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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위기 이후의 부채의 손바꿈, 과연 “새로운 정상”인가?

신용위기 이후 각국 정부는 주로 위기진화를 위한 유동성 공급의 목적으로 부채를 크게 늘렸다. 그뿐 아니라 중앙은행의 부채도 크게 늘었다. 투자은행 등 사기업을 정부의 돈으로 살린다는 정치적 비난을 우려한 정부가 중앙은행을 움직여 비전통적 수단을 – 실질적으로는 정부부채의 부외금융화 – 동원하였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은 시장에서 직접 채권을 사들여 장기금리를 낮췄다. BIS의 한 보고서는 이를 두고 “중앙은행의 공개지상 조작과 정부부채 관리 사이의 깔끔한 분리를 오염시켰다”라고 논평했다.

반면 민간부채는 줄어들어 정부부채의 증가와 대비됐다. 민간부문에서는 경기침체에 따른 투자부진 혹은 적극적인 디밸류에이션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장기 시계열 자료 확보가 가능한 9개 국가 1의 부채수준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08년~2012년 기간 동안 GDP 대비 정부부채는 51.7% 증가한 반면, 민간부채는 6.3% 감소하였다. 같은 기간 글로벌 자산 대비로는 정부부채는 35.0% 증가, 민간부채는 6.1% 감소하였다. 이러한 추세에 중앙은행의 부채, 실질적인 정부부채를 감안할 경우 그 추이는 더욱 드라마틱해질 것이다.



자산 대비 글로벌 정부 및 민간부채지수 추이(출처)

물론 정부부채의 상당부분은 중앙은행 자산과 겹치는 부분이 있다. 즉 통화발행의 독립성을 위해 정부가 채권을 발행하고 중앙은행이 화폐를 발행하여 서로 맞바꾸는 흥미로운 의식을 진행하면서 서로의 대차대조표에 부채와 자산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 바지의 양쪽 주머니의 거래상황만 상쇄한다면 사실상 중앙은행의 부채는 또한 정부의 부채일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어떤 전문가는 두 재무제표의 통합을 주장하기도 한다. 통합의 함의는 둘째치더라도 일단 중앙은행의 부채는 넓게 보아 정부부문의 부채임은 틀린 말이 아니다.

지난 24시간 동안 경고가 이어졌는데 뉴욕 연방준비은행장 윌리엄 더들리는 시장 변동성의 하락이 “나를 약간 긴장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영란은행 부총재 찰리 빈은 상황이 위기 이전의 시절을 “으스스하게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한편 분데스뱅크의 이사회 멤버 안드레아 돔브레트는 “우리는 시장이 고요하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리스크가 엿보인다.”라고 말했다.[What Lurks Beneath? Market Calm Unnerves Central Bankers]

블룸버그의 보도에 따르면 각국 중앙은행 경영진들이 연달아 자금시장에 대해 이례적인 내용의 발언을 하고 있다. 블름버그는 이런 발언의 배경에는 “정책결정자의 염려는 그들의 손쉬운 돈(easy money)이 시장을 현실에 안주하게 만들었다는 점”이 있다고 분석하였다. “손쉬운 돈”이란 앞서 살펴본 것처럼 정부가 – 중앙은행 포함 – 억지로 유동성을 공급한 돈을 말한다. 이런 상황은 어떤 면에서는 저금리를 유지하여 시장이 공격적 투자에 나섰던 신용위기 이전의 상황을 연상시킨다. 그때는 금리였고 지금은 통화 그 자체라는 점이 차이점이다.

빈사상태의 시장에 수유된 “손쉬운 돈”은 대개는 다시 중앙은행의 초과지급준비금으로 돌아와 이자수입만 챙겼다. 나머지 돈은 시중에 떠돌아 역대 최저의 금리 상황을 즐기면서 자산시장에 몰리기도 했다. 압도적으로 낮은 통화승수에도 불구하고 양적완화의 효과가 있기는 한 것이다. 그런 와중에 중앙은행 경영진들이 경고의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시장이 겁이 없어도 너무 없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현재와 같이 유례없는 비정상(abnormal)의 상황을 두고 “새로운 정상(new normal)”이라 말할 정도로 감각이 둔해져 있다.

스페인에서 아일랜드에 이르기까지 국가 채무에 지불하는 수익률은 역대 가장 낮다. 반면 영국에서 노르웨이에 이르기까지 자산 시장은 폭등하고 있다. [중략] 에쿼티, 통화, 원자재, 그리고 채권 등에 대한 등락을 예측하기 위한 옵션으로 쓰이는 뱅크오브어메리카의 시장 리스크 인덱스는 5월 14일 –1.22로 떨어져 2007년 6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중략] 월스트리트에 대한 Fed의 선두척후병인 더들리는 어제 뉴욕에서 말하길, 그는 “비정상적으로 낮은” 변동성이 우려스러운데 왜냐하면 “그것은 단순한 고정수입(fixed income)이 아니다. 그것은 고정수입(fixed income)이다. 환율 그리고 에쿼티.”[What Lurks Beneath? Market Calm Unnerves Central Bankers]

더들리가 일종의 말장난을 한 것 같다. 원래 투자은행은 fixed income 부문에서 국채 등과 같은 “비교적” 고정적인 수익률을 목표로 하는 투자에 주력했다가 환율, 에쿼티, 파생상품과 같은 전혀 고정적이지 않은 수입을 지향하여 위기를 초래했다. 더들리는 이런 상품들이 변동성이 큼에도 지금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 우려스럽다는 이야기인 것 같다. 여하튼 인용문은 시장은 기록적으로 낮은 금리와 기록적으로 높은 유동성 속에서 슬슬 위기 전처럼 실물투기에 나서고 있는 상황을 보여준다.

찰리 빈은 “투자자의 현실에 안주하려는 정서와 시장 리스크에 대한 과소평가” 경향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그럼 과소평가하고 있는 시장 리스크는 무엇일까? 근본적으로 시장은 지금 정부와 중앙은행의 전례 없는 부채가 출렁거리고 있는 살얼음 위를 걷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단순히 부채가 늘어난 것이 아니라 본원통화 자체가 전례 없이 늘어 있다. 정상적인 통화승수가 작동하는 상황이라면 우리는 지금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경험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정부를 신뢰하고 있다.

  1. 미국, 일본, 영국, 독일,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한국

신용제도에 관한 칼 맑스의 서술

그러나 결코 잊어선 안 될 점은, 첫째 귀금속형태의 화폐가 여전히 토대이고 이 토대로부터 신용제도는 본질적으로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둘째 신용제도는 사회적 생산수단의 사적 개인에 의한 독점적 소유(자본과 토지소유의 형태로)를 전제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신용제도 그것은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내재적 형태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 생산양식을 그 가능한 최고·최후의 형태로 발달시키는 추진력이라는 점이다. [중략] 은행제도는 자본의 분배를 사적 자본가와 고리대금업자의 수중으로부터 빼앗아 하나의 특수한 업무, 사회적 기능으로 만든다. 그러나 이렇기 때문에 은행과 신용은 또한 자본주의적 생산을 그 자신의 한계 이상으로 추진시키는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되며 공황과 사기의 가장 유효한 매개물의 하나로 된다. [칼 맑스, 자본론 제III권(下), 1992년, 비봉출판사, pp 746~748]

신용제도에 대한 맑스의 혜안을 살펴볼 수 있는 문장이라 인용했다. 신용제도라는 것은 맑스도 자본론에서 말하다시피 금세공업자, 고리대금업자의 약탈적 금융을 자본주의 체제에 맞게, 즉 “이자 낳는 자본”을 산업자본에 종속시키려는 의도로 만들어졌다. 네덜란드의 발달한 금융제도를 도입하고자 했던 영국의 표준적인 개인은행업의 시조인 조시아 차일드(Josiah Child)는 고리대금업자의 독점을 맹렬히 비난하며 고리대로부터 상업, 산업, 국가를 해방시키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영란은행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 이후 신용제도는 귀금속으로부터 자유로워졌는가? 신용제도가 탄생한 이후 각국이 금본위제 등 귀금속 연계 신용제도를 유지함으로써 금융견실주의에 충실하고자한 것을 보면, 경제 지배층도 신용제도가 “본질적으로” 귀금속 형태의 화폐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귀금속에 대한 믿음은 현대 자본주의에서도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아래 금값의 변동을 보면 경제주체들이 인플레이션에 대한 헤지수단으로 금을 얼마나 신뢰하는지 알 수 있다. 이번 美대선에서 롬니는 금본위제 복귀를 고려하기까지 했다.

WGC-Gold-price
출처
 

맑스의 두 번째 강조점은 신용제도의 탄생의 기원에서 궁극적인 방향까지 함께 고려하고 있다. 생산수단을 개인이 소유하고 있기에 그 자본 역시 개인이 소유하고 있었다. 이렇듯 발달된 생산력 체제가 사적인 독점적 소유를 기반으로 움직이기에 자본이 필요한 누군가는 다른 이에게 돈을 빌려야 하고, 이는 신용제도의 발달을 수반하게 된 것이다. 즉 자본주의의 발달이 가속화되기 위해 신용제도는 꼭 필요했고, 결국 그 신용제도는 생산양식의 최후의 형태로 나아가게 하는 추진력이 된다. 맑스의 “모순의 변증법”의 좋은 사례라 할 만하다.

하지만 자유방임주의를 지향하는 자본주의 국가라 할지라도 “자본의 분배”를 마냥 사적 자본가의 손에 맡겨놓지는 않는다. 바로 그것이 가지는 “사회적 기능” 때문이다. 발달한 자본주의 국가는 필히 중앙은행 등을 통해 신용을 통제하였다. 시장자유주의의 본산 미국조차 민간과 관이 결합된 형태의 Fed라는 나름의 독특한 제도를 통해 “자본의 분배” 기능을 통제하였다. 문제는 맑스가 예언한 것처럼 그 자본과 신용 또한 사적자본, 최근 들어 투자은행이 독점하고 그 생산을 한계이상으로 몰아붙이면서 공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짧은 문장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곤란하겠지만 19세기 후반에 쓰인 이 책이 이 정도의 통찰력을 보여준다는 것은 감탄할만한 재능이다. 가장 발달한 자본주의 국가인 영국에 살았고, 공산주의자이면서도 자본가였던 삶을 살았던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평생의 동지로 있었기에 가능한 서술이라는 특수성도 있지만, – 사실 제III권은 맑스의 원고를 엥겔스가 정리해서 쓴 것이고 – 위와 같은 송곳 같은 문장을 보면, 우리 후대들이, 심지어 맑시스트를 자처하는 자들조차 뭔가 놓치고 있는 것이 많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Gold
Always believe in your soul
You’ve got the power to know
You’re indestructible
Always believe in, because you are
Gold
[Spandau Ballet 의 히트곡 Gold 중에서]

뮤직비디오 보기

2011年09月20日(火) ~ 2011年09月25日(日)

2011年09月25日(日)

RT @pariscom: http://bit.ly/n3tIKs 선대인 우석훈+게스트 포맷. 이제 우리나라에도 뒤늦게 팟캐스트 방송이 꽃피는 건가.. 양질 팟캐스트 많이 나왔으면 ^^
☞ “나꼼수 경제편”이라고는 타이틀을 붙이지만 나꼼수처럼 당파성이 엿보이면 곤란할 듯. 들을만한 경제관련 팟캐스트로는 ‘손에 잡히는 경제, 홍기빈입니다.’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RT @WSJ: Dozens of ‘Occupy Wall Street’ Protesters Arrested http://on.wsj.com/nck4jr #OccupyWallStreet
☞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운동이 미국의 주류언론의 외면을 받는 와중에 경찰은 시위대를 속속 잡아들이고 있다.

2011年09月24日(土)

서울 교육시설 민자사업, 교육청 되레 3500억원 손해 | 권영길 의원이 제기한 이슈인데, 민자사업의 수익률 자체를 비판하는 내용이다. 이렇게 따지면 이자를 취득하는 금융업도 이자를 받으면 안된다는 논리. http://bit.ly/nWb0BG
☞ 권영길 의원 측이 “손해봤다”고 말한 3500억원은 민간사업자의 최초투자분에 대해 사업기간 되돌려 받는 정부지급금의 추가분, 즉 수익률로 계산되는 마진이다. 권 의원측은 마진의 과다나 부정부패가 아닌 수익의 존재 자체를 문제 삼는다면 현실의 자본역학 자체를 부인하는 것. 심지어 사회주의 사회가 되더라도 존재할 수 없는 경제법칙이다.

2011年09月23日(金)

Photo: 새로 읽기 시작한 책, “제3제국의 흥망” http://tumblr.com/xkl4ukxl89
☞ 히틀러의 등장과 성장에 관한 서술을 읽고 있는 중. 당연한 이야기지만 히틀러는 문명화된 유럽에서의 돌연변이가 아니라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의 혼란스러운 유럽과 독일의 각박한 환경 속에서 태어난 시대적 적자에 가깝다.

전 세계에서 가장 고용인이 많은 고용주들. 매우 흥미로운 그림. http://bit.ly/pMqi1O

베네수엘라와 중국산업은행이 대규모 개발사업에 대한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는 소식. 이른바 “비동맹” 국가에 대한 중국의 전략적 자원외교의 차원으로 해석됨. 그나저나 차베스 아프다더니 머리를 다 밀어버리고? http://bit.ly/owX8Ep

The Fed Will Take 174 Pages To Tell You What “Prop” Trading Is | 월가 은행들의 악행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는 ‘고유계정거래’에 관한 정의의 어려움 http://bit.ly/q6XQhe

94세의 일본 할아버지 “이 나라는 다시 형태를 바꿔 전쟁을 시작하고있다. 결코 원전이라는 이름의 무기를 가동시켜서는 안된다. 그때 분한 마음을 여기서 풀어내고 싶다” http://dangunee.com/133412

김중수 “무리해서 물가목표 달성 않겠다” | 참~ 이런 분이 한국은행에 재직하신다니… http://bit.ly/pjs2a9
☞ 한국은행도 노골적이긴 하지만 Fed를 보더라도 오늘날 경제운용의 독립성을 담보하기 위해 설치한 것으로 본질적 가치를 찾고 있는 각국의 중앙은행이 과연 그 존재의의에 걸맞는 행동을 하고 있는지 의문. 혹자는 미국의 재무부 부채와 중앙은행 부채를 합해서 계산해야 한다고까지 주장. 어느 정도 공감함.

2011年09月22日(木)

Duopoly 🙂 http://yoono.com/PpjvBqHk
☞ 🙂

Holders of Sovereign Debt | 아주 좋은 자료. 각 주요국들 채무를 누가 들고 있는지 요약한 그래프. http://bit.ly/qlkcCk
☞ 미국의 부채의 30%정도는 Fed가 들고 있다.

“오퍼레이션트위스트”는 쉬운 말로 온갖 쓰레기 자산이 가득찬 Fed의 재무제표의 만기도래의 자산을 현금화하지 않고 더 장기의 채권으로 갈아타겠다는 이야기를 어렵게 트위스트한 표현. 별로 할일이 없다는 증거. http://bit.ly/owxGch

2011年09月21日(水)

“난 파생상품 시장이 원래 의도한 바처럼 리스크를 경감시키는 쪽으로 발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리스크, 그 자체가 되었다.” Satyajit Das http://bit.ly/qYnvrO
☞ 얼마 전에 리뷰를 올린 책 ‘파생상품, 드라마틱한 수익률의 세계 중에서’의 저자 Satyajit Das의 짧은 인터뷰

“국내IB는 단순브로커 성격이 강했죠. 진정한 IB로 발전하려면 투자 비히클에 위험포지션을 적절히 인수한 후 구조화·증권화함으로써 자본시장의 조절 기능을 확대해야합니다” | 쉬운 말 어렵게 하는게 IB의 미덕 http://bit.ly/oZEicG

2011年09月20日(火)

리스크 관리는 리스크를 감추는 무화과 잎이며, 리스크 매니저의 일은 회장, 이사와 경영진을 보호하는 총알받이다. 수리금융은 이처럼 실망스런 현실에, 허위로 정확하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사용된다. – 파생상품, 드라마틱한 수익률의 세계 중에서
☞ 실제로 계량화되는 리스크 지수는 어떻게 보면 참 허무하다. 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2%라고 측정이 되더라도, 그 사고가 발생하게 되면 어떤 의미도 없다. 하지만 사고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그러한 수치를 빌미로 무리한 리스크를 부담하게 된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롱텀캐피탈매니지먼트의 사례.

중앙은행의 독립은 신기루일까?

요컨대, Fed는 아무런 부작용 없이(없어질 일자리와 팔릴 Fed빌딩을 제외하고는) 내일이라도 재무부와 합칠 수 있다. 그렇게 하면 연방정부의 대차대조표의 통합관리가 가능하고 재무부는 Fed가 없던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화폐를 직접 발행할 수 있다. 현재의 지불기술 때문에 실무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美화폐의 과잉발행의 우려는 없다. 과잉발행을 더 방지하기 위해서, 의회가 美화폐를 이자부 재무부채권으로 전환할 수 있는 법으로 명시된 보증을 부여할 수도 있다.

재무부는 또한 최후의 대부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Fed가 긴급대출자로서 활동할 때 납세자의 돈을 빌려주고 있고 그들의 여하한의 보증에는 연방의 뒷심을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재무부 자체가 할 수 없는 것은 어느 것도 할 수 없다. 바꿔 말하면 Fed는 의회가 그렇게 공급했다 해도 재무부 역시 가지지 못하는 어떠한 처분가능한 원천이나 힘이 없다. 재무부의 최종대부자 역할의 가정도 그러한 대출에 대한 더 큰 정치적 책임감을 부여할 것이다. 더 큰 책임감에 대한 필요성은 최근 위기 동안 매우 확실했었다.

Fed가 재무부로 통합될 일은 가까운 장래에 일어날 것 같지 않기 때문에, 의회는 차선의 단계를 밟을 수 있고 재무부로 하여금 정기적으로 – 예를 들면 월간으로 – 내가 표9와 10에서 보여준 것처럼 Fed와 재무부의 통합 대차대조표를 만들도록 지시할 수 있다. 그렇게 통합하게 되면 연방의 재무상황과 미국 경제에 대한 연방정부의 영향력의 보다 완벽한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출처]

美하원 재무위원회의 청문회에서의 금융분석가 Bert Ely의 발언록 중 일부다. 그는 연방준비제도는 통화정책은 정치적 개입이 없어야 한다는 믿음에 근거하고 있지만, 여러 이유로 결국 재무부의 연장선일 뿐이라고 규정하면서 Fed와 재무부는 통합되어야 한다고, 최소한 통합 재무제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재무부가 채권을 발행하고 Fed가 화폐를 발행하여 서로 맞바꾸는 이상한 의식 때문에 음모론자로부터 날선 비판을 받고 있지만, Bert Ely의 말마따나 실제로 Fed의 여태의 모습, 특히 금융위기 때의 모습은 여느 정부기관과 거의 다르지 않다. 그들이 정부기관이 아니라는 인식은 사실 신기루에 불과하다.

같은 이치로 한국은행과 같은 다른 중앙은행들도 명목적으로는 독립된 의사결정을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 행태는 정부기관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중앙은행이 따로 떨어져 있을 때, 현재 상황으로 보면 거대한 정부부채가 부채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일종의 부외금융적 효과를 불러왔다.

지난번 글에서 Fed의 MBS 등의 매입액이 1조 달러라고 했는데, 재무부까지 합치면 2.12조 달러에 달한다. 정부기관이지만 아닌 척 하고 있는 페니메 등이 MBS를 발행하고 역시 정부기관이 아닌 척 하는 Fed와 실제로 정부기관인 재무부가 인수한 금액이 그 정도라는 이야기다. 독립성은 일종의 현실도피에 불과한 셈이다.

‘중앙은행의 독립은 “신자유주의적”인가?’라는 이전의 글에서 만약 누가 ‘중앙은행이 어떤 상태가 좋으냐?’ 묻는다면 난 독립을 택하겠다고 말했지만, 사실 중앙은행의 독립은 삼권분립보다 더 열악한 – 그조차도 기만적인 것처럼 보이는 와중에 – 착시현상에 불과할 수도 있다. 어려운 문제다.

중앙은행의 독립은 “신자유주의적”인가?

‘중앙은행 독립성’이라는 규범은 그 자체로 민주주의적 가치와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도 있다. 진보적 성향의 경제학자인 매사추세츠 대학 엡슈타인 교수는 “‘중앙은행 독립성’은 세계금융위기를 불러온 시스템의 사상과 정책 중 하나”라고 주장한다. ‘신자유주의 교리’의 일종이라는 이야기다. 사실 ‘중앙은행 독립성’의 이론적 배경엔, 국가개입 없는 금융시장이야말로 자금을 최적 배분할 수 있다는 신념이 깔려 있다. 국가가 통화량을 조절해서 인위적으로 경기를 부양하려 해도 고용 등 실물경제를 움직일 수는 없으며 기껏해야 물가인상으로 귀결될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중앙은행의 역할은 정부를 견제하며 통화량을 실물경제가 성장하는 정도 내로 억제해서 물가인상을 저지하는 것으로 정리된다.[한국은행 독립은 불멸의 진리인가]

과문한지라 중앙은행의 독립이 “민주주의적 가치와 거리가 먼 신자유주의 교리”였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인용한 부분이나 나머지 기사들을 읽어보면 그 취지는 전혀 새로운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예를 들어 중앙은행 음모론의 경우엔 FRB가 민간은행의 소유라면서 결국 중앙은행의 독립은 정부로부터의 독립이란 명분하에 시장에로의 종속을 야기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신용위기 이후 FRB가 보여주는 모습은 정부로부터의 독립은 허울 좋은 명분일 뿐이고 금융자본, 특히 월스트리트의 거대 투자은행에 상당히 밀착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정황이 상당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내가 드는 의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중앙은행의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 그 자체가 “신자유주의적”인가? 둘째, 물가인상의 저지가 금융자본의 이해와 일치하는가?

첫 번째 의문에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중앙은행의 독립은 실제로는 금융자본으로의 종속이다. 본질이 그러하므로 “신자유주의적”이다. 대강의 흐름에 일리가 있다고 간주하여도, 예를 들어 자본주의를 극복한 그 어떠한 체제로 이행했을 때는 어떨까? 그때는 중앙은행이 정부의 직속기관으로 귀속될까?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일 것 같다. 중앙은행이 실제 얼마나 독립성을 가지고 그것이 경제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실증연구가 있겠지만 역시 그 독립성은 마치 정치권력 안에서의 삼권분립처럼 오랜 시행착오 끝에 끄집어낸 역사적 맥락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북한의 3대 세습과 관련하여 진보진영 내에서조차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본질은 결국 그러한 정치권력의 형태가 국가의 발전에 유효한 것인가 – 절차적 합리성과 목적적 합리성 양면에서 – 여부에 대한 갑론을박일 것이다. 여하튼 북한 등 몇몇 국가를 빼놓고는 분권형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집중형 정치체제에 대한 장점을 포기하는 대신 소위 ‘집단지성’의 장점를 택하겠다는 것이 아닐까?(물론 그마저도 오늘날 금권정치에 찌들어 있음은 사실이지만) 나는 중앙은행의 독립성도 같은 맥락으로 바라보고 싶다. 삼권분립이 “신자유주의적”이 아닌 것처럼 중앙은행의 독립도 그러하다고 본다.

엡슈타인 교수는 물가관리가 지상 목표인 중앙은행은 자연스럽게 금융자본의 대변인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중앙은행의 정치적 동맹자는 월스트리트 은행가들이다. 중앙은행 인사들과 은행가들은 매일 만나고 교류하며 호의를 나누는 가운데 경제를 보는 시각까지 공유하게 된다. 단적으로 말해서 중앙은행의 독립성 같은 것은 없다.” 중앙은행의 목표(물가안정)는 금융자본의 ‘갈망’이기도 하다. 돈을 투자하고 금융수익(이자나 배당금)을 얻는 금융자본의 입장에서 물가인상은 그 자체로 수익성에 치명적 타격을 가하기 때문이다. 캠브리지대 장하준 교수는 “적절한 물가인상은 경제성장을 촉진할 수도 있다. 이런 측면에서 물가인상 저지라는 중앙은행의 설립목적은 금융자본만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같은 기사]

오늘날 월스트리트가 중앙은행의 정치적 동맹자임은 – 나아가 정부마저 – 이제 다 증명된 일이다.(그 시초를 들자면 케네디에게 발탁되어 국방장관을 역임했던 로버트 맥나마라를 들 수 있는데, 포드 자동차의 CEO였던 그는 국방장관, 그리고 세계은행의 총재를 역임하며 산업자본, 정부, 금융자본의 회전문의 기초를 다진 인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중앙은행의 설립취지인 물가인상 저지가 금융자본의 이해만 대변한다고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물가인상이 결국 화폐가치를 절하하여 금융의 이익을 저해한다는 것은 한쪽만을 본 것이다. 사실이 그렇다면 왜 2000년대 중반 동안 FRB는 저금리를 유지하며 시장에 유동성을 불어넣었을까? 그 기간 동안 폭등한 집값은 금융자본에게 손해였는가? 익히 알다시피 월스트리트는 그 와중에 유동화와 증권화를 동원하여 사상 최대의 이익을 시현하였다. 물가인상이 좋은지 인하가 좋은지는 그때그때 다르다.

요컨대 다른 많은 것들과 마찬가지로 중앙은행의 독립, 그 자체는 본질에 있어 어떤 선악의 기준으로 볼 것은 아니다. 증권화나 유동화 기법이 그러하듯이, 나아가 금융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옛사람들은 – 심지어 막스 베버 같은 대학자마저 – 금융은 천한 유태인들이나 하는 것이니 그들은 “천민자본주의”라고 비난하였고 오늘날 신용위기로 인해 고통 받는 수많은 이들이 금융자본을 욕하지만 금융기능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듯이 중앙은행도 그러하다. 근본적으로 변혁하여야 할 대상이 아니라면 고쳐서 써야 하고 전술적으로 운용할 수밖에 없다. 암튼 만약 ‘중앙은행이 어떤 상태가 좋으냐?’ 묻는다면 난 독립을 택하겠다.

“손실을 볼 수 있다는 공포”가 대안일까?

도덕이나 숭고한 가치로는 탐욕을 통제할 수 없다. 탐욕은 오로지 손실을 볼 수 있다는 공포로 통제돼야 한다. 그리고 이 공포란 무모한 금융기관이나 대리인이 절대 국민 세금으로 구제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나온다. 최근 위기 동안 이뤄진 구제조치는 도덕적 해이 문제를 심화시켰다. 대형 금융회사는 망하지 않고 구제받을 것이라는 생각을 강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인수를 통해 금융 회사들이 몸집을 불림으로써 시장의 왜곡 현상은 더 커졌다. 만약 기업이 너무 커서 망하지 않는다면, 지나치게 큰 기업은 쪼개야 한다.[“탐욕은 선하다”던 게코가 돌아왔다]

누리엘 루비니가 조선비즈에 기고한 칼럼 내용 중 일부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늘 반복되는 주제인 이른바 “대마불사(大馬不死)” 신화를 종식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러한 주장이 그동안 얼마나 실제로 관철되었는지도 의문일뿐더러, 이러한 주장이 옳은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적어도 미국 자본주의 역사에서 보면 중앙은행이라는 최종대부자가 생긴 이래 멕시코 모라토리엄 사태, S&L사태, LTCM사태 등 주요국면에서 채권자들은 언제나 구제금융을 통해 보호를 받았다. 구제금융의 논리는 시스템 붕괴 방지였다. 부실채권이 여타 우량 채권을 오염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문제는 루비니가 걱정하는바 투자자들이 이 과정에서 모럴해저드에 빠져 자신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초과하는 위험을 부담하게 되어 위기가 반복된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는 근본적으로 자본의 소유가 사유화되어 있는 반면, 그 자본의 부실화에 대한 비용이 사회화되어 있다는 모순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만약 소유와 비용부담이 일원화되면 모순이 상당수 제거될 수 있을 것이다. 소유와 비용부담을 다 사유화시키거나 다 사회화시키면 될 것이다. 루비니의 주장은 해당 인용문으로만 보면 이 중 전자의 대안을 연상시킨다. 즉, 최종대부자로서의 중앙은행이나 정부의 존재를 부정하는 시장 자유주의자의 뉘앙스가 느껴진다.

사실 어느 정도는 이미 “손실을 볼 수 있다는 공포”가 전파되어 있다. 미국에서 올해만 해도 118개의 은행들이 문을 닫았다. 리만브라더스나 베어스턴스 등과 같은 대형은행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므로 문제는 “대대마(大大馬)” 골드만삭스나 패니메/프레디맥같은 핵심(!)기관만 차별적으로 구제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이 들 기관의 붕괴가 금융시스템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공포 – 사회 “전체가 손실을 볼 수 있다는 공포” – 때문이며, 또 하나 – 더 근본적인 원인일 수도 있는데 – 사적자본과 공적통제기관의 인맥들이 긴밀하게 얽혀있는 미국의 금권정치의 병폐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공포를 느끼기에는 심판과 너무 친하다.

왜 중앙은행들은 자산을 보유하는가?

왜 중앙은행이 자산을 보유하는지에 대한 여태 접한 중 가장 흥미로운 생각 : 역자 주

Why do central banks have assets?

중앙은행의 대차대조표를 살펴보게 되면 그 은행이 부채(대부분은 통화)와 자산(보통 대부분은 정부의 장단기 채권들)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왜 중앙은행들은 자산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 그들은 그것이 필요한가?

잘못된 대답은 중앙은행들이 통화가치를 “뒷받침(back)”하기 위해 자산이 필요하며, 그렇지 않다면 종이 통화는 가치가 없다는 대답이다. 옳은 대답은 : 정부가 어쨌든 중앙은행으로부터 모든 이윤을 거둬들이기 때문에 중앙은행에게 자산을 줄 이유가 없다. 자산을 소유하는 것은 은행으로 하여금 코스를 거꾸로 하여 만약 필요할 경우 돈의 공급을 줄일 수 있게 하기위해서다. 그리고 그것이 회계사들을 돌아버리지 않게 하는 것이다.

잘못된 대답부터 우선 살펴보자. 돈의 가치에 대한 “뒷받침” 이론에 따르면 중앙은행의 통화 가치는 통화를 뒷받침하는 중앙은행의 자산의 가치와 동일하고 그것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는 가격수준의 재정이론과 다른데, 그것은 채권을 더한 통화의 가치는 주요 재정잉여의 현재가치와 동일하고 그것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뒷받침 이론은 그럴듯하게 들린다. 본래 가치가 없는 종이돈이 어떻게 가치를 가질 수 있을까? 가치 있는 자산이 그것을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뮤추얼펀드의 주식과 같다. 그것들은 펀드의 자산의 가치와 동일하고 그것에 의해 결정된다.

돈의 뒷받침 이론에 반하는 세 가지 논점이 있다:

1. 중앙은행의 자산은 보통 부채도 같은 통화로 규정지어지는 모든 명목(nominal) 자산이랄 수 있다. 가격수준이 하룻밤 사이에 마술처럼 두 배가 되었다고 해보자. 그리고 통화의 실질(real) 가치가 반절로 줄었다고 해보자. 중앙은행이 보유한 채권의 실질가치 또한 반절로 줄어들 것이다. 그래서 어떤 가격수준의 마술 같은 곱절은 통화의 가치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자산의 가치 사이의 동일함을 해치지 않을 것이다. 뒷받침 이론은 가격수준이 비결정적인 체로 남게 한다. 그것은 오로지 자산이 실질자산일 경우에만 고정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은행자산의 10%가 실질(금 보유고, 건물을 포함한)이라면, 그 실질자산의 (건물이 불타서) 1%의 손실은 가격수준의 10% 상승을 초래할 것이다.

2. 뮤추얼펀드가 채권을 가지고 있으나, 채권이자는 (펀드를 굴리는데 드는 관리비용을 제하고) 어떤 제3자에게 넘어가고, 뮤추얼펀드의 주식소유자에게는 가지 않는다고 가정해보자. 누가 그 뮤추얼펀드의 주식을 소유하고 싶겠는가? 주주에게 돌아가는 배당의 순현재가치는 0이 될 것이다. 그래서 주식은 또한 가치가 0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정확히 중앙은행이 하는 일이다. 매년 중앙은행들은 그들이 보유한 채권으로부터 이자수익을 올려, 관리비용을 제외하고 모든 수익을 통화의 보유자가 아닌 정부에게 넘긴다.

3. 우리는 왜 돈이 가치를 가지느냐 대해 설명할 “뒷받침”이 필요 없다. 사람들은 돈이 교환의 매개체이기 때문에, 교환의 매개체 더미는 쇼핑을 더 쉽게 하기 때문에 돈더미를 보유하기 원한다. 이는 돈에 대한 (저장) 수요를 창출한다. 중앙은행이 돈의 공급을 제한한다고 가정할 때에, 수요와 공급 곡선의 교차점이 돈 가치의 양평형을 만든다(어떤 특정한 가격수준). 이제 당신은 만약 종이돈이 가치가 없다면 그것은 교환의 매개체로 기능할 수 없고, 그래서 종이돈이 그것이 가지는 가치를 설명하기 위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할 필요가 있고, 그래서 돈의 가치의 수요 공급 이론이 논점을 옳다고 가정해놓고 논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돈의 가치에 대한 표준이론에 대한 비판에는 진실도 있다. 참으로 거기에는 두 개의 평형상태가 있다. 평범한 것은 종이돈이 가치를 가지는 곳에서, 그리고 이상한 것은 그것이 가치가 없는 곳에서다. 그러나 루드윅 폰 미제스는, 예를 들어, 1912년 그의 돈의 퇴보이론에서 이러한 문제를 설명했다. 역사적으로 돈이 처음 첫 출발하기 위해서는 상품 돈이 될 필요가 있거나 상품이 뒷받침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일단 사회적 제도로써 출발하면 교환의 매개체에 대한 수요가 상품의 산업적 수요를 보충하게 되고, 상품의 뒷받침은 종국에는 관습이 이 이상한 평형으로부터 우리를 꺼내게 됨에 따라 사라질 것이다.(캄보디아에서 크메르루주가 패망한 이후 종이돈을 재도입했을 때에 무에서 출발하지는 않았지만 처음에는 그것을 쌀과 교환하게끔 만들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폰지 사기는 일종의 부채는 있지만 그 부채를 뒷받침하는 자산이 없는 금융기관과도 같다. 종이돈은 정확히 폰지 사기처럼 작동할 수 있지만, 한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다. 폰지 씨는 그의 고객들에게 높은 금리의 이자를 약속했고/했거나 자본이득을 약속했다. 그들이 그를 믿지 않았더라면 그의 부채를 들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캐나다 은행은 제로 금리와 제로 명목 자본이득, 그리고 그 종이돈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2%의 실질금리를 약속한다. 폰지 씨는 자산을 사용하지 않았다손 치더라도 그의 약속을 지킬 수 없었다. 캐나다 은행은 자산을 모두 써버려도 종이돈에 대한 (실질) 수요가 연간 2% 보다 더 빨리 떨어지지 않는다면 약속을 지킬 수 있다. (만약 돈에 대한 실질 수요가 연간 2%로 떨어진다면 돈의 항상 명목 공급은 연간 인플레이션으로 2% 수익을 얻을 것이다.)

캐나다 은행은 자산이 필요 없는데, 종이(돈 : 역자 주)의 (실질) 수요의 장기적 증가가 사람들이 종이(돈 : 역자 주)를 보유하려는 실질 이자율을 초과하기 때문이다. 만약 폰지 씨가 같은 테스트를 충족하였더라면 그 역시도 자산이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높은 음(陰)의 실질수익률에서조차도 (짐바브웨) 종이돈을 보유하려 하는데, 그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쇼핑을 이롭게 하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의 부채의 가치가 그 자산의 가치와 동일한 유일한 이유는 그것들의 (순가치) 차이가 너무 커질 때마다, 은행이 그 수익을 정부로 이전시키기 때문이다. 만약 중앙은행이 자산을 그들의 부채와 동일하게 유지하는 것을 선택한다면, 그리고 연간수익을 오직 정부에게만 이전한다면, 그러면 그들의 자산의 가치가 그들의 부채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말하는 것은 인과관계를 뒤집은 것이다. 그들의 자산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그들의 부채의 가치다.

그래서 도대체 왜 중앙은행들은 자산을 보유하는가? 세 가지 이유다.(3이 얼마나 마술 같은 숫자인지 재밌다)

1. 중앙은행의 소유자들에게 (정부) 중앙은행이 채권을 보유하고 있거나 그 이자를 매년 정부에게 이전하거나, 혹은 중앙은행이 채권을 정부에게 주어버리거나 상관이 없다. 정부는 어쨌든 이자를 수취한다. 그것은 여타의 몇몇 손을 거쳐 흘러갈 뿐이다. 일종의 세탁이다.

2. 보통 종이돈에 대한 실질 수요는 연간 3% 정도로 증가한다.(거칠게 GDP의 증가율과 동일한) 그러나 어떤 때에는 이보다 빨리 증가한다(작년처럼). 그리고 어떤 때에는 이보다 떨어진다(내년처럼?). 만약 돈의 수요가 떨어지면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돈의 공급을 줄일 것이고, 자산을 팔아서 돈의 공급을 줄일 것이다. 만약 자산을 전부 처분해버리면 이 짓을 할 수가 없다.

3. 복식부기와 대차대조표 등과 같은 회계를 통해 그들은 돈들의 흐름을 유지할 수 있다. 그들은 모든 것이 계산이 맞다는 것을 확신하기 위해, 모든 것이 적절히 기록되고 있다는 것을 체크하기 위해 한 쪽에 자산을 기록하고 다른 쪽에 부채를 기록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그들은 통화는 중앙은행의 부채에(그렇지 않더라도 그것을 변제하겠다거나 이자를 지불하겠다는 약속은 없기 때문에), 그리고 다른 쪽에는 자산을 기록하는 것을 좋아한다. 회계사라면 그가 통화를 부채에 기록했는데 자산으로 동일가치를 찾지 못할 경우 돌아버릴 것이다. 그는 중앙은행이 폰지 사기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다. 그리고 회계사들에게 어떤 폰지 사기들은 진짜 지속가능하다는 것을 설명하려 노력하는 말다툼은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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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만약 뮤추얼펀드가 투자자들로부터 돈을 모아 몇몇 투자 사업에 참여해서 현재 주식가치 등이 1천억 원 정도 되는데 만일 그 펀드가 상장된 펀드라면 마땅히 그 펀드의 주가총액은 1천억 원 근처로 수렴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 역자 주
  2. 만약 뒷받침하고 있는 자산이 해당 통화단위로 표시되는 채권이 아니라 원자재(예를 들면 금, 석유, 곡물 등)라면 그것이 정확하게 상관관계를 가지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즉 통화를 지지하는 자산이 통화가치의 변화에 무관하게 가치를 온존하고 있어야 – 어떤 본질적인 가치 – 자산으로서 의미가 있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만일 중국이 오늘 날 그들의 외환보유고에 미재무부 채권이 아닌 금이 쌓여있었다면 이렇게 고민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 역자 주
  3. 통화의 소유자는 중앙은행에게 있어서는 채권자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중앙은행은 채권자에게 이자(즉, 통화라는 채권의 이자)를 지불하는 대신 그 이자를 정부에게 지불한다는 의미다. : 역자 주
  4. 실질 금리는 명목 금리에서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수치로 산정한다. 따라서 명목금리가 제로금리인데 물가가 상승하면 실질금리는 마이너스로 돌아선다. : 역자 주
  5. 하지만 국가기관이 마이너스 실질 금리를 약속한다고 해서 개인이 그렇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 역자 주
  6. 이 부분은 과장이 있다. 내가 짐바브웨 사람이라면 짐바브웨 통화를 보유하기보다는 기를 쓰고 달러를 모으거나 기타 자산을 부지런히 매입했을 것이다. : 역자 주

연방준비제도의 역할, 그리고 음모론

지난 번 “美모기지 시장의 두 거인, 법정관리 임박?” 이라는 글에서 Inigo님께서 아주 좋은 말씀을 남겨주셨다. 특히 연방준비제도의 정체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CNBC의 뉴스(동영상 보기) 를 추천해주셨는데 관심 있는 분들은 꼭 보시기를 권한다. 다만 내용이 영어인지라 – 나 역시 마찬가지이지만 – 보시는 분들 힘들어하실까 봐 인터넷 검색으로 찾은 – 가장 재미있는 부분의 – 스크립트를 번역해둔다. 인용문구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에 오랜 동안 몸담고 있는 Harvey Rosenblum씨가 한말이다.

경제에서 연방준비제도는 도덕적 해이를 유발한다. 중앙은행이 된다는 단순한 역할은 당신의 일이 도덕적 해이의 유발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개 중앙은행은 “최종대부자”다. 사람들이 유사시에 의지할 수 있다고 믿어지는 최종대부자를 가지는 것보다 더 도덕적으로 해이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연방준비제도의 직무는 저 바깥(세상)을 강타하고 있는 모든 경제적 공포에 빠진 3억 명의 미국시민에 대한 충격을 완화하는 것이다. 나를 미치게 하는 것은 사람들이 “도덕적 해이, 도덕적 해이”를 외칠 때이다. 그게 내가 하는 일이다.

The Federal Reserve is in business to create moral hazard. The mere act of being a central banker means that your job description involves creating moral hazard. A central bank is a “lender of last resort,” what more moral hazard can you have than having a lender of last resort that people know, when push can to shove, can be relied upon? The Federal Reserve’s job is to cushion the blow to 300 million American citizens of all the economic shocks that hit out there. What drives me crazy is when I hear people shouting “Moral hazard, moral hazard”… that’s what my job is to do…

도덕적해이의 유발이 연방준비제도의 일이라는 주장이 사뭇 도발적이다. 이는 사실 최종대부자로서의 연방준비제도의 역할을 다소 자극적으로 강조하려는 의도에서 한 말이다. 자립심을 갖고 살아가야 할 한 젊은 대학생이 학교를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하기 벅차서 결국 아버지에게 용돈을 요구하는 것이 바로 Harvey가 말하는 “도덕적 해이”다. 즉 그의 진정한 의도는 시장에 그런 신뢰감(많은 시장참여자들이 도덕적 해이라고 비난하는)을 부여하는 것이 연방준비제도의 역할이니 너무 욕하지 말라는 것이다.

미국이란 나라의 경제사를 살펴보면 이 나라는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최종대부자가 없었다는 사실 때문에 여러 번 심각한 금융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결국 여러 번의 우여곡절을 겪은 후에야 오늘 날과 같은 연방준비제도가 성립되었다. 그리고 오늘 날 미국의 비롯한 대다수의 국가들이 그 형태가 어찌되었든 간에 ‘최종대부자’의 존재의의를 부정하는 사례는 없고, 그것이 지금 미국에서 연방준비제도가 하고 있는 일이다.

다만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지적하면 미국의 연방준비제도는 엄밀히 말해 국가기관이 아니라는 점이다. 프레디맥, 패미메도 그 야릇한 지위 때문에 사람들의 혼동을 야기하고 있지만 연방준비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 제도가 구성하고 있는 각종 기관들은 국가의 소유가 아닌 민간은행들의 소유다.(물론 당사자는 이를 부인하고 있다 한편 음모론자들의 주장은?) 대통령의 승인을 얻기는 하지만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이사들은 거의 민간은행에 의해 낙점되다시피 한다. 그러면서도 미국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결정적으로 미국의 화폐, 즉 US달러의 통화발행권은 미국 정부가 아닌 이들이 쥐고 있다. 미국 정부는 채권을 발행하여 이들에게 US달러를 사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복잡한 상호관계로 말미암아 연방준비제도는 음모론자들을 비롯한 여러 반정부/반금융 세력들의 끊임없는 비판의 표적이 되고 있다. 위의 스크립트를 퍼온 Lawson for Congress 라는 블로그 역시 이러한 음모론의 입장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즉 블로그는 “민간 독점기업이 공짜로 돈을 찍어내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We cannot allow a private monopoly to create money out of nothing to loan to us at interest)”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으로 음모론자들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면서도, 이에 한발 더 나아가 ‘최종대부자’로서의 중앙은행의 존재의의 자체를 거부하는 주장까지 접어들면 대략 난감해진다. 즉 중앙은행은 시장의 교란을 완화(cushion)하는 주체가 아니라 시장의 교란, 그 자체라는 것이다. 이들은 이러한 주장을 이론적으로 강화하기 위해 보통 밀턴 프리드먼의 통화주의적 입장을 끌어오곤 한다. 결론적으로 그들은 자유로운 발권력을 가진 ‘자주적인’ 정부를 꿈꾼다.

이런 음모론을 읽으면 무척이나 재밌다. 프리메이슨, 우드로 윌슨, 그린백, 히틀러와 레닌을 지원한 금융투기세력, 케네디의 암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유태인 등 세상이 온통 하나의 꽉 짜여진 시나리오대로 착착 움직여가고 있음에 전율을 느낀다. 책 한권을 끝날 때쯤이면 거대한 악의 세력의 존재감에 몸서리가 처진다. 그렇지만 거기까지다. 너무 빠지다간 염세론자가 되고 만다. 🙂

음모론의 황당함은 기회가 되면 또 이야기하기로 하고 말하고자 하는 바로 돌아가자. 결국 특히나 오늘 날과 같이 한층 경제활동이 복잡해지고 규모화되어 있는 시장에서는 ‘최종대부자’로서의 중앙은행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더불어 더욱 그 활동범위가 강화되고 세분화되어야 한다. 규제는 잘못 수립되었기에 나쁜 것이지 많아서 나쁜 것이 아니다. 규제가 없으면 지원도 없다. 시장근본주의자는 때로 고의적으로 이러한 사실을 외면한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는 내가 보기에도 이상한 제도지만 그 제도가 없었다면 이번 서브프라임 사태시에 분명히 미국의 경제는 회복이 어려울 정도로 붕괴되었을 것이다.

중앙은행 금융인의 신화 벗기기와 대완화

흥미로운 글이 하나 있어 번역해둔다.

Demythologizing Central Bankers and the Great Moderation


때때로 승자가 역사를 쓰는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문제는 그들이 역사를 말하는 방식은 그들의 이해에 틀 지워져 있다는 점이다. 일반역사에서 진리인 것은 경제사에서도 역시 유효하다. 그리고 우리가 경제사를 말하는 방식은 경제에 대한 우리의 기대와 열망에 영향을 미친다.

지난 25년간 중앙은행들의 신망은 크게 증가하였다. 이러한 인기는 승자의 관점을 반영하는 최근의 경제사의 설명에 근거하고 있다. 이제 미국경제가 심각한 격류에 휘말리고 있는 와중에 그러한 신망은 약화될 수도 있다. 보다 중요하게 최근 역사에 대한 대안을 설명할 기회도 있다.

중앙은행 금융인들의 지위상승은 경제학자가 ‘대완화(Great Moderation)’을 규정하는 현상에 의존하고 있다. 이 현상은 지난 20여 년간, (경기)신장이 길어지고 불황은 짧아지고 물가는 떨어지는 그 기간 동안 경제주기가 완화된 것과 관련 있다.

많은 학자들은 이러한 연성화가 중앙은행에 의한 개선된 통화정책 덕분이라고 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함으로써 중앙은행 금융인들에 대한 명망은 높아지게 된다. 이러한 설명은 그러한 설명이 개선된 정책이 경제의 진보를 앞당긴다고 공을 돌리면서, 그리고 중앙은행 내에서의 점증하는 경제학자들의 영향력이 늘면서 경제학자들에게 인기를 얻는다.

즉 대완화를 일시적 현상으로 보는 관점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리고 그러한 설명은 상당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변화하는 경제주기에 대한 원인 하나는 완전고용에 대한 정책공약으로부터의 후퇴다. 위대한 정책 경제학자 Michal Kalecki 는 고용의 안정성 때문에 노동자들이 보다 높은 임금을 요구하게 되기 때문에 완전고용은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개연성이 있다고 관찰하였다. 이것이 1960년대와 1970년대 나타난 현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 문제를 해소하기보다는 경제정책은 완전고용으로부터 후퇴했고 노조의 말살에 조력한다. 이는 인플레이션을 완화시켰다. 그러나 이로 인해 20여 년간의 임금 정체와 임금과 생산성 향상 간의 파열이라는 높은 비용을 치러야 했다.

디스인플레이션은 또한 이자율을 낮췄다. 특히 경기 하강기에 그러하다. 이는 연속되는 모기지 리파이낸싱을 초래했고 또한 새로운 모기지의 현금유출을 감소시켰다. 가계의 재정은 개선되었고 소비자는 소비를 더 하게 되었고 그럼으로써 침체는 짧아지고 얕아졌다.

길어지는 경기 확장기와 관련해 자산가치 인플레이션과 소비자의 지출을 이끄는 재무적 혁신이 대완화로 이어졌다. 재무적 혁신으로 말미암아 신용에 대한 접근성과 크기가 향상되는 동안 높아지는 자산가치 덕분에 돈을 빌릴 수 있게 되었다. 이것들이 함께 증가하는 자산가치가 대출증가에 기댄 소비, 그로 인해 더 길어지는 확장기를 창출하는 역동성을 선보였다. 이러한 역동성은 지난 8년 간의 집값 거품으로 증명되었다.

중요한 시사점이라면 대완화는 자산가치 인플레이션과 증가하는 소비자 대출이라는 디스인플레이션의 일시적 요소와 결합된 완전고용으로부터의 후퇴의 결과라는 것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이제 소진되었다. 보다 더한 디스인플레이션이 분열적인 디플레이션을 초래할 것이다. 자산가치(특히 부동산)는 펀더멘탈에 의해 지지되는 수준 이상이었던 것 같고 자산가치 디플레이션의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소비자들은 그들의 신용이 이제 심각한 디폴드 위험에 노출되어있다는 것에 지쳐가고 있다.

이를 볼 때, 대완화는 손쉽게 마찰을 일으켜 중지할 수 있다. 인플레이션은 다시 돌아올 것 같지 않고 침체는 깊어지고 길어질 것 같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중앙은행 금융인들의 명성은 손상을 입게 되고 대완화의 진정한 토대와 숨겨진 비용이 표면에 드러날 것이다. 이는 곧 소득불평등이 줄어들었던 진정한 완전고용으로의 회귀에 대한 욕구를 불러일으키면서 역사를 새로 쓰도록 할 것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어떻게 역사를 말하는 가가 중요하다.

Copyright Thomas I. Pall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