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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할인점 강제휴무에 관한 단상

운전면허증을 그동안 쭉 미루다 올해 땄다. 나랑 별로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세상 살다보면 어떤 일이 생길지 몰라서 느지막이 따게 됐다. 지난 주말 운전연습을 하러 도와줄 친구와 함께 차를 몰고 나갔다. 처음에 좀 버벅거리니까 친구가 바짝 긴장을 하더니 내가 어느 정도 하자 이내 안심하고 초보치고는 잘 한다고 칭찬해줬다. 쫄기는~

친구는 차를 최근에 처분했다. 아이의 학교도 걸어서 갈 수 있는 등 이러저러한 이유에서였다. 다만 쇼핑에는 좀 불편했을 텐데 차 몰고 나온 김에 가자며 내 차에 친구 가족을 태우고 양재에 있는 코스트코에 갔다. 나도 예전에 가본 적이 있는 곳이라 차가 많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날은 의외로 차가 적어 쇼핑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쇼핑을 하는 동안 자연스레 소위 지역상권 보호를 위한 대형할인점 강제휴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코스트코 같은 경우는 일일매출액이 엄청나서 휴무를 하지 않을 경우 물어야 하는 벌금을 물고도 충분히 남는지라 문을 닫지 않는 곳으로 벌써부터 유명세를 타고 있다. 그런 유명세를 증명이라도 하듯 매장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코스트코가 쉬면 재래시장에 가겠느냐는 내 질문에 친구는 여기서만 살 수 있는 물건이 있기 때문에 그러기는 쉽지 않을 거라 대답했다. 또한 주차 때문에 친구가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차로 와서 바로 매장으로 갈 수 있고, 카트에 물건을 싣고 집으로 차를 몰고 갈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을 재래시장은 충족시켜주지 못할 것이란 점도 큰 차이다.

석사논문을 쓸 때 대규모 소매점의 입지 전략에 대해 쓰려고 했었는데 그 당시엔 미국에서 일반화되어 있는 그런 소매점이 국내에선 가뭄에 콩 나듯 있는지라 결국 논문이 지리멸렬해져버린 아픈 추억이 있다. 시대적 상황이 이제는 바뀌었다. 사람들은 차를 가지고 있고 외곽으로 나가서 창고형 매장에서 쇼핑하는 패턴에 익숙해지게 된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자동차를 몰고 가서 쇼핑할 수 있는 곳, 매장 안에서 표준화된 물건을 카트 등으로 편리하게 담을 수 있는 곳, 또 소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을 원한다. 코스트코 같은 매장은 그런 편리함과 문화적 소비심리를 충족시킨다. 재래시장에서는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다. 둘 간에 서로 대체재가 아닌 것이다.

제조업도 그렇지만 소매유통업에서도 집적과 대규모화는 ‘규모의 경제’라는 긍정적 효과를 불러온다. 우리 소매유통체계가 여태 그러지 못한 이유는 공간적 개발과 자동차 보급의 부진 등으로 인해서였고, 이제 그런 배경이 갖춰진 상황에서 우리 소매 패턴은 빠른 속도로 미국화되고 있다. 큰 차로 큰 매장에 가, 많이 사와서 큰 냉장고에 저장한다.

1888년 발표되어 세계 최초의 SF소설로 평가받는 에드워드 벨러미의 ‘뒤를 돌아보면서:2000-1887’에서 작가는 일찍이 이런 장점을 간파하고, 혁신적으로 대형할인점과 신용카드의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표준화, 대형화, 일관화 등은 무시할 수 없는 매력인 것이다. 여담이지만 작가는 이런 경제를 실현한 사회는 사회주의 경제일 것이라 예언했다.

한편, 경복궁 근처의 통인시장은 돈을 내고 도시락 용기를 받아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여기저기서 반찬을 모아 자기만의 도시락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 나름의 생존전략을 찾고 있는 것이다. ‘통큰’ 치킨과 같은 전혀 통 크지 않은 대형매장의 꼼수에 대응한 고육지책일 것이다.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없다면 뭔가 스토리를 만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혁명보다 개혁이 어렵다고 하는데 소매유통업계가 그런 경우가 아닌가 싶다. 재래시장은 대형할인점, 동네 구멍가게는 편의점이 잠식하고 있다. 소비패턴은 어느새 이에 익숙해져 있고 자영업자는 대형매장의 노동자가 되었다. 대자본과 중소자본의 싸움에 경향성이 존재하는데 단순히 하루 쉬게 하는 개혁으로 그 경향성을 되돌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