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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믿으시오!”

리차드 펄(Richard Perle)은 로널드 레이건 시절 국방부 차관보였고 조지 W. 부시 시절에는 럼스펠드에게 선택받아 국방정책회의(Defense Policy Board) 책임자로 임명된 인물이다. 뒤쪽에서 은밀하게 일하는 취향 때문에 ‘암흑의 왕자’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또 하나의 별명은 비둘기파 콜린 파월이 지어줬는데 ‘폭격기’였다.

네오콘의 정신적 지주인 레오 스트라우스(Leo Strauss)를 철저히 신봉했던 그는 또한 “이슬람은 테러의 종교”라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녔다고 한다. 이런 그가 또 하나의 스트라우시언이었던 오랜 친구 폴 월포위츠(주1) 국방부 부장관과 함께 2001년 911사태 이후 불과 며칠 사이에 이라크를 침공하여야 한다는 주장으로 부시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사실 부시와 네오콘이 처음부터 죽이 맞았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단지 아버지에 이어 대권을 도전하는 아들 부시와 클린턴 시절 재야에 머물러 울분을 삼켜야 했던 네오콘들이 서로를 필요로 하는 실용적 이유 때문에 서로 뭉쳤다고 보는 편이 옳다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이다. 그리고 911 이후 부시를 휘어잡으며 네오콘은 전면에 나서게 된다.

그들의 정치적 신념은 매우 배타적이며 선민(選民)의식적이었던 것으로 유명한데 다음의 한 에피소드에서 이러한 모습을 잘 볼 수 있다.

자신들의 이념과 개념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가 이들 매파들의 행위를 이끄는 동력이 된다. 데이비드 콘(David Corn) 기자가 “사담이 미국에 대한 위협 세력임을 입증하는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리차드 펄에게 질문하자, 펄은 “날 믿으시오!”라고 대답했다.[부시 가문의 전쟁 : 밝힐 수 없는 이라크 전쟁의 비밀, 에릭 로랑 지음, 최기춘/정의길 옮김, 한울, 2003년, p138]

믿고 싶지 않은 인물이고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인간유형이다. 그런데 요즘 왠지 이런 인물들이 이 나라에서도 슬금슬금 기어 나오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주1) 그는 비둘기파인 “콜린 파월을 한 눈으로 감시하고 그를 견제하기 위하여 펜타곤의 제2인자 자리를 수락”했노라고 측근에게 고백한 적이 있다고

그루지야 사태는 네오콘의 무모한 도전?

이번에 벌어진 러시아와 그루지야 간의 참혹한 전쟁에서 미국은 어떠한 역할을 하였을까? 미국을 제국주의 국가라 생각하는 이들이라면 당연히 미국이 그루지야를 부추겨 지역분쟁을 조장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일단 곤돌리자 라이스는 이러한 세간의 추측을 부정하고 있다. 오히려 미행정부의 한 소스는 그녀가 7월 그루지야의 사카쉬빌리 대통령에게 러시아를 자극하지 말라고 경고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워싱턴DC의 아메리칸 대학에서 역사학 교수로 재직 중인 알란 J 리히트만(Allan J. Lichtman)은 Common Dreams 에 기고한 글을 통해 현 상황을 지난 1956년의 헝가리 사태와 비유하면서(주1)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존 매케인을 그루지야 정부의 ‘선동자(Agent Provocateur)’로 지목하였다. 그는 자신의 이런 주장에 대한 근거로 매케인이 외교정책자문으로 두었던 랜디 슈네먼(Randy Scheunemann)의 존재를 들고 있다.(주2)

리히트만의 설명에 따르면 슈네먼은 그루지야 정부를 위해 일하던 로비스트였다. 또한 슈네먼은 지난 4월 17일 매케인과 그루지야의 대통령인 미하일 사카쉬빌리와의 전화통화를 주선하였다. 리히트만은 매케인이 왜 그루지야의 로비스트가 그의 캠프에 머물렀는지, 그리고 사카쉬빌리와의 통화에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를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리히트만은 최근 러시아에 대한 매케인의 일련의 강경자세(주3) 와 그로 인한 부수적인 이익 – 우익들의 총집결, 그리고 이로 인한 표심 확보 – 등의 현재 상황에서 이미 그가 어떤 입장이었을 것인가에 대한 심증을 충분히 제시하고 있다.

한편 여러 매체에서 외신기자로 활동하였던 저널리스트 에릭 마르골리스(Eric Margolis)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사카쉬빌리의 남오세아티아 침공 계획의 뒤에는 워싱턴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대대 수준의 병력과 함께 배속된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고문이 그루지야 군대를 훈련시키고 무장시켰다(The Georgian Army was trained and equipped by US and Israeli military advisors stationed with its troops down to battalion level)”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그는 CIA와 모사드가 티빌리시에서 중요한 정부기관을 운영하였고 사카쉬빌리와 협조관계에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주장들은 다음과 같은 추론을 가능하게 한다. 즉 사카쉬빌리가 허파에 잔뜩 바람이 들어 남오세아티아를 공격하게 만든 이가 매케인이든 아니면 CIA, 또는 그 뒤에 있는 더 거대한 세력이든 간에 구소련 지역에서의 분쟁은 미국의 세계경찰로서의 위치를 새로이 부각시키는 계기를 마련해줄 것이고, 이로 인해 결국 다시 미국은 애국주의적 분위기의 고양, 군산복합체의 존재의의 강화, 결과적으로 공화당의 연승 등의 나머지 세계 사람들이 바라지 않는 상황이 재연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네오콘의 그루지야 배후설을 막연한 음모론으로만 치부할 수도 없을 것 같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걱정되는 것은 그러한 시도가 – 만약 사실이라면 – 이전의 이라크 침공이나 현재의 이란에 대한 도발과 달리 매우 위험한 도박이라는 사실이다. 러시아는 이라크처럼 공갈빵이 아니다. 여하한의 경우 ‘분명하고도 현존하는 위협’이다. 그들은 석유를 통해 부를 쌓아가고 있고 여전히 막대한 숫자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강국이다. 그리고 그들의 이해관계가 결부된 사안에 대해서는 이번 사태에서 보는 것처럼 직접적인 행동에 거리낌 없이 나선다. 그런 면에서 미국 우익이 새로운 ‘가상의’ 적을 만들어 국면전환으로 활용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명백한 오류다. 러시아는 미국에 대해 ‘실재의’ 적이 될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주1) 최근에야 공개된 미행정부의 문서에 따르면 “CIA의 꼭두각시였던 래디오프리유럽은 헝가리의 저항세력이 미국정부가 채 준비도 하지 않고 있던 도움을 얻을 것이라고 기대할만한 근거를 제공하는 방송을 해댔다(Radio Free Europe, a puppet of the CIA, beamed broadcasts into Hungary which gave the revolutionaries reason to believe that they could expect aid from the United States – aid that the administration was unprepared to provide)”고 한다.

(주2) 매케인과 슈네먼의 관계, 그리고 매케인의 대외정책의 입장에 대한 조선일보의 분석

(주3) 매케인은 러시아를 또다시 막아야 할 ‘복수의 화신’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