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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kabout

Walkabout이라는 영화가 있다. 영국 감독 니콜라스 로에그가 1971년 감독한 작품이다. walkabout은 ‘도보여행’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거니와, 이 영화에서는 호주의 원주민인 어보리진(Aborigine)이 성인식의 일종으로 오지에서 몇 달간 살아남아야 하는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한 천진난만한 백인 오누이도 이러한 처절한 ‘도보여행’의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정신 나간 그들의 아버지가 사막에 그들을 데려와서는 자신의 자살에 동참시키려는 것을 구사일생으로 피하게 된 것. 결국 아버지는 자살하고 오누이는 길을 헤매다 사막에 홀로 남아 바로 이 성인식을 치르고 있는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소년을 만났다.

그 소년 덕택에 간신히 목숨을 건졌고 즐거운 시간을 함께 나누고 심지어 은밀한 연정까지 느끼지만 서로간의 의사소통의 부재는 때로 오해로, 때로 고통으로 다가온다. 마침내 도시의 근처로 오게 된 이들의 의사소통 불능은 상태가 심해져 가고 원주민 소년의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시간이 흘러 문명세계로 돌아온 누이는 어느 새 전에 살던 아파트에서 가정을 꾸렸다. 남편이 돌아와 승진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그 순간, 그녀는 원주민 소년, 동생, 그리고 자신이 나체로 연못에서 수영을 즐기던 그 행복했던 시간을 불현듯 떠올린다. 그 모든 야생의 경험은 문명세계에서의 순간의 일탈에 불과하다.

소통의 부재 정도가 무슨 죽음의 이유냐고 억지라고 생각된다면 영화가 아닌 지금 이 세상을 들여다보자. 한 원주민 소년의 죽음 정도는 태산의 흙 한 움큼 정도의 충격밖에 안된다. 권력을 위해 오만과 무자비를 ‘인내력의 한계’ 또는 ‘자위권 행사’라는 변명으로 감싸서 소통을 거부하는 어느 이웃이 다른 이웃을 향해 인종학살을 태연하게 자행하고 있다.

부시는 그들의 학살이 정당하다고 주장하고 있고 – 자기가 저지른 수준에 비해선 양호하기 때문일지도? – 오바마는 내내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 지독한 부조리는 나찌가 점령하고 있는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아니다. 최고 수준의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다는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그러면 파시즘과 민주주의의 차이는 도대체 무엇인가?


이스라엘의 끊임없는 전쟁 노름(한겨레)
Walkabout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