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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외환위기의 원인이 된 잘못된 외환정책에 관하여

한편 정부는 외환시장을 개방하면서 단기 해외차입은 자유화한 반면 장기 해외차입은 금액 제한 등을 규제했는데, 이는 장기차입을 더 위험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단기차입금리는 장기차입금리보다 낮으므로 차환 roll-over 만 계속 할 수 있다면 돈을 단기로 빌리는 것이 유리하지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당시 방향은 반대로 설정된 잘못된 조치였습니다. 국제금융시장의 사정이 어려워지면 단기차입금이 먼저 철수하기 마련입니다. [중략] 외환위기의 발단입니다.[돈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원화와 외화의 긴밀한 연결고리, 임경 지음, 생각비행, 2014, p382]

1997년 IMF외환위기의 원인에 대한 설명 중 일부다.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들이 장기차입을 제한하고 단기차입을 장려했는지는 적혀 있지 않지만 한국은행의 실무담당자인 저자의 경력으로 볼 때 틀린 사실을 기술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자유화라 함은 1996년 12월 OECD가입을 압두고 이루어진 자본자유화 조치를 말하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책에 따르면 우리 정부는 1993년 이후 단기상품 위주로 금리자유화를 추진했다고 한다. 지금도 기억에 선한 게 어느 날 갑자기 “세계화”를 해야 한다며 부산을 떨던 시기였다.

일부 학자는 자유화 조치가 사실 여타 국가에 비해 그 폭이 크지 않았다는 점에서 외환위기의 원인이라 보기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임경 씨는 위기를 제공하는 배경으로 취약성 vulnerability 와 기폭제 trigger 로 구분하며 자유화 조치에 면죄부를 발급하는 것은 취약성 측면에서의 책임을 면죄하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실제로 단기차입을 장려하고 장기차입을 제한한, 오늘날의 기준으로 봐서는 해법이 전혀 반대되는 정책방향과 자유화 조치가 결합되었다는 정황으로 볼 때 더욱 그 책임이 클 것으로 여겨진다.

이 결과 우리나라는 1997년 6월말 현재 총외채 중 단기외채 비중이 67%에 달해 유사한 수준의 국가의 단기외채 비중에 비해 훨씬 높았다. 은행들은 단기로 빌린 이 외화를 장기로 굴리면서 상당한 금리차익을 시현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결국 당시 외환보유액이 300억 달러쯤 되었다고도 하고 실제 가용외환보유액은 이보다 훨씬 적었다는 보도도 있는 와중에 이런 높은 비중은 외환위기의 기폭제 trigger 역할까지 한 것이다. 섣부른 개방, 잘못된 정책운용, 시장의 이윤추구가 결합되어 바닥으로 치닫고 있었던 1997년이었다.

한국의 낮은 PIR의 배경과 주택시장의 현 상황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이 전 세계 주택가격 동향에 관한 신규 사이트를 개설했다. 그 유익한 사이트를 둘러보던 중 개인적으로 의아하게 생각했던 그래프가 하나 있었다. 그 그래프는 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House Price-to-Income Ratio) 그래프였는데, 우리나라의 역사적 평균 대비 2013년 4분기 해당 비율이 -39.7%로 분석대상국 중 일본을 제외하고 가장 낮았기 때문이다. 상황이 그러하다면 우리나라의 집값은 소득 수준에 비해 저평가된 것이고 단순히 그 관점에서만 본다면 향후 집값이 더 오를 수 있다는 개연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이런 통념을 벗어나는 분석결과의 원인을 분석한 글을 발견했다. 우리금융연구소에서 내놓은 ‘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PIR)을 통해 본 주택시장 현황’이 그 글이다. 보고서는 IMF가 PIR 계산에 사용한 통계자료를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체적인 가정으로 분석을 시도했다. 즉, 국민계정의 개인가처분소득 등의 자료를 활용하여 1986~2013년의 PIR 평균과 2013년 수준을 비교했는데, 이에 따르면 전국주택가격 기준으로 -44.7%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정도 수치라면 보고서의 가정이 IMF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최근 우리나라의 PIR이 과거의 평균치에 비해 상당히 낮은 이유는 1980년대 말의 PIR이 지금보다 훨씬 높았기 때문이다. [중략] 전국아파트가격을 기준으로 보면, 1986년의 PIR을 100으로 할 때 2007년의 PIR은 43.7에 불과했으며, 2013년에는 38.5까지 하락하였다. 또한 주택가격의 거품이 (만약 있다면) 가장 심할 것으로 간주되곤 하는 서울 강남지역 아파트가격의 경우, 1986년의 PIR을 100으로 할 때 2007년에는 67.8, 2013년에는 47.5에 불과하다.[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PIR)을 통해 본 주택시장 현황]

1980년대 우리나라 집값이 소득 수준에 비해 역사적으로 높은 수준이었다는 것이 분석결과다. 이런 높은 수치는 역사적 평균을 왜곡(?)시키는 결과를 가져왔고 그 영향은 현재까지도 미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다시 향후 예측으로 돌아와 지금 비율이 역사적 평균보다 낮으므로 집값이 상승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는가? 보고서는 부정적으로 판단한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의 주택구입 재원이 2000년대 이후 빠르게 증가한 가계부채 덕분이란 판단 때문이다. 1990년 25%에 이르던 가계저축률은 현재 3~4%대로 급락하고 반대로 빚은 늘었다.

최근 PIR이 과거 고점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지만, 향후 다시 상승하는 것도 쉽지 않다. 특히 3~4%대로 급락한 가계 저축률을 감안할 때, 금융자산의 축적을 통해 주택가격을 지지하는 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1990년대 초반의 높은 PIR은 가계소득 이외의 은폐된 자기자본(금융자산 등)에 의해 가능했으며, 이미 타인자본(부채)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현재의 PIR와 같은 차원에서 해석될 수 없다.[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PIR)을 통해 본 주택시장 현황]

요컨대 우리나라의 현재의 상황에서 역사적 평균 대비 PIR만 가지고 주택시장을 예측하는 것은 무리라는 이야기다. 보고서는 “주택시장 안정의 관건은 가계소득 증가”라는 다소 원론적인 결론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하지만 원론적인 이 결론이 정답이다. 현재 우리의 가계부채 수준이 위험수위이기 때문이다. 2013년 3월 기준 우리나라의 GDP 대비 가계신용 비율은 90.4%로 OECD 국가 평균(74.5%)보다 높은 수준이며 위험 수준으로 간주되는 85%를 넘어섰다. 거기에 우리만의 독특한 금융제도인 전세까지 포함하면 수치는 더욱 늘 것이다.

가계 및 은행권의 손실흡수여력이 비교적 양호한 편이기는 하나, 비은행권 가계대출의 비중 및 증가세, 단기·일시 상환대출에 의존한 차입과 부동산 중심의 자산구성, 저소득 부채가구의 부실위험은 다소 우려스러워 보인다.[가계부채의 위험에 대한 이해와 위험관리체계의 설계방향]

KDI가 최근 내놓은 보고서의 요지다. 역사적으로 높은 PIR과 저축률이 특징이었던 1980년대 이후 가계는 금융자산과 부채를 – 전세 포함 – 재원으로 자산구성을 부동산자산으로 대체한다. 그 과정에서 가계부채가 크게 증가하자 정부는 LTV, DTI규제 등을 통해 시장과열을 억눌렀다. 이에 따라 현재는 상대적으로 규제가 느슨한 비은행권 차입이 크게 늘고 있는 상태다. PIR이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이지만 안심할 수 없는 이유다. 집값하락으로 인한 담보가치 저하도 우려할 일이지만 빚을 더 늘려 집을 사라는 정책도 위험한 시도다.

특별인출권(special drawing right)의 탄생 과정

처음에 미국은 달러의 기축 통화 역할을 축소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특별 인출권과 같은 수단을 만드는 것에 반대했다. 1964년 IMF 연례총회에서 달러의 비대칭적 위상을 반대하던 프랑스는 그러한 수단을 만들자고 제안했으나 미국에 의해 좌초되었다. 드골은 이에 굴하지 않고 국제 체제의 대칭성을 회복하기 위해 남은 유일한 길로서 금본위제로의 복귀를 제시했고 프랑스중앙은행은 달러를 금으로 급히 교환했다. 이러한 은근한 협박은 미국의 공식 입장을 변하게 만들었다. [중략] 미국은 미국의 대외 통화 위상이 더 이상 난공불락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고 1965년에 입장을 바꿔 특별 인출권 창출에 동의했다.[글로벌라이징캐피털, 배리 아이켄그린 지음, 강명세 옮김, 미지북스, 2010년, p178]

국제 통화 체제에서의 프랑스의 역할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서구강국이긴 하지만 통화 체제나 금융 체제에서 선두주자가 될 가능성이 낮은 나라, 그렇기 때문에 강대국들 간의 모임에서도 반골(反骨)의 스탠스를 유지하고 있는 그런 나라가 프랑스다. 프랑스의 이러한 입장이 어떤 경우에는 제3세계의 입장과 동일한 선상이기도 하였지만, 많은 경우 그 반발의 동기는 결코 1인자가 될 수 없는 2인자의 앙탈 같은 느낌이 강하다. 1차 대전 이전에는 영국에, 브레튼우즈 체제 하에서는 미국에, 그리고 유로존의 위기 중에는 독일에게 각각 들이대는 “영원한 2인자”.

그리스 의회의 긴축재정안 통과의 의미와 그 앞날에 대한 단상

새로운 프로그램에 따라 공공부문에서 15만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고, 공공지출과 헬스케어에서 감액이 예상되며, 이와 함께 중간 소득에 대한 엄청난 증세가 잇따를 것이다. 술집과 레스토랑에 부과되는 부가가치세는 13%에서 23%로 상승한다. 그리스는 그러한 소규모 비즈니스에 상당부분 의존하는바, 이 조치는 수천 개의 자영업을 도산시키고, 경기후퇴를 가속화시킬 것이다.

여태까지는 긴축프로그램의 옹호자였던 파이낸셜타임스의 수석 칼럼니스트인 Wolfgang Münchau 조차 이번 긴축조치는 “재무적으로 무모하고 정치적으로 무책임한” 조치라 결론내리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현재 상태 그대로 정치적으로, 도덕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정당화되기 어렵다.”라고 그는 적고 있다.

그럼에도 EU는 그리스 의회에게 그 프로그램을 받아들이라고 엄청난 압력을 가해왔다. 경제담당 집행위원인 Olli Rehn은 만약 긴축 패키지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리스는 파산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즉각적인 디폴트를 피하는 유일한 길은 의회가 이 수정된 경제 프로그램을 지지하는 것뿐이다.” 한 연설에서의 그의 발언이다. “금융원조의 다음 트랑쉐(tranche)를 받고 싶으면 그들이 승인해야 한다. 다른 옵션을 기대하는 이들에게, 분명히 말하지만 디폴트를 피하기 위한 플랜B는 없다.”[Greek austerity package: Social counterrevolution in Europe]

결국 그리스 의회는 긴축재정안을 155대138로 통과시켰다. 집권 사회당의 의석이 155석인데, 희한하게 찬성의원수가 이 의석수와 일치한다. 모든 사회당 의원들이 정확히 찬성하진 않았겠지만, 결국 투표 결과는 집권당과 야권의 의견이 이만큼 극명하게 갈라져 있을 정도로 그리스 정치의 분열이 심각한 양상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살인적인 고금리와 긴축조치로 수많은 서민들을 고통 속에 몰아넣었던 우리의 이전 세기 외환위기가 연상되는 이런 조치들은, – 우리는 의회의 승인절차조차 없었다. – 가장 큰 피해자가 우리의 외환위기 때와 마찬가지로 절대다수의 서민들임을 익히 짐작할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좌익” 정당임을 자처하는 사회당 치하에서 자행된 조치다.

한편, 그리스의 최대 채권국인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서 구제방안을 두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독일이 이른바 “강제 채무 조정”을 원하고 있다면, 프랑스와 유럽중앙은행(ECB)은 리파이낸싱을 통한 “연성 조정”을 선호하고 있다. 독일의 안이 채권자들의 상당 부분 희생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주류 안이 아니라는 점은 익히 짐작할 수 있다.

독일은 원금을 깎거나 차환 채권을 새로 발행해 기존 채권을 대체하는 등 채무구조조정에 찬성하고 있습니다. 그리스 사태에서 그리스 국채에 투자한 민간이 보유한 고금리 단기 채권을 저금리 장기 채권으로 전환하자는 것입니다. 독일은 민간 채권자들도 고통분담에 동참하라고 주장하는데 유럽 재정 위기 극복을 위한 기금 EFSF(유럽재정안정기금) 4400억 유로를 조성했는데요.

27%를 부담하는 독일 여당이 지방선거에서 패배했는데 여론때문에 리파이낸싱에 동의하기 쉽지 않습니다. 반면 프랑스와 ECB(유럽중앙은행)은 리파이낸싱 방식을 선호합니다. 즉 추가로 돈을 빌려주고, 이 돈으로 기존 빚을 갚아 돈을 갚는 시점을 뒤로 미루는 방식을 원하는데 프랑스 은행들이 550억 달러 정도 그리스 채권을 보유하고 있어 더 손해를 볼 것이 우려되기 때문입니다.[그리스 재정수혈 ‘난항’··민간참여 놓고 獨· ECB ‘대립각’]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가디언이 보도한 것처럼, IMF 총재였던 Dominique Strauss-Kahn이 성폭행 혐의로 총재 자리를 비운 사이, JP모건 부회장 출신인 미국인 John Lipsky가 집행대행을 맡으면서 갑자기 강경노선으로 돌아서서 독일의 입장을 굽히도록 강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성폭행, 미국인, 독일, 그리스 구제금융의 재밌는 조합이 만들어진다.

독일 은행들이 그리스 구제에 참여키로 함에 따라 그리스 사태가 돌파구를 찾아가고 있다. [중략]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확정되지 않았으나 독일 최대 은행인 도이체방크의 요제프 아커만 회장은 “민간 채무자들을 구제에 참여시키기 위해 프랑스가 제안한 안이 토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도 나섰다…그리스 낙관론 대두]

독일과 프랑스의 안이 온도의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어쨌든 그리스에 대한 채무조정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비록 채권자들이 그리스가 긴축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파산시키겠다고 협박했지만, EU나 IMF가 쉽게 그리스를 버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럴 경우 인접국으로의 위기확산과 채권자들의 큰 손실을 의미할 뿐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상황은 그리스 인민의 희생을 강요하는 긴축재정안을 그리스가 수용하고, 채권자들의 희생을 최소화하는 프랑스안을 수장이 갈린 IMF 등이 독일을 압박하여 관철시키는,  채권자에게는 최상의 결과가 만들어졌다. 결국 그리스는 단기구제는 받을지언정 쉽게 빠져나올 것 같지 않은 악성채무자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과연 그리스를 포함한 유럽의 주변국들이 어떤 사연으로 이런 험난한 길에 접어들었는가에 대해선 갑론을박이 있을 수 있겠으나, 분명한 사실 하나는 현재의 체제 하에서의 이러한 조치들은 결국 위기를 이연시킬 뿐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긴축안이 통과하자 전 세계 증시는 일제히 오르며 그리 길지 않을 즐거운 망중한을 보냈다.

가족이야기

예전에 올린 포스팅 재탕입니다. 오리지널은 1998년, 그러니까 11년 전에 썼던 글이로군요. 장르는 ‘어설픈 리얼리즘 하드코어’ 쯤 될까요. 제목은 ‘가족이야기’입니다. 심심할 때 읽으세요. 🙂 

<최성호>

교도소문을 빠져나왔다. 당장 공기가 달라지는 것만 같다. 옅게 깔린 구름은 교도소 안에서와는 또다른 감흥을 안겨주고 있었다. 고개를 빼꼼이 내밀고 있는 사람들 사이로 두분이 보였다. 나를 발견한 어머니는 금새 눈이 붉어지면서 아버지를 채근해 내 쪽으로 다가오셨다. 그리고는 말없이 등을 쓰다듬어 주셨다. 아버지는 코트에 두 손을 넣은 채 말없이 서계셨다.

돌아오는 차안에서도 아버지는 말없이 운전만 하셨고 어머니는 연신 ‘교도소 생활이 힘들지는 않았느냐’, ‘이제 네가 집에 왔으니 모든 일이 잘 될 거야’ 등의 위로를 해대셨다. 차안에서도 내내 멍하던 나의 의식은 동네 골목에 접어들어서야 비로소 현실감이 느껴졌다.

3년간의 짧지 않은 감옥생활, 그 세월동안 나의 의식은 정지해 있었다. 물론 감옥 안에서 나름대로 책도 읽고 주요시기마다 정치투쟁도 벌여 동료들간의 연대의식도 고취하는 등의 활동을 계속하였지만 그건 어찌 보면 나의 대외적 모습이었다. 나의 육신은 갇혀 있는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었고 그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한 최선의 방책은 의식의 정지였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참을 수 없는 폐쇄공포로 말미암아 나는 정신병자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대문을 열어준 것은 성길이었다. 인터폰으로도 열 수 있었을 텐데 궂이 마당까지 나와 문을 열고는 나의 눈을 어색한 미소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애써 반갑게 웃으며 악수를 청했고 성길이는 쭈뼛거리며 손을 잡았다. 어머니가 추운데 어서 방으로 들어가자며 나의 등을 밀었다.

실로 오랜만에 3평짜리 안방에 네 가족이 모두 모여 앉았다. 어머니는 깍아온 과일을 이쑤시개로 찍어 나에게 권하셨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과일을 받아들고 있었다. 아버지는 팔을 꼰채로 말없이 앉아 계셨고 성길이는 애써 외면하며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색한 침묵을 깬 것은 아버지셨다.

“이제 가족이 모두 같이 모이게 됐으니 참 좋구나. 음… 그리고… 성호없는 동안에… 너에겐 애써 말할 필요가 없다 싶어서 미뤄둔 것이지만… 애비가 이번에 직장을 그만두었단다.”

‘아… 소위 말하는 구조조정의 여파가 우리 집에도…’

“에… 나는 명예롭지 않게 회사에 남는 것보다도 명예롭게 그만 두는 편이 낫다 싶어서 니 애미와 상의해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

옆에 있던 어머니는 작게 한숨을 쉬셨다. 어머니와 그런 문제를 상의할 아버지가 아니시다.

“그리고 난 아직 한창 일할 나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얼마간 있는 돈으로 조만간 이런 저런 일을 해볼 계획이다. 내가 너희 둘에게 말하고 싶은 건 모쪼록 이런 집안 사정을 알고 국가도 좋고 민족도 좋지만 이제 집안에 대해서도 나름대로의 생각을 해주길 바라는 것뿐이다.”

며칠을 멍하니 집에만 있었다. 배달되는 조간신문을 며칠째 광고까지 빼놓지 않고 꼼꼼히 읽었다. 곳곳에서 걸려오는 축하전화에 반갑게 웃기도 했지만 밖으로 나오라는 말에는 애써 사양했다. 나 자신이 아직 갈팡질팡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무미건조한 무채색이던 세상이 점차 유채색으로 바뀌어 갔다. 마당에 나가 청소도 하고 어머니가 외출하셨을 때는 혼자서 라면도 끓여 먹었다. 그러면서 점점 내 마음을 차지해가는 한가지 생각은 가족을 내가 챙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4학년 1학기쯤 영어생활을 시작한 나의 인생, 졸업은 하지 않았지만 1학기만 더 다니면 졸업을 할 것이고 어떡하든 직장을 잡아서 집안을 꾸려 나가야 하는 것이다.

부시럭거리는 소리에 선잠을 깻다. 언뜻 창밖을 보니 아직 어스름한 새벽이었다. 어둠에 익숙해질 즈음 방안을 둘러보니 성길이가 옷을 챙겨 입고 있었다.

“어디 나가니?”

성길이는 내가 아직 자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당황하는 눈치였다.

“응? 응. 미안해 깨워서. 운동 좀 하러나갈려고…”

“응… 같이 갈까?”

“아냐. 형 피곤한데. 피곤한데 더 자.”

성길이가 만류했지만 성길이의 그런 모습을 보니 최근 며칠간 내가 나태해졌다는 생각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아니야. 같이 가자. 뒷산에 갈려고 그러는거지?”

“아… 응. 갈거면 어서 옷입어.”

성길은 할 수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성길이가 아직 서먹한 모양이다. 나는 서랍에서 체육복을 꺼내 입었다. 시계를 보니 6시 20분이었다. 아직 해가 짧은 탓에 이른 아침에도 밖이 어두운 것이었다. 부엌에선 어머니가 아침준비를 하고 계셨다. 운동을 하고 오겠다는 나의 말에 어머니는 말없이 웃으셨다. 밖으로 나오니 아직도 차가운 겨울바람이 목덜미를 서늘하게 감싸고 돌았다.

산에 오르는 동안 우리 둘은 말없이 담배만 피워댔다. 사실 형제라고는 하지만 그리 공통점이 많은 형제는 아니다. 어렸을 적부터 모범생 소리를 들어가며 무난한 학창생활을 보내다 대학에서 학생운동권이 되어버린 나, 중학교 때부터 불량배들과 어울려 다니다 소년원을 갔다 오고 급기야 고교졸업후 강도 짓으로 교도소까지 갔다온 동생….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마지막 종착지는 같았다. 숨막힐 듯한 교도소 생활. 동생은 나보다 한달 먼저 들어가서 한달 먼저 출소했다. 나는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어 피식 웃었다.

뒷산 공원은 널찍하게 터를 닦아 놓고 이런 저런 체육시설을 갖추어놓고 있었다. 배드민턴장에서는 아주머니들이 배드민턴을 치고 있었고 평행봉에서는 중년의 아저씨가 섣부른 힘자랑을 하고 있었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나는 딱히 무슨 운동을 하려고 여기 왔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별달리 할게 없었던 것이다. 동생과 둘이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에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성길이가 어디로 가고 없었다. ‘어디 갔지? 화장실 갔나?’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할 수 없이 나는 벤취에 앉아 담배를 한 대 물어 피웠다. 운동을 하러 나온다는 핑계로 담배만 더 피우게 된 꼴이었다.

담배를 두 대 피우고는 어슬렁거리며 산책로로 천천히 푸드웤을 해보았다. 한 300여 미터를 뛰고는 금방 숨이 차서 멈춰 서서는 심호흡을 쉬었다. 그리고 산아래 펼쳐진 동네경치를 바라보았다. 올망졸망하게 모여 사는 삶들, 고단하고 힘든 삶임에도 무엇 때문에 그리도 삶에 연연하는지….

그때 저기서 누군가가 급히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상당히 곡선이 진 산책로라 발소리만 들릴뿐 주인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발소리의 주인공이 모습을 드러냈다. 성길이었다. 무엇에 쫓기는 듯 급히 뛰어오던 성길이가 나를 보자 놀라서 순간적으로 멈춰 섰다. 잠시 무언가 망설이던 성길이는 나에게 다가오더니 “형 미안하지만 이것 좀 맡아 줘. 그리고 나 모른 척 해.”하고는 작은 상자를 내 체육복 앞에 달린 제법 커다란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들어가기는 했지만 제법 볼록하게 모양이 드러났다. 성길이는 그런 모습을 잠시 바라보더니 다시 저쪽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의 상황인지라 나는 성길이에게 아무런 말도 못한 채 멍하니 뛰어가는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10초뒤에 점퍼차림의 – 새벽 산에 오를 차림으로 어울리지 않는 – 한 사나이가 급히 뛰어오더니 나를 스쳐 산책로 아래 성길이가 도망 – 이 사람을 피해 도망가는 것이었나? – 갔던 쪽으로 급히 뛰어내려갔다.

이른 아침부터 머리가 혼란해졌다. 성길이의 그동안의 행동으로 보아 무언가 잘못된 일을 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나에게 맡긴 이 물건도 좋은 물건을 아닐 것이다. 무엇인지 확인하고 싶었으나 왠지 이런 곳에서 꺼내보기가 두려워졌다. 서둘러 산 아래로 내려왔다.

집으로 가는 길에는 상가밀집지역이 있었다. 이른 아침이라 문을 연 곳은 해장국집 정도였다. 심란한 마음으로 길을 걷다가 문득 똥이 마려웠다. 아침부터 연신 담배를 피운 탓인지 갑작스럽게 배가 살살 아파왔다. 열려있는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 급히 찾아 헤맸다. 큰 길에서 악간 안쪽으로 들어간 해강빌딩이라는 곳에 보니 1층에 화장실 표시가 있었다. 다행히 문이 잠겨 있지 않았다. 화장지도 있었다. 나는 문을 걸어 잠그고 아랫도리를 벗고는 양변기에 앉았다. 똥이 한 무더기 쏟아져 나왔다.

급한 불을 끄고 나니 또다시 체육복 상의 안에 들어있는 상자 생각이 났다. 여기라면 괜찮겠지 하는 생각에 상자를 꺼내들었다. 제법 묵직한 무언가가 들어있었다. 상자를 여니 신문지로 채워져 있는 안쪽에 무언가가 있었다. 신문지를 조심스럽게 끄집어 내고 안쪽을 살펴보았다. 권총이었다! 갑자기 다리가 떨리고 가슴이 뛰었다. ‘성길이 이 녀석이 도대체!’ 도대체 권총으로 무얼 하려고 그랬단 말인가? 권총을 거머쥔 손에는 어느새 땀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가까스로 다시 모인 가족이 이 권총 한 자루 때문에 또다시 산산조각이 날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때였다.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또각 또각 구두소리를 내면서 내가 앉아 있는 화장실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마에선 식은 땀이 흘렀고 나는 급히 권총을 신문지에 다시 싸서 상자속에 집어넣었다. 타일 바닥을 울리는 구두소리는 문 앞에 멈추더니 천천히 문을 똑똑 두드렸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문을 똑똑 두드렸다. 핏줄이 끊어질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

‘아까 성길이를 쫓아가던 그 사나이…’

나의 응답에도 불구하고 문밖에 있는 구두소리는 그 자리에 서있는 듯 했다. 조그마한 화장실 안에 상자를 숨길 곳이 없나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화장실 안에는 휴지통밖에 없었다. 어차피 그 곳에 숨겨봤자 1분이면 찾아낼 것이다. 나의 긴장감과는 상관없이 또다시 똥 한무더기가 창자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 소리마저 나의 가슴을 울렸다. 구두소리는 여전히 밖에 서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또다시 구두소리가 문을 두드렸다. ‘똑 똑 똑’ 세 번. 이제는 세 번을 두드렸다. 나는 잠시 시차를 두고 다시 문을 세 번 두드렸다. ‘똑 똑 똑’ 그 녀석에게 들키지 않도록 상자를 체육복 안쪽에 꼭 품어 안고 있었다. 또다시 의식이 정지되는 교도소 안에는 들어가고 싶지 않다. 세월이 멈춰버리는 그 곳으로… 놀고먹어도 바깥 세상의 공기를 마시며 놀고 싶다. 또다시 똥 한 무더기…

구두소리는 무언가 시간을 가지려는 듯 바깥으로 예의 명징한 구두소리를 내며 나갔다. 나는 서둘러 화장지를 밑을 닦아냈다. ‘이틈에 도망가자.’ 밑을 다 닦아내고 생각해보니 그것도 헛일이었다. 그 녀석은 건물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아니면 화장실 앞에서라도… 이곳에 권총을 숨겨놓고 나가봤자 결국 그녀석이 나를 끌고 들어와서는 권총을 찾아낼 것이다. 변기를 부숴서라도 권총을 그 속에 쳐넣고 싶었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니 하얀 타일이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최영창>

성호가 출소하는 날이다. 퇴직 이후 나태해진 나는 여전히 잠자리를 뭉개고 있었다. 아내가 안방에 들어오더니 어서 나가자고 한다. 혼자 다녀오라고 했다. 그녀는 어떻게 아들이 출소하는데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냐고 항변했다. 그러나 성길이가 나올 때는 그렇지 않았다. 성길이는 한달 전에 출소했지만 나나 내 아내나 아무도 마중을 나가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도 성길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할 수 없이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집밖으로 나섰다. 성길이가 방에서 나와 아내에게 ‘나도 같이 갈까요?’라고 물었다. 아내는 ‘거길 뭐하러 또 가?’하며 거절했다. 성길이는 실망감인지 안도감인지 모를 묘한 표정을 지으면서 우리를 배웅했다.

차를 몰고 가면서 이런 저런 잡생각이 들었다. 퇴출당한 가장에 감옥 갔다온 두 아들…. 평범한 중산층 가정인 것 같던 나의 가정이 이토록 부끄러운 꼬리표를 달 줄이야… 두 아들을 생각해보았다. 모범생과 문제아라는 양극단의 길을 걷던 두 녀석의 종착역은 감옥….

사실 나는 모범생이었던 성호보다는 문제아였던 성길이 녀석이 더 눈에 밟힌다. 성호는 차가운 머리를 가지고 있는 녀석이고 성길이는 뜨거운 가슴을 지니고 있는 녀석이다. 둘은 서로가 가진 장점을 가지진 못했다. 여하튼 성길이는 그러한 점에서 나를 닮았다. 나역시 머리는 그렇게 뛰어나지 못하지만 다혈질적인 성격과 뚝심으로 건설회사의 중역자리까지 꿰차고 앉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그놈의 뚝심이 약삭빠른 잔머리를 당해내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성길이 녀석에게 살갑게 대하지를 못한다. 그 녀석 역시 나와 같은 꼴이 될까 두려워서….

교도소문이 열리며 성호가 초췌한 모습으로 걸어나왔다. 졸업을 한 학기 앞에 두고 저지른 하찮은 시위 때문에 3년의 시간을 저당 잡힌 불쌍한 인생이다. 아내는 급히 아들 녀석에게 쫓아가 등을 어루만져 준다. 정말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저런 애정을 성길이에게 한번이라도 내비쳤더라면… 어찌 보면 그건 비단 아내만의 잘못도 아닐 것이다. 누굴 탓할 일도 아니다.

집에 돌아온 아들 녀석들을 모아놓고 퇴직 소식을 알리는 나의 마음은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그 동안 나름대로 지켜오던 가장으로서의 권위가 한꺼번에 무너져버리는 순간이었다. 내 나이 아직 쉰셋 이제 한창 일할 맛을 익혀 가는 시기인데 갑자기 불어닥친 경제한파가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이다. 나갈 녀석이 없으면 차라리 내가 나가겠다고 호기롭게 외치던 그 순간…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난 슬며시 화장실로 피해버리고 싶다.

성호가 집에 돌아온 며칠간 나는 여전히 싸돌아다니는 성길이와는 달리 집에만 있는 성호와 눈을 마주치기 싫어서 부지런히 밖으로 돌아다녔다. 핑계는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알아보러 다닌다는 것이었지만 막상 나와보면 막막했다. 어찌 보면 직장이라는 온상속에서만 자라왔던 나… 세상에 내팽겨지고 보니 난 그야말로 걸음마를 시작하려는 아기에 불과했다.

어느 날 새벽 선잠이 깨어서 뒤척이고 있는데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성호와 성길이가 아침운동을 하러 나간다는 것이었다. 눈을 감은 채 가만히 미소지었다. 언제나 물과 기름처럼 부유하는 두 녀석이 같이 운동을 나간다니 슬며시 흐뭇해졌다. 몸을 일으켜 담배를 한 대 물어 피웠다. 긴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결국 가장으로서의 할 도리를 할 때 가족의 평화가 지켜진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성길이에게도 좀 더 살갑게 대해주리라.’ 약간은 낯간지러운 다짐을 해보며 일어나 옷을 챙겨 입었다. 부지런한 새가 벌레를 잡는다고 새벽공기라도 마시며 돌아다니다 사업하는 친구들을 만나볼 요량이었다.

신작로로 접어들 무렵 갑자기 배가 살살 아파 왔다. ‘아차 집에서 변을 보고 나왔어야 했는데..’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어디 열려 있는 화장실이라도 있는지 하는 생각에 어색한 걸음으로 부지런히 빌딩사이를 헤맸다. 마침 해강빌딩이라는 곳 1층에 화장실 표시가 보였다. 다행히도 문이 열려 있었다. 그러나 들어가 안쪽 문을 두드려보니 벌써 누군가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었다.

아픈 배를 달래보려고 화장실 안을 걸어다녔다. 1분여가 지났지만 아직 안쪽에 있는 사람이 나올 기색을 하지 않았다. 다시 한번 문을 두드려 보았다. 또다시 아직 해결이 안됐다는 응답이 들려왔다. ‘할 수 없지.’ 서둘러 문을 나서 다른 화장실을 찾아 헤맸다.

<최성길>

오늘은 형이 출소하는 날이다. 방에 누워 팔베개를 베고 있자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엄마도 엥간히 속썩겠네. 자식 둘이 모두 별을 차다니….’

밖에서 인기척이 난다. 형을 마중 나가는 모양이다. 내가 출소할 때에는 아무도 마중 나오지 않았다. 난 아무렇지도 않은 듯 터벅터벅 집으로 걸어왔다. 집으로 들어서서도 두분 중 누구 하나 따뜻한 말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을 살얼음처럼 지냈다. ‘살얼음 가족’.

그게 싫어서 바깥으로 부지런히 싸돌아 다녔다. 그렇지만 전에 어울리던 녀석들은 만나고 싶지 않았다. 하루종일 만화방에 가서 정말 신물나도록 만화책만 보았다. 나중엔 술이 사람을 먹는다고 만화책이 날 보는 것만 같았다. 밖으로 나와도 만화속 인물들이 내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는 듯 했다.

그러기를 이십일 여… 아버지에게서 수상한 점을 발견했다. 회사에서 잘렸다는 것이다. 왠지 집안이 서먹한 분위기 더니 그것 때문이었나 보다. 돈버는 재주가 없었는지 회사중역까지 했다는 양반이 24평짜리 단독주택이 재산의 전부다. 아직 살아갈 날이 창창한 네 사람이 뭘 먹고산단 말인가? 왜 빌어먹을 IMF가 터져서 이렇게 못사는 사람만 고통받아야 하나? 하는 알량한 생각 때문에 만화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밖에서 초인종이 울려 나는 마당까지 나가 문을 따줬다. 형이 문 앞에 서있었다. 어색한 웃음을 짓더니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손을 들어 악수를 했다. 철들고는 제대로 대화도 나누지 않은 형… 그렇지만 나는 형을 좋아한다. 그리고 자랑스러워한다. 담배 피며 애들 푼돈을 뺏던 중학교 시절 나는 전교1등을 하는 형의 존재를 친구들에게 부각시키며 나도 맘만 먹으면 1등은 일도 아니라는 허풍을 떨었다.

형이 명문대에 합격하던 그날 나는 친구들을 불러내어 실컷 술을 먹였다. 마치 내가 합격이라도 한 듯이… 그러나 형이 감빵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어머니로부터 들은 그날 난 감빵으로 돌아와 소리 없이 울었다.

그 뒤로 아버지가 들어오셨다. 한때는 공포의 대상이었던 아버지… 나의 철없는 행동에 매를 드셨지만 난 절대 그분이 감정을 가지고 매질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분은 과묵한 성격 때문에 내게 따뜻하게 대해주지 못할 따름인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 ‘왜 마중을 나오지 않았느냐’는 나의 볼멘 소리에 말없이 눈가에 물기를 닦아내며 밥을 차려주셨던 어머니…

이 가족을 내가 살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또다시 뿔뿔이 흩어지고 말 것이다. 형이 돌아온 며칠동안 이런 저런 궁리를 해보았다. 결국 배워먹은 짓이 그 짓이라고 일확천금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이 빌어먹을 세상에 무슨 수로 돈을 모은단 말인가? 똥같은 돈이 가득 들어있는 은행을 털 수밖에 없었다.

전에 안면이 있던 녀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총을 구해달라고 부탁했다. 녀석에게 이틀 후에 연락이 왔다. 동네 뒷산으로 새벽에 나오라는 것이었다. 다음날 새벽 형을 깨우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옷을 챙겨 입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형이 나에게 말을 건넸다.

“어디 나가니?”

‘빌어먹을…’

“응? 응. 미안해 깨워서. 운동 좀 하러나갈려고…”

“응… 같이 갈까?”

“아냐. 형 피곤한데. 피곤한데 더 자.”

나는 만류했지만 형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야. 같이 가자. 뒷산에 갈려고 그러는거지?”

“아… 응. 갈거면 어서 옷입어.”

산으로 올라오는 도중 우린 아무 말 없이 담배만 피워댔다. 철없이 따라 온 형이 야속했다. 뒷산 공터에 다다르니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형 나 화장실 좀”하고 말하려는데 형은 내 말을 못들은 눈치였다. 그래서 몰래 약속장소로 향했다. 공터 위 비탈진 곳에 서있는 비석 옆이 약속장소였다.

그 녀석은 나를 보더니 피식 웃으면서 상자를 건넸다. 우린 아무 말 없이 서있었다. 상자안을 열어 신문뭉치를 헤쳐보니 검은 총대가리가 보였다. 다음 순간 수상한 기척이 느껴져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무 뒤로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이 자식이 짭새들한테 뒤나 밟히고 다녀?”

낮게 그 녀석에게 소리치자 그 녀석 역시 적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반대방향으로 튀었다. 얼른 공터로 뛰어내려왔다. 점퍼 차림의 짭새 한 마리가 내 뒤를 쫓고 있었다. 산책로 쪽으로 급히 뛰었다. 저쪽에 사람이 한명 서있었다. 가만 보니 형이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았다.

‘형까지 이일에 끼어들게 해서는 안되는데.’

‘그렇지만 내가 계속 이걸 가지고 있으면?’

나는 형에게로 급히 다가갔다.

“형 미안하지만 이것 좀 맡아 줘. 그리고 나 모른 척 해.”

형은 어안이 벙벙한지 아무 말도 않은 채 엉거주춤 서있었다. 형의 손에 상자를 쥐어주려다 형의 체육복 상의 주머니가 제법 커보여 그곳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는 형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고 다시 산 아래로 뛰어갔다.

****

1998년 12월 14일 오전 7시 15분 최성호는 아직 해강빌딩의 화장실에서 벌벌 떨고 있었고 최영창은 바지 안에 똥을 지리고 말았고 최성길은 뒤쫓아오던 형사의 배를 가지고 있던 재크나이프로 그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유럽의 아이디어

셋째, 정부는 국제통화기구에 더 많은 돈을 적립하는 것에 동의하여야 한다. 동시다발의 금융위기가 동유럽, 아시아, 남미 등에서 발생한다면 이 경기침체는 새롭고 소름끼치는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다. 기금의 현재 금액은 분명히 부적절하다. SDRs(특별인출권)의 – IMF의 고유 적립계정 – 대규모 발행의 아이디어는 훌륭한 아이디어다. 아시아의 지분을 늘리고 유럽의 지분을 낮추는 투표비중의 변화는 불가피한 동시에 바람직하다.
Third, governments must agree to put aside more money for the International Monetary Fund. The recession would enter a new, dreadful chapter if a rash of financial crises broke out across eastern Europe, Asia or South America. The fund’s current funds are clearly inadequate. The idea of a large issuance of SDRs – the IMF’s own reserve asset – is an excellent one. Changes in voting-weights, to raise Asia’s share and lower Europe’s, are also both inevitable and desirable.[A survival plan for global capitalism, Financial Times, 2009. 3. 8.]

두 가지 생각이 드는데 영국신문이니 당연히 달러 기축통화의 현 체제보다는 IMF의 권한 강화 – 유로의 권한 강화는 턱도 없는 소리니까 -를 주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 와중에도 아시아의 발언권을 강화하여야 한다는 소리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유럽의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전의 역사가 증명하듯이 분명한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결국 패권주의와 기축통화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고, 그런 면에서 SDRs 는 바람직한 세계통화 체계이긴 하나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껍데기나 다름없다는 사실이다. 아시아의 발언권을 강화하자는 이야기도 그다지 기분 좋은 소리가 아니다. 글에서 말하는 아시아는 실은 아시아가 아닌 중국과 일본을 말하는 것일 터이고 패권을 인정하겠다는 소리가 아니라 소방수 역할이나 해달라는 소리니 말이다.

세계경제 성장률 및 2009년 전망

세계경제 성장률 및 IMF가 전망하고 있는 2009년 성장추이다.

자료 : “The Global Slumpometer,” The Economist, 2008.11.6

전 세계적으로 보자면 전후 가장 혹독한 1%대의 성장률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이전에도 1%대의 성장률을 보이던 시절이 있긴 했지만 그나마 그 시기는 여전히 선진국에서의 성장이 한계에 부닥쳐 정체되어서 라기보다는 석유 값의 폭등이라는 외부변수에 기인한 측면이 강하다. 그리고 선진국 내부에서는 여전히 플러스 성장이 지속되었다. 이번에 닥쳐올 전 세계의 실물경제 침체는 이전과는 다르게 선진국의 성장률이 예외 없이 마이너스로 추락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2차 대전 이후 최초라고 하니 전후세대가 인구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상황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사상 초유의 사태라 봐도 무방할 것 같다. 그나마 1%대의 성장률을 유지하리라는 예측은 개도권에서 성장률을 보충해주기 때문이다. 개도권은 그나마 나은 사정이라고 개도권 소속인 우리나라가 좋아할 일은 별로 아니다. 거개가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받침목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내년 중국의 성장률을 8%대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중국에게는 실질적인 제로성장이나 마찬가지인 6%대로도 예측하고 있다. 여하튼 중국이 내년을 어떻게 견뎌내는 가가 전 세계 실물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러한 우려를 잘 알고 있는 중국 당국 역시 엄청난 자원을 동원하여 경제성장을 촉진시키려 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궁금증이 하나 생긴다. 등소평이 개방경제를 실시하지 않았다면 과연 지금 전 세계 자본주의 지형은 어떻게 발전하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