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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이라는 존재를 다시 생각해본다

나는 2006년의 공개시장조작위원회에서 “우리의 인식에 어떤 거대하고 부정적인 충격이 없는 한, 주택 가격에 예상되는 냉각의 효과는 완만할 것이라고 믿습니다.”라고 발언했다. 버냉키 의장은 농담 분위기를 빌어서 뉴욕의 조합(co-op) 아파트의 미친 듯한 가격에 대한 보고서를 요구했고, 위원들은 웃었다. [중략] 그러나 2007년 3월은 서브프라임에 대한 경고를 하기에는 게임에 너무 늦은 시점이었다. 그리고 내 견해로는, 위험을 줄이는 유일하고 효과적인 방식은 감독자들이 주요 금융사들이 위기에서 생존하는 데 충분한 자본과 유동성을 확보하도록 만드는 것뿐이었다.[스트레스테스트, 티모시 가이트너 지음, 김규진/김지욱/홍영만 옮김, 인빅투스, 2015년, pp133~135]

공개시장조작위원회에서 집값하락에 대해 Fed의장이 농담을 할 정도로 그렇게 낙관적이었던 분위기가 가이트너가 뒤늦게 고백하는 “경고하기에 너무 늦은 시점”으로 바뀌는데 불과 1년이 걸렸을 뿐이다. 그 1년 사이에 미국 부동산 시장에 무슨 천지개벽이 일어난 것도 아닐 텐데 어떻게 그렇게 분위기가 돌변하였을까? 왜 경제위기는 이렇게 우리 앞에 갑자기 등장하는 것일까, 그 과정에서 중앙은행은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일까에 대한 의문이 최근 우리나라의 조선/해운업의 위기 상황에서의 정부와 한국은행의 갈등 과정에서 생겨난 새로운 의문이다.

우선 롱포지션과 숏포지션의 시간상의 차이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롱포지션은 각종 채권이 가격을 오름으로써 이익을 보는 위치다. 가격은 일반적으로 서서히 오른다는 전제 하에 이 위치를 롱포지션이라고 한다는 설도 있다(whatever). 그리고 숏포지션, 즉 가격이 떨어짐으로써 이익을 보는 위치다. 가격하락은 서서히 과열되었던 거품이 터지며 투매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기에 짧은 시간 안에 급락하는 경향이 있다. 인용문에서의 기간이 바로 이렇게 급격한 투매의 시기였고, 많은 참여자들은 시장의 신호에도 불구하고 버냉키처럼 농담으로 그 경고를 무시했다.

두 번째, 중앙은행의 정책수단의 한계다. 회의 시간에 농담을 한다고 해서 정책집행자들이 마냥 시장을 방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Fed는 2004년 6월부터 금리를 0.25%씩 인상하면서 긴축정책에 돌입하였다. 문제는 이런 단기금리 인상이 장기금리 인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이고 이에 대한 여러 해석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오늘날의 경제가 전통적인 Fed의 정책수단으로 통제하기에는 너무 커지고 복잡해졌다는 점이다. 이러한 정책수단의 한계를 깨달은 현 상황을 우리는 “새로운 정상” 심지어 “새로운 비정상”이라 이름붙여 정당화하게 되었다.

세 번째, 두 번째의 배경과 겹치는 것이라 할 수 있는 정책집행자들의 믿음 혹은 그들의 계급적 성향이었다. 버냉키 전의 그린스펀은 아인랜드에 열광했던 시장근본주의자였고 시장 불개입주의자였다(다만 거품 붕괴로 인한 채권자의 채권회수에 문제가 있을 시에는 예외였다). 경제학자 제럴드 앱스테인(Gerald Epstein)은 금리조정 등을 – 주로 단기금리 – 통해서 인플레이션 목표를 달성하기만 하면 경제가 자연스럽게 굴러갈 것이라 여기는 이러한 발상을 신자유주의 적이고 금융엘리트를 위한 발상이라고 비판하였다.

금융위기 도래 이후, Fed를 비롯한 각국의 중앙은행은 “양적완화”, “마이너스 금리” 등을 비롯한 여러 비정상적인 조치로 경제 시스템의 붕괴를 지연시켰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정책집행자들의 – 행정부나 의회로부터 독립되어 중립을 지키고 있다고 여겨지는 고매한 금융 엘리트 – 손에 흙을 – 또는 피 – 묻히는 행위는 이미 한국이나 중국과 같은 개발도상국에서는 좀더 일상적으로 취해지던 조치와 유사할 수도 있다. 한국 정부가 “한국판 양적완화”라고 하지만 Fed의 조치가 “미국판 관치주의”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한국판 양적완화”든 “미국판 관치주의”든 간에 경제의 순환은 금융시스템에서의 유동성을 통해 가속화되고 이것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한에는 사회 대다수 구성원에 영향을 미치며 사회적 기능을 수행한다. 하지만 시장의 본질이든 오작동이든 간에 거품이 터지고 나면, 그 치유는 주로 – 여태 시장과 함께 사태를 마냥 낙관했던 – 중앙은행을 포함한 금융 시스템에 의해 이루어진다. 여태의 행위가 주로 자산가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1

늘 그렇듯 중앙은행은 “중립성”과 “독립성”을 주장하며 시장의 완벽한 작동에 미세조정만을 가하는 금융엘리트 집단으로 남기를 꿈꾸지만, 시장은 늘 미세조정 이상을 요구하며 요동쳤고 결국 중립성과 독립성은 허울 좋은 명분으로만 남게 되었다. 오늘날의 중앙은행 재무제표는 국가재정의 부외금융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의회의 통제를 벗어나기 위한 또 하나의 주머니일 뿐이란 사실은2 현재 한국정부의 한국은행 흔들기에서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경제 위기로 인해 우리는 다시 한 번 중앙은행의 존재이유를 생각해보게 된다.

어쩌면 그들은 1. 너무 순진하거나 2. 너무 무력하거나 3. 너무 고매한 것일지도?

거센 물결을 거슬러 올라간 사나이

2005년 5월 19일 – 계약조건이 최종 마무리되기 한 달 전에 – 마이크 버리(Mike Burry)는 그의 첫 서브프라임 모기지 계약들을 성사시킨다. 그는 도이치뱅크로부터 6천만 달러의 신용부도스왑(이하 CDS)를 구입했는데, 여섯 개의 서로 다른 채권에 각각 1천만 달러를 지불했다. 이것들은 “리퍼런스증권(The reference securities : 어느 한 신용주체가 발행한 채권)”이라 불렸다. 당신은 전체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 시장에 대한 보험을 구입하는 것은 아니지만 특정한 채권에 대한 보험을 매입하는 것이다. 그리고 버리(Burry)는 정확히 어떠한 것에 반대로 돈을 걸 것인지를 찾는데 몰두하였다. 그는 모기지 풀 중 가장 부실한 것을 찾아다니며 수십 권의 투자설명서를 읽고 수백 권의 투자설명서를 샅샅이 뒤졌다. 그리고는 여전히 그때까지도 매우 확신하고 있었던 것은 (그리고 나중에는 절대적인 확신으로) 그가 그것들을 작성한 변호사들을 제외하고는 그것들을 읽은 유일한 인간이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그는 또한 주택대출에서 그것들이 인출되기 전에 실행되었어야 하는 구식의 은행 신용분석을 수행하는 유일한 투자자 같은 이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구식의 은행가들과는 반대되는 사람이었다. 그는 가장 좋은 대출을 뒤지는 것이 아니라 가장 나쁜 대출을 뒤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것에 대해 반대로 돈을 걸 수 있었던 것이다.[The Big Short, Michael Lewis, Norton, 2010, pp49~50]

마이클 루이스의 신작 The Big Short의 일부를 번역하였다. 이 책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당시 그러한 금융 붕괴를 예측하였던 이들이 누구누구며, 이러한 예측을 어떻게 하였는지, 그리고 어떻게 활용하였는지를 알려주는 책이다. 인용문에 언급된 인물은 이들 중 하나로 마이크 버리라는 펀드매니저다.

마이크 버리는 의사였지만 뛰어난 금융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그 지식을 활용해 블로그를 운영하였다. 의사라는 직업에 회의를 느낀 그가 직장을 그만두자 그의 블로그를 눈여겨보던 일련의 투자자들이 그에게 돈을 맡겼고 그는 주식투자를 통해 큰 수익을 올려 이들의 기대에 부응하였다. 그런 그가 노린 다음 시장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이었다.

주식에 있어서만큼은 저평가된 주식에 투자하는, 소위 가치투자를 지향하였지만 부동산 시장 자체에 대해서는 매우 비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시장의 비이성적인 열기를 바라보며 얼마 가지 못해 시장이 붕괴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부동산 시장에 대해서는 숏포지션을 취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았는데 우선 어떠한 대상에 대해 반대로 돈을 걸어야 할지가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일단 서브프라임 모기지 등 무리한 대출을 실행한 금융기관을 공매도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너무 장기적인 위험에 노출되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투자은행을 수소문하여 당시만 해도 극히 드물었던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대한 CDS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을 택하였다.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와 첫 거래를 튼 곳은 도이치뱅크였다. 이 거대 투자은행은 당시만 해도 마이크 버리라는 멍청이가 신용평가기관에 의해 AAA등급이 매겨진 안전한 채권에 반대편으로 돈을 걸겠다는 것에, 그리고 그럼으로써 공돈이 들어오는 것에 신나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음 거래자 골드만삭스도 역시 상황을 몹시 즐겼다.

그들은 같은 등급이 매겨진 채권이라도 가장 악성 채권을 찾아내려는 마이크 버리에게 온갖 쓰레기 같은 채권들의 리스트를 이메일로 보내줬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손쉽게 가장 악성채권들을 골라내 그것들의 CDS 계약을 체결하였다. 이후 열심히 그는 다른 투자은행들과도 이런 계약을 체결하였고, 결국 최후에 웃는 자가 되었다.

이 에피소드는 매우 흥미로운데 그것은 시장이 상승기로 돌아설 때에는 우리가 의례 존재하리라고 생각하는 헤저(hedger)와 리스크부담자(risk taker)의 황금비율이 존재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라는 음악이 흐를 때에 모든 그 훌륭한 투자은행들은 리스크를 부담해가며 대출에 열을 올리고 있었고 헤저는 존재하지 않았다.

한편 마이크 버리도 엄밀히 말해서 헤저가 아니다. 그는 큰 흐름의 반대방향으로 돈을 건 리스크 부담자였다. 서로 반대편으로 돈을 건 리스크부담자들이었으므로 그들 간에는 일종의 제로섬 게임이었다. 진정한 헤저라면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에 돈을 대주는 한편으로 마이크 버리가 개발한 CDS와 같은 상품으로 헤지를 해놓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무한대의 시장이라 여겨지던 주택시장의 바다에서 모두가 함께 리스크 부담자가 되었고 그것에 대한 반대의 경우는 마이크 버리와 같은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이 고민하거나 또는 돈벌이의 기회로 활용하였다. 만약 마이크 버리의 예상이 빗나가 주택시장이 몇 년 더 호황기였다면 역시 한쪽으로만 돈을 건 그도 무사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결국 시장의 변동성에 대해 파생금융상품을 통해 적절하게 대응함으로써 시장은 자연스레 자정작용을 한다는 대전제는 마치 교과서에서나 존재하는 것처럼 여겨질 때가 이런 상황이다. 시장은 대개 이성적이다가 때로 비이성적으로 움직이는 것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 것인지조차 혼돈스러운 상황이다. 당신은 어느 쪽이라고 생각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