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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권력과 정치적 권력은 강력한 결사체”

민간보험사에 근거한 시스템은 비용을 통제하지 않는데 이는 민간보험사가 서로 거의 경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의료협회에 따르면 소수의 보험사가 대부분의 주에서 독보적이라 한다. 9개 주에서 2개의 보험사가 시장의 85%이상을 통제하고 있다. 감히 대형 보험사에 대들지 못하는 블랑쉐 링컨 의원의 지역구인 알칸사스에서 Blue Cross의 보험은 시장의 거의 70%를 점하고 있다. 나머지 대부분은 United Healthcare사의 차지다.[중략] 이에 대해 당신은 보험사를 반독점법에 구속될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법무부와 연방통상위원회가 그들이 당신의 주머니에서 건강을 위한 모든 달러를(또한 고용인들의 건강보험의 비용에 일부를 지원하는 회사의 주머니까지 함께) 삼켜버리는 한 두 마리의 베헤못이 못되도록 막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노’다. 놀랍게도 상원법안은 대형 보험사가 반독점법에 특혜적 예외를 적용받음으로써 경쟁으로부터 안전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중략] 지난 10개월 동안 우리가 배운 것이 있다면 경제적 권력과 정치적 권력은 강력한 결사체라는 점이다.[후략] [How a Few Private Health Insurers Are on the Way to Controlling Health Care]

클린턴 행정부 시절 노동부 장관을 지내기도 했던 로버트 라이시(Robert Reich) 교수의 글이다.

(주1) behemoth, 구약성서에 나오는 거대한 초식동물

미국 정부의 금융거래세 도입 논의

오바마 정부에겐 허다한 과제가 앞에 놓여있지만 그 중 가장 긴박하고 첨예한 주제를 들라면 역시 금융개혁과 의료보험 개혁이다. 미국을 위시한 자본주의의 금융기능(Wall Street)은 실물부문(Main Street)의 원활한 경제활동의 핏줄 기능을 수행하여야 하는데 그 스스로가 하나의 별개의 독자적인 산업부문으로 비대화되면서 현물자산을 초과하는 신용창출로 망가졌다. 한편 의료서비스는 서구에서 가장 비싼 비용을 지불하면서도 가장 질 낮은 서비스를 제공받는 전형적인 비효율 상품으로 전락하였다. 둘 다 본래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 채 그 비용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최근 미국 최대의 노동조합인 노동조합산업총연맹(AFL-CIO)는 이 두 가지 문제점을 동시에 해결할 방안을 오바마 정부에게 제시했다고 한다. 이 제안은 금융거래세 부과와 이 세수를 통한 의료제도 개혁 재원 확보가 주요내용이다. 이른바 경제학자 제임스 토빈(James Tobin)이 처음 주창하였다하여 ‘토빈세’로 널리 알려진 금융거래세는 각국 금융시장을 오가는 단기투기자본의 통제(이를 통한 환율 변동성 억제), 금융기관 감독비용이나 경기부양 재원 마련 등 특수목적 등을 위한 세수확보를 목적으로 하는 세금이다.

이론적으로 크게 문제없어 보이는 이 세금의 치명적인 약점은 특정 국가만 시행할 경우 규제에 따른 비용을 감수하려 하지 않는 투기자본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이른바 규제차익(regulation arbitrage)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세금은 국제적으로 동일하게 – 최소한 비슷한 수준으로 – 적용해야 효과가 있다. 최근 영국의 금융당국에서 이 화두를 꺼냈고 브라질의 경우는 이미 독자적으로 시행하고 있지만 결국 법인세나 소득세처럼 범지구적인 공조가 필요한 사안이다. 공화당은 금융기관의 대출능력 저하, 고용감소, 투자자금 유출 등이 경기침체를 심화시킬 거라면서 반대하고 있지만 각종 세금을 비슷한 이유로 반대하는 극단론자의 주장과 크게 다를 바 없다.

흥미로운 점은 미국이 지난해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Troubled Asset Relief Program) 대책을 수립하면서 금융기관으로부터 변제자금을 징수할 수 있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할 수 있는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하는 조항을 삽입한바 있는데, 이것이 바로 금융거래세를 신설할 수 있는 법적근거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는 점이다. 세금의 신설이 본래 어떤 세금이든 간에 기득권 세력의 저항에 부닥칠 수밖에 없기에, 토빈세라는 극히 미온적인 금융개혁 조치마저 그간 온갖 비난에 시달려야 했던 상황을 감안하면 그나마 진전된 상황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의료개혁이 어떠한 식으로 진행되든 간에 이 나라의 재정구조는 향후 계속하여 복지성 지출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는 인구가 급속히 고령화되어 국민연금/의료보험 등 복지성 지출 비중 확대되는 서구형 자본주의 국가 일반 모두에 해당되는 현안이다. 더불어 사회간접자본의 노화 현상 역시 정부재정에 부담을 주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그 부담을 털어야 하는데 신자유주의 시대에 들어서 각국은 그것을 해당 서비스 시장화(민영화), 수령액 삭감 등 복지지출 축소 등으로 풀어내려 했다. 그 추세가 당장 멈춰지긴 어렵지만(주1) 뒤늦은 금융거래세 논의는 그 대안을 앞서의 대안이 아닌 다른 곳에서 찾으려는 작은 시도다.

 

(주1) 개인적으로는 어떠한 서비스를 국가가 제공하느냐 시장이 제공하느냐 그 자체가 서비스의 질(質)이나 타당성을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둘 간의 제공논리가 특정 시기, 특정 상황에서 부합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부 시설의 민영화는 서비스의 향상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일부 시설의 국가공급은 현실성을 외면한 (연성)독재의 산물인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밑줄 그어가면서 읽어야할 기사 하나

동아일보가 오늘자 신문에 매우 흥미로운 기사를 내보냈다. “한국으로 의료관광 오세요”라는 이 기사는 한국의 의료현실이 국제의료시장(?)에서도 이미 충분히 경쟁력 있음을 강변하고 있는 기사다. 이 기사를 한국의 의료시장은 사회주의적 의료정책으로 인해 경쟁력을 잃었고 이를 극복하려면 영리의료법인의 설립을 허용하고 의료보험을 민영화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던 이들이 읽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무척 궁금하다. 이런 용기 있는 기사를 내보낸 동아일보에 박수를…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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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의료관광 오세요”

美 의료비 비싸 연 50만명 태국-싱가포르로
“한국 의료수준 높아 여행상품 성공 가능성 커”

3일 미국 뉴욕 플러싱 대동연회장.

한양대병원, 가톨릭대 성모병원, 아주대병원, 국립암센터 등 한국 주요 병원이 참석한 가운데 의료관광 설명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장에는 한인 여행사 관계자와 함께 중국계 미국 여행사, 일반 미국 여행사 관계자들도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 ‘80달러 대(對) 1700달러’

이날 의료관광 설명회에서 참석자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온 것은 한국과 미국의 의료비 격차였다.

박수헌 가톨릭대 성모병원 건강증진센터 소장은 “미국에서 대장 조영술 검사를 받으려면 1700달러가 들지만 한국에선 80달러면 가능하다. 그리고 검사에서 대장 용종이 발견돼 제거하려면 미국에선 5000달러가 들지만 한국에선 300달러면 된다”고 말했다. 박 소장이 “혹시 검사에서 대장 용종이 발견되면 한국으로 오라”고 말하자 폭소가 터졌다.

한 참석자는 한국에서 위장내시경 검사 비용이 182달러라는 설명을 듣자 “미국에선 보험 없이 검사를 받으려면 최소한 3000달러가 든다”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중국계 미국인들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한국의 성형수술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이상준 ‘아름다운나라 피부과 성형외과’ 원장은 “한국은 매우 저렴한 비용으로 높은 수준의 성형수술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예를 들어 쌍꺼풀 수술을 하는 데 1000∼1700달러 정도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그랜드홍콩 트래블’ 여행사의 마틴 조 국장은 “중국계 미국인들을 중국 등 아시아에 보내는 여행상품을 많이 취급하고 있다”며 “여행객들이 중국에 갔을 때 한국에 들러서 성형수술을 받는 여행상품은 시장성이 있다”고 말했다.

○ 교포사회 중심으로 관심 확대

한국 내 35개 병원이 가입한 한국국제의료서비스협의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을 찾은 의료관광객은 1만6000여 명. 아직까지는 일본과 중국인이 대부분이다.

이날 행사를 주관한 한국관광공사 뉴욕지사에 따르면 의료관광을 떠나는 미국인은 매년 50만 명에 이른다.(주1)

조성욱 한국관광공사 뉴욕지사장은 “미국인들이 의료관광으로 주로 찾는 지역은 태국 싱가포르 인도 등이다. 한국은 의료수준이 높은 반면 의료비가 미국에 비해 훨씬 저렴하기 때문에(주2) 홍보만 잘되면 많은 미국인 의료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의료보험료가 4인 가족 기준으로 월 1000달러에 이를 정도로 비싸 무보험자가 4000만 명이 넘는다. 치과보험은 무보험자가 1억 명 이상이다. 한국에서 대중화된 위장내시경 검사도 미국의 무보험자들에겐 큰마음 먹지 않고는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주3)

김대희 한양대 국제협력병원 외국인 전담 코디네이터는 “아직까지 의료관광을 위해 한국을 찾는 미국인은 많지 않지만 미국과 한국의 의료비 격차가 매우 크기 때문에 일단 교포들을 중심으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주1) 어찌 보면 매우 슬픈 현실이다. 마이클 무어의 Sicko를 보면 심지어 쿠바로까지 의료관광을 떠나는 장면이 나오는 것이야 영화를 본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하지만 우리도 언젠가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

(주2) 이 멘트는 요즘 분위기에서는 거의 좌파적인 발언이 아닐까 싶다

(주3) 이 멘트 역시 미국의 의료현실을 고발하는 매우 ‘좌파’적인 멘트다

가장 비싼, 그럼에도 가장 후진?

폴 크루그먼이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Runaway health care costs ? we’re #1! 라는 제목의 글에서 미국의 헬스케어 시스템의 문제를 꼬집었다.

그는 미국이 그 어느 나라보다 헬스케어에 많은 돈을 쓰고 있지만 그로 인한 개선은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가 인용한 자료에 따르면 2004년 현재 미국은 GDP 대비 15.3%를 헬스케어에 투입하고 있으며 이 수치는 세계 1위의 수치라 한다. 또한 그 증가율에 있어서도 역시 세계 1위라 한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그는 보다 통합된 시스템을 제안하고 있다. 이런 시도가 일시적으로 효과가 있지는 않지만 궁극적으로 그 추세를 꺾을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소셜시큐리티가 붕괴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이 글에는 미국인들로 추정되는 많은 독자들이 공감의 댓글을 달았다. 주목해볼만한 댓글들을 추려보았다.

개혁해야 할 “시스템 (자체:역주)”가 없다.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의사와 돈을 벌려는 다른 이들을 위한 시장이 있을 뿐이다. 그뿐이다. 이 시장에는 정부의 통제가 없다. 아냐 이는 우리에게 시스템을 만들 기회를 줄 거야. 사람들이 깨어날 때! 대접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There is no “system” to be reformed. All that is there is a market for doctors and others to make money. Thats it! There is no governmental control on this market. No, that would give us an opportunity to make it a system. When are people going to wake up! The people are not being served.
– Posted by edmcclelland

헬스케어의 비판자들은 늘어나는 비만률이 (의료:역자주)비용의 증가 때문이라고들 한다.(주1) 이러한 수치들과 당신이 언급한 나라들이 얼마나 상호 관련되어 있는지 궁금하다.
Critics of health care reform suggest that the rise in the obesity rate is the cause of increased costs. I’m curious to know how closely these numbers correlate across the nations you list.
– Posted by Tracey C Barrett

나는 사회복지정책을 강의한다. 우리는 어젯밤 미국에서의 헬스케어와 특히 그것의 높은 비용에 관해 2시간 반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학생들은 지난 몇 년 간 가졌던 생각인데 책임 있는 자들이 시스템을 바꾸지 못하게 할 것이라는 데에 전적으로 공감하였다. 맥케인 의원은 월스트리트와 보험회사의 뚜쟁이 노릇을 할 요량이고 오바마 의원과 클린턴 의원이 내놓은 계획들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진정한 개혁에 한참 못 미친다. 누가 우리를 구할까???
I teach a course in Social Welfare Policy…we spent 2.5 hours last night talking about the health care in the US and, especially, its high cost. The students pretty much agreed, as others have in past years, the folks in charge aren’t going to let the system be changed. Senator McCain’s plan panders to Wall Street and the insurance companies; the plans put forth by Senators Obama and Clinton are not anyway near the real reform we need. Who will rescue us????
– Posted by Jim Bourque

나는 서로 다른 보험체제를 가진 서로 다른 세 나라에서 살아보았다(스위스, 프랑스, 미국). 세 번의 경험 중에서 프랑스와 스위스의 시스템이 미국의 그것보다 훨씬 뛰어났다. 이는 주로 메디칼케어의 수준에서 그러하다. 비용은 프랑스가 가장 쌌고 스위스는 미국보다 약간 쌌다.[하략](주2)
I’ve lived in three different countries with three different health insurance systems (Switzerland, France and the US). Of the three my experience with the French and the Swiss system has been far better than with the US system, mainly in terms of the quality of the medical care. Cost-wise the French system was the least expensive while the Swiss system cost slightly less than the US.[하략]
– Posted by RepublicanModerate

나는 국가적인 단일 주체의 헬스케어 시스템을 요구한다,
I demand a national single payer health care system.
– Posted by Dick

이 글은 이 시각 현재 칠십 개 이상의 댓글이 달렸을 만큼 뜨거운 화제인데 대략의 내용은 위에 몇 개 인용한 바와 같이 사보험 회사들의 막대한 이윤을 위해 헬스케어 시스템이 희생당하고 있다는 것들이었다. 이는 현재 국내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마이클 무어의 Sicko 가  지적하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의견이다.

물론 폴크루그먼의 글에 댓글을 달 정도면 상당히 리버럴한 성향일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 댓글들에서 살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점 하나는 많은 이들이 시장의 다수의 참여자들이 아닌 “국가적 차원의 단일 주체(national single payer)”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완전경쟁 체제가 비용과 효율 측면에서 가장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영미권의 자유방임에 대한 지고지순의 가치를 부정하는 의견이어서 흥미롭다.

물론 정부의 경제정책이 그런 것이지 사람들의 생각이 다 그런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한에는 미국인들 상당수 역시 여태껏 시장의 자유에 대해서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굳은 신념을 가지고 있어왔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그들이 적어도 미국적인 견지에 봐서는 공산주의자의 발언이나 다름없는 국가적 단일 주체를 요구하는 모습은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것이다.

어쨌거나 안타까운 점은 이러한 일들이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는 다른 모든 분야에서도 그렇듯이 의료분야에서도 강한 민영화 드라이브를 계획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당연지정제 폐지와 영리 의료법인 설립 등의 제도들이 본격적인 의료민영화의 신호탄이 될 것이다. 비록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썩 쓸 만했던 우리의 의료시스템이 지금 제도개혁이라는 이름하에 미국식 개혁(?)의 경로를 걷고 있는 것이다. 예정된 실패로의 행진?

(주1) 실제로 선진국에서 비만은 더 이상 풍요로움의 상징이 아니다. 그것은 올바르지 못한 빈곤한 식사에서 비롯된 가난의 결과일 뿐이다.

(주2) 내용이 길어서 하략했는데 꽤 꼼꼼하게 지적하고 있으니 원글을 참고하시도록

인수위를 보면서 민영화의 본뜻을 곱씹어본다

적어도 인수위 내에서는 금산분리 완화 조치가 당연시되고 있는 분위기다. 언론은 금감위의 업무보고 자리에서 자신들의 몇 개월 전의 강경한 금산분리 철폐 반대 입장에서 선회하여 금산분리 완화에 찬성하였다는 보도를 흘렸다.(주1) 경제신문은 금산분리 완화를 당연시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적어도 아직까지는 “철폐”라는 단어는 입에 올리지 않고 있다. 그것이 가지는 함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인수위 측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금산분리 철폐의 궁극적인 대상은 우리금융지주회사이고 이를 노리는 자는 삼성이라는 것이 통설인데 삼성에 대한 저잣거리의 눈길은 얼어붙을 듯이 싸늘하다. 산업자본의 은행소유를 허가하면 싱가폴의 테마섹과 같은 외국의 산업자본들이 은행을 소유할 수 있게 된다는 비판도 있다.

그래서 인수위는 현재까지는 지난번 이명박 당선자가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이야기했던 부분을 되풀이하고 있다. 즉 대기업의 참여에 대해서는 일정정도 불이익을 줄 것이고 그 대신 중소기업의 컨소시엄이나 연기금의 참여를 고려해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경제개혁연대는 성명을 통해 이러한 주장이 근거가 박약하다고 비판하고 있다(관련기사).

우리금융지주회사와 같은 큰 물고기의 경우 중소기업 컨소시엄으로도 펀딩이 되기 어렵다는 것이고 국민연금 등이 참여할 것 같으면 적극적인 주주행사권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새 정부는 ‘중소기업 컨소시엄’론으로 일부 지방은행을 떡밥으로 던져주고 궁극에 우리금융지주회사, 더 나아가 산업은행 등을 거대 산업자본의 사냥감으로 던져줄 개연성도 있다는 점에서 경제개혁연대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다소 애매한 점이 국민연금을 포함한 연기금의 은행소유 론인데 현재 이들 연기금을 산업자본으로 보아야 하는 것인가 하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그 다음으로 의아한 점은 왜 연기금, 대표적으로 국민연금은 때만 되면 다 자기들 주머니인양 여기 투자한다 저기 투자한다 하는 이야기가 나오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형식상으로는 국민연금이 자체적이고 독립적으로 운용되고 있다고 하는 대외선전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으로부터 이 돈이 자유롭지 못하고 정치권이 정책집행수단으로 이 돈을 탐내고 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는 박근혜 씨로부터 ‘연기금사회주의’라는 소리를 들어가면서 주식투자비중과 BTL 등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높이려 했다. 대외적인 변명거리는 국민연금의 투자수익률 제고였지만 속셈은 주식시장과 경기부양이었다.(주2)

새 정부가 과연 금산분리를 완화한 후 정말 국민연금이 은행을 소유하게끔 할 것인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어설픈 점쟁이 노릇으로 굳이 예측해보자면 중소기업 활용론과 국민연금 활용론을 들먹이다가 앞서 경제개혁연대나 박근혜 씨가 주장하고 있는 논리에 물타기를 하며 거대 산업자본의 은행소유를 정당화해버릴 수도 있다.

여하간 새 정부의 입장은 현재로서는 참여정부와는 약간 다른 입장에서 국민연금을 바라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의료보험 등과 싸잡아 공적부조에 대한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벌써 인수위는 참여정부가 작년에 추진키로 한 실손형 민영의보 폐지정책을 무효화시킬 것을 공언하였다(관련기사). 해당 조치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일단 보험업계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국민연금을 포함한 각종 공적연금도 마찬가지 노선을 걸을 가능성도 있다. 즉 공적연금의 폐지와 민간연금의 전면 확대가 그것이다.(주3) 때마침 기금운용 등 공적연금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감도 극에 달해 있다. 게다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는 공적연금과 의료보험이 현재와 같은 추세로는 멀지 않은 시기에 재원이 고갈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관련기사). 그렇다면 시장친화적인 새 정부의 선택은? “골치 아프게 우리가 갖고 있지 말고 민영화시켜버리지!”

금산분리도 넓게 보면 민영화고 의료보험, 우정사업도 민영화하겠다고 한다.(주4) 이러한 민영화 쓰나미(아직 이 표현 쓰기는 좀 그런가?)의 논리는 제법 설득력이 있다. 관료주의, 정부의 비효율, 재원고갈 등 각종문제점을 좌파적인 反시장 정책의 결과로 비판하고 시장기능 활성화를 통해 효율성을 제고하겠다는 논리일 것이다. 이는 상당부분 국민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올 것이다. 왜냐하면 실제로 상당부분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민영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다. 엄밀히 지금 민영화에서 ‘민(民)’이라는, 즉 백성이라는 주체가 개입하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 필요하다. 사실 백성은 소위 ‘공공(公共)’과 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는 개념이다. 이는 공공에 대한 영단어 public이 바로 라틴어(語)의 푸블리쿠스(publicus:인민)에서 유래된 것이기 때문이다. 즉 공공이라 함은 그것이 정부의 형태를 취함에 있어 인민이 권력을 신탁한 것이라 보는 것이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이렇게 보면 ‘공’과 ‘민’은 사실 다른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일정시기를 거치며 공공 또는 국가소유의 재산을 기업에 불하하는 것이 ‘민영화’라는 인식과 거의 동일시되었는데 이는 실질적인 ‘민’이라 할 수 있는 대의체가 너무 미약한 탓이다. 결국 일부 시민사회가 일부 기능을 수행하기는 하였으나 절대다수의 정부기능의 민영화는 곧 기업으로의 민영화, 엄밀하게는 사유화(私有化)를 의미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재미있는(?) 말장난인데 민영화의 어원인 privatization 은 사실 앞서 표현인 사유화로 함이 맞다. 그러니까 사적인 주체가 소유관계를 가지게 된다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민영화하면 민간이 운영을 한다는 운영의 개념으로 대체된다. 표현이 급격하게(!) 순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결국 지금 사회여론은 어떤 이유에서건 민영화(사유화 whatever)에 대해 그리 적대적이지 않다. 문제는 그 공적기능을 떠안을 주체가 백성 중에서는 가장 강한 기업이라는 백성밖에 없다는 점이다. 은행이든 연금이든 의료보험이든 우리나라와 같은 가당찮은 시민사회서 뿐만 아니라 제법 헛기침 좀 한다는 서구사회에서조차 기업에 비해서는 절대적인 열세다.

그래서 제시되는 것이 연기금의 사회적 책임투자(주5), 자본과의 사회협약,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등의 개념이 제시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주장을 관철시킬 수 있을 정치적 세력이 유의미하게 존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2008년 현재 시점에서의 우리나라의 정치적 지형도는 암담하다. 보수 세력이 국회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그나마 진보정당이라고 자처하는 세력이 지리멸렬이다. 인민은 스스로가 공적연금, 은행, 기타 여하한의 생산수단의 운영주체임을 깨닫지 못하고 엉뚱한 이들에게 권력을 신탁하여 버렸다.

 

(주1) 다른 보도에서 금감원은 이를 부인하였다.

(주2) 요즘은 사모펀드와 해외자원개발펀드에까지 투자하고 있다. 투자다변화는 좋은데 이런 위험도 높은 사업에 투자할 능력이 되느냐 하는 것이다.

(주3) 이렇게 공적연금을 아예 폐지한 대표적인 사례로 칠레가 있고 서구언론에서 연금개혁의 성공사례로 칭송받고 있다.

(주4) 기타 통신 등 공공기업의 민영화는 수위조절을 하겠다고 한다.

(주5) 연기금 자체가 민영화의 공격대상이라는 점에서 약간 도돌이표 식인데 결국 연기금이라는 존재는 어떻게 보면 실질적인 ‘민영화(own by public)’이라는 개념에 가장 부합하는 현존재니까

공공의료 시스템 파괴의 주범은 이명박이 아닌 노무현

‘의료보험의 민영화와 당연지정제 폐지’에 관한 블로고스피어의 논쟁을 보면서 한 가지 어이없는 일은 위의 두 급진적 조치가 ‘인간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되었기 때문에 촉발된 것이라고 보는 관점이다. 어떤 이는 – 아마 현 정부 지지자일 것으로 생각되는데 – 이명박 지지자들에게 ‘너희들이 어떤 사람을 뽑았는지 앞으로 똑바로 지켜보라’는 훈계까지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의료보험의 민영화와 당연지정제 폐지’는 현 정부가 초석을 이미 다 다져놓은 상태다. 당연지정제의 경우 이미 2005년 민주화의 산 증인 김근태씨가 복지부 장관으로 있던 시절 폐지를 검토했다가 참여연대가 항의성명을 내는 등 저항이 일자 서둘러 봉합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현 정부가 슬그머니 저질러놓은 사건이 있다. 바로 자유경제구역과 한미FTA다. 이 두 가지 수단만 있으면 의료자본은 한국의 의료보험 체계를 언제든지 깨부술 수 있다.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는 ‘국민건강보험법’ 제40조(요양기관)에 규정하고 있다.

제40조 (요양기관) ①요양급여(간호 및 이송을 제외한다)는 다음 각호의 요양기관에서 행한다. <중략>

1. 「의료법」에 의하여 개설된 의료기관
2. 「약사법」에 의하여 등록된 약국
<중략>
④제1항 및 제2항의 규정에 의한 요양기관은 정당한 이유 없이 요양급여를 거부하지 못한다.

이로써 국내에 각각 의료법과 약사법에 의해 개설된 병원, 약국은 요양급여, 즉 치료를 거부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 원칙에 균열을 낸 것이 바로 ‘경제자유구역’이다.

노무현 정부가 경제자유구역의 설치 및 활성화를 위해 2005년 제정한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23조에는 다음과 같은 조항이 있다.

제23조 (외국의료기관 또는 외국인전용 약국의 개설 <개정 2005.1.27, 2007.12.7>) ① 외국인 또는 외국인이 의료업을 목적으로 설립한 「상법」상 법인으로서 다음 각 호의 요건을 모두 갖춘 법인은 「의료법」 제33조제2항에 불구하고 보건복지부장관의 허가를 받아 경제자유구역에 외국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다. <중략>
⑤제1항 및 제2항에 따라 개설된 외국의료기관 또는 외국인전용 약국은 「국민건강보험법」 제40조제1항의 규정에 불구하고 동법에 의한 요양기관으로 보지 아니한다.

요약하자면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국내 요양기관은 요양급여를 거부하지 못하지만 ‘경제자유구역법’에 따른 요양기관은 요양급여를 거부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즉 당연지정제에서 면제된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당연지정제의 정신은 누가 깼을까.

경제자유구역은 일종의 특정구역이고 특별법 지정을 통해 예외를 둔 것이니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을 통한 전 요양기관으로의 확대와는 다른 문제 아니냐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순진한 생각을 깨부수는 것이 바로 한미FTA다.

즉 경제자유구역에서의 예외조항은 의료기관 영리법인화,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도 폐지, 민간의료보험의 도입 등 의료체제의 신자유주의화를 가속화시킬 것이고 이를 지지하는 튼튼한 지지대가 바로 한미FTA 일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한미FTA에는 ‘투자자-국가 분쟁 절차(Investor-State Dispute : ISD)’ 또는 ‘투자자 국가 제소권’이라 불리는 투자자의 무기가 있기 때문이다.

한미FTA가 발효되면 외국기업 또는 외국인투자기업은 허다한 공공서비스를 역차별이라 규정하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의료시스템에서의 그들의 공격대상은 보나마나 당연지정제와 강제가입제다. 이 소송은 국내에서 진행되는 것도 아니고 헌법의 규정을 받지도 않는다. 이에 대해 시사인의 장영희 기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AIG 같은 미국계 보험회사들이 한국의 강제가입제가 부유층의 민간 보험 가입을 막아 자신들의 잠재 이익을 침해했다며 투자자 국가 제소권(ISD)을 동원한다면 건강보험의 무력화는 시간문제다.”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FTA?”, 시사인, 장영희 전문기자)

이외에도 한미FTA 조약에는 ‘역진 금지 기제(래칫)’ 등 다양한 투자자 보호 제도가 완비되어 있으니 그것만 있으면 대통령이 이명박 씨가 앉아 있든, 정동영 씨가 앉아 있든, 심지어 권영길 씨가 앉아 있든 상관없이 자본은 공공서비스를 맘대로 난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조약은 누가 만들었는가? 바로 노무현 현 대통령이다.

이 당선자는 먼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얘기를 꺼냈다.
▽이=한미 FTA 체결은 정말 잘한 일이다. 사실 대통령이 한미 FTA를 할 줄은 몰랐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낀 대한민국이 미국 시장을 먼저 겨냥한 것은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 노 대통령 임기 중에 한미 FTA 비준안이 (국회에서) 통과됐으면 좋겠다. 나도 한나라당 의원들을 설득하겠다.
▽노=FTA 비준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盧대통령-李당선자 만찬 회동”, 동아일보, 조수진 기자)

의료보험 논쟁에서 간과되고 있는 것, 돈 문제

난데없이 ‘의료보험’이 블로고스피어에서 화제로 떠올랐다. 문제의 발단은 몇몇 블로거들이 이명박 당선자가 의료보험을 민영화 – 내지는 당연지정제를 폐지 – 할 것이라고 이슈를 제기한 것에서 비롯된 것 같다. 이어 미국의 의료보험 체계를 비판한 마이클무어 감독의 Sicko가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디스토피아로 제시되면서 논쟁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그 논쟁의 하이라이트는 고수민님과 이카루스님의 글이 아닌가 싶다.(고수민님에 대한 반론 하나) 두 분 모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블로거 분들이라서 꽤 꼼꼼히 읽어보았다. 논점은 약간씩 틀리지만 실제 미국에서 거주하시는 블로거로서 현재 시점의 미국의료 체계에 대한 소상한 정보를 들려주셔서 적지 않게 도움이 되었다.

필자는 두 명의 외국인 친구가 있다. 한 명은 캐나다인 한 명은 미국인이다. 몇 달 전 셋이서 술집에서 소주 한잔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바로 그 Sicko와 미국의 의료체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미국인 친구는 평소에도 캐나다인 친구를 Socialist라고 빈정거려 온 터라 그날도 주로 미국의 의료체계를 변호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나와 캐나다인의 양면공격에 – 특히 캐나다 친구는 정치문제에 꽤 열정적이고 타협하지 않는 타입이다 – 결국 자국의 의료체계의 문제점을 시인하는 선에서 이야기를 마쳤다. 실제로 캐나다의 그것에 비해 열등한 것도 사실인데다 미국인 친구가 철저한 반공주의 내지는 보수주의로 무장한 그런 스타일이 아닌 열린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여하튼 그날의 해프닝은 미국인이 바라보는 미국 의료체계의 단편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날의 느낌은 사회가 개인의 복지를 어느 정도 책임져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하면서도 천성적으로 자유주의적 입장이 강하여 – 경제적인 면에서도 – 먹고 사는 문제에 있어서도 개인적으로 능력이 된다면 능력 되는대로 살겠다는 미국인의 낙천적 기질이 엿보이는 그런 것이었다.

어쨌든 좋다. 요컨대 미국은 간단한 수술에도 수천 달러를 지불해야 하고 보험료도 비싸며 그나마도 보험 미가입자가 수천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그에 비해 유럽이나 캐나다, 심지어 쿠바는 무상의료 정신을 구현하며 병자들이 치료비 걱정 없이 병원을 다닌다고 한다. 그렇다면 답은 뻔하지 않은가. 대한민국이 가야할 방향은 미국의 반대방향이다.

상황종료?

그렇지 않은 것이 문제다. 왜 ‘의료보험 민영화’라는 말이 회자되는지부터 짚어봐야 한다. 이는 역시 서구에서 케인즈 주의적 국가관리 체계가 무너지기 시작하는 1970~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당시 영국 쌔처 정부나 닉슨 정부는 정부의 공적부조를 비효율의 본산지, 정부재정의 기생충으로 공격하면서 공공서비스를 민영화하기 시작하였다. 영국에서는 강력한 저항으로 여전히 ‘국민건강서비스(NHS, National Healthcare Service)’가 존재하고 있지만 쌔처의 민영화 드라이브 기조는 여전히 이어져 NHS도 꾸준히 민영화되고 있는 추세다.(관련 기사)

그렇다면 진짜 재원이 부족한 것인가 아니면 정부가 거짓말을 하는 것인가.

나는 정말 재원이 없다는 주장에 일정부분 동의한다. 왜 없냐면 이유는 다양하다. 세율 자체가 낮아서 일수도 있고, 자영업자나 고소득층의 탈세 때문 일수도 있고, 친기업적인 조세정책으로 세수가 줄어서 일수도 있고, 복지예산을 삭감하여 국방비 등 – 특히 미국 같은 경우 ‘국토안보(Homeland Security)’ 소요비용 등 – 다른 곳에 전용하여서 일수도 있고, 보수주의자들의 사회공공성에 대한 공격에 따른 예산삭감 때문일 수도 있고, 노령인구가 늘고 노동인구가 줄어드는 인구구조의 변화 때문 일수도 있다. 사실 언급한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결국 아무리 의료체계가 멋지게 짜여 있어서 이를 통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값싸게 제공받을 수 있게끔 멍석이 깔렸다고 하더라도 돈이 없으면 말짱 황이다. 특히 자본주의 국가의 의사들이 사회주의 조국의 명을 받아 우간다고 어디고 인류애 정신에 입각하여 봉사하는 쿠바의 의사들 같지 않은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돈이 없으면 세상이 굴러가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영화 Sicko에서 내가 불만스러운 점이 바로 이 점이다. 마이클무어는 특유의 그 ‘들이대는’ 스타일로 영화를 찍은 탓에 영국, 캐나다, 쿠바의 환상적인(?!) 의료 서비스 현장만을 소개했지 그 멋진 서비스들이 어떠한 문제점이 있는지, 어떻게 보수층으로부터 공격을 받는지, 그래서 어떠한 위기에 처해있는지, 그 위기를 어떻게 해결하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말이 없다.

앞서도 말했지만 공공의료의 전형으로 여겨지는 영국의 NHS도 민영화의 공격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역시 거시적으로 자유화, 세계화에 따라 자본의 수익은 증가하는 반면 세금으로 그것들이 걷히지 않고 있어 이것이 공공서비스 재원의 고갈에 한 몫 하는 것이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자본은 이러한 상황에서 오히려 재원고갈이 공공서비스의 비효율을 증명한다면서 민영화를 주장하는 형국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더군다나 타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국방예산, SOC 예산 등으로 말미암아 복지예산 비중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는 의료뿐 아니라 허다한 공공서비스가 경제규모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제공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사실 이명박 당선자가 저지른 잘못도 아니고 노무현 정부가 저지른 잘못도 아니다. 성장 위주의 개발독재의 잔재라 할 수 있고 신자유주의 시대에 접어들어 참여정부 등이 이제 공공서비스 민영화를 통한 구조해체의 길을 터준 것뿐이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이명박 후보가 당선된 이후 의료보험 민영화를 이명박 호의 디스토피아로 제시하는 것은 일종의 공갈이다. 정동영이 당선되었다 해서 모자라는 공공서비스 재원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그가 의료보험 체계를 캐나다 수준으로 높일 의지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정동영 밑에 있던 유시민 씨가 연기금 개혁(?)의 총대를 매려고 했음은 잘 아는 사실이지 않은가. 또한 한-EU FTA에서 약값 폭등을 불러올 협상을 진행시키고 있는 주체도 바로 현 정부다.(관련글) 재원이 확보되지 않은 공공서비스는 끊임없이 자본과 정치권의 공격을 받을 것이다.

대안은 많지는 않지만 굳이 제시를 하자면 의료체계를 비롯한 사회공공성에 대한 예산확보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도리밖에 없다. 그러자면 그러한 정책을 내건 정치적 집단을 조직하여야 하는 것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한반도 평화체제 전환이 해결책이 될 것이다. 이를 통해 불필요하게 지출되는 그 엄청난 분단유지비용을 사회건전성을 회복하기 위한 비용으로 전환하여야 한다. 평화체제는 단순히 이산가족 상봉이나 민족적 자긍심의 고취 등의 효과만 있는 것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한반도가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인 것이다.

사족 : 글쓰기의 미숙함때문에 마지막 문단에 대한 여러분들의 오해가 있었기에 그 중 대표적으로 조나단95님이 제기한 반론에 대한 댓글을 주석으로 달도록 한다

정치적 집단이라 함은 정당뿐만 아니라 말그대로 정치적 의지를 가진 사회제반 모든 집단을 아울러야 겠죠. 이들이 총선에서 신당 등에게 관련분야에 대해 조직적으로 저항하여줄 것을 요구하고 관철해내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신당이 야당이 되었으니 더욱 쉽지 않을까요?

평화체제는… 이 문제는 따로 책한권이 나와도 다 의견이 틀릴 복잡하고 다소는 주관적인 문제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혹자는 남북이 평화체제가 되어도 주변국때문에라도 절대 국방비 안줄어든다고 하는데…

하여튼 국방비에서부터 징병제에 따른 노동력손실, 주한미군 주둔에 대한 한국의 분담분, 이라크 파병, 뭐.. 기타 모든 기회비용은 해방 이후 지속적으로 우리나라의 발전에 발목을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반공주의를 통한 사회적 요구에 대한 폭력적 탄압까지도 말이죠.

요컨대 저는 (그냥 제 개똥철학인지 몰라도) 남북문제 해결없는 사회평등은 다소는 불완전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라 건강보험 이야기하다가 뜬금없이 그 이야기가 튀어나온 것 같습니다. 🙂

좋은 말상대를 만나서 반갑고요. 앞으로도 더 좋은 글 기대합니다.

http://diegeschichte.tistory.com/entry/건강보험-재정에-관한-원인과-해결방안에서-난독증을-불러일으키는-글#comment2069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