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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보험 논쟁에서 간과되고 있는 것, 돈 문제

난데없이 ‘의료보험’이 블로고스피어에서 화제로 떠올랐다. 문제의 발단은 몇몇 블로거들이 이명박 당선자가 의료보험을 민영화 – 내지는 당연지정제를 폐지 – 할 것이라고 이슈를 제기한 것에서 비롯된 것 같다. 이어 미국의 의료보험 체계를 비판한 마이클무어 감독의 Sicko가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디스토피아로 제시되면서 논쟁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그 논쟁의 하이라이트는 고수민님과 이카루스님의 글이 아닌가 싶다.(고수민님에 대한 반론 하나) 두 분 모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블로거 분들이라서 꽤 꼼꼼히 읽어보았다. 논점은 약간씩 틀리지만 실제 미국에서 거주하시는 블로거로서 현재 시점의 미국의료 체계에 대한 소상한 정보를 들려주셔서 적지 않게 도움이 되었다.

필자는 두 명의 외국인 친구가 있다. 한 명은 캐나다인 한 명은 미국인이다. 몇 달 전 셋이서 술집에서 소주 한잔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바로 그 Sicko와 미국의 의료체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미국인 친구는 평소에도 캐나다인 친구를 Socialist라고 빈정거려 온 터라 그날도 주로 미국의 의료체계를 변호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나와 캐나다인의 양면공격에 – 특히 캐나다 친구는 정치문제에 꽤 열정적이고 타협하지 않는 타입이다 – 결국 자국의 의료체계의 문제점을 시인하는 선에서 이야기를 마쳤다. 실제로 캐나다의 그것에 비해 열등한 것도 사실인데다 미국인 친구가 철저한 반공주의 내지는 보수주의로 무장한 그런 스타일이 아닌 열린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여하튼 그날의 해프닝은 미국인이 바라보는 미국 의료체계의 단편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날의 느낌은 사회가 개인의 복지를 어느 정도 책임져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하면서도 천성적으로 자유주의적 입장이 강하여 – 경제적인 면에서도 – 먹고 사는 문제에 있어서도 개인적으로 능력이 된다면 능력 되는대로 살겠다는 미국인의 낙천적 기질이 엿보이는 그런 것이었다.

어쨌든 좋다. 요컨대 미국은 간단한 수술에도 수천 달러를 지불해야 하고 보험료도 비싸며 그나마도 보험 미가입자가 수천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그에 비해 유럽이나 캐나다, 심지어 쿠바는 무상의료 정신을 구현하며 병자들이 치료비 걱정 없이 병원을 다닌다고 한다. 그렇다면 답은 뻔하지 않은가. 대한민국이 가야할 방향은 미국의 반대방향이다.

상황종료?

그렇지 않은 것이 문제다. 왜 ‘의료보험 민영화’라는 말이 회자되는지부터 짚어봐야 한다. 이는 역시 서구에서 케인즈 주의적 국가관리 체계가 무너지기 시작하는 1970~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당시 영국 쌔처 정부나 닉슨 정부는 정부의 공적부조를 비효율의 본산지, 정부재정의 기생충으로 공격하면서 공공서비스를 민영화하기 시작하였다. 영국에서는 강력한 저항으로 여전히 ‘국민건강서비스(NHS, National Healthcare Service)’가 존재하고 있지만 쌔처의 민영화 드라이브 기조는 여전히 이어져 NHS도 꾸준히 민영화되고 있는 추세다.(관련 기사)

그렇다면 진짜 재원이 부족한 것인가 아니면 정부가 거짓말을 하는 것인가.

나는 정말 재원이 없다는 주장에 일정부분 동의한다. 왜 없냐면 이유는 다양하다. 세율 자체가 낮아서 일수도 있고, 자영업자나 고소득층의 탈세 때문 일수도 있고, 친기업적인 조세정책으로 세수가 줄어서 일수도 있고, 복지예산을 삭감하여 국방비 등 – 특히 미국 같은 경우 ‘국토안보(Homeland Security)’ 소요비용 등 – 다른 곳에 전용하여서 일수도 있고, 보수주의자들의 사회공공성에 대한 공격에 따른 예산삭감 때문일 수도 있고, 노령인구가 늘고 노동인구가 줄어드는 인구구조의 변화 때문 일수도 있다. 사실 언급한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결국 아무리 의료체계가 멋지게 짜여 있어서 이를 통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값싸게 제공받을 수 있게끔 멍석이 깔렸다고 하더라도 돈이 없으면 말짱 황이다. 특히 자본주의 국가의 의사들이 사회주의 조국의 명을 받아 우간다고 어디고 인류애 정신에 입각하여 봉사하는 쿠바의 의사들 같지 않은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돈이 없으면 세상이 굴러가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영화 Sicko에서 내가 불만스러운 점이 바로 이 점이다. 마이클무어는 특유의 그 ‘들이대는’ 스타일로 영화를 찍은 탓에 영국, 캐나다, 쿠바의 환상적인(?!) 의료 서비스 현장만을 소개했지 그 멋진 서비스들이 어떠한 문제점이 있는지, 어떻게 보수층으로부터 공격을 받는지, 그래서 어떠한 위기에 처해있는지, 그 위기를 어떻게 해결하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말이 없다.

앞서도 말했지만 공공의료의 전형으로 여겨지는 영국의 NHS도 민영화의 공격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역시 거시적으로 자유화, 세계화에 따라 자본의 수익은 증가하는 반면 세금으로 그것들이 걷히지 않고 있어 이것이 공공서비스 재원의 고갈에 한 몫 하는 것이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자본은 이러한 상황에서 오히려 재원고갈이 공공서비스의 비효율을 증명한다면서 민영화를 주장하는 형국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더군다나 타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국방예산, SOC 예산 등으로 말미암아 복지예산 비중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는 의료뿐 아니라 허다한 공공서비스가 경제규모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제공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사실 이명박 당선자가 저지른 잘못도 아니고 노무현 정부가 저지른 잘못도 아니다. 성장 위주의 개발독재의 잔재라 할 수 있고 신자유주의 시대에 접어들어 참여정부 등이 이제 공공서비스 민영화를 통한 구조해체의 길을 터준 것뿐이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이명박 후보가 당선된 이후 의료보험 민영화를 이명박 호의 디스토피아로 제시하는 것은 일종의 공갈이다. 정동영이 당선되었다 해서 모자라는 공공서비스 재원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그가 의료보험 체계를 캐나다 수준으로 높일 의지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정동영 밑에 있던 유시민 씨가 연기금 개혁(?)의 총대를 매려고 했음은 잘 아는 사실이지 않은가. 또한 한-EU FTA에서 약값 폭등을 불러올 협상을 진행시키고 있는 주체도 바로 현 정부다.(관련글) 재원이 확보되지 않은 공공서비스는 끊임없이 자본과 정치권의 공격을 받을 것이다.

대안은 많지는 않지만 굳이 제시를 하자면 의료체계를 비롯한 사회공공성에 대한 예산확보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도리밖에 없다. 그러자면 그러한 정책을 내건 정치적 집단을 조직하여야 하는 것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한반도 평화체제 전환이 해결책이 될 것이다. 이를 통해 불필요하게 지출되는 그 엄청난 분단유지비용을 사회건전성을 회복하기 위한 비용으로 전환하여야 한다. 평화체제는 단순히 이산가족 상봉이나 민족적 자긍심의 고취 등의 효과만 있는 것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한반도가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인 것이다.

사족 : 글쓰기의 미숙함때문에 마지막 문단에 대한 여러분들의 오해가 있었기에 그 중 대표적으로 조나단95님이 제기한 반론에 대한 댓글을 주석으로 달도록 한다

정치적 집단이라 함은 정당뿐만 아니라 말그대로 정치적 의지를 가진 사회제반 모든 집단을 아울러야 겠죠. 이들이 총선에서 신당 등에게 관련분야에 대해 조직적으로 저항하여줄 것을 요구하고 관철해내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신당이 야당이 되었으니 더욱 쉽지 않을까요?

평화체제는… 이 문제는 따로 책한권이 나와도 다 의견이 틀릴 복잡하고 다소는 주관적인 문제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혹자는 남북이 평화체제가 되어도 주변국때문에라도 절대 국방비 안줄어든다고 하는데…

하여튼 국방비에서부터 징병제에 따른 노동력손실, 주한미군 주둔에 대한 한국의 분담분, 이라크 파병, 뭐.. 기타 모든 기회비용은 해방 이후 지속적으로 우리나라의 발전에 발목을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반공주의를 통한 사회적 요구에 대한 폭력적 탄압까지도 말이죠.

요컨대 저는 (그냥 제 개똥철학인지 몰라도) 남북문제 해결없는 사회평등은 다소는 불완전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라 건강보험 이야기하다가 뜬금없이 그 이야기가 튀어나온 것 같습니다. 🙂

좋은 말상대를 만나서 반갑고요. 앞으로도 더 좋은 글 기대합니다.

http://diegeschichte.tistory.com/entry/건강보험-재정에-관한-원인과-해결방안에서-난독증을-불러일으키는-글#comment206964

 

독백, 왜 제2의 김용철은 쉽지 않을까?

최근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비리에 대한 폭로선언 시리즈를 보고 있자니 문득 영화 한편이 떠오른다. 테일러핵포드가 감독하고 알파치노, 키아누리브츠가 주연한 “The Devil’s Advocate(악마의 변호사)”가 바로 그 영화다. 실력 있는 변호사인 키아누리브츠가 파격적인 대우를 받으며 한 기업을 위해 충성하는데 그 기업의 우두머리인 알파치노는 사실 악마였다는 초현실주의적인 영화였다.

알파치노가 ‘진짜’ 악마였다는 사실 때문에 초현실주의적이긴 하지만 그것을 비유로 생각한다면 어쩌면 가장 사실주의적일 수도 있지 않을까? 현재 삼성의 우두머리로 계신 그 분을 영화에서의 ‘악마’ 알파치노에 비유한다면 김용철 변호사는 영락없이 키아누리브츠다. 영화 말미에서 결국 키아누리브츠가 악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듯이 김용철 변호사도 그런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사실 어쩌면 ‘악마’는 알파치노나 삼성의 어르신처럼 눈으로 볼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것은 우리 서로를 엮고 있는 강한 그물일 수도 있다. 물욕(物慾)에서 비롯된 이윤동기, 이를 위한 무한경쟁, 종내는 서로가 서로를 갉아먹고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는 먹이사슬,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자신에게 떨어지는 떡고물에 대한 유혹 들이 우리가 우두머리의 가시권에 있지 않아도 스스로를 비양심의 투전판에 끼게 하는 진정한 ‘악마’일지도 모른다.

헐리웃의 반골 마이클무어의 최신작 Sicko를 보면 의료보험 기업의 이익을 대변해오던 한 여의사의 양심고백 에피소드를 볼 수 있다. 그는 오랫동안 이 기업의 임원으로 있으면서 환자를 치료하여야 할 의사의 본분을 내팽개치고 보험료 청구를 거부할만한 합당한 논리를 개발하는데 자신의 능력을 활용하였다. 이를 통해 그는 상상을 초월한 급료를 받았다. 누군가의 치료비로 썼어야 할 돈이었다. 그 역시 ‘악마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가 마침내 탈출에 성공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토록 용기 있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그 이유는 첫째, 그러한 행위가 여태껏 자기가 누리던 기득권의 포기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어느 부자가 가난한 사람에게 함께 기득권을 포기하자고 했다고 한다. 가난한 이는 부자에게 너는 포기할 기득권이 많으니까 쉽게 포기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나는 어렵다고 이야기했다 한다. 그러니 떡고물이 큰 이들은 두말할 것도 없고 사회 구성원 다수를 점하고 있는 서민들은 어쩌면 포기할 기득권이 없어서 그나마 있는 알량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현실과 타협하고 사는지도 모른다.

둘째, 또 내부자고발에 따른 배신자라는 자괴감도 무시할 수 없다. 이는 어쩌면 눈에 보이는 알파치노와 같은 악마보다도 더 무서운 존재인데 악마를 물리치는 과정에서 그간 같이 일해오던 동료들을 배신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똑같이 기득권 없기는 마찬가지이던 동료들이 유탄에 쓰러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 고발자를 괴롭힐 것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내부고발을 했던 한 공공기관 직원에 대한 동료들의 집단 괴롭힘은 한때 화젯거리가 되기도 했었다.

마지막으로 고발의 용기를 꺾는 원인은 그럼에도 세상이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공포감이다. 김용철 변호사가 폭로를 했으니 삼성은 문을 닫게 될까? 삼성을 조각내서 사회화시키자는 데 국민들 중 몇 명이나 동의할까? 김용철 변호사가 이번 고백을 통해 사회에서 그의 용기 있는 행동을 칭송을 받으며 홀가분하게 여생을 보낼 수 있을까? 삼성은 여전히 건재할 것이고 김 변호사는 남은 인생을 죄인처럼 살아갈 개연성이 큰 것이 현실이다. 더 큰 물결과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반향이 아니고서는 이미 견고하게 구축된 ‘악마의 제국’이 무너질 리 만무하다. 앞서 예를 들었던 여의사의 양심고백도 큰 반향없이 스러져 가고 여전히 의료보험 기업은 건재하다.

누구나 조직에 속해 있고 조직의 논리를 익히고 살아간다. 심지어 세상을 등지고 사시는 노숙자분들마저 자체적으로 조직이 형성된다. 그것이 ‘사회적’ 본능을 타고난 인간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 조직논리와 자신이 생각하는, 그리고 인류가 동의해온 보편타당의 논리가 배치될 때 우리는 갈등하고 번민한다. 그러나 그것이 한 사회의 견고한 미시권력을 전복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어쨌든 개개인 스스로는 이 미시권력에 저항할 수 있는 자기반성과 또 다른 조직화, 공론화(어쩌면 블로깅? 어쩌면 정치활동?)를 시도하는 이외에는 뾰족한 방도가 없는 것도 안타까운 점이다.

Sicko(2007)

미국영화계에서 가장 급진적인 영화감독 중 하나인 Michael Moore 의 최신작. 전작에서 미국의 총기소유의 자유에 대해 비판을 가했던 Michael 이 이번에는 미국의 의료시스템에 메스를 가했다. 가장 부유한 나라이면서도 열악하고 냉혹한 의료시스템을 갖춘 모순을 지닌 이 나라에 도대체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Michael 은 현재까지도 오천만 명 이상의 미국인이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나머지 미국인마저 의료보험 사기업의 냉혹한 치료거부로 인해 제때에 치료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라고 일갈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후진적인 의료시스템의 주범은 바로 이익추구 극대화를 목표로 하는 의료보험 사기업과 이들에게 매수당한 닉슨을 비롯한 수많은 정치인임을 밝히고 있다.

한편 그는 캐나다, 영국, 프랑스, 심지어 쿠바의 의료시스템을 돌아보면서 이들 나라에서 자국민들에게 제공하는 무상의료 시스템을 소개하고 있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자유’라는 미명 하에 ‘사회주의적 정책’이라는 매카시즘의 칼날을 들이대며 짓밟고 있는 나라에서 진정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은 의료보험 사기업과 이들의 뒷돈을 받고 있는 정치인들뿐임을 잘 말해주는 작품이다.

예의 MTV 적인 편집을 통해 심각한 주제에도 웃음을 짓게 하는 여유를 잊지 않고 있다. 다만 의료현실의 대비에 지나치게 치중한 나머지 무상의료를 제공하는 나라들의 재원마련 등 시스템의 해부 등에는 소홀한 측면이 있다.

* 기왕에 의료를 소재로 영화도 찍었으니만큼 Michael Moore 본인의 건강도 생각하여 살을 좀 뺏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 한편 그는 영화후반부 관타나모를 간다는 핑계로 (매우 의도적이게도) 쿠바에 미국인 환자들을 데리고 가서 쿠바의 병원 서비스를 받는다. 최근 미재무부는 그의 쿠바 방문이 미국인의 공산주의 국가 방문을 금지하고 있는 규정을 위반하였다고 보고 (매우 속보이게도) 그를 소환조사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럼 미국인은 중국도 못 가나?

*** 얼마전 미국의 리뷰 사이트 zmag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힐러리클링턴, 오바마를 포함한 민주당의 대선주자들은 어느 하나 의료개혁 프로그램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