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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MC의 미국 신규 투자건 단상

TSMC factory in Taichung's Central Taiwan Science Park.jpg
By Briáxis F. Mendes (孟必思)Own work, CC BY-SA 4.0, Link

Texas Instruments는 대만의 경제를 변화시키고 산업을 건설하고 기술 노하우를 이전할 수 있었다. 한편 전자제품 조립은 다른 투자를 촉진하여 대만이 더 높은 가치의 상품을 더 많이 생산하도록 도울 것이었다. 미국인들이 아시아에서의 군사적 공약에 회의적이 되면서 대만은 미국과의 관계를 절실하게 다각화가 필요했다. 대만을 방어하는 데 관심이 없는 미국인들은 Texas Instruments를 방어할 의향이 있을 수 있었다. 섬(대만 : 역자주)에 반도체 공장이 많을수록, 미국과의 경제적 관계가 많을수록 대만은 더 안전해질 것이다.[Chip War: The Fight for the World’s Most Critical Technology, Chris Miller, Scribner, 2022]

1960년대 한국, 대만, 싱가포르 등 반공(反共)주의를 기치로 걸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은 경쟁적으로 당시의 첨단산업인 반도체의 생산기지 역할을 자처한다.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제조업의 유치가 필수불가결할 뿐 아니라 인용문에서 언급하다시피 미국의 첨단산업을 유치함으로써 공산주의 세력으로부터의 외침에 대해 미국이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과론적으로 미국은 동북아시아의 이들 국가에 대해 적절한 안보적 장치를 제공했고 제3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경제성장을 달성하여 미국이 그들 특유의 ‘자본주의 및 대의 민주주의 시스템’을 해외에 이식하려 노력한 중 가장 뛰어난 모범사례가 되었다.

“실리콘(반도체) 방패가 점차 약화되고 있다.” TSMC의 1000억달러(약 146조원) 규모 미국 신규 투자건이 3일 발표되자, 대만 현지에서는 반도체 생산 시설의 해외 이전에 대한 우려가 나왔다. 반도체는 중국의 위협에서 대만을 지키는 전략 산업으로 여겨진다. 미국이 대만 안보에 관심을 갖는 것은 TSMC가 대만에서 생산하는 최첨단 반도체가 큰 역할을 한다. 최첨단 반도체의 약 90%는 대만에서 생산된다. 이 때문에 TSMC는 대만의 호국신산(護國神山)으로 불린다. 하지만 TSMC 생산 시설이 대거 미국으로 옮겨 가면, 대만의 전략적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경악한 대만 “보조금은커녕 안전보장 약속도 없어”]

오늘날 한국이든 대만이든 이러한 복합적인 국토 및 경제 수호 전략은 그때와 별로 다를 것이 없다. 그간 가끔씩 한반도에서 전쟁의 기운이 스멀스멀 밀려올 때, 전문가들이 전쟁이 실제로 발발하기 어려운 이유로 들었던 것이 바로 전쟁으로 인하여 글로벌 반도체 네트워크가 심각한 손상을 입을 것이라는 것이 주요한 이유로 지적되기도 했었다. 중국이 조만간 대만을 침공할 것이라는 우려가 여전한 현재 상황에서 대만은 똑같은 이유로 제1세계가 – 특히 미국 – 자신들을 보호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고, 그러한 면에서 그들은 TSMC를 단순한 대만의 일등기업으로서가 아니라 호국신산(護國神山)이라는 신령한 존재로 떠받들고 있다.

로직칩의 주요 반도체 제조업체는 TSMC, 삼성, 인텔의 셋뿐입니다. TSMC와 삼성은 파운드리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인텔은 지금에야 이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입니다. 미국에서 파운드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요 칩 제조업체가 없다는 것은 국가의 경쟁력 있는 입지를 제한하는 것으로 판명되었으며, 특히 고급 로직칩 분야에서 그렇습니다. 인텔이 없다면 미국은 실제로 어려움에 처할 것이라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파운드리가 없는 인텔의 고객 기반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약화하였고 기술을 따라잡을 수 있는 능력도 약화하였습니다.1[A Strategy for The United States to Regain its Position i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인용문을 보면 미국의 주류 입장은 오히려 제조업 기능을 대만이나 한국과 같은 입지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지정학적 리스크에서 떼어 내려는 전략으로 여겨진다. 트럼프도 ‘TSMC의 투자가 중국의 대만 점령 시도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것은 분명히 매우 재앙적인 사건일 터인데, (TSMC의 투자로) 매우 중요한 사업의 일부가 미국에 있게 할 수 있다”고 대만의 안보와는 관계없는 – 오히려 더 위험하게 하는 – 투로 대답했다.2 즉, 호국신산의 한 뭉텅이가 미국으로 이전하는데 이에 대만 영토에 대한 안전 보장이랄지 공장 이전에 대한 보조금 등의 여하한의 반대급부 언급도 없었다.3 요컨대 대만 vs 미국 전에서 대만 완패.

  1. 하지만 단순한 생산기지 이전도 쉽지 않은 것이 이미 아리조나에 지어진 TSMC의 공장에서는 이러한 동양식의 “근면한” 노동 규율이 현지 노동자의 생각과 달라 갈등을 빚고 있다.(출처)
  2. 오히려 공장 신설을 공식 발표하는 자리에서조차 “미국은 40년 동안 (대만에) 이용당했다”는 무례한 발언만을 들었을 뿐이다.
  3. 결국 첫 인용기사에서도 언급하였듯이 대만에서는 “부다페스트 안보 각서”를 믿고 핵무기를 포기했던 – 이번 경우에는 TSMC – 1994년의 우크라이나처럼 헌신짝처럼 버려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첨단산업 네트워크 하청국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

Workers in the fuse factory, Woolwich Arsenal late 1800s
By Unknown author – National Maritime Museum Reproduction ID: H0698.This version from https://www.flickr.com/photos/nationalmaritimemuseum/4615367952, No restrictions, Link

2023년 뉴욕 타임스 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TSMC 최고경영자인 마크 류는 “우리는 의회, 상무부, 백악관에서 꽤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대만에서 공급망을 다각화하고 TSMC의 두 번째로 큰 고객인 화웨이가 2020년에 최첨단 칩에 접근하는 것을 막자 대만의 파운드리는 따를 수밖에 없었다. [중략] 대만의 사실상 미국 대사인 알렉산더 타레이 유이는 2025년 2월에 비슷한 발언을 하며 대만의 산업은 미국의 산업에 “경쟁자”가 아니라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라고 주장했다. TSMC는 반도체 판매에서 1달러당 0.11달러만 벌었다. 칩, 소프트웨어를 설계하고 특허를 소유한 미국의 팹리스 기업은 반도체 판매에서 1달러당 0.38달러를 벌었다.[Taiwan’s Lai Ching-te vows to build “democratic supply chains” as US tariffs loom]

실낱같이 연결되어 있는 전 세계 반도체 제조 네트워크에서 대만의 반도체 산업이 – 정확하게는 TSMC – 처해있는 위치를 잘 말해주는 부분이다. 파운드리라는 것은 결국 팹리스의 생산 주문 없이는 지탱할 수 없는 산업인데 현재 그 팹리스는 압도적으로 미국에 위치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다 최근 트럼프는 ‘대만이 미국의 반도체 산업을 훔쳐갔다’고 말하며 TSMC가 인텔에 투자하여 인텔의 기업 경쟁력을 회복시켜줄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돌이켜보자면 사실 1960년대 이후 미국의 반도체 기업들이 아시아의 손재주가 좋고 값싼 노동력을 활용하기 위해 시작된 글로벌 반도체 제조 네트워크가 현재의 반도체 네트워크의 시작인데도 트럼프는 그걸 맥락 없이 – 사실 제국주의적 야욕의 맥락은 배경에 명백하지만 – 하청국에게 맛이 간 본토 업체를 살려내라는 억지를 부리는 상황이다.

Texas Instruments는 대만의 경제를 변화시키고 산업을 건설하고 기술 노하우를 이전할 수 있었다. 한편 전자제품 조립은 다른 투자를 촉진하여 대만이 더 높은 가치의 상품을 더 많이 생산하도록 도울 것이었다. 미국인들이 아시아에서의 군사적 공약에 회의적이 되면서 대만은 미국과의 관계를 절실하게 다각화가 필요했다. 대만을 방어하는 데 관심이 없는 미국인들은 Texas Instruments를 방어할 의향이 있을 수 있었다. 섬(대만 : 역자주)에 반도체 공장이 많을수록, 미국과의 경제적 관계가 많을수록 대만은 더 안전해질 것이다.1 1968년 7월, 대만 정부와의 관계를 완화한 TI 이사회는 대만에 새로운 시설 건설을 승인했다. 1969년 8월, 이 공장은 첫 번째 장치를 조립했다. 1980년에는 10억 번째 장치를 출하했다.[Chip War: The Fight for the World’s Most Critical Technology, Chris Miller, Scribner, 2022]

1960년대 반도체라는 상품이 새로운 산업혁명을 주도할 기술이라는 것이 명백해지면서 글로벌 경제 시스템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재편되기 시작했다. 기술적으로는 단연 TI, Fairchild 등의 첨단기업이 있는 미국이 주도했고, 일본은 이 반도체를 활용한 첨단 전자제품 개발의 선도국이 되었다. 한국, 대만, 싱가포르 등은 이 공급망의 하청 역할을 수행하며 돈도 벌고 자국 안보를 위해 반도체 기업을 인질로 잡는 복합적 목표를 달성하였다.2 그리고 당시 TI에 있던 한 인물이 오늘날의 TSMC를 만든 모리스 창(Morris Chang)이다. 그가 대만에서 TSMC를 설립을 주도하고 60년대 이후의 하청 구조를 고도화시킨 것이 오늘날의 TSMC라 할 수 있는 것이다.3 그런 면에서 대만은 사실 미국의 반도체 산업을 훔친 적이 없다. 늘 하던 대로 미국의 하청국 역할을 (더 확대하여)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을 제국주의 정복의 길로 이끈 미국 대통령은 윌리엄 매킨리였다. 1896년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매킨리는 미국 기업의 이익을 증진하기 위해 높은 관세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중략]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월 20일 두 번째 취임 연설에서 매킨리를 “위대한 대통령”이라고 부르며 북미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데날리 산에 매킨리의 이름을 다시 새기겠다고 발표했다. [중략] 트럼프는 매킨리를 관세의 대통령이자 후임자 시어도어 루즈벨트 시절에 파나마 운하 건설을 가능하게 한 “천부적인 사업가”라고 극찬했다. [중략] 미국이 1898년에 하와이를 합병하고, 스페인-미국 전쟁에서 괌, 쿠바, 푸에르토리코를 점령하고, 매킨리가 죽은 후에도 오랫동안 계속된 필리핀 정복 전쟁을 시작한 것은 매킨리의 통치 기간이었다.[Trump, McKinley, and US imperialism in Asia]

이렇게 트럼프는 매킨리의 길을 쫓아 19세기 제국주의로의 회귀를 꿈꾸고 있다. 그 와중에 글로벌 반도체 네트워크 위계구조는 더욱 명백해지고 있다. 중국과의 AI 전쟁 와중에 미국에서는 빅테크들이 AI 투자를 주도하고 있고, TSMC와 SK하이닉스는 부품을 공급하고 있고, 한때의 하청의 위치를 벗어나 선도 기업을 꿈꾼 삼성전자는 신분을 망각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4 국가적으로는 이 살벌한 네트워크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상황이라 그나마 다행이지만, 네오파시즘적 징후가 점점 짙어지고 있는 요즘 상황에서5 앞으로 제국주의 “기술산업복합체“가 어떻게 우리 기업의 팔을 꺾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인 것이 사실이다.6 처음 인용한 글에서는 “국가적 자기 보존을 위한 투쟁은 사실상 상호 국가적 몰살”이라 말하지만, 한국처럼 조그마한 하청국가에게는 생존 자체가 투쟁이기도 하다.

  1. 당시 아시아의 반공(反共) 정부는 베트남이 공산주의자에 의해 장악되어 가는 상황을 목격하며 엄청난 공포에 휩싸였던 것이 사실이다.
  2. 페어차일드는 그해 214만5000달러를 직접 투자, 한국에 트랜지스터와 다이오드 조립 생산 공장을 짓는다. 합작이 아닌 직접 투자로 한국에 진출한 반도체 업체는 페어차일드가 처음이다.(관련 기사)
  3.  블룸버그통신은 “TSMC는 대만에서 ‘국가를 수호하는 성스러운 산(護國神山)’으로도 불린다”며 대만인들의 TSMC에 대한 감정을 전하고 있다. TSMC의 대만내 전기 소비량이나 시가총액 비중을 볼 때 사실상 대만은 국가의 형태를 띠고 있는 TSMC와 같은 느낌이다.
  4. 그런데 하청기업답게 초과노동으로 위기를 돌파하려는 습성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5. 최근에는 또 트럼프가 우크라이나에 군사적 지원을 대가로 우크라이나에 희토류 및 전략 광물을 내놓으라고 을러댔다고 한다. 조선일보마저 헤드라인에 “조폭”이라는 표현을 썼다. 한편, 이 영상에서의 패널은 사실 여태 그래 왔던 것을 오히려 트럼프라서 속내를 거리낌 없이 말한 것일 뿐이라고도 한다.
  6. 국내에서는 트럼프가 TSMC의 팔을 꺾고 있는 와중에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기사회생할 기회가 있을 수도 있지 않겠냐는 희망을 품는 이들도 있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세운다. 처맞기 전까지는”

반도체 산업, 허수아비가 아닌 자본가를 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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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ward R. Hollem – This image is available from the United States Library of Congress‘s Prints and Photographs divisionunder the digital ID fsac.1a34951.This tag does not indicate the copyright status of the attached work. A normal copyright tag is still required. See Commons:Licensing., Public Domain, Link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반도체산업에 주 52시간제(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적용을 제외하는 반도체특별법 제정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1 2 법을 밀어붙일 경우 노동계와의 갈등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 대표는 3일 오전 국회에서 ‘행복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반도체특별법 노동시간 적용제외 어떻게’라는 제목으로 열린 민주당 정책 디베이트(찬반토론)에서 “반도체산업에 주 52시간과 각종 (노동시간) 유연화 제도 외의 제도를 추가로 도입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다”며 “이해관계가 충돌될 때는 합의가 안 될 때가 많고, 간극을 누군가는 책임져야 한다. 욕먹을 건 먹고, 책임질 건 책임지고, 그전까지는 최대한 대화를 해 보겠다”고 말했다.[“반도체특별법 욕 먹어도 한다” 이재명 대표 ‘답정너’ 의지]3

이것은 허수아비 때리기다. 지금이 노동시간 연장을 운운할 정도로 한국의 반도체 산업이 위기인가? 많은 이들이 그렇다고 말한다. 보다 정확하게는 대한민국 대표 반도체 기업 삼성전자의 위기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또 다른 반도체 기업 SK하이닉스는 HBM 실적의 호조를 기반으로 창사 이래 최대의 실적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 두 회사는 굳이 따지면 모두 “한국 국적”의 회사다. 그렇기에 모두 대한민국 법률에서 정한 주 52시간제의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계는 – SK하이닉스까지 포함하여 – 주 52시간제 때문에 산업이 위기라며 이 규제에 대한 철폐를 주장했다.4 그래서 앞뒤가 맞지 않는다. 같은 규제를 적용했는데 삼성은 위기고 SK는 호황인데 둘 다 노동시간 규제 때문에 불만이다. 뭐 어쨌든 일단 글로벌 반도체 산업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어떤 이는 세계 반도체 산업계가 실낱같은 네트워크로 이어진 업계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반도체의 설계, 소재, 제조, 제조를 위한 장비 등이 독점 또는 과점 체제 하에 있다는 점에서 다른 업계와 비교해서 굉장히 예외적인 위치에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독과점 이익을 누리는 엔비디아, AMD, ASML 등의 업체들은 엄청난 이익을 거두고 있다. 반대로 HBM 등 최신 수요에 부응하지 못한 삼성전자처럼 문제의 원인을 알고, 젠슨 황도 립서비스+푸쉬 성으로 삼성전자의 분발을 촉구하고 있음에도 단기간에 이슈를 해소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불거진 이슈가 업계의 초과 근로 요구다. 일단 재계는 우리의 경쟁국은 근로 시간의 규제가 없다며 우리의 경직된 규제를 탓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세의 흐름을 놓친 것이 단순히 노동시간 탓일까?

“뺑이치기”로 성공한 기업이 파운드리 업체 TSMC라고 한다. 우리와 비슷한 노동문화를 공유하는 대만 업체라 그들도 초과 근로가 일종의 직업윤리인 것처럼 포장되고 왔던 정황이 있기도 하다.5 그리고 어쨌든 반도체 네트워크에 잘 안착하여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다. 파운드리 2위 업체 – 라고는 하지만, TSMC가 넘사벽인 – 삼성전자는 그래서 단편적으로 초과 근로를 해야 TSMC를 따라잡을 수 있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그런데 파운드리란 반도체 산업에서 외부 업체가 설계한 반도체 제품을 위탁받아 생산, 공급하는 공장을 가진 ‘반도체 위탁 생산’ 업체다. TSMC는 경영진의 능력으로6 엔비디아 등으로부터 엄청난 물량을 발주 받아서 초과 근로라도 해서 물량을 공급해야 한다. 그런데 삼성은 야근을 할 수주 물량이 있는가? 찍새가 물량을 못 받아왔는데 딱새가 야근을 하면 뭐하나?

업계는 반도체 설계 등 “고급”노동을 하는 고소득 노동자는 초과 근로를 통해 업계 트렌드를 따라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7 다시 HBM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당시 엔비디아는 인공지능 시장의 강자로 등장하기 이전에 삼성전자에 와서 자기들의 GPU에 필요한 HBM의 생산을 요청했다는 풍문이 있다. 그런데 배가 부른 삼성전자는 이를 거부했고 배가 고픈 SK하이닉스는 부지런히 노력하여 엔비디아의 요구에 부합하는 HBM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한다. 당시 SK하이닉스에서 HBM 개발부서의 임원이었던 분은 노동시간에 대해서는 우회적으로 답변을 피하며 엔지니어의 사명감을 강조했다. 의대 안 가고 공대가서 취업한 고급 인력이 외국 빅테크만큼의 보상도 없이8 사명감으로 일해서 이만큼 따라잡았으면 이제 보상을 해줄 차례가 아닐까?

반도체 업계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초과 근로가 필요하다고 하는 주장은 아동 노동이 없으면 자본주의는 망할 것이라던 19세기 자본가의 주장을 연상케 한다. 굳이 노동이 중요하다면 노동자와 경영자 모두의 노동의 양(量)에 앞서 질(質)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굳이 지금 시점이라면 반도체 기업의 수장이 위기 극복에 걸맞은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는 점이다. 세계적 반도체 기업의 모리스 창, 젠슨 황, 샘 올트만, 리사 수 등 모두 성공한 기업인이자 기술을 꿰뚫고 있는 엔지니어다. 이재용과 최태원은 엔지니어인가? 그냥 금수저 일뿐이다. 우리나라 (반도체) 업계와 주식시장의 발전을 막고 있는 자본 세습의 수혜자일 뿐이다. 초과 근로를 주장하기에 앞서 경영 시스템의 투명화가 필요하다. 허수아비가 아닌 자본가를 때려야 한다.

권력도 안 잡았는데 이재명의 급속 우회전에 현기증이 난다

  1. 여당은 지난해 말 삼성전자 등 반도체 기업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국회 산업자원통상위원회 위원장인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이 주도하여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및 혁신성장을 위한 특별법안'(아래 반도체 특별법)을 발의했다(출처)
  2. 그 와중에 이재명 대표가 영입한 홍성국 씨가 또 이런 발언을 했다. “주 52시간제 예외를 소프트웨어 산업 전 분야로 확대해야 한다” 한번 둑이 터지면 계속 둑이 터지는 법
  3. 해당 토론회에서 이재명 대표의 총 노동시간에 대한 발언
  4. 윤석열 대통령의 내란 사태로 온 나라가 혼란에 빠졌던 지난해 12월5일, 삼성전자는 국회를 찾아가 민주당에 법안 통과 필요성을 역설했다.(출처)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이용우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반도체 기업이 2023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고용노동부 특별연장근로 인가를 받은 건수는 총 23건으로 이중 삼성전자가 22건이었다. 경쟁업체인 SK하이닉스는 0건이었는데 오히려 HBM 메모리를 증산하여 미국의 기술기업 엔비디아에 안정적으로 납품하여 역대 최대의 실적을 기록하는 등 경영 성과는 더 뛰어났다. (출처)
  5. “TSMC는 노동 유연성이 경쟁력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단편적인 접근이다. TSMC가 한때 장시간 노동을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은 TSMC도 일과 삶의 조화를 천명한 상태다.”(출처)
  6. 텍사스인스트루먼트 출신의 반도체 전문가인 TSMC의 CEO 모리스창이 CEO 자리에 있으면서 어떻게 성장의 결정적 장면을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이 영상을 참고
  7. “테스트를 계속 잡고 있어야 한다는 말도 사실이 아니다. 한 사람이 16시간 테스트하는 게 아니라 같은 부서에서 3교대로 넘겨받는다. 한국 업체들도, TSMC도 이미 그렇게 24시간 체계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TSMC가 장시간 노동으로 제품(물량)을 따냈다는 건 1년 동안 일부 인원에게 연봉의 2~3배를 주면서 ‘결사대’처럼 만들어 운영한 것이다. TSMC에서도 일·생활 균형 이야기가 나왔고, 지금은 과로가 줄고 처우가 나아졌다.”(출처)
  8. 이 영상을 보면 반도체 회사에 취직하여 43건의 특허를 받은 한 엔지니어가 물질적으로 받은 보상은 다 합쳐도 200만원이 안 된다고 한다

TSMC와 삼성전자는 전기를 얼마나 쓸까?

아침에 흥미로운 기사를 하나 접했다.

닛케이아시아는 22일 논평을 내고 “세계 최대 반도체 제조사인 TSMC가 전력 수급에 갈수록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대안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TSMC는 현재 대만 전체 전력량의 약 10%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2030년 수요 비중은 25%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신산업 발전으로 고성능 반도체 위탁생산 주문이 TSMC 대만 공장에 몰리면서 자연히 필요한 전력 사용량도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TSMC 반도체 공장에 재생에너지 확보 ‘필수적’, 대만 전력망 부담 커져]

TSMC가 아무리 세계적인 대기업이라고는 하나 대만 전체 전력량의 10%를 소비하고 있다니 정말 어마어마한 소비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당기사에는 소비량이 얼마나 되는지는 없어서 다른 기사를 찾아보니 2022년 기준 대만 전체 전력 사용량의 약 2,795억kWh(279TWh) 정도다. 여기에 10%를 곱하면 TSMC가 2022년 소비한 전력량은 27.9TWh 정도 다른 자료에 따르면  2023년 현재 24.7TWh 정도 된다. 그래서 TSMC의 경쟁자라 할 수 있는 삼성전자는 얼마나 전기를 소비하고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어서 찾아보았다.

글로벌 캠페인 ‘RE100 이니셔티브’에 가입한 국내 기업들이 2022년 쓴 전력량이 서울시 전체 전력 사용량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중략] RE100에 가입한 국내 32개 기업은 지난해 56.338테라와트시(TWh) 전력을 썼다. 이는 국내 전체 전력 사용량(547.932TWh)의 10.3% 수준이다. [중략] 특히 삼성전자(21.731TWh)가 국내 사업장을 운영하는 데 부산시(21.493TWh)보다 더 많은 전력이 들어갔다.1 [중략] 2위는 역시 반도체 회사인 SK하이닉스다. 지난해 10.041TWh를 썼는데 이는 대전시 전력 사용량(10.016TWh)보다 많다. [‘RE100 가입’ 32개 기업, 940만 서울시보다 전기 많이 썼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부문을 별도로 분리해야 TSMC와의 정확한 비교가 되지 않을까 싶지만, 어쨌든 이 정도로만 찾아봐서 비교하면 2022년 기준 TSMC는 27.9TWh(또는 24.7TWh), 삼성전자는 21.7TWh를 소비하는 얼추 비슷한 전력소비량을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한편 국내 전체 전력 소비량은 2023년 기준 557TWh로 삼성전자가 전체의 3.9% 정도를 소비하고 있는 셈) 한편 매출은 재밌게도 2023년 기준 TSMC는 693억 달러, 삼성전자는 509.9억 달러로 전력소비량을 비교할 때 비율적으로 비슷한 매출을 올리고 있다.2

TSMC Global R&D Center at night.jpg
By 曾 成訓 – https://www.flickr.com/photos/tsengphotos/53114942112/, CC BY 2.0, Link
TSMC사옥 전경

어쨌든 전체적으로 한국과 대만 모두 반도체가 산업 부문을 넘어서 나라 전체의 전력소비량에서도 그 비중이 압도적임을 알 수 있다. 특히 대만은 국내총생산의 절대적 비중을 의지하고 있는 TSMC인지라 전력소비도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향후 인공지능 반도체 수요 등을 생각할 때 인용한 기사의 논조처럼 대만의 전력계통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인데, 이는 사실 우리도 똑같은 문제에 직면해 있다. 계통, 재생에너지, 탄소중립 등 넘어야 할 산이 하나둘이 아니다. 도끼 자루는 썩는데 정치는 퇴보하고 있다.

  1. 참고삼아 서울시의 전력 소비량을 찾아보니 2022년 기준 48.7TWh 정도 된다
  2. 다만 해당 매출이 대만과 남한 국내에만 해당하는지 글로벌 매출인지 또 따져봐야 하므로 정말 막역한 추측에 불과하다

AI에 관한 영상 하나

요즘 AI에 대해 유튜브 영상을 부지런히 찾아보고 있다. 기술적 지식이 부족한 터라 체계적인 지식을 쌓는 데 어려움이 있지만, 일단 초기 AI처럼 귀납적으로 내 머릿속에 때려 넣고 있다. 여러 많은 영상 중에서도 이 영상이 차분하게 AI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비교적 알기 쉽게 설명해 주는 것 같아 소개한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도 삼성은 조용히 움직이고 있다

전 국민의 눈길이 최순실 씨를 비롯한 국정농단세력의 추한 행태에 쏠려 있는 와중에도 – 이하 박근혜 게이트 -, 그들의 국정농단에 한축을 담당하고 있는 삼성은 – 보다 정확하게는 이재용 씨는 – 꿋꿋이 자신이 가야할 길을 가고 있다. 삼성전자가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포함한 지배구조 재편 작업에 본격 돌입한 것이다. 그동안 삼성은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에 대해 줄곧 부정해 왔는데 이번에 이제 그 전환을 공식화한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일까? 정국의 혼란을 틈타서 조용히 발표하려는 것일까? 중론에 의하면 바로 어영부영 박근혜 게이트 수사를 하고 있는 검찰의 턱 밑에 특검이 와 있는 것처럼 지주회사 체제를 통해 자신의 지분을 강화하려는 이재용 씨의 턱 밑에 이러한 꼼수를 막으려는 각종 법 개정안이 제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상법 개정안, 같은 당의 제윤경 의원의 공정거래법 개정안 등이 있다.

최근 대기업들이 회사의 분할 또는 분할합병 등을 통하여 지주회사와 자회사로 분리하면서 분할하기 전에 자기주식의 비율을 적극적으로 확대한 후 분할·분할합병의 방식으로 자회사를 설립하고, 지주회사는 자기주식을 그대로 보유하여 그 자기주식에 대하여 자회사로부터 주식을 배정받아 현행법에 따른 모회사와 자회사,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따른 지주회사와 자회사의 지분 요건을 확보하고 있음.[상법 일부개정법률안, 2016.7.12.]

자기주식은 흔히 “자사주(自社株)”라고 부르기도 하는 ‘기업에서 발행한 주식을 회삿돈으로 다시 매입하는 주식’을 말한다. 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하는 이유는 흔히 주가에 호재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회사가 자사주를 매입 후 소각하면 시장에 유통되는 주식이 줄어들면서 기존 주주가 보유한 주식 가치가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의결권이 제한되는 자사주의 특성에 따라 적대적 M&A 세력의 의결권을 약화시키는 목적에 쓸 수도 있다.

그런데 한국의 재벌들은 이 자사주를 소위 “오너” 일가의 지배력을 강화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창조경제를 구현하였다. 지난 2011년 정부는 “자사주 매입과 처분의 장점을 활성화”한다는 명목으로 자사주 매입·처분 요건을 완화했다. 그런데 이런 규제완화가 소위 인적분할과1 결합하면 지주회사가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를 활용하여 사업회사의 신주를 배정받아 의결권을 갖게 되고, 이를 통해 “오너”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마술을 부리게 된다.

한진그룹은 지난 2013년 대한항공을 지주회사(한진칼)와 사업회사(대한항공)로 나눴다. 인적분할 방식의 회사 나누기로 한진칼은 대한항공의 자사주 주식 6.75%를 갖게 됐다. 이후 한진칼에 승계된 대한항공 자사주 6.75%는, 그 비율만큼 사업회사로 된 대한항공의 신주 배정 발행을 이끌었다. 이 과정에서 한진그룹 총수 일가는 기존에 보유한 대한항공 대주주지분율 9.87%에 인적분할로 생긴 대한항공 신주 지분(6.75%)를 합쳐 총 지분을 16.62%까지 늘렸다.[재벌 지배력 강화 ‘자사주 꼼수’ 막는法…박용진 의원 발의]

삼성전자는 자사주 비중이 12.18%다. 삼성전자가 인적분할하면 지주회사가 사업회사의 자사주 12.18%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야당 의원들이 발의한 법 개정안들에 따르면 삼성은 ‘회사를 분할할 때 분할회사 자사주에 분할 신주 배정을 금지’(상법 개정안)당하거나 ‘대기업이 지주회사 전환을 위해 회사를 분할하려면 반드시 자사주를 미리 소각‘(공정거래법 개정안)해야 한다. 한진이 하던 절도를 삼성은 못하게 된다.

‘부자 삼성 가난한 한국’의 저자 미쓰하시 다카아키는 그의 저서에서 “한국의 대기업은 국내 시장의 과점화, 대외 직접투자 증가, 국내 투자 축소, 인건비 인하, 원화 약세, 법인세 인하2 등 한국 국민에게 부담을 지우는 갖가지 시책과 전략 속에서 성장률을 높이고 있다”고 단언했다. 그의 발언은 오늘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전자는 정부와 국민의 희생 속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평범한 진리를 재확인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런데 지난번 삼성물산과 제일모직과의 합병에서 불합리한 합병비율로 합병하여 이재용 등 “오너” 일가의 지배력을 강화시켰던 삼성이, 이제는 다시 그 지배력을 활용하여 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의 자사주를 동원하고 이를 통해 지배력을 한층 강화하는 2차 퀀텀점프를 시도하고 있다. 노동자의 희생과, 원화 약세를 위한 국가적 희생과, 차별적인 대우를 통한 자국 소비자의 “호갱화”로 거대기업이 된 삼성전자가 그렇게 이재용의 품에 안기고 있다.

그런데 이것도 “국익”을 위해 도와줘야 하나?

  1. 기업을 분할하는 방식으로 인적분할과 물적분할이 있다. 인적분할은 기존(분할)회사 주주들이 지분율대로 신설 법인의 주식을 나눠 갖는 것이다. 인적분할한 회사들은 법적으로 독립된 회사가 된다. 이와 달리 물적분할은 기존회사가 새로 만들어진 회사의 주식을 소유한다.
  2. 외국의 법인세 실효세율은 어떤가?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지난 18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일본은 22.1%, 영국 25.5%, 미국 22.1%”라면서 “도요타,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과 일본의 저명한 기업은 30%가 넘는 실효세율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와 현대차·SK하이닉스·제일모직 등 시총 상위 10대 기업의 법인세 실효세율은 2013년 21.5%에서 지난해 17.9%로 낮아졌다.(출처)

0.57%의 사나이를 위한 원대한 계획

에버랜드는 한국의 가족경영 재벌이 적은 지분으로도 그룹을 통제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상호순환출자 시스템이기 때문에 중심축이다. 이건희 일가는 삼성그룹의 74개 회사의 1.53% 지분을 가지고 있으면서 49.7%를 통제하고 있다. [중략] 에버랜드는 삼성생명의 지분 19.3%를 보유하고 있는데 삼성생명은 그룹의 주력인 삼성전자의 세 번째 대주주다. [중략] 삼성은 보도된 바로는 재구조 계획에 대한 코멘트를 거부하고 있다. 애널리스트들이 예상하는 시나리오 하나는 지주회사를 구성하기 위한 삼성전자, 삼성물산 건설부문, 그리고 에버랜드의 합병이다.[Samsung Everland IPO Indicates Revamp of Korea’s Largest Chaebol]

삼성에버랜드의 갑작스러운 상장 계획 발표를 다룬 블룸버그 기사 중 일부다. 삼성의 이번 결정에 대한 배경과 향후 예상 시나리오가 잘 요약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다른 재벌도 그렇듯이 삼성 일가역시 흔히 삼성그룹의 “오너(owner)”라고 불리지만 위에서 보듯이 그 호칭에 어울리는 지분을 갖고 있지 않다. “상호순환출자”라는 희한한 제도를 통해 그룹을 통제하고 “오너”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룹 내 삼성 일가가 실질적으로 “오너”라고 불릴만한 자격을 가지고 있는 회사가 있다면 바로 삼성에버랜드다. 25.7%의 지분을 가져 최대 주주인 이재용 씨를 비롯한 이건희 일가가 45.56%를 소유하고 있다. 특수관계인을 포함할 경우 지분은 80.62%까지 높아진다. 에버랜드가 단순한 레저 회사가 아닌 이유다. 이 회사는 상호순환출차의 정점에 서 있는 사실 상의 “지주회사”인 셈이다.

삼성전자의 시장지배력 강화, 중화학 및 건설업종 업황 부진 등에 따라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한 전자부문이 그룹 내 매출 및 자산의 70%를 상회하는 등 그룹수익성 및 현금흐름 측면에서 전자부문의 집중도가 높아지고 있다.[삼성에버랜드 회사채등급 평가보고서 중에서]

바로 이 점이 이건희 일가의 후계구도의 약점이다. 삼성전자의 실질적 지배권을 갖지 못한다면 “삼성그룹”의 지배자라 할 수 없을 텐데 이재용의 삼성전자 지분은 불과 0.57%다. 지난달 2일 국회를 통과한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으로 삼성생명이 전자 지분을 매각해야 할 경우 상황은 더 심각하다. 그래서 언론은 에버랜드와 삼성SDS 상장으로 이재용이 실탄을 마련하려 하는 것이라는 예측이다.

언론은 에버랜드와 삼성SDS 상장으로 가족이 마련할 수 있는 돈은 대략 4조원으로 예측하고 있다. 하지만 웬만큼 실탄을 마련한다 할지라도 그 덩치 큰 삼성전자의 지배력을 구축하는 것은 무리수 일 것이다. 그래서 나오는 이야기가 삼성전자 분할 후 주식교환 등을 통한 합병이다. 장기적으로는 순환출자 구도를 해소하고 금융지주회사와 산업지주회사 체제를 갖추는 방향으로 갈 것이란 예측이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뻔히 보이는 시나리오가 진행되어가는 와중에도 언론에서 지분 0.57%의 주주가 회사를 지배하기 위해 취하는 로드맵에 대한 의아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삼성이라 이름 붙여진 회사들이 일사분란하게 0.57%의 사나이가 권력세습을 위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 정상적인 경제행위라 여기는 것일까?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는 그 자체로 만족하는 것인가?

우리는 지금도 개인이 자기 재산을 자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말하자면 정치 권력에 관해서는 상속 원리를 거부하지만 경제 권력에 관해서는 상속 원리를 수용한다. 정치 분야의 왕조 지배는 사라졌지만, 경제 분야에 이름난 가문은 살아남는다.[버트란트 러셀, 서양철학의 역사 中]

경제 세습을 당연시하는 풍토에 대한 러셀의 의아심이다. 이재용이 상속세만 정당하게 낸다면 – 여태 그렇지 않았던 역사가 있기에 의심스럽지만 – 그는 현행 법 체제 아래 합법적으로 이건희의 경제 권력을 무난히 이어받을 수 있다. 우려스러운 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또는 가질 수 있는 권력 이상의 권력을 또 다시 편법적으로 창출하는 것이다. 이런 의혹을 짚어줄 수 있는 감시자는 누구일까?

2009년에 이명박은 이건희가 1990년대에 그의 아들에게 SDS 전환사채를 고의로 낮은 가격에 팔아서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2009년 법원판결에 사면조치를 내렸다. 한국에서는 순환출자 탓에 주식 가치를 제한하는 것이 가능하다.[Samsung Everland IPO Indicates Revamp of Korea’s Largest Chaebol]

환율방어를 위한 당국의 “실탄”은 누구의 실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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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currency exchange AIGA euro money” by CopyleftOwn work.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30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3.6원 내린 1018.0원으로 거래를 시작했다. 원·달러 환율이 장중 1020원 아래로 떨어진 것은 2008년 8월 8일(1017.5원) 이후 5년9개월 만에 처음이다. 이날 원·달러 환율의 하락은 월말을 맞아 수출업체들이 미 달러화 매도 물량을 대규모로 내놓은 데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미 달러 약세 현상이 나타난데 영향을 받았다. 원·달러 환율은 1020원선이 무너진 뒤 당국의 ‘실탄 개입’ 물량이 나오면서 오전 10시 30분 현재 전날보다 0.3원 하락한 1020.6원을 기록했다.[환율 1020원선 붕괴]

당국의 “실탄”은 어디서 마련될까?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통화안정증권을 통해 조달된다. 아래 기사를 보면 통화안정증권을 “잠재적 국가부채”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한국은행의 부채는 국가부채로 계상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전 글에서도 썼듯이 중앙은행의 부채가 정부와 관련 없는 “독립적인” 부채라 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더구나 한국은행의 경우 자체 적립금으로 적자를 메우지만 이 적립금이 고갈될 경우 한국은행법국가재정법에 따라 정부재정으로 메우게 되어 있다.

‘잠재적 국가부채’로 불리는 한국은행 발행 통화안정증권(이하 통안증권)이 급증, 연간 이자 부담만 6조원에 달하면서 국가재정을 위협하는 악성(惡性)부채가 돼가고 있다. 한은이 통화조절용으로 발행하는 통안증권은 외환위기 이후 외환보유고를 쌓는 과정에서 풀려난 통화 환수와 환율 방어에 동원되면서 발행 잔액이 급증했다. 지난 97년 23조원 수준에서 지난 9월 현재 160조원으로 8년 사이 7배 늘어났다.[‘통화안정증권 160兆’ 韓銀 사상최대 적자]

“통화안정증권”이라 이름 붙여졌지만 당국이 개입하는 것은 통화약세를 위해 개입하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수출기업의 가격경쟁력을 위해서 말이다. 다른 나라는 국채조달을 통해 정부가 개입한다면1 우리는 통안증권을 통해 개입하는 것이 차이점이다. 첫 인용기사를 보자. 월말 변수라고는 하지만 수출업체들이 달러를 매도했을 때는 1020원 언저리에서 매도했을 것이다. 원화 가격이 하락하자, 즉 원화강세가 되자 당국이 “실탄”으로 다시 1020원을 만들어줬다. 수출업체가 달러 대량매도로 인해 지불하는 기회비용은 없다.

한국은행은 작년 말 현재 부채가 448조3천993억원으로, 1년 전보다 13조4천865억원(3.1%)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고 20일 밝혔다. 이는 5년 전인 2008년 말(307조4천445억원)에 견줘서는 무려 45.8%(140조9천548억원)나 증가한 것이다. 같은 기간 대표적인 가계빚 통계인 가계신용은 2008년 723조5천215억원에서 작년 1천21억3천383억원으로 41.2% 늘었다. 결국 한은 부채가 가계 빚보다 가파르게 증가한 셈이다.[한국은행 부채 448조원… 5년전比 46%늘어]

이로 인해 한국은행의 부채는 신용위기 이후 급격히 증가했다. 한은부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163조원(36.4%)이 넘는 통안증권이다. 지난 5년간 유동성 공급을 위한 화폐의 증가율이 가장 높았지만 통안증권 역시 36조원 이상이 증가했다. 내수와 수출 진작을 위한 정책이 병행된 셈이다. 어쨌든 이런 수출기업에게 가장 큰 혜택이 갈 한은의 역할이 계속됨에도 지난 2월 기획재정부가 새로 편재한 공공부문 부채 산정에 통안증권이 빠짐에 따라 한국 특유의 부외금융(off-balance sheet financing)은 계속되고 있다.

국가 대표기업인 삼성전자와 현대기아자동차의 환율흐름과 영업이익률을 비교한 결과 상관관계가 갈수록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략] 현대기아차는 환율이 10원 떨어지면 2000억원 정도 이익이 줄어드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략] 다만 해외 공장에서 생산해 현지에 판매하는 물량이 늘어나면서 환변동에 따른 여파가 과거에 비해서는 줄어드는 추세다.[삼성전자·현대차, ‘원高 영향’ 덜 받는다]

대표 수출업체인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이야기다. 정부가 통안증권이라는, 다른 나라에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수단을 강구해서 이들을 도와주고 있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자구책을 찾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해외 제조기지 건설은 환위험 헤지 등을 위한 당연한 경영전략이랄 수 있다. 하지만 이들 업체가 그런 전략을 구사하기에 앞서 영업을 시작한 이후2 그들을 세계적인 업체로 키우기 위해 정부와 한국은행, 나아가 국민이 들인 노력과 지불하고 앞으로 지불할 비용에 대해서는 얼마나 보상했는지 모르겠다.

  1. 이런 구조라면 당국의 환율방어 개입 여력은 많이 줄어들 것이다
  2. 삼성전자의 탄생배경에 대해서는 이 글을 참고하실 것

헛다리짚는 정부의 내수 진작책

내수가 살지 않고 있다. 2014년 5월에 발표된 최신 「KDI 경제동향」은 보고서의 첫머리에 “최근 우리 경제는 수출의 개선 추세가 지속되고 있으나, 내수회복세가 약화되면서 전반적인 경기회복 속도는 완만한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순화된 표현이어서 그리 심각하게 와 닿지 않지만, 결국 수출은 잘 되는데 내수는 좋지 않은 “동맥경화”형 경제상황이라는 말이다. 전형적인 수출주도형 경제체제인 나라에서 수출이 내수회복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어디론가 돈이 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수출호조의 공신은 단연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다. 이에 따라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의 영업이익이 국내 전체기업의 영업이익 중 차지하는 비중이 2012년 기준 무려 30.4%다. 양극화 정도가 아니라 양두체제다. 사실상 우리나라는 “재벌 체제”라기보다는 “삼성, 현대차 체제”인 셈이다. 이런 양두체제의 약점은 명확하다. 첫째, 두 회사가 어려워질 경우 경제 전체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둘째, 두 회사의 막대한 이익은 내부에서 우선 소화될 것이기에 사회 전체로 퍼지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셋째, 경제통계에 착시현상을 가져올 수 있다.

첫 번째 이슈는 별도로 다룰 이슈이고 둘째와 셋째 이슈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할 것이다. “삼성그룹”, “현대차그룹”이라 명명하고 이건희 씨나 정몽구 씨가 “오너”로 불리지만, 이들 그룹의 중추인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주주들은 별도로 있고 이들이 영업이익의 가장 많은 부분을 챙기는 당사자이다. 비록 이들이 다른 글로벌 기업에 비해 배당성향이 낮다는 평이 있지만 여전히 유보금도 주주의 몫이다. 더불어 회사의 노동자들과 협력기업도 혜택을 누릴 것이다. 여기서 주안점은 어디서 수출과 내수의 고리가 끊어지는가 하는 점이다.

삼성전자의 현대자동차의 외국인 지분은 지난해 4월 현재 각각 49.2%와 43.8%다. 과연 “한국기업”이란 타이틀이 맞나 하는 의심을 해볼만한 수치다. 더불어 포스코나 국민은행을 포함한 주요은행들도 이미 외국인 지분이 반이 넘는다. 세계경제가 국제화된 마당에 국적성을 굳이 따질 필요는 없겠지만 요는 이런 주주구성이 수출과 내수가 부교합인 이유를 판단하는데 한 단초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거칠게 말해서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그리고 나머지 주요기업들의 이익은 GDP에는 계산이 될지라도 결국 외국인 주주에게 갈 몫이라는 것이다.

얼마 전 한국금융연구원은 「“임금(賃金)없는 성장”의 국제비교」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보고서는 의외의 강한 톤으로 우리나라의 지난 5년간 실질노동생산은 상승하였음에도 실질임금은 하락하였으며 이는 국제적으로도 가장 열악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 두 번의 5년간 동안 실질노동생산성 증가와 실질임금 증가가 어느 정도 궤를 같이 했었음에도 최근 5년간은 정반대라는 점에서는 명백히 충격적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실질노동생산성은 9.8% 증가한 반면, 실질임금은 2.3% 감소하였다. 말 그대로 “임금 없는 성장” 인 셈이다.

한편, 이 보고서의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앞서 말한 양두체제의 착시현상이 보고서에도 반영된 것이란 생각이 든다. 보고서의 주요수치인 실질노동생산성은 실질GDP를 전체 노동자수로 나눈 값이다.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의 매출을 GDP로 나눈 값은 2012년 기준 35%다. 두 그룹의 해외매출 비중으로 인한 착시현상을 감안하더라도 압도적인 수치다. 반면 법인세 비중은 21%다. 이 차이는 영업장의 위치, 각종 공제항목 등을 감안하여 판단하여야 할 수치인 동시에 그들의 매출이 내수에 기여하는 정도도 보여주는 수치라 할 수 있다.

요컨대 우리나라의 최근 5년간의 GDP 성장은 삼성과 현대차의 양두체제가 견인하고 있지만 주주구성, 해외매출, 세제혜택 등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내수에 미치는 영향을 상대적으로 적다는 가설을 제기할 수 있다. 기업의 양극화, 실질임금의 하락 등은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까? 내수에 악영향을 미친다. 최근 KT, 생명보험사 등 대표적인 내수기업들은 대규모 인력감축을 발표했다. 1 경영악화를 빌미로 한 노동탄압의 정황도 분명하지만 한편으로 내수업종의 미래가 불투명한 것 역시 사실이다. 수출이 내수로 연결되지 않는 악순환 고리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내수 진작책은 어떠해야 할까? 기본적으로 경제의 양두체제를 해소하여야 한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잘 나서 그런 걸 왜 뺐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지만 이미 국적성 없는 기업이지만 실은 국적성을 내세우며 국가의 도움을 – 그리고 국내의 호갱님들 – 받아서 큰 기업이다. 대표적으로 정부의 환율조정과 앞서 보았던 세제혜택이다. 또한 권위주의 정부 시절의 인허가 특혜도 크게 한몫 했다. 이들 기업으로부터 정당하게 세금을 회수해서 그 돈으로 복지 등 내수를 직접 촉진시킬 수 있는 곳에 재정을 지출해야 한다.

또한 내수를 떠받드는 소비자, 즉 노동자의 노동여건 개선에 주력해야 한다. 노동여건이 개선되지 않은 상태에서 가계는 우선 소비를 하지 않는다. 그 다음으로 필수소비를 위해 빚을 진다. 최근 5년간 제2금융권 가계대출이 급증했다. 부채의 절대치뿐 아니라 질적 수준도 악화되고 있다는 의미다. 해결책은 임금을 높여 빚을 갚고 소비를 하게 해주는 것이다. 개별 자본에겐 어렵지만 총자본의 차원에서 이익인 선순환 고리다. 정치적 액션의 의도가 강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최저임금 인상에 주력하고 있다. 우리 대통령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애꿎은 한국은행보고 돈을 풀라고 하고 있다.

  1. 이들이 퇴직을 하면 무엇을 할까? 이미 레드오션이 된 치킨집을 할 것이다. 내수의 악순환.

삼성전자의 탄생배경과 그 절묘한 타이밍

“한국 재벌의 공통점은 소비재 산업에 기반을 두고 있다. 따라서 중화학 공업에 어떻게 적응해 나가느냐가 큰 과제이다. 전자 공업은 앞으로의 성장 분야다. 지금 미국이 최첨단을 가고 있지만 삼성도 여기에 나서고 싶다.”[재벌들의 전자전쟁, 오효진, 나남, 1984, p20에서 재인용]

1968년 여름 삼성그룹의 이병철 회장이 일본의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요즘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삼성전자와 애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으니 그리 감회가 깊지 않을지 몰라도, 한국경제가 아직도 여명기에 불과했던 당시에 이 인터뷰를 접한 사람들이라면 ‘미국과 겨루겠다니 무모하군.’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이 신문의 독자는 일본인들이었을 테니 더욱이 이 회장의 포부가 같잖았을지도 모르겠다.

한편 이 회장의 발언에는 한 가지 사실과 약간 다른 발언이 있다. 바로 “한국 재벌의 공통점은 소비재 산업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발언이다. 물론 그 당시 대부분의 재벌이 소비재 산업에 치중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소비재 산업과 대비되는 투자재 산업을 추구하는 재벌도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아직 내구소비재 산업의 비중이 컸지만 어쨌든 전자회사를 10년째 운영하고 있던 골드스타(오늘날의 LG전자)가 있었던 것이다.

당시 “락희(樂喜)”라는 사명을 쓰고 있던 LG의 창업주 구인회 회장은 이병철 회장과 초등학교 동창이자 사돈 간이었다. 구회장은 1950년대에 플라스틱 공장을 차려 많은 돈을 벌었다. 이런 창업배경이 있기에 삼성보다 먼저 전자공업에 진출하였고, 국산품 애용 운동 등과 맞물려 사업이 번창하였다. 그런 분야에 삼성이 뛰어든 것이니 금성 측에서는 화가 날 수밖에 없었고, 이후부터 여태까지 두 회사는 숙명의 라이벌로 남아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병철 회장이 전자공업으로의 진출을 선언하는 시점이다.

삼성 그룹은 이 회장의 선언이 있은 뒤 1년 만에 일본 삼양전기(三洋電氣)와 합작사업으로 인가신청서를 경제기획원에 제출했다. 그리고 그 6일 뒤인 69년 6월 19일, 정부는 그 동안 마련해온 전자공업진흥 8개년 계획을 확정해서 발표한다. 이 기본계획의 골자는 ① 수출 경쟁력 강화를 위한 시책을 도모하고 ② 직접 또는 합작 투자를 유치하며 ③ 외자도입을 지원하고 ④ 76년에는 총 수출목표 30억 달러 가운데 전자제품 수출을 4억 달러로 끌어올린다는 것이었다.[앞의 책, p20]

일본에서 이 회장이 삼성의 전자공업에로의 진출을 선언하자마자, 한국 정부가 “외자도입 지원” 등의 특혜조치가 담긴 계획을 발표하다니 참 신기한 일이다. 어쨌든 이후에도 이 회장의 언론 플레이는 계속 되는데 6월 26일 중앙일보에 <전자공업의 오늘과 내일>이란 글을 낸다. 이 글에서 이 회장은 “수출목표에 대응한 전자제품의 내수수준 향상을 위해서 정부와 업자는 통합된 노력을 계속 집중시켜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정부가 특정한 산업의 육성계획을 발표한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당시 국가가 가진 권력은 – 남북한 공히 – 대단한 것이었다. 박정희가 통치하는 국가는 “대한민국 주식회사”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이 국가의 영도 하에 움직이는 상황이었다. 특히나 요소투입 주도성장 모델을 채택하고 있던 당시로서는 산업육성계획은 예산지원 및 외자도입 등의 특혜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옆자리에 배석하고 있던 김학렬 부총리에게 “부총리, 해낼 수 있소?”하고 물었다. 김 부총리는 “예, 상공부 안대로 조치하겠습니다.”라고 명쾌한 답을 했다. 박 대통령은 “그럼, 상공부 안대로 추진하시오.”라고 결정을 내렸다. 전자공업 육성방안은(1969~1976) 8년 간에 걸치는 장기계획인데, 여기에 소요되는 8년간의 사업추진 자금(140억 원, 즉 약 5,000만 달러)이 일시에 확보된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의 국고 사정은 미약해서, 예산 얻기란 아주 힘든 일이었다. [중략] 그러나 대통령 재가만 얻으면, 사업이 완성될 때까지의 예산이 확보되는 것이다.[박정희는 어떻게 경제강국 만들었나, 오원철 지음, 동서문화사, 2006, p21]

“대통령 재가만 얻으면, 사업이 완성될 때까지의 예산이 확보되는” 고도로 집중화된 의사결정 시스템은 상당히 모험주의적인 시스템임이 분명하다. 어쨌든 오늘날에는 그런 모델이 그나마 유효했던 것으로 인정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또 하나 궁금한 점은 어떻게 삼성이란 회사가 절묘하게 그런 시스템이 내린 결정과 때를 같이 하여 사업방향을 정했는가 하는 점이다. 정보의 공유와 요즘 같지 않았을 때인데 말이다.

삼성은 1970년 1월 20일 전자회사를 설립한다.1 당시 락희 계열의 한 신문은 “삼성/삼양 간의 합작을 인가한다면 매판 자본을 키워 주자는 말”이라고 비판한다. 재벌의 대변지에서 “매판자본”이란 말을 접하니 신선하지만, 정황으로 보건데 삼성의 전자공업 진출은 기정사실이었다. 그리고 이후의 역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다. 이 회장의 바람대로 “정부와 업자의 통합된 노력이 집중”되어 전자공업은 발전하게 된 것이다.

궁금한 점은 과연 정권과 삼성 간에 얼마만큼의 사전교감이 있었나 하는 점이다.

  1. 회사 홈페이지에는 1969년 1월 “삼성전자 공업 주식회사를 설립”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앞의 두 책의 내용으로 보건데 1970년이 정식으로 회사를 설립한 해로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