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그러다가 레이의 로비활동이 레이가 평소에 강조한 자유시장의 해법에는 어긋나 보이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로, 엔론은 제3세계 개발 프로젝트에 대출과 대출보증을 해주는 해외민간투자공사와 수출입은행과 같은 정부기관에 의존했다. 이런 기관들은 자금을 조성하는데 알맞았다. 대부분의 은행은 잠재된 위험 때문에 제3세계 개발에 한 발 물러섰다. 레베카 마크의 사업도 이런 지지기반이 없었다면 대폭 축소되었을지 모른다. 워싱턴의 한 정부정책 연구기관의 연구에 따르면 1989년에서 2001년 사이에 해외민간투자공사, 수출입은행 등 20개의 정부 혹은 준정부기관 들이 29개국을 개발하는 엔론의 38개 해외 프로젝트에 72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마크와 원수 사이인 스킬링은 자유시장을 숭배한다는 기업이 그런 위선적인 행위를 하느냐며 정부를 등에 업은 자금 조성에 조소를 퍼부었다.[엔론 스캔들 세상에서 제일 잘난 놈들의 몰락, 베서니 맥린/피터 엘킨드 지음, 방영호 옮김, 서돌, 2010년, pp186~187]

먼저 이 글에 등장하는 엔론의 플레이어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레이”는 엔론의 CEO였던 Kenneth Lay를 말한다. “레베카 마크”는 엔론의 해외 프로젝트 개발사업을 수행한  Enron International의 수장 Rebecca Mark-Jusbasche다. “스킬링”은 천연가스 등에 대한 금융거래를 통해 수익을 창출한 Enron Corporation의 수장 Jeffrey Skilling이다. 레베카 마크가 발전소와 같은 실물에 투자했다면, 제프 스킬링은 파생상품 등 금융상품에 투자하여 투자대상이 서로 달랐고, 인용문에도 언급하고 있듯이 둘은 서로 스타일이 판이하고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인용문의 내용에 대해 좀 더 들여다보면, 해외수출금융기관(Export Credit Agency)에 의한 대출을 통해 해외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을 설명한 것이다. 즉, 제3세계의 발전소 프로젝트와 같은 경우 여러 위험이 존재하기 때문에 투자은행의 접근이 어렵고 금리도 높다. 그런데 ECA가 개입할 경우 그들의 직접대출이나 보증을 통해 자금조달도 용이해지고 금리도 낮아지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수출을 장려하기 위한 이런 금융은 이러한 점에서 사실 스킬링이 조소하는 바처럼 “자유시장” 원리와 거리가 먼 국가의 개입을 통한, 특정기업에 대한 특혜에 가까운 성격을 띠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해외사업의 개발과정을 보면 규제완화와 같은 자유시장 원리와 수출금융과 같은 反자유시장 원리가 공존한다는 점이다. 레베카 마크의 전임자 존 윙은 영국의 티스사이드 프로젝트를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데, 이 프로젝트는 천연가스를 연료로 사용하는 발전소 프로젝트였기에 천연가스 사용을 금지하던 그때까지의 영국 당국의 규제를 완화하지 않고서는 전망이 없는 사업이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때맞춰 1989년 규제완화 법안이 영국 국회를 통과하였고 그 최대 수혜자는 엔론이었다. 이제 금융조달은 값싼 수출금융을 이용하면 된다.

이와 같은 견지에서 볼 때 기업의 성장은 케네스 레이가 믿었던 것처럼 완전한 규제완화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해외사업을 영위하는 업체는 수출금융을 활용하여, 미국의 축산업자는 정부보조를 받아 값싸게 재배된 옥수수를 소에게 먹여, 석유화학 업체는 일반가정보다 더 싸게 제공되는 산업용 전력의 이용을 통해 성장을 모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만약 규제완화 신봉자가 주장하듯 이 모든 보조를 없앤다면 그들은 당장 위기에 처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사실 기업이 원하는 것은 자신들에게만 차별적으로 유리한 “선택적 규제 혹은 규제완화”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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