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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의 금융거래세 도입 논의

오바마 정부에겐 허다한 과제가 앞에 놓여있지만 그 중 가장 긴박하고 첨예한 주제를 들라면 역시 금융개혁과 의료보험 개혁이다. 미국을 위시한 자본주의의 금융기능(Wall Street)은 실물부문(Main Street)의 원활한 경제활동의 핏줄 기능을 수행하여야 하는데 그 스스로가 하나의 별개의 독자적인 산업부문으로 비대화되면서 현물자산을 초과하는 신용창출로 망가졌다. 한편 의료서비스는 서구에서 가장 비싼 비용을 지불하면서도 가장 질 낮은 서비스를 제공받는 전형적인 비효율 상품으로 전락하였다. 둘 다 본래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 채 그 비용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최근 미국 최대의 노동조합인 노동조합산업총연맹(AFL-CIO)는 이 두 가지 문제점을 동시에 해결할 방안을 오바마 정부에게 제시했다고 한다. 이 제안은 금융거래세 부과와 이 세수를 통한 의료제도 개혁 재원 확보가 주요내용이다. 이른바 경제학자 제임스 토빈(James Tobin)이 처음 주창하였다하여 ‘토빈세’로 널리 알려진 금융거래세는 각국 금융시장을 오가는 단기투기자본의 통제(이를 통한 환율 변동성 억제), 금융기관 감독비용이나 경기부양 재원 마련 등 특수목적 등을 위한 세수확보를 목적으로 하는 세금이다.

이론적으로 크게 문제없어 보이는 이 세금의 치명적인 약점은 특정 국가만 시행할 경우 규제에 따른 비용을 감수하려 하지 않는 투기자본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이른바 규제차익(regulation arbitrage)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세금은 국제적으로 동일하게 – 최소한 비슷한 수준으로 – 적용해야 효과가 있다. 최근 영국의 금융당국에서 이 화두를 꺼냈고 브라질의 경우는 이미 독자적으로 시행하고 있지만 결국 법인세나 소득세처럼 범지구적인 공조가 필요한 사안이다. 공화당은 금융기관의 대출능력 저하, 고용감소, 투자자금 유출 등이 경기침체를 심화시킬 거라면서 반대하고 있지만 각종 세금을 비슷한 이유로 반대하는 극단론자의 주장과 크게 다를 바 없다.

흥미로운 점은 미국이 지난해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Troubled Asset Relief Program) 대책을 수립하면서 금융기관으로부터 변제자금을 징수할 수 있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할 수 있는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하는 조항을 삽입한바 있는데, 이것이 바로 금융거래세를 신설할 수 있는 법적근거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는 점이다. 세금의 신설이 본래 어떤 세금이든 간에 기득권 세력의 저항에 부닥칠 수밖에 없기에, 토빈세라는 극히 미온적인 금융개혁 조치마저 그간 온갖 비난에 시달려야 했던 상황을 감안하면 그나마 진전된 상황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의료개혁이 어떠한 식으로 진행되든 간에 이 나라의 재정구조는 향후 계속하여 복지성 지출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는 인구가 급속히 고령화되어 국민연금/의료보험 등 복지성 지출 비중 확대되는 서구형 자본주의 국가 일반 모두에 해당되는 현안이다. 더불어 사회간접자본의 노화 현상 역시 정부재정에 부담을 주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그 부담을 털어야 하는데 신자유주의 시대에 들어서 각국은 그것을 해당 서비스 시장화(민영화), 수령액 삭감 등 복지지출 축소 등으로 풀어내려 했다. 그 추세가 당장 멈춰지긴 어렵지만(주1) 뒤늦은 금융거래세 논의는 그 대안을 앞서의 대안이 아닌 다른 곳에서 찾으려는 작은 시도다.

 

(주1) 개인적으로는 어떠한 서비스를 국가가 제공하느냐 시장이 제공하느냐 그 자체가 서비스의 질(質)이나 타당성을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둘 간의 제공논리가 특정 시기, 특정 상황에서 부합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부 시설의 민영화는 서비스의 향상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일부 시설의 국가공급은 현실성을 외면한 (연성)독재의 산물인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