는 부동산PF(project financing) 혹은 자산담보부기업어음(Asset Backed Commercial Paper : ABCP)이 서브프라임 사태와 유사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소비자가 아닌 건설업체에게 빌려준 자금이라는 점이 차이가 날뿐이다. ABCP는 대출로 간주되지 않는 일종의 틈새상품으로 신보출연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등의 장점으로 말미암아 이자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상품이기에 그동안 인기리에 팔렸다. 여하튼 각 금융기관이 소유하고 있는 ABCP 역시 미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부동산 시장이 냉각될 경우 건설업체의 상환능력 상실, 더 나아가 부도로 이어질 경우 부실채권으로 전락하여 금융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뒤늦게 관계당국이 현황을 파악하느라 난리법석을 피우고, 총괄적인 관리에 나서고, 행정지시를 내리는 등 한동안 분주했다. 그리고 금융기관들도 이런 행정지시를 어느 정도 수용하는 한편 자체적인 위험관리에도 나선 것으로 보인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금융기관이 당국의 지시를 수용하는 것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금융의 순기능을 유도하는 시스템

금융은 국가경제의 동맥과 같은 존재다. 피가 안 통하는 곳에 피를 통하게 하여 건강한 국가경제를 만들어가는 필수조건이다. 그런데 올바른 뇌에 의해 적절히 통제되지 않은 채 부동산 시장과 같은 생산적 부의 창출과는 거리가 있는 부문으로만 집중된다면 몸의 불균형은 심화된다. 적정규모의 금액이 건실한 중소기업으로 흘러가고 이것이 국부를 창조하여 금융부문을 통해 재순환되는 선순환 구조를 이루어가야 한다.

이런 당위는 현재 개별기업과 투자자의 경제적 자유주의 논리, 주주자본주의 논리, 부동산 소유자들의 투기 심리에 밀려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물론 현대 물질문명 사회에서 투자는 당연히 이윤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사실은 자명한 상식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국가경제라는 공동체에 선순환적으로 기여하여야 한다는 것 또한 자명한 상식이다.

현대 금융의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인 여러 파생금융상품을 일방적으로 죄악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것은 분명히 생산기능의 효율화와 참여주체의 위험분산에 기여한다. 이러한 것들을 잘 활용하면 우리는 이전의 제도나 상품에서 상상할 수 없었던 많은 효율적인 개발이 가능하다. 문제는 그것이 순기능 하게끔 하는 통제시스템이다. 그것이 과거에는 권위주의적인 관치의 형태로 존재하였고 현재 많은 이들은 그러한 관치에 대해 본질적인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또 다른 시스템을 개발하여야 한다. “잘못된” 통제가 싫다고 “통제” 자체를 없애버리면 그것은 “무질서”를 용인 내지는 조장하는 것일 뿐이다.

추천글 ‘금융 불안정성’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확대되는가 

월스트리트의 위기, 그리고 시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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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후폭풍이 본격적으로 불어올 전망이다. 글로벌 투자은행 메릴린치가 3분기에 사상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다. 메릴린치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인한 손실이 84억 달러에 달하며 이를 반영한 결과 3분기 실적이 22억 달러 순손실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 수치는 몇 주 전 회사가 내놓은 예상치의 두 배 가까운 수준이며, 메릴린치 93년 역사에서 가장 큰 분기 손실이다.

많은 분석가들은 회사의 4분기 전망도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고 분석하였다. 이처럼 악화된 회사 경영 상태에 대해 회사의 최고경영자 Stanley O’Neal을 비롯한 경영진의 책임론이 거론되고 있다. 그들의 공격적인 사업행태가 악영향을 미쳤음은 사실인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분석가들은 두세 개의 또 다른 거대은행이 몇 주 이내에 유사한 정도의 손실을 발표할 것으로 조심스럽게 내다보고 있다는 점이다. 사태의 원인이 보다 깊은 곳에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투자회사인 Sanford Bernstein의 Brad Hintz는 지난 몇 년간 금융시장 여건을 악화시킨 세 가지 주요한 경향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1) 월스트리트가 돈을 벌기 위해 고안해낸 상품들의 재무적인 복잡성, 2) 이에 대한 부실한 위험관리, 3) 감독기관의 탈규제 경향이 그것이다. 그동안 많은 이들이 지적하였으나 본인들은 나 몰라라 하던 월스트리트의 문제점을 그대로 직시한 것이다.

사실 이러한 금융의 탈규제 경향과 더욱 복잡해진 금융상품은 그동안 선진금융기법이나 금융공학이나 하는 온갖 화려한 수사로 치장되어 월스트리트가 여러 후진국(?)에 수출하던 효자상품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여태까지 해외의 금융자본과 우리나라의 경제 관료는 이러한 정치적 수사를 동원하여 국내 은행의 민영화와 해외매각을 정당화하지 않았던가 말이다.

그렇다면 위에서 Brad Hintz가 언급한 요인들이 어떻게 시장에 악영향을 끼쳤는지 한 사례를 들여다보자. 최근 몇 년간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들은 이른바 “레벨3(Level3)”라 불리는 자산의 회계항목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부었다고 한다. 바로 문제가 되고 있는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각종 파생금융상품이 포함되어 있는 이 레벌3 계정은 그것을 측정할 시장이 없는 관계로 실현되기 전에는 ‘적정가치’를 측정할 수 없는 계정이다.

골드만삭스는 2분기에 540억 달러였던 레벨3 자산을 3분기에 720억 달러로 늘렸다. 리만브러더스는 역시 2분기 220억 달러에서 3분기 346억 달러로 늘렸다. 모건스탠리역시 예외없이 2분기 630억 달러에서 880억 달러로 투자를 확대하였다. 앞서 말했듯이 이 자산은 측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차대조표에 대한 신뢰성을 떨어트린다. 천문학적인 돈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소리다.

요컨대 시장의 모든 위험을 상품화하여 그 위험을 헷지하여 자본시장의 무정부성을 해소시켜 줄 것으로 기대되었던 신용 파생상품이 시장의 무정부성을 강화시켜주고 있는 모순된 상황에 직면하여 있는 것이다. 사태가 이러한데도 월스트리트의 천재들은 막연한 위험관리로 사태의 부실을 심화시켰고, 시장의 탈규제는 감독의 범위에서 벗어난 수많은 신상품이 시장을 교란시키게 방치하였던 것이다.

굳이 유명인사의 말을 빌릴 필요도 없을지 모르지만 조지 소르스와 함께 퀀텀 펀드를 공동설립한 헤지펀드의 ‘큰 손’ 짐 로저스는 “미국이 이미 침체에 빠졌다”며 이 때문에 달러화에 대한 투자 자금을 빼고 있다고 말했다 한다. 경제상황에 대한 판단이 파리채를 대하는 파리만큼이나 절박할 수밖에 없는 헤지 펀드의 거물이니만큼 그의 발언이 주는 의미는 더욱 비중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달러에 대한 해외자본들의 신뢰상실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그동안 실물경제를 지원하여야 할 금융시장이 스스로의 역학에 의하여 왜곡시켜온 시장의 거품이 꺼지면서 발생하는 부작용인 측면도 강하다. 시장교란자 중 하나인 짐 로저스 스스로가 자신의 발언에 대해 반성을 해야 할 장본인인 것이다.

한 신용시장 분석가는 “주택 인플레이션은 미국의 국가종교”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집값이 오르면 자신의 부가 늘고 있다고 생각하고 소비를 늘린다. 그렇게 해서 경제가 돌아가는 것이다. 주택 인플레이션은 상당부분 금융시장이 부풀려준 과잉신용과 과잉유동성에 기인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바로 그 대표적인 사례다. 지금 그 거품이 꺼지면서 현재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에 침체와 부실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째 이러한 현상이 바로 가까이서도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규모만 작았지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주택 인플레이션이 미국의 국가종교이기도 하거니와 우리의 국가 종교일 수도 있다. 오랜 동안 우리나라에도 ‘부동산 불패론’이라는 신화가 존재하지 않는가 말이다. 그리고 해외자본에 넘어간 상업은행들이 가계대출에 매진하면서 이러한 사태를 심화시켜온 것이 지난 몇 년간의 상황이다. 이것이 관계당국이 지향하던 선진금융이라면 이제는 좀 ‘지양’하여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파생금융상품에 대한 참고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