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DC에 관한 단상

이자를 지급하는 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중앙은행 디지털화폐)가 있으면 뱅크런은 불가능하다. 최종대부자로서 중앙은행은 예금자가 돈을 인출하길 원하는 그즉시 돈을 발행할 수 있다. 그리고 사용자 간의 즉각적인 거래라는 유동성 덕분에 경쟁자는 이들 예금자에게 3%의 이자를 지불할 수 있다. 전통적인 은행을 제외하고 누가 이러한 해결책을 반대하겠는가?

확실히 전통적인 은행은 금융시스템으로서 매우 중요한데, 이는 그들이 대출을 일으킴으로써 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기지를 신청한 가계가 지급능력이 있는지, 기업대출이 수익성있는 투자에 사용될 것인지 등을 점검한다. 대출은 언제나 위험하기에, 가장 경쟁력있는 은행일지라도 대출에 스프레드를 추가한다. 오늘날 은행이 얻을 수 있는 은행간 이자율 3%도 모기지에는 5%의 이자율을, 또는 기술 스타트업의 위험한 투자에는 9%의 이자율을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은행과 같은 몇몇 기관은 이러한 리스크를 평가하고 가격을 매길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은행들은 예금자의 돈을 굴리고 그들을 구제해줄 정부에 의존하면서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 그들은 너무 많은 리스크를 부담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문에 학계와 규제당국은 오랜동안 은행이 더 많은 자본비율을 쌓아야 한다고 주장하곤 했었다. 그들이 가계의 예금을 위험성있는 투자에 빌려주지 못하거나 정부의 구제금융에 의존하지 못할 때 그들의 위험감수 성향은 빠르게 줄어들 것이다.[The Simplest Fix for Banking]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화폐를 통해 이번 실리콘밸리은행이나 기타 다른 모든 금융위기 때 발생한 뱅크런을 막을 수 있다는 내용의 글의 일부다. 기술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조금 더 살펴볼 문제겠지만, 어쨌든 이론상으로는 정통적인 은행이라는 소매상을 거치지 않고 중앙은행이 예금자에게 추가적인 거래비용없이 바로 예금을 지급하는 방식에 있어 큰 기술적 난제는 없어 보이는 해결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용문의 다른 곳에서도 지적하고 있듯이 이는 전통적인 은행의 먹거리를 빼앗는 이슈이기에 기득권들의 저항이 당연히 있을 것이다. “은행”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근사한 석조건물을 올린 곳에서만이 중앙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려오고 그것을 운용할 수 있다는 신성한 권리가 중앙은행으로부터의 직불이라는 ‘야만적인’ 디지털 거래에 의해 침범당하는 참담한 꼴을 은행들이 참아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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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rian Pingstone – Taken by Adrian Pingstone in November 2004 and released to the public domain., Public Domain, Link

예전에 본 영화 중에서 ‘하얀 옷을 입은 사나이(The Man in the White Suit)’가 생각난다. 1951년 에 제작됐고 전설적인 영국 배우 알렉 기네스가 주연한 클래식이다. 하급 노동자인 주인공은 각고의 노력 끝에 영구적이면서도 오염되지 않는 직물을 발명하였고 이 직물로 하얀 양복을 한벌 만들어 입고다니면서 이 직물을 판매하여 희소성에 시달리는 시장의 수요를 구원하려 한다. 하지만 이는 시장에 있어 중대한 반역이었다.

상품은 희소성이 있어야 한다. 그 희소성을 수소가 독점해야 한다. 그래야 소비자들이 상품을 끊임없이 소비할 수 있다. 영구적인 직물이 나와서 더 이상 희소성을 가지지 않을 때 상품은 더 이상 상품이 아니고 마치 공기와 마찬가지로 공공재가 되는 것이다. CBDC가 정확히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는 구체적인 시행을 통해 증명되겠지만, 그것은 은행들에게 있어서는 마치 알렉 기네스가 발명한 영구적인 직물과 같은 느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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