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國의 구원투수로 나서려는 中國의 노림수

지난달 말 중국의 국부펀드인 중국투자공사(CIC) 러우지웨이(樓繼偉) 회장이 영국 등 선진국의 사회간접자본 사업에 투자하겠다고 밝혀 유럽각국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러우 회장은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기고를 통해 “중국의 기업과 투자자는 기존에는 해외 SOC프로젝트에 단순 하청업체로 참여해왔으나 이제는 직접 소유하고 운영하는 것에 관심있다”[중략] 고 밝혔다. 재정위기에 시달리는 유럽으로서는 중국이 막대한 보유 외환으로 직접 국채매입을 해주면 좋겠지만 대규모 SOC 투자도 저성장 위기를 넘어 경기부양의 불씨를 지피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전세계 돈줄, 차이나 머니 어디서?]

중국이 – 또는 중동 등지의 국부펀드가 – 다른 나라의 인프라 시설의 매입에 욕심을 낸 것은 사실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중국의 보유외환 중 4,100억 달러(462조원)를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CIC의 경우, 이미 제3세계의 인프라 시설, 광산, 유전 등 실물자산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중국 외환보유고의 70% 정도가 美국채를 포함한 달러 자산에 담겨져 있는 것으로 알려진 상황에서, 국채 등 전통적인 안전자산에만 투자하기에는 수익률 측면이나 포트폴리오 차원에서도 그리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이나 중동 등의 국부펀드가 인용문과 같이 서구의 인프라 시설을 매입하려 하는 경우는 제3세계의 그것과는 또 다른 갈등을 야기하기도 한다. 이 경우는 단순히 자산거래를 통한 경제성의 문제만이 아닌 보다 복잡한 이슈들이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2005년 10월 두바이의 국영항만회사가 미국의 항구들을 매입하려 했다가 좌절한 사례가 있다. 당시 이 사안은 내셔널리즘적 이슈, 안보 이슈, 반독점 이슈 등 복잡한 양상을 띠며 진행되었다가 결국 두바이 회사 DP World의 항구매입이 좌절된 경우다.

2005년 10월 중순, DP World는 영국기업 P&O의 인수가 가능하도록 법적제한을 제거하기 위해 미합중국외국인투자위원회(the Committee on Foreign Investment in the United States ; CFIUS) 에 접근한다. CFIUS는 반독점이나 국가안보 이슈를 야기할 외국기업과의 계약에서 대한 판단을 내리는 여러 기관을 포함하는 연방 패널이다. 곧 이어, DPW는 P&O의 인수 조건을 협의하기 시작한다. [중략] 2005년 12월 해안경비정보국(Coast Guard intelligence) 관리가 한 보고서에서 광범위한 정보차이로 인해 위험들을 분석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언급과 함께, 두바이 회사가 미국의 항구운영을 관리하는 것에 중요한 안보 이슈의 가능성을 제기하였다.[Dubai Ports World controversy]

두바이 기업이 영국기업을 인수하는 것과 항구운영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DPW가 인수하려던 P&O는 항구운영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였고 당시 미국 내의 항구 여러 개를 운영 중에 있었다. 따라서 DPW의 P&O 인수는 곧 DPW의 미국 항구운영권 인수를 의미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시 대통령이었던 조지 부시는 미국정부의 신뢰의 문제를 들어 해당 계약을 인정하려 했지만 의회에서는 초당적인 협력 하에 압도적인 지지로 해당 계약을 저지시킨다. 결국 DPW는 미국 내의 항구운영권을 미국기업 AIG에 넘기게 된다.

이 사례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美당국과 정치인들이 영국기업이 항구를 운영을 할 때에는 제기하지 않던 안보 이슈를 두바이기업으로 주체가 바뀌자 제기하였다는 점이다. 단순히 인프라의 민영화에 대한 이슈 제기 이상의 내셔널리즘적 안보 노이로제가 작용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와 똑같은 정서가 중국에 대해서도 현재도 여전히 남아있다. 로이터의 한 칼럼니스트는 오바마가 중국의 인프라 투자를 환영한다는 발언에 대해 바로 DPW의 사례를 들며, 중국이 사야할 것은 직접소유권이 아니라 채권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정서는 영국이라고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지난 세기 많은 나라를 식민지로 거느렸던 대영제국이 한때의 영광을 뒤로 하고 채무국으로 전락한 현 상황에서조차, 중국 돈이 들어와 자신들의 영토에 대한 소유권을 행사하는 것은 자존심상할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자존심을 감추게 하는 것은 다급한 재정상태다. 조지 오스본 재무장관은 영국의 민간투자사업인 PFI으로의 지출을 절감할 새로운 사업방식을 주문한 바 있고, 그럼에도 각종 민간투자 – 중국을 포함한 – 여전히 절실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오스본 씨와 재무부 관리들은 새로운 도로, 철도, 브로드밴드, 에너지 프로젝트들의 자금조달을 위한 원천으로써 중국의 추가적인 투자를 오랫동안 추구하여왔다. 영국 관리들은 제안된 런던에서 영국 북부까지의 고속철도에 중국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China boost for Osborne growth plans]

중국, 또는 중동의 국부펀드들이 선진국 인프라 시설투자에 나서고자 하는 이유는 어쩌면 선진국이 이들의 투자에 대해 갖고 있는 우려의 반대편, 즉 선진국의 자산을 자신들이 보유한다는 자긍심도 있을 것이다. 물론 보다 중요하게 포트폴리오를 전통적인 투자가 아닌 일종의 대안투자와 적정비율로 구성할 필요성 때문일 것이다. 특히 중국이 유럽의 경제위기의 구원투수로 나서는 한 방법으로의 자산매입은 서구의 이전까지의 부정적인 정서를 무마시키면서 안정적인 대안자산에 투자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요컨대 우리가 흔히 “민영화”라고 부르는, 인프라 혹은 국영기업의 증권화는 민간 기업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 각국의 국영기업이나 국부펀드들 역시 다른 나라에서는 이른바 독립적인 공급자(independent provider)로써 민간기업과 똑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A국으로의 투자에 나선 B국의 국부펀드가 해당 사업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면 A국의 안보나 국부유출 등에 대한 우려가 반영된 “국익”이 감소할 개연성이 있지만, 반대로 B국의 경제적 실익의 “국익”이 상승할 개연성이 늘어나는 것이다. 복잡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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