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관세’라는 카드를 흔들며 세계 각국 행정부 수반의 혼을 쏙 빼놓고 있고, 각국의 매스미디어가 이들의 행태를 경쟁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와중에 그가 판을 흔들고 있는 –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는 – 또 다른 분야가 있다. 바로 군비(軍費). 즉, 그가 현재 각국의 군비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좀 이상한 점이 있다. 알려진바 트럼프는 전쟁을 싫어한다고 한다. 철저한 비즈니스맨인 그의 시각에서 전쟁은 가성비가 좋지 않은 비즈니스이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고 미국 군산복합체와의 인연이 그리 많지 않아서라는 분석도 있다.
진실이야 무엇이 되었든 지간에 개인적으로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으려는 정치인이 있다면 이것은 무조건 환영해야할 정치인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다시 돌아가 전쟁을 싫어하는 트럼프인데 왜 군비 경쟁을 촉발한다는 것인가? 요컨대, 그는 전쟁을 싫어한다기보다는 전쟁을 미국의 돈으로 하기는 싫다는 입장에 가깝다. 미국이 고립주의적 전략을 포기한 이후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며 노력 봉사했던 – 실은 달러 패권 유지 등을 위한 비용이었지만 – 시절은 끝났고 ‘이념의 시대’도 끝났다면서 신(新)고립주의 노선을 취하면서 신(新)군비경쟁이 촉발된 것이다.1
트럼프는 유럽에게 더 이상 미국이 희생(?)하지 않을 것이라며 유럽 각국 GDP의 2%를 국방예산으로 쓸 것을 요구하고 있다.2 이는 사실 2006년 나토에서 합의된 사항이지만, 현재까지 이를 이행한 회원국은 전체의 30%에 불과한 상황이다. 그리고 사실 유럽은 이 부분에서 할 말이 없다. 그들은 그동안 국방을 미국에 의존하며 남는 예산을 다른 곳에 전용할 수 있었다. 그 와중에 한국은 GDP의 2.5% 수준3을 국방예산에 쓰고 있었으니 경제적인 관점에서 불공정한 게임이다. 독일이 러시아의 가스에 의존하며 재생에너지 강조하던 페이크가 연상되기도 한다.4
Q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닌 역사학자 애덤 투즈는 2023년 말 프린스턴 대학에서 인류세에 대한 강의를 했는데, 조 바이든 대통령이 “기후 패키지”에 지출을 제안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경제 성장은 여전히 군사 지출에 의해 촉진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A 영국의 위대한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즈는 경기 침체가 올 때마다 정부가 많은 돈을 지출하기만 하면 자본주의 경제가 유지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얻은 것은 “군사적 케인즈주의”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주요 자본주의 국가의 경제는 군사 지출에 크게 의존해 왔습니다. 그들은 예산에 나타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지출합니다. 군대나 무기에 배정된 것만이 아니라 그러한 활동을 지원하는 모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군사 지출은 자본주의에서 성장이라고 불리는 것의 상당 부분을 담당했습니다.[To save the environment, we must end the profit system]
어쨌든 이렇게 트럼프가 촉발한 각국의 ‘군사적 케인즈 주의’는 사실은 모든 분야에서의 대국화(大國化)를 꿈꾸는 중국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기화로 이미 근처의 인접국에서는 진작 시작된 기류이기는 하다.(아래 그래프 참고) 그런데 이러한 기류가 트럼프의 신(新)고립주의 노선 및 러우전쟁에서의 유럽 및 우크라이나 배제 방침이 노골화되면서 한층 심화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동안 유럽이 금과옥조처럼 생각해왔던 ‘자유주의 진영 블록’이 무너지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트럼프는 이미 자유무역 기조를 무너트리면서 이를 예고했다.
By Kaj Tallungs – Own work, CC BY-SA 4.0, Link
그렇다면 궁금한 점은 진정 트럼프는 미국이 2차 대전 이후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며 ‘군사적 케인즈 주의’의 시대를 연 이후에 초당적으로 유지해왔던 군산복합체와의 정경유착의 고리를 이번에 확실하게 끊어내고 각국이 군사적 각자도생의 길을 걷는 시대를 열 것인가 하는 점이다. 분명한 것은 트럼프가 이스라엘에 대해 노골적인 애정을 표하는 것만 봐도 그가 미국 정치의 아웃라이어라 생각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군산복합체가 그가 반역을 꿈꾸는 것을 내버려두리라고 생각하는 것도 순진한 생각이다. 고립주의를 부르짖는 그의 의도(?)와 달리 군비 경쟁이 촉발된 것만 봐도 그렇다.
현재까지의 그의 생각을 조금 가다금어 가늠하자면, 일관된 것은 그의 공공서비스에 대한 거부감이다. 즉, 사람을 죽이는 역할을 할지라도 국방은 엄연한 공공재다. 군산복합체는 이 공공재에 상품을 공급하는 사적재 생산기업이다. 그런데 – 예산 절감이라는 미명하에 – 현재 트럼프는 머스크라는 백정을 활용해 행정부 공공서비스를 도륙하고 있다.5 관세라는 경제적 관념을 비경제적 이념으로 쓰고 있는 트럼프는6 국방도 똑같은 비경제적 이념으로 난도질하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칼럼처럼 현재까지의 그는 그냥 순수하게 권력의 난도질을 통해 발생한 도파민에 취해있는 상태로 보인다.
- 예를 들어 독일이 그동안 철통같이 지켜오던 재정 준칙을 완화하면서까지 국방예산 증액을 예고하자 독일의 방산주가 폭등하고 있다. ↩
- 그리고 일본에는 국방예산을 GDP 대비 3% 증액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는 양날의 검이다. 보통국가화를 꿈꾸고 있는 일본 우익으로서는 반길만한 요구지만, 팍팍한 나라 경제를 생각할 때는 만만치 않은 비용 수준이기 때문이다. ↩
- 그러면서도 트럼프에게 국방예산의 증액, 보다 정확하게는 미국에게 줄 보호비의 증액을 강요받고 있다. ↩
- 로베르트 하베크 독일 부총리 겸 경제·기후보호부 장관은 “독일은 저렴한 러시아산 가스에 의존도가 높은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했는데, 이는 국제법을 경시하고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적으로 간주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대해 의존하는 모델이기도 했다”고 자인했다.(출처) ↩
- 사적재(私的財)를 통한 이윤추구에 충실한 트럼프와 머스크의 눈에는 공공서비스라는 존재 자체가 없어져야 할 잉여물로 여겨지는 것일까? ↩
- 트럼프가 관세를 사랑하는 이유는 미국 제조업을 부활시키고 싶어서도, 정부 재정을 채우고 싶어서도, 캐나다가 미국으로 펜타닐을 밀수하고 있다고 진심으로 믿어서도 아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애걸복걸 매달리게 만들 수 있기 때문(출처) ↩
유럽의 재무장
https://www.youtube.com/live/isY4ajPyeik?si=uqV7QZ8Os4tLxB_A
자본가와 금융 투기꾼들은 민간 산업 기업이 군수 및 무기 주조소로 전환되는 데서 거대한 사업을 기대합니다. 티센크루프, 폭스바겐, 다임러, BMW가 2차 세계 대전 중에 군수에서 돈을 벌었던 것처럼(이전에 히틀러의 집권에 자금을 제공한 후) 그들은 이제 다시 한번 전쟁과 독일의 강대국 정치에 베팅하고 있습니다.
https://www.wsws.org/en/articles/2025/03/25/ouil-m2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