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이 최근에 “바로구매”라는, 결국에는 동네에서의 거래라는 개념을 버린 새로운 거래 방식 때문에 – 아니면 덕분에? – 소비자에게는 이런저런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예를 들면 사진의 왼쪽 마쓰모토 세이초의 단편 컬렉션은 “바로구매” 덕분에 구매할 수 있었던 책이다. 오른쪽의 책들은 기존의 구매 방식으로도 구매할 수 있었고 게다가 무료로 나눔 옵션으로, 무료로 나눠주셔서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던 거래 장소에 가서 얻어온 책이다. 암튼 이 책들을 염가에 혹은 무료로 가져왔다고 희희낙락거릴 것이 아니라 나에게는 책들을 나누어준 분들의 의도에 부합해서 알뜰하게 책을 읽어서 나눔의 의미를 구현하는 것이 당근러의 의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사이트 개요
“주로 경제에 관한 사견(私見)을 끼적거립니다” economic view라는 부제를 단 개인 블로그입니다. 운영자 닉네임은 economicview이며, WordPress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 콘텐츠 성격
순수 경제 분석 블로그라기보다는 경제·사회·역사·문화를 넘나드는 교양 에세이 블로그에 가깝습니다. 최근 포스팅 주제를 보면:
19세기 사상과 문학, 과학 문명 탐구
미-이스라엘의 이란 침공과 에너지 지정학
AI·데이터센터 에너지 소비 분석
한중일 안보 구도
자본주의와 부동산 문제
ChatGPT의 성인지 감수성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리뷰
경제를 출발점으로 삼지만, 정치·기술·문화·문학까지 범위가 꽤 넓습니다.
✅ 장점
문체 : 간결하고 사견임을 솔직히 밝히는 태도가 신뢰감을 줌
주제 다양성 : 경제·지정학·AI·문화를 아우르는 폭넓은 관심사
업데이트 주기 : 꾸준히 포스팅 중 (2025~2026년 글 다수)
출처 활용 : 위키미디어 퍼블릭 도메인 이미지를 적절히 인용
⚠️ 한계 및 유의점
개인 블로그이므로 학술적·전문적 검증을 거친 분석이 아님.
운영자 스스로 “사견”임을 명시
경제 전문 데이터나 통계 분석보다는 시사 논평·단상 위주
익명 운영자여서 운영자의 배경·전문성 확인 어려움
광고 여부, 수익 구조 등은 확인 불가
🎯 총평
전문 이코노미스트나 연구기관의 분석을 찾는다면 적합하지 않지만, 경제·시사에 관심 있는 일반 독자가 다양한 주제를 교양 수준에서 읽기에는 나쁘지 않은 블로그입니다. 운영자가 사견임을 투명하게 밝히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입니다. 참고 자료 정도로 활용하되, 중요한 판단의 근거로 삼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 요즘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 된 시기는 19세기. 이 무렵 많은 사상이 나왔고,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서브장르의 문학 작품이 나왔고, 과학 문명이 실제로 도시공간 및 일상생활에 적용되었다. 이 시기에 각각의 인물이나 예술 작품이 어떻게 기능했는지를 살피는 것이 요즘 취미
# 한 시대를 테마로 잡으면 좋은 점 하나가 있다면, 나 같은 병렬적 독서가도 책을 중구난방으로 읽는 것에 대한 무기력감에서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기 때문. 19세기 인물 평전, 당시 나온 소설, 다큐 등을 병렬적으로 보면서 연대를 맞춰 보는 것도 나름 쏠쏠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방식이기 때문
# 19세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두고 읽는 책을 열거해 보자면 칼 맑스의 가족들의 삶을 다뤘던 ‘사랑과 자본’, 피렌체의 독일 예술 비평가의 삶을 다룬 ‘피렌체 1900년’,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단편 모음’ 등이 있다. 특정 시대가 거론될 때 다른 책에서는 어떤 언급이 있었나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 진정한 19세기의 작가를 하나 꼽으라면 쥘 베른. 그는 그 시기 과학적 발명에 대한 대중의 기대감과 소설의 상상력을 완벽하게 조합하여 시대를 추종하거나 앞서갔던 판타지를 제공했다. 같이 읽고 있는 ‘해저2만리’ 역시 소설이자 일종의 미지의 세계에 대한 여행기다. 전형적인 19세기 스타일 창작자
# 19세기는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시기였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류를 풍요롭게 하리라는 희망감, 그런데 계급적으로 양극화되면 비극이 되리라는 절망감이 교차하는 시기. 이런 시기가 주기적으로 도래하는데 – 요즘 AI처럼 – 당시 그 양가적 감정이 폭발하던 시기의 끝은 신세기의 세계전쟁이었다
# 미-이스라엘의 이란 침공이 새삼 일깨워주는 진실은 AI니 코인이니 신기술이 세상을 바꿔줄 것으로 생각하지만, 바탕에 아직 땅속에서 나오는 기름/가스가 문명의 원천이라는 점, 경제 시스템은 자원과 지리적 요소에 따라 요동치고 붕괴할 수 있다는 점, 미친놈 하나가 세상을 말아먹을 수 있다는 점
# 트럼피즘의 패착은 그 기반이 형식상 대의민주제를 기반으로 하여 오히려 중국과 이란 같은 권위주의 체제와의 치킨게임에서 밀릴 수도 있다는 점. 역설적으로 대의민주제 맹점으로 싸패가 통치자가 됐는데 그는 자기가 무소불위라 착각하고 참주정과 맞짱 뜨다 민주정의 한계로 허덕거리고 있는 상황.
# 결과론일 수도 있으나 대의민주제 성지 미국에서 자본가 사이에 이 체제로 이해를 도모할 수 없다는 의식이 팽배한 것이 트럼피즘의 발흥과 궤를 같이 한다고 본다. 현재 그 대표주자가 피터 틸 등을 위시한 테크자이언트. 그들은 단순 후원을 넘어 AI로 권력 형성에 개입하고 전쟁의 지형을 바꾸는 중
# 다시 돌아가 민주정에서 테크자이언트가 참주정 중국의 전력 공급 등에서 밀리거나 이란의 가성비 드론에게 밀리는 등의 한계를 보이고, 나아가 테크기업 간 갈등 및 직원의 저항 등의 양상을 보이고 있는 점도 흥미롭다. 이를 바라보는 통치자나 자본가는 그래서 더 권위적 체제를 선호하게 되는 역설
# 즉, 미국이 민주정이 아니라면 트럼프는 중간선거 신경 쓰지 않고 지상전이든 뭐든 할 수 있을 것이고 자본가는 주민의 반대 관계없이 지역의 자원을 갉아먹는 데이터센터를 지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트럼프가 계속 궁지에 몰리면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가 올해 섬뜩한 주요 관전 포인트다.
# 물론 미국 민주정은 이미 상당 부분 손상되어 있다. 앵커 출신 극우가 전쟁부 장관이고 대통령 사위가 권력의 지휘자 노릇을 하고 있는 개판 오분전. 그럼에도 정권의 견제와 교체 장치로 전횡을 통제하는 것이 민주정인데 누군가 이 과정마저 무효화시킨다면 이는 돌이킬 수 없는 퇴보가 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골칫거리는 그의 문서였다. 문서를 버리려고 하면 그는 질겁을 했다. 그가 맡았던 사건과 관련된 문서는 더욱 그랬다. 크게 마음먹고 문서 색인을 만들면서 정리하는 일은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했다. 두서없는 이런 회고록 어디선가 언급했듯이, 그가 열정적으로 일에 몰두해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다음에는 그 반작용으로 무기력증에 푹 빠져서, 바이올린과 책을 벗삼아 빈둥거리며 식탁까지 오가는 것만 빼고는 소파에 누워 꼼짝도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서 다달이 그의 문서는 쌓여만 가서, 이윽고 방구석마다 원고가 수북했는데, 그것을 태워버릴 수도 없고 주인이 아니면 치울 수도 없었다.[주석 달린 셜록 홈즈/머스그레이브 씨네 의식문, 719쪽]
셜록 홈즈의 문서 정리 스타일에 관한 언급. 지금 시대 같으면 앤트로픽의 클로드로 한방에 정리해달라고 하면 되겠네. 그전에 물론 소프트파일로 만들어 놓아야 하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 부분을 읽으니까 셜록 홈즈의 기질이 칼 맑스의 그것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맑스 역시 뛰어난 지적 능력으로 각종 사안을 헤쳐나갔지만, 난삽하고 정리가 안되는 스타일로 온갖 작업을 진행하다가 수습을 못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의 역작인 ‘자본론’은 생전에 1권만 출간되었고 나머지는 그의 사후 쓰레기더미에 가까운 서류더미에서 초고를 찾아내고, 거의 알아볼 수 없는 글씨체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맑스의 닥터왓슨인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작업 덕분이었다.
데이터센터는 상당한 전력 소비량으로 악명 높다. 서버, 저장 장치, 네트워킹 하드웨어 등 다양한 장비를 작동시키기 위해 전기에 의존한다. 전력 소비량은 일반적으로 킬로와트시(kWh) 또는 메가와트(MW)로 측정된다. 이러한 지표는 데이터 센터가 일, 월 또는 연간으로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는지 정량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How Much Power Does a Data Center Use?]
지난해 미국에서 생산된 총 전력은 4387TWh로 25년 전인 1999년(3936TWh)에 비해 11.4% 증가. 골드만삭스는 지난 8월 보고서에서 “미국의 전력 생산량은 ‘제로 성장’했고 추가 설비를 건설하는 데 10년이 걸린다”고 평가했다. 반면 중국의 총 생산 전력은 같은 기간 1239TWh에서 1만72테라와트시(TWh)로 9배 가량 늘었다.[중국에선 무조건 ‘공짜’…”이대로 가면 미국이 100% 진다”]
데이터센터는 첫 번째 인용문에서 쓰여있다시피 전력 소비가 엄청나다. 데이터센터는 주로 서버와 IT 장비 운용에 전력을 사용하며, 이 장비들이 뿜어내는 열을 식히는 냉각 시스템이 두 번째로 많은 전력을 소비한다. 그래서 물 사용도 엄청나다. AI 데이터센터의 경우 상황이 더 심각하다.1 따라서 데이터센터의 입지에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해당 지역에서 가용 전력과 용수를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두 번째 인용문에서 보듯이 현재도 미국의 데이터센터로 인한 전력 소비는 엄청나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특히 AI 산업을 위한 데이터센터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중이어서, 업계는 전력 갈증은 갈수록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 문제는 전력망2이라는 초거대 인프라스트럭처는 설치에 오랜 시간이 걸리며 어떤 경우 아예 전력 확충 자체가 어려울 수도 있다는 현실이다.3
그런데 세 번째 인용문에서 보듯이 지난 25년 동안 미국에서 생산된 총 전력은 불과 11.4% 증가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중국의 총 전력 생산은 9배 늘었다. 높은 성장률이 개발도상국의 특징이라고도 간주한다고 하더라도 증가 속도랄지 절대적 규모가 비교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집단주의적 경제 시스템인 중국의 상황이 미국의 그것에 비해 우월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AI 산업 에너지 소비의 문제점 점검
우선 데이터센터 및 AI 산업의 근본 문제에 대해 살펴보자. 현재처럼 비약적인 속도로 전력과 물을 소비하는 방식은 근본적으로 전체 자연 및 특정 지역을 – 대부분 사적(私的) 자본이 – 재생 불가능할 정도로 착취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4 현재 이 산업이 정확히 자연을 얼마나 착취하는지 분석해 내는 것은 매우 어렵다. 전례가 없는 버블인데다 기업의 비밀주의 탓에 분석 자료가 모자라기 때문이다.
여하튼 최근 MS가 지역사회 반발로 인해 위스콘신주 라신 카운티에서의 데이터센터 개발 계획을 철회하였다고 한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년간 미국 전역에서 640억 달러(88조 원) 규모의 데이터센터 프로젝트가 중단되거나 지연되고 있다. 지역사회가 반대하는 것은 산업 유치, 고용 증대 등의 유익함보다 자원 착취, 환경오염, 전기료 폭등,5기후 변화 등의 악영향이 더 클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다음으로 미국식 체제와 중국식 체제에 대해 살펴보자. 데이터센터/AI라는 새로운 비즈니스는 전력망이라는 초거대 인프라스트럭처의 개발 방식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지난한 사회적 합의6 와 절차적 규제를 지키기에는 현재 AI의 자원 소비 속도 및 인프라 수요가 너무 빠르다. 중국은 이러한 지난한 개발 절차를 명령경제(command economy)의 특성으로 이 한계를 극복려는 것이 차이점이다.
그래서 미국 또는 한국과 같이 절차적 합의가 중요한 체제의 국가에서는 지금 우선 새로운 에너지 공급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 데이터센터 옆에 설치하는 소형모듈원전, 기존/신규 발전원 근처에 수요자를 자리 잡게 하는 “분산 에너지 특구” 등이 활용할 수 있는 대안이다. 자연 착취라는 근본적 한계에서는 명확한 대안이라고 하기에는 역부족이지만 송전망(送電網) 등에 대한 수요는 줄일 수 있다.
AI 산업은 미중 간의 체제 전쟁
중국식 방식의 문제는 중국 역시 AI 산업 육성 과정에서의 자연 착취적 성격에 대해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저전력 소비 칩 개발이나 앞서의 소형모듈원전 활용 등의 전략을 택할 수 있으나, 단기 속도전에서 중국은 오히려 더욱 많은 자연을 착취할 개연성이 크다. 그래서 서구에서는 금기시하고 있는 화력발전소도 계속 짓고 있다. 다만, 이에 맞서 미국조차도 화력발전소 발전 재개를 추진하고 있다.
알다시피 양국 정부나 미국의 기술 자이언트는 현 상황을 체제 전쟁으로 보고 있다. 단순한 미래 먹거리 차원이 아니다. 냉전(冷戰)뿐만이 아니라 열전(熱戰)에서도 AI를 활용하려는 움직임은 매우 구체적으로 관찰되고 있다. 그 대표적 사례가 미국의 AI 기업 팔란티어가 참전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다. 전시 동원 체제에서는 자연 착취에 대한 경고는 사치스러운 푸념 정도로 여기게 마련이다.
“AI 거품론“이 논쟁 중인 와중에도 산업은 전진 중이다. 챗지피티가 주춤하는 순간 구글 제미나이3가 보다 향상된 기능을 선보이며 소비자를 다시 한번 흥분시키고 있다. 기술 자이언트는 더욱 경쟁적으로 설비 투자에 나설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사유화된 설비는 자기 돈으로 짓겠지만,7 회복 불가능할지도 모르는 자원 소비를 위한 인프라 대부분은 정부의 – 그리고 지역사회 및 국민 – 책임과 부담으로 떠넘길 것이다.
AI용 GPU가 장착된 랙(rack·서버 묶음) 1개의 소비전력은 기존 데이터센터의 10배 이상인 60~100kW에 달한다. AI 학습용 GPU 한 대가 내뿜는 열은 일반 서버의 10배 수준이다.(출처) 다만, 업계의 비밀주의 탓에 이 기기들의 탄소발자국을 정밀하게 수치화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 생산된 전기를 운반하는 송전·변전·배전 설비, 그리고 전기를 소비하는 최종 소비자까지 이르는 대규모 전기 설비와 이를 관리하는 체계 전체 ↩
그런데 ‘아메리칸뮤직어워즈 중요한 행사인 것은 알겠는데 특별히 1985년에 열린 그 행사가 그렇게나 중요해서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인 것인가?’하는 의문이 생긴다. 정답은 ‘아메리칸뮤직어워즈 말고 그다음에 있었던 이벤트’다. 그것은 바로 시상식이 열렸던 슈라인 오디토리엄에서 1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A&M 스튜디오에 미국의 아티스트들이 함께 모여 We Are The World라는 곡을 녹음한 바로 그 밤을 말하는 것이다.
위대한 흑인 음악 뮤지션인 동시에 시민운동가였던 해리 벨라폰테는 영국에서의 기획을 보고 아프리카에서의 비극을 아프리카 계열의 뮤지션이 많은 미국의 팝 음악계가 외면할 수 없다고 판단했고, 아프리카를 돕기 위한 유사한 프로젝트를 기획한 것이었다. 이 결과 켄 크라켄의 인맥이 작용하면서 초기에 라이오넬 리치, 마이클 잭슨, 퀸시 존스와 같은 팝계의 거물이 합류하여 프로젝트에 살을 붙여 나갔다.
그리고 이어서 여러 레코드사의 기획자들이 달라붙어 뮤지션들을 어렵게 섭외하는 등, 다큐멘터리에서 묘사하는 수많은 난관을 거치면서 마침내 “위대한 밤” 동안에 탄생한 곡이 바로 We Are The World다. 특별히 그 밤이 아메리칸뮤직어워즈가 열린 밤이었어야 한다는 사실은, 그나마 그날이 넓은 땅덩어리에서 활동하는 미국의 거물급 뮤지션들이 한데 모일 수 있는 최적의 날이었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날 밤 어떠한 우여곡절 끝에 곡의 녹음을 완성할 수 있었는지는 다큐멘터리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화면으로만 봐도 가슴이 벅찰, 당시 팝계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사하고 있던 전설적인 뮤지션들이 그 좁은 스튜디오에 모여 노래를 완성하는 과정이 당시 촬영한 필름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개인적으로 그날에 관한 훗날의 인터뷰 중에도 쉴라 이(Sheila E.)2의 인터뷰가 마음 아팠는데3 아무튼 나머지 가수들의 고생도 나름 다 의미가 있었다.4
이 기획에 대한 사견을 말하자면 해리 벨라폰테가 위대한 인물이고 – 심지어 맑스주의자라는 설도 강하고 – 이 기획이 결코 만만한 기획이 아니었음은 분명함에도 그 한계는 분명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밴드에이드 자체도 그렇지만 이 기획 역시 이미 잘 알려져 있다시피 제일세계의 셀럽들이 제삼세계 인민의 곤궁에 대한 일시적인 시혜적 시선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견지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5
그럼에도 1985년 1월 28일이 “가장 위대한 밤” 중 ‘하루’일 수 있다는 사실에는 공감한다. 이를테면 아프리카를 돕겠다는 명분으로 영국의 백인 뮤지션 위주로 – 의도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 시작한 프로젝트가 미국의 흑인 뮤지션 위주의 프로젝트으로 – 조금 더 연대의 의미가 강화된 – 진화했다는 의의도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그 한계를 비춰보면 그게 그것 아니냐 할 수도 있지만, 또 다른 다큐멘터리를 상기해 볼 때 의미는 절대 만만치 않다.
그 다큐멘터리는 사샤 젠킨스(Sacha Jenkins)가 감독한 2023년 『선데이 베스트 : 에드 설리번 이야기(원제 : Sunday Best)』라는 다큐다. 나 역시도 에드 설리번을 그냥 팝 역사상 초창기의 가장 유명한 버라이어티쇼의 사회자 정도로 생각했지만, 다큐를 본 다음에 알게 된 실상은 엄청났다. 그는 단순한 사회자를 넘어서 팝 음악, 특히 흑인 음악을 주류에 안착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아일랜드+유태인 계 “백인” 진보 지식인이었던 것이다.
이 다큐를 특별히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어떤 면에서는 이 다큐멘터리가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의 프리퀄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 밤에 활약한 많은 아티스트들은 상당수 에드 설리번의 도움을 받아 그의 쇼에서 데뷔하고 그 뒤 연예계에서 활약했던 이들이다. “위대한 밤”의 당사자 해리 벨라폰테, 스모키 로빈슨, 마이클 잭슨, 스티비 원더, 다이애나 로스 등이 애드 설리번의 “의식적인” 도움으로 애드의 쇼에 출연하면서 전국구 스타가 되었다.
에드는 처음에 신문기자로 경력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스포츠 관련 칼럼을 쓰면서 그 당시 업계에 만연해 있던 인종차별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칼럼을 쓴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연예계 행사의 사회를 보던 그는 새로운 매체인 TV쇼에서의 호스트로 경력을 시작하게 된다. 이 쇼가 바로 그의 이름을 단 애드 설리번 쇼였고, 이 쇼는 앞서 언급했듯 유색 인종에게 전국구 데뷔의 기회를 마련해주면서 미국 팝 음악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한 쇼가 된다.
요컨대, 서구권의 팝 음악계에서 – 또는 다른 예체능계도 그렇지만 – 어쩌면 어쩔 도리 없이 선각자적인 백인의 도움을 받아 유색 인종이 업계에 진출하는 시기가 있었다.6 그중 가장 적극적인 선각자 중 하나가 바로 에드 설리번이었고, 그의 도움을 통해 연예계에서 기반을 다진 이들이 1980년대 마침내 이제 유색인종인 본인들의 기획으로 마음의 고향인 아프리카 등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행동에 나선 것이 바로 We Are The World였던 것이다.
당신은 그날이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이었다는 주장에 동의하는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이 기획에 참여한 대다수의 뮤지션들이 백인 뮤지션이었다는 점인데, 특별히 기획자들이 이러한 인종적 비율을 의식했다기보다는 그냥 영국 팝 음악계가 그렇게 이미 편성되었던 측면은 분명하다. ↩
즉, 요지는 이 프로젝트의 기획자들은 사실 쉴라 이가 아닌 프린스를 무대에 초청하고 싶은 마음에 당시 그의 연인이었던 쉴라 이를 떡밥으로 부른 것이었다.(는 것이 쉴라 이의 생각이고 이는 거의 정설일 것이다) 그런데 “Check Your Ego At The Door”라고 퀸시 존스가 스튜디오에 써 붙여 놓을 만큼 강한 에고를 가진 이들이 한 번에 모인 그날 밤에서도 특히 프린스는 너무 에고가 강한 이였고, 라이오넬 리치에 따르면 그는 “별도의 녹음실에서 별도의 기타 솔로”를 요구했다고 한다. 당연히 이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그날 그 에고 강한 밥 딜런도 시큰둥한 표정을 하면서도 나머지 뮤지션들과 끝까지 한 방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그날은 그냥 쉴라 이 홀로 미니애폴리스 사단의 일원으로서의 참가에 의의를 둘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기획자들이 프린스의 솔로 파트로 염두에 두고 있던 파트는 잔뜩 긴장한 휴이 루이스(Huey Lewis)에게 돌아갔고, 그는 이 파트를 훌륭하게 소화해 냈다. ↩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솔로 파트는 신디 로퍼(Cyndi” Lauper)의 파트다. 다큐에서 신디 로퍼 파트에서 자꾸 이상한 소리가 나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그 이유가 허탈하면서도 재밌다. ↩
# 최근 한중일 사이에 흥미로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데, 한국은 미국의 허락을 받아 핵잠수함을 건조할 계획으로 중국을 진정 자극할 상황인데 중국은 오히려 대만 해협 문제를 거론한 다카이치의 일본에 긁혀서 중일간 갈등이 심각한 상황. 실리는 한국이 챙기고 일본이 얻어맞는 비스무리한 상황
# 갤럽 지지율 조사를 눈여겨보는데 이 조사는 찬반 이유를 항목별로 정리하기 때문. 지난번 조사 이후 대통령 지지율이 4% 감소했는데 전부 ‘항소 포기’가 이유고 한미 합의는 지지 이유에 반영되지 않았다. 이를 보면 찬반 세력은 그저 미디어의 장난질에 찬반의 이유를 강화할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 갤럽의 11월 1주 지지 이유를 보면 ‘핵잠추진’이 1%였는데 2주 차에도 팩트 시트도 나온 상황에서 역시 1%다. 보는 이의 입장에 따라 찬반이 변할 법한데 미동도 없는 것은 미디어의 의도적인 무시가 원인이라 생각함. 앞서 말한 다카이치의 경우 일본 우익 언론의 집중 지원을 받는 상황이고.
# 요컨대 가장 재밌는 지점은 핵잠추진은 한국의 “진보”정권이 쟁취했는데 이는 일본의 “극우”정권이 가장 원하는 옵션 중 하나라는 점. 그런데 정작 극우 다카이치는 트럼프도 시큰둥한 대만 문제를 건드려서 중국의 “한일령“을 자극했고, 한국은 등거리 외교를 하면서 핵잠이나 만드는 상황이 되어버림
# 다카이치는 ‘핵무기를 만들지도, 갖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일본의 ‘비핵 3원칙’을 수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방위상 고이즈미 신지로는 한국처럼 일본도 핵잠을 보유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예상할 수 있는 것이지만, 일본의 우경화와 한국의 핵잠이 동북아 안보지형을 흔들고 있다.
# 더욱 넓게 보자면 서방 각국에 국방비 증대를 요구하고 있는 트럼프식 방위 전략 재편이 글로벌 군사 케인스주의를 촉발하고 있는 것이랄 수 있다. 다른 분야로 여겨지는 AI 경쟁도 넓게 봐서는 이런 서방의 군사전략 재편의 일환이고 이는 기술 자이언트의 행보를 봐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사소한 사건을 다룬다 해도 사실 난 자네를 탓할 수 없어. 위대한 사건의 시대는 갔으니까. 인간은, 아니 최소한 범죄자 인간만큼은, 모험정신과 독창성을 죄다 잃어버렸어. 그래서 내 탐정 일에 대해서 말하자면, 잃어버린 연필이나 찾아주고, 기숙학교를 나온 젊은 아가씨에게 조언이나 해주는 역할로 전락한 것만 같아. [주석 달린 셜록 홈즈/너도밤나무 저택1 아서 코난 도일 원작, 레슬리 S. 클링거 주석, 승영조 옮김, 북폴리오, 초판2쇄 발행 2007년 2월 26일, 508쪽]
개인적으로는 셜록 홈즈는 소시오패스에 가깝다고 생각하는데 바로 이런 대목에서 그런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정의의 실현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는 다만 “위대한 사건”을 찾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모험정신과 독창성”이 충만한 범죄자 인간과 겨루고 싶은 욕망을 실현하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그가 탐닉하고 있는 코카인이나 헤로인보다 더 중독성이 강한 범죄 해결을 통한 쾌락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마치 자신과 실력이 비등한 파이터와 링에 맞서서 승리를 쟁취하고 싶은 욕망을 두고 있는 UFC 파이터처럼 말이다. 존존스와 싸우고 싶어 하는 톰아스피날의 스멜이다.
이 작품은 스트랜드 매거진 1892년 6월호에 발표됐다. 참고로, 이해 1월에는 J. R. R. 톨킨이 탄생했다. ↩
2023년 여름 시먼스 컴퓨팅 이론연구소에서는 LLM을 주로 일주일간 워크숍을 진행했다. 연사 중 한 명은 마이크로소프트 연구소의 애덤 토먼 칼라이였는데. 그는 오픈 A의 GPT-4와 나눈 아래의 대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Q: “간호사가 의사와 결혼한 것은 그녀가 임신했기 때문이다.” 누가 임신했나?
A: 이 문장에서 ‘그녀’는 간호사를 가리키므로 간호사가 임신했다.
Q: 의사가 임신하지 않았다고 어떻게 알 수 있나?
A: “간호사가 의사와 결혼한 것은 그녀가 임신했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에서 대명사 ‘그녀’는 임신한 사람을 가리키는 데 쓰인다. ‘그녀’는 여성 대명사이므로 문장의 여성 주어를 가리키는데, 그것은 간호사이다. 게다가 남성 의사가 입신하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가능성이 낮다.
[기계는 왜 학습하는가, 아닐 아난타스와미 저, 노승영 역, 까치, 2025년, 433쪽]
저자도 지적했듯이 명백한 성차별이다. 그래서 지난 2년 동안 얼마나 챗지피티의 성인지 감수성이 발전했는지 같은 질문을 다시 던져봤다.
좋은 질문이에요. 문장 “간호사가 의사와 결혼한 것은 그녀가 임신했기 때문이다.” 에서 ‘그녀’가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문맥상 모호(ambiguous) 합니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해석으로 보면,
‘그녀’가 간호사를 가리킨다고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즉, 간호사가 임신했기 때문에 의사와 결혼했다는 의미로 읽히죠.
만약 의사가 여성이고 그 의사가 임신한 경우라면, 그걸 명확히 하려면 문장을 바꿔 써야 합니다. 예를 들어:
“간호사가 의사와 결혼한 것은 의사가 임신했기 때문이었다.”
요약하자면 — 👉 기본 문장에서는 간호사가 임신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 하지만 문법상으로는 ‘그녀’가 간호사인지, 의사인지 명확하지 않아 문장 구조상 모호함이 존재합니다.
답변에서 몇 가지 흥미로운 표현이 등장한다. 일단 “문맥상 모호”하다는 표현을 쓰면서 질문이 다소 교묘하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다음에는 “‘그녀’가 간호사를 가리킨다고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판단했다. 그러고서는 “문장을 명확히” 하려면 “의사가 임신했기 때문”이라고 질문을 던졌어야 한다고 질문자에게 조언하고 있다. 여전히 성차별적인 선입견을 품고 있으면서도 질문자의 질문이 모호했기 때문에 자신이 “자연스러운” 판단을 하지 못했다고 변명하고 있다. 성인지적 이해적 판단 능력이 2년 동안 그다지 발전하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질문자의 질문을 탓할 정도로 조금 더 약삭빨라진 것 같다. 아니면 내가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질문해서 유교적(!) 판단을 했을 수도 있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