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렬독서가(竝列讀書家)의 푸념

최근에 책을 읽으면서 고민 아닌 고민을 하고 있다. 책도 진득하게 읽지 못하는 주제에 – 책을 읽으면서도 늘 옆에 휴대전화를 끼고 있다 – 읽고 싶은 책은 많아서 다른 책을 펼쳐 읽게 되는 것이다. 소위 요즘 유행하는 표현으로 – 아마 트위터에서만 유행하는 듯 하지만 – “병렬독서”. ‘병렬’과 ‘독서’를 조합한 표현이기에 직관적으로 무슨 의미인지는 대략 짐작할 수 있고, 실제로도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독서 습관’을 일컫는 표현으로 쓰이고 있다. 아무튼 아직 한 단어로 공식적으로 인정되지는 않은 표현이다. 외국에서도 이런 독서습관이 제법 있어서 영미권에서는 Polyreading이 그러한 습관을 의미하는 표현이고, 일본에서는 흔히 ‘쌓아두고 읽는다’고 하여 ‘적독(積読, 츤도쿠)’라고 표현한다고 한다.

어쨌든 병렬독서, 폴리리딩, 츤도쿠 웟에버…. 이런 독서습관이 좋은 습관이든 아니든 개인적으로는 계속 신경 쓰이는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나름 일종의 고답적인(?) 관념으로 ‘뭔가 하나를 제대로 마무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선입견이 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또 한편으로 이런저런 호사가적 호기심 때문에 이 책을 읽다가도 다른 책이 신경 쓰이고 다른 책을 읽다가도 다른 영화가 보고 싶고 그렇게 조금씩 반경을 넓히다보니 어느새 원래 읽던 책은 끝날 기미가 안 보이고 그런 지경에 이른 상황이다. 처음 시작한 책을 끝내야 하는 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문제에 불과함에도 혼자서 찝찝한 – 마치 휴대전화 앱아이콘 오른쪽 상단에 숫자 표시가 남아있는 것을 싫어하는 것처럼 – 그런 상황이다.

요즘 병렬독서 목록 중에서 집중적으로 읽고 있는 책에 대해 잠깐 언급하자면 페르낭 브로델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베른트 뢰크의 「피렌체 1900년」, 윌리엄 L. 샤이러의 「제3제국의 흥망」, 프랭크 허버트의 「듄의 메시아」, 아닐 아난타스와미의 「기계는 왜 학습하는가」, 모리시(Morrissey)의 「Autography」 정도다. – 목록도 계속 이야기하다보면 끝이 없으니 여기서 끊도록 하겠다 – 두서없어 보이는 장르라는 점에서 어릴 적 성적표에 늘 적혀있던 담임선생님의 염려, 즉 ‘주의가 산만한’ 성격이 제대로 드러난 행태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책도 기승전결과 전달하고자 하는 큰 메시지가 있는데 그 와중에 다른 책을 읽으면서 맥락도 끊기며 앞서의 책이 줄 수 있던 감동이 식는 부작용도 우려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킬지도 모를 책을 발견했다. 이 트윗이 소개하는 책인데 일본의 서평가 나가타 노조미(永田希)가 쓴 「적독(積読)이야말로 완전한 독서술이다」라는 책이다. 제목만 봐도 내 두서없는 독서 습관이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고 위로받을 수 있는 – 또는 더 완벽한 적독의 스킬을 배울 수 있는 – 책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책 내용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근본적인 장애물은 내가 일본어를 못한다는 점이다. 한국어 번역본이 소개될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그때까지는 – 또는 번역돼서 출간된다 해도 다른 책 읽느라 읽을 시간이 없을 가능성도 높지만 – 책 제목 자체만으로 나름 내 어수선한 독서습관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산만한 독서가 아예 읽지 않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책을 한 번에 몇 권씩 읽나?

  • 오직 한 권 (100%, 1 Votes)
  • 전혀 안 읽는다 (0%, 0 Votes)
  • 2~5권쯤 (0%, 0 Votes)
  • 무한확장중 ㅜ ㅜ (0%, 0 Votes)

Total Voters: 1

Loading ... Loading ...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