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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I의 고도성장을 위한 제언, 합리성과 형평성 결여

삼성경제연구소의 최신 보고서 ‘한국경제의 고도성장은 가능한가?’의 목적은 분명해 보인다. 국내 기업들의 대변자로서 새로이 들어서는 정부에 목소리를 분명히 내겠다는 것이다.

보고서의 내용을 요약해보자면

한국경제의 적정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6%로 예상되며 이러한 고성장 기조 구축을 위해 내수기반 확충이 급선무다. 이를 위해서는 투자활성화와 소비증대라는 두 가지 목표달성을 통해 접근할 수 있다. 각각의 목표달성은 전자가 ‘법인세 인하’와 ‘규제완화’, 후자가 ‘국민부담의 경감’과 ‘자산시장의 안정화’에 의해 촉진된다.

법인세 인하와 규제완화는 이 보고서 아니라도 이미 재계에서 오랜 기간 줄기차게 요구해오던 사안이다.

법인세 인하

보고서는 우선 법인세 인하가 투자활성화와 상당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시뮬레이션 등을 통하여 역설하고 있다. 윤종훈 회계사는 OECD의 보고서에서 같은 법인세 인하가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이 극히 작음이 입증되었다고 반증하였다(SERI 보고서에 대한 반박은 아니지만).

여하튼 보수색채를 분명히 하고 있는 새 정부의 인수위는 이미 이러한 요구사항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것이 분명하다. 다만 그들도 인정하듯이 법인세 인하가 투자설비 증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실제로 상당한 기간이 소요된다는 사실이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기업이 법인세 절감분을 투자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는 점이다. 우선 국내 시장여건이 신규투자를 자극할 만큼 긍정적일 것, 주주들이 신규투자를 허용할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두 가지 전제조건 모두 녹록치 않은 상황임을 잘 알 수 있다. 특히 펀드자본주의, 주주자본주의의 득세는 신규투자 축소를 통한 주주이익 극대화 경향을 가속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보고서의 시뮬레이션이 이를 적절히 반영하여 투자효과를 분석하였는지 궁금하다.

규제완화

규제완화 요구사항은 산업자본의 금융지배 방지, 상호출자 규제, 출자총액 규제, 영리의료법인의 진입제한(주1), 공공서비스의 독점구조, 총량규제 등 수도권 입지규제, 부동산 가격 상을 억제하기 위한 각종 규제 등을 총망라하고 있다.

보고서는 이 사안 역시 시뮬레이션을 통해 규제강도가 낮을수록 설비투자는 증가하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 상관관계는 굳이 어려운 식으로 분석하지 않아도 당연하고 당연한 이야기다. 진입규제가 적으면 투자는 증가한다. 금산분리를 철폐하면 산업자본이 금융업에 투자할 것이고 영리의료법인 진입규제를 철폐하면 영리의료법인이 들어설 것이다. 요는 그것이 국민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것이다. 규제가 많다는 것과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은 별도의 문제다. 보고서는 이러한 ‘필요한’ 규제와 ‘나쁜’ 규제를 구분하지 않고 규제의 양(量)을 문제 삼아 물타기를 하고 있다.

국민부담 경감

보고서 8쪽에 보면

한국경제의 高고장 기조 구축을 위해서는 내수기반 확충이 급선무이며, 내수기반 확충은 대외부문의 불안정성에 대한 완충(buffering) 역할을 하고 ‘투자 → 고용 → 소득 → 소비’로 이어지는 善순환 고리를 복원

이라고 하고 있다. 이에 앞서 보고서가 투자활성화의 제언을 하였으면 그 투자활성화가 어떻게 고용, 소득, 소비로 흘러가는가 하는 ‘흐름’을 짚어주고 그에 대한 제언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보고서는 난데없이 세금과 사회보장기여금(주2), 그리고 사교육비 부담이 너무 커서 소비여력이 소진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보고서는 투자활성화를 통한 안정적 고용창출, 소득증가, 이에 따른 소비증대라는 가처분소득의 증가방안 제시라는 편한 길을 포기하고 난데없이 국가의 세부담 증대(주3) 와 사교육비 부담이라는 한정된 가처분소득에서의 가계비용 증가라는 어려운 길을 가고 있다.

이유는 뭐 간단해 보인다. 현재의 소비침체의 주범으로 기업이 아니라 조세 및 준조세 부담의 주범이자 공교육 파괴의 주범인 국가를 지목하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국가에 별로 면죄부를 발행해주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기업이 이렇게 미꾸라지 빠져나가듯 빠져나가는 꼴도 보기 편한 것은 아니다.

보고서가 정말 한국경제를 걱정한다면 보고서는 현재의 ‘고용 없는 성장’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하는 해법을 제시해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즉 보고서가 제시한 선순환 고리를 방해하고 있는 globalization(특히 금융자유화로 인한 금융시장 동조화, 펀드자본주의 득세, 주주자본주의의 강화 등), 비정규직 증가 등 고용의 질 저하, 자본집약적 산업 강세로 인한 고용효과 감소 등의 문제를 지적해주어야 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다.

이미 최근 한 막가파(?) 외국 지도자가 이러한 상관관계를 감지하고 좋은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기업이윤의 1/3이 각각 주주, 종업원, 그리고 투자에 쓰이는 체제는 일관되고 논리적인 체제이다. 이윤분배가 구매력과 상관없다는 발언, (또는) 임금분배를 위해 내가 제안했던 것만큼이나 근본적인 혁명(적 조치 : 역자주)이 구매력과 상관이 없다는 발언은 사람들을 바보 취급하는 것이다. 나는 소비력에 관한 이 문제를 (종업원)의 참여와 이윤분배에 대한 일종의 혁명으로 제안하고자 한다.[프랑스의 좌파 우파 대통령 사르코지]

일례로 고용의 안정이 어떻게 소비를 증가시키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최근 한 신문보도를 통해 너무나 잘 알 수 있다.

지난해 일부 은행들이 비정규직 직원을 대거 정규직으로 전환시키자, 해당 여직원들 사이에 ‘출산 붐’이 일고 있다.(원문보기)

정규직 전환으로 인한 각종 복지혜택의 증가와 더불어 정규직이라는 안정적 일자리가 출산이라는 가계차원에서는 엄청난 소비(?)를 촉진시키고 있는 것이다. 즉 현재의 저출산 경향이 고용불안과 직접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자산시장의 안정화’는 더 난데없는 것이어서 논의를 생략하기로 한다.

씁쓸한 마음과 함께

삼성경제연구소가 재계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은 부질없는 생각임은 분명하지만 최소한 학자적 양심(?)에 의해 투자와 소비의 상관관계, 그리고 기업의 책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짚어줬어야 하지 않은 생각을 하면서 보고서를 읽었다.

보고서를 보면 오로지 현재의 저성장(?)의 책임은 국가다. 국가는 과도한 세금을 기업과 가계에 지우고 규제를 통해 신규투자를 막고 있는, 그럼으로써 투자와 소비 모두를 동맥경화에 빠지게 한 불한당인 것이다.

이제 이명박 정부가 역사상 가장 작은 정부가 되겠다고 자처하였으니 보고서가 바라던 세상이 곧 올 것 같다. 그 거대한 실험이 종료되는 순간 보고서 작성자는 냉철히 자신이 주장하였던 바가 고도성장에, 그리고 보고서는 일언반구 없지만 그 고도성장이 어떻게 고르게 계층과 계급 간에 분배되었는지를 점검해주기 바란다.

(주1) 보고서는 이 규제 때문에 우리나라 의사수가 OECD 평균의 절반수준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주2) 의료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 국민연금 보험료, 공무원연금 보험료 등

(주3) 보고서는 사회보장기여금을 준조세라고 치부함으로써 그것의 사회보장과 사회형평성 기능 등을 깡그리 부정하고 있다

지분형 아파트 실효성 적다

모처럼 인수위원회에서 서민들을 위한 대책을 내놓았다. 이른바 ‘반값 아파트’, 혹은 ‘반의 반값 아파트’라 불리는 “지분형 아파트” 제도다. 이는 새로이 공급되는 아파트에 대해 51%는 수요자가 부담하고 49%는 투자자가 부담하여 수요자의 부담을 반으로 줄인다는 것이다. 또한 수요자의 부담 중에 반절은 정부가 융자해준다니 “반의 반값”이라는 셈법이다.

공급가격 절감에 관해서만큼은 이론적으로 이전의 저가형 주택공급 제도보다 더 진일보한 것으로 보인다. 일단 기존의 제도들이 그 포장지에 비해 그 내용물이 초라하여 실효성도 떨어졌고 이로 인해 수요자에게 좌절감만을 안겨주었지만, 이 제도는 시행되어 시장에서 그것이 소화될 경우 공급가격이 떨어질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은 칭찬해줄만하다. 하지만 문제는 이론적인 모순과 실현가능성이다.

기본적으로 이전의 제도들이 공공이 재원조달 및 공급을 주도하는 것이었다면 이 제도는 시장이 재원조달을 하는 제도라 할 수 있다. 아직 제도적 보완은 이루어져야겠지만 인수위원회는 종합부동산세 등 각종 세금부담을 줄여 투자자의 수익을 지켜줄 참이다. 투자자들도 구미가 당길만한 제안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투자자들의 유인 동기에 내재되어 있는 모순이다.

인수위가 제시하는 복안은 결국 투자자들의 투자수익을 집값 상승을 통해 보전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는 집값을 안정시키겠다고 반값 아파트를 공급하는데 그 전제조건이 집값 상승이라는 이상한 순환논리에 빠지는 소리다. 즉 51% 소유란 집을 소유가 아닌 주거로 보라는  이야기인데 그 정책논리의 발화점이 시장에서의 인플레이션이라는 것이 이 제도의 모순이다. 이론적으로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거기에다 사실 실효성도 의심스럽다. 현재 금리가 7~8%대 접어들었으니 투자자들은 그 이상의 수익률을 얻는다는 확신이 있어야 투자를 할 것이다. 사실 아파트값이 폭등하기는 하였지만 한해 매년 7~8%를 상회하는 상승률을 보이는 아파트는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다. 더구나 공공주택용지에 국민주택규모로 공급하는 아파트가 그런 상승률을 보이리라는 것은 상당히 현실성 없는 이야기다. 요즘 유동성이 풍부하다고는 하지만 지분형 주택에 투자할 목적으로 설립될 펀드는 극히 드물지 않을까 싶다.

얼마 전에 모 은행의 실무자를 만났는데 전국에 미분양 아파트에 투자하는 펀드를 만들어볼까 한다고 농반진반으로 말하는 것을 들었다. 공식적으로 10만 채이니 비공식적으로는 두배 세배의 아파트가 미분양 상태일 것이고 펀드는 현금흐름이 급한 건설사로부터 그 아파트를 헐값에 넘겨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논리였다. 그리고 그렇게 싸게 넘겨 받은 아파트를 임대하였다가 시장상황이 호전되면 되파는 아이템이다. 그러니 생각해보면 이런 점에서 이미 ‘지분형 아파트’는 ‘땡처리 아파트’에 상대가 되지 않는다. 더 싸게 살 수 있고 임대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내가 투자자라 해도 후자가 훨씬 매력적인 제안이다.

대운하, 모든 절차 밟아 1년 안에 착공한다니

연합뉴스 기사를 보니(원 기사 보기) 이명박 당선자가 “대운하는 모든 절차를 밟아 추진하겠다”고 이경숙 인수위원장에게 말했다고 한다. 좋은 일이다. 이제사 뭔가 좀 제대로 되가나 싶었다. 그런데 그 다음 말이 재밌다. “국내 민간 투자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실제 착공까지는 취임 후 1년이 걸린다고 확실히 (이 당선인(주1)이) 말했다”고 한다.

이 말은

“모든 절차를 밟아 5개월 안에 애를 낳겠다.”
“모든 절차를 밟아 열다섯 살이 되기 전에 성인이 되겠다.”

뭐 이런 멘트랑 비슷한 수준이다.

이 블로그에서도 몇 번 추진기간의 무리함에 대해 이야기했고 다른 매체에서도 같은 소리를 냈지만 민간투자사업을 추진하려면 필요한 각종 절차, 즉 사전타당성 검토(VFM;Value For Money), 기본계획 수립, 각종 영향평가, 민간사업자 선정을 위한 사전절차 및 협상, 자금조달이 각각의 절차에만도 몇 개월 길게는 1년이 넘게 걸리는 일이다. 그러니 어림잡아도 3~4년은 걸려야 정상이다.

그런데 당선자는 그런 사업을 “모든 절차를 밟아 1년이 걸린다”라고 이야기하신 것이다.

기사는 그런 한편으로 이 당선자가 이천 화재사고에 대해 언급한 내용도 보도했다. 이 당선자는 “소방안전 시설이 준공되기도 전에 검사가 끝났다는 보도를 보면서 현장에 안 가보고도 어떻게 준공했느냐는 생각이 든다”면서 “원인을 처음부터 제공하지 않겠다는 마음의 대비와 새로운 각오를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대비와 각오는 대운하에도 그대로 적용해야 옳은 일이다. 냉동창고 하나 짓는데도 안전시설이 준공이 되어야 검사가 끝났다고 할 판에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대운하를 만드는 마당에 모든 안전여부, 환경영향 여부, 자금조달 가능성 여부, 향후 국민부담의 정도에 대해서는 하나하나 꼼꼼히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 절차가 1년이 소요된다면 … 그것은 돌관 공사도 이만저만한 무식한 돌관 공사가 아니다.

 

(주1) 어느 블로그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당선인이라는 표현은 틀렸고 당선자가 맞다고 본다. 필자도 얼마 전에 모든 매체가 당선인이라고 하기에 무심코 당선인이라고 했다가 다시 고쳤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계속(물론 초지일관은 아니지만) 당선자라는 표현을 쓰는 매체가 있다. 바로 조선일보다.

인수위를 보면서 민영화의 본뜻을 곱씹어본다

적어도 인수위 내에서는 금산분리 완화 조치가 당연시되고 있는 분위기다. 언론은 금감위의 업무보고 자리에서 자신들의 몇 개월 전의 강경한 금산분리 철폐 반대 입장에서 선회하여 금산분리 완화에 찬성하였다는 보도를 흘렸다.(주1) 경제신문은 금산분리 완화를 당연시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적어도 아직까지는 “철폐”라는 단어는 입에 올리지 않고 있다. 그것이 가지는 함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인수위 측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금산분리 철폐의 궁극적인 대상은 우리금융지주회사이고 이를 노리는 자는 삼성이라는 것이 통설인데 삼성에 대한 저잣거리의 눈길은 얼어붙을 듯이 싸늘하다. 산업자본의 은행소유를 허가하면 싱가폴의 테마섹과 같은 외국의 산업자본들이 은행을 소유할 수 있게 된다는 비판도 있다.

그래서 인수위는 현재까지는 지난번 이명박 당선자가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이야기했던 부분을 되풀이하고 있다. 즉 대기업의 참여에 대해서는 일정정도 불이익을 줄 것이고 그 대신 중소기업의 컨소시엄이나 연기금의 참여를 고려해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경제개혁연대는 성명을 통해 이러한 주장이 근거가 박약하다고 비판하고 있다(관련기사).

우리금융지주회사와 같은 큰 물고기의 경우 중소기업 컨소시엄으로도 펀딩이 되기 어렵다는 것이고 국민연금 등이 참여할 것 같으면 적극적인 주주행사권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새 정부는 ‘중소기업 컨소시엄’론으로 일부 지방은행을 떡밥으로 던져주고 궁극에 우리금융지주회사, 더 나아가 산업은행 등을 거대 산업자본의 사냥감으로 던져줄 개연성도 있다는 점에서 경제개혁연대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다소 애매한 점이 국민연금을 포함한 연기금의 은행소유 론인데 현재 이들 연기금을 산업자본으로 보아야 하는 것인가 하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그 다음으로 의아한 점은 왜 연기금, 대표적으로 국민연금은 때만 되면 다 자기들 주머니인양 여기 투자한다 저기 투자한다 하는 이야기가 나오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형식상으로는 국민연금이 자체적이고 독립적으로 운용되고 있다고 하는 대외선전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으로부터 이 돈이 자유롭지 못하고 정치권이 정책집행수단으로 이 돈을 탐내고 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는 박근혜 씨로부터 ‘연기금사회주의’라는 소리를 들어가면서 주식투자비중과 BTL 등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높이려 했다. 대외적인 변명거리는 국민연금의 투자수익률 제고였지만 속셈은 주식시장과 경기부양이었다.(주2)

새 정부가 과연 금산분리를 완화한 후 정말 국민연금이 은행을 소유하게끔 할 것인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어설픈 점쟁이 노릇으로 굳이 예측해보자면 중소기업 활용론과 국민연금 활용론을 들먹이다가 앞서 경제개혁연대나 박근혜 씨가 주장하고 있는 논리에 물타기를 하며 거대 산업자본의 은행소유를 정당화해버릴 수도 있다.

여하간 새 정부의 입장은 현재로서는 참여정부와는 약간 다른 입장에서 국민연금을 바라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의료보험 등과 싸잡아 공적부조에 대한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벌써 인수위는 참여정부가 작년에 추진키로 한 실손형 민영의보 폐지정책을 무효화시킬 것을 공언하였다(관련기사). 해당 조치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일단 보험업계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국민연금을 포함한 각종 공적연금도 마찬가지 노선을 걸을 가능성도 있다. 즉 공적연금의 폐지와 민간연금의 전면 확대가 그것이다.(주3) 때마침 기금운용 등 공적연금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감도 극에 달해 있다. 게다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는 공적연금과 의료보험이 현재와 같은 추세로는 멀지 않은 시기에 재원이 고갈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관련기사). 그렇다면 시장친화적인 새 정부의 선택은? “골치 아프게 우리가 갖고 있지 말고 민영화시켜버리지!”

금산분리도 넓게 보면 민영화고 의료보험, 우정사업도 민영화하겠다고 한다.(주4) 이러한 민영화 쓰나미(아직 이 표현 쓰기는 좀 그런가?)의 논리는 제법 설득력이 있다. 관료주의, 정부의 비효율, 재원고갈 등 각종문제점을 좌파적인 反시장 정책의 결과로 비판하고 시장기능 활성화를 통해 효율성을 제고하겠다는 논리일 것이다. 이는 상당부분 국민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올 것이다. 왜냐하면 실제로 상당부분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민영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다. 엄밀히 지금 민영화에서 ‘민(民)’이라는, 즉 백성이라는 주체가 개입하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 필요하다. 사실 백성은 소위 ‘공공(公共)’과 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는 개념이다. 이는 공공에 대한 영단어 public이 바로 라틴어(語)의 푸블리쿠스(publicus:인민)에서 유래된 것이기 때문이다. 즉 공공이라 함은 그것이 정부의 형태를 취함에 있어 인민이 권력을 신탁한 것이라 보는 것이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이렇게 보면 ‘공’과 ‘민’은 사실 다른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일정시기를 거치며 공공 또는 국가소유의 재산을 기업에 불하하는 것이 ‘민영화’라는 인식과 거의 동일시되었는데 이는 실질적인 ‘민’이라 할 수 있는 대의체가 너무 미약한 탓이다. 결국 일부 시민사회가 일부 기능을 수행하기는 하였으나 절대다수의 정부기능의 민영화는 곧 기업으로의 민영화, 엄밀하게는 사유화(私有化)를 의미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재미있는(?) 말장난인데 민영화의 어원인 privatization 은 사실 앞서 표현인 사유화로 함이 맞다. 그러니까 사적인 주체가 소유관계를 가지게 된다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민영화하면 민간이 운영을 한다는 운영의 개념으로 대체된다. 표현이 급격하게(!) 순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결국 지금 사회여론은 어떤 이유에서건 민영화(사유화 whatever)에 대해 그리 적대적이지 않다. 문제는 그 공적기능을 떠안을 주체가 백성 중에서는 가장 강한 기업이라는 백성밖에 없다는 점이다. 은행이든 연금이든 의료보험이든 우리나라와 같은 가당찮은 시민사회서 뿐만 아니라 제법 헛기침 좀 한다는 서구사회에서조차 기업에 비해서는 절대적인 열세다.

그래서 제시되는 것이 연기금의 사회적 책임투자(주5), 자본과의 사회협약,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등의 개념이 제시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주장을 관철시킬 수 있을 정치적 세력이 유의미하게 존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2008년 현재 시점에서의 우리나라의 정치적 지형도는 암담하다. 보수 세력이 국회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그나마 진보정당이라고 자처하는 세력이 지리멸렬이다. 인민은 스스로가 공적연금, 은행, 기타 여하한의 생산수단의 운영주체임을 깨닫지 못하고 엉뚱한 이들에게 권력을 신탁하여 버렸다.

 

(주1) 다른 보도에서 금감원은 이를 부인하였다.

(주2) 요즘은 사모펀드와 해외자원개발펀드에까지 투자하고 있다. 투자다변화는 좋은데 이런 위험도 높은 사업에 투자할 능력이 되느냐 하는 것이다.

(주3) 이렇게 공적연금을 아예 폐지한 대표적인 사례로 칠레가 있고 서구언론에서 연금개혁의 성공사례로 칭송받고 있다.

(주4) 기타 통신 등 공공기업의 민영화는 수위조절을 하겠다고 한다.

(주5) 연기금 자체가 민영화의 공격대상이라는 점에서 약간 도돌이표 식인데 결국 연기금이라는 존재는 어떻게 보면 실질적인 ‘민영화(own by public)’이라는 개념에 가장 부합하는 현존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