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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기업들이 따라 하고 싶을 미국식 해고”

사전 통고도 없고, 예비 기간도 없는 이런 해고 절차는 130년 이상된 오랜, 미국 사회의 관행이고  주에 따라 조금씩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법적으로도 인정되는 관습이라는 것이 놀랍습니다. “자유의지에 따른 고용”(Employment at Will) 정도로 해석될 수 있는 이 원칙은, 고용계약서에 특별히 규정하고 있지 않다면 고용주와 피고용자 양측 모두가 어떤 이유에서나, 심지어는 아무런 이유 없이도 고용관계를 일방적으로 끝낼 수 있는 권리를 갖는 것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얼핏보면 고용주와 피고용자에게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매우 합리적인 원칙처럼 보이지만 현실적으로는 고용주에게 자신의 의지대로 아무때나 고용관계를 중단할 수 있는 권한을 줘서, 최고 수준의 고용 유연성을 보장하는 아주 “비지니스 후렌들리”한 정책임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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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성

경제에 있어 ‘유연성(flexibility)’이란 단어는 받아들이는 이에 따라서 매우 극단적인 평가가 갈리는 단어다. 특히 앞에 ‘노동’이라는 단어가 붙게 될 때에 더욱 그렇다. 이렇게 되면 노동자나 자본가나 할 것 없이 저마다 볼멘소리를 해대기 시작한다. 노동자는 사회안전망 없는 노동유연성은 사기라고 주장하고 자본가는 노동유연성이 없어서 기업경영이 어렵다고 주장한다. 양쪽 말이 다 일리가 있는 듯하지만 쉽게 합의하지 못한다. 근본문제는 바로 계급갈등이기 때문이다.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점은 ‘노동유연성’은 산업의 유연성 중 한 요소에 불과한데 우리 사회에서는 유연성이 곧 노동유연성인 것처럼, 최소한 그것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고 노동자계급이 이를 효율적으로 대처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유연성이라는 표현은 포디즘이나 테일러리즘 등 ‘대량생산 대량소비’에서 다양한 소비자 기호에 부응하는 생산의 유연성이라는 경영개선의 개념에서 도입된 개념이기에, 산업전반의 다양한 유연성 제고를 다루는 개념임에도 말이다.

예를 들어 소비자들이 환경을 중시하려는 소비태도를 보여 큰 배기량의 자동차 구입을 꺼린다는 경향이 관측되었을 경우, 기업은 신속하게 환경친화적인 신차를 개발할 수 있는 조직을 정비하고 조립라인을 제 때 맞춰 개선하는 작업을 할 수 있는 그런 순발력을 발휘하는 것이 유연성의 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GM이 이걸 못 해서 망했다는 설도 유력하다) 유명한 패션브랜드 자라(Zara)의 경우 소비자의 기호의 변화에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디자인 및 생산 시스템을 구축하여 성공한 케이스로 꼽히고 있다.

우선 다시 ‘노동유연성’으로 돌아가자. 이번 쌍용자동차 사태를 접한 사회주류가 제일 먼저 뽑아든 칼은 ‘노동시장 유연성 강화’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미 지난 5월 “노동유연성 문제는 올해 말까지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국정 최대 과제”라고 말했다 한다. 그리고 정부는 이를 위한 수단으로는 비정규직법 개정, 복수노조 허용, 노조 전임자 지급금지, 노조의 인사경영권 침범 금지 등을 제시하고 있다.(관련기사보기)

한편 여론은 어떠할까? 위의 기사에 따르면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지난달 8일 발표한 설문조사에서 이 대통령의 ‘노동유연성’ 발언에 대해 응답자의 63.0%가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을 막기 위해 노동안정성이 더 중요하다”고 답했다 한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 사회에서 노동유연성 강화와 노동안정성(또는 고용안정성) 강화가 화해할 수 없는 대척점에 서있다는 증거이다.

흥미로운 점은 양 측 모두 각각의 주장의 논거를 주로 유럽의 노동시장에서 찾는다는 점이다. 노동유연성 강화론자들에 따르면 유럽은 1990년대의 높은 실업률의 원인으로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지적하였고, 사회대타협을 통해 노동유연성을 제고하여 실업률이 크게 떨어졌다고 주장한다. 고용안정성 강화론자들은 그 배경에는 정규직-비정규직 차별해소와 사회안전망이 있다고 주장한다. 사실을 보면 후자의 주장처럼 유럽의 노동유연성 강화는 사회안전망 강화에 따로 놓고 생각할 수 없다.

네덜란드형 유연안정성 정책은 1999년 1월에 발효된「유연성 및 안정성에 관한 법률’(Flexibility and Security Act)」로 구체화되었음.
– 유연 근로자는 계약 만료 시 특별한 절차나 조건 없이 고용계약이 종료된다는 점을 제외하면 급여(동일노동, 동일임금), 보너스, 휴가, 훈련 등에 있어서 측면에서 정규직근로자와 동일한 대우를 받음.
– 국가재정을 사용하는 실업보조의 경우 최대기간이 7년에서 38개월로 줄어들었으나, 근로자가 실업수당을 받기 위해 자신이 비자발적인 실업상태에 있다는 것을 증명할 필요는 없어졌음.
– 고용법규 면에서 연공서열이 낮은 사람을 우선 해고하는 원칙이 철폐되고 나이와 업무능력 등을 고려하여 해고할 수 있는 유연성이 기업에게 제공됨.[유럽의 유연안정성정책이 우리나라 비정규직 문제에 주는 시사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2009년 8월 7일, p6]

상기 내용을 보면 네덜란드의 경우 제도가 노동자에게 유리하게 된 측면도 있고, 불리하게 된 측면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아 우리의 노동시장 상황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노동자에게 유리함을 알 수 있다. 반면 우리 정부의 노동시장 유연성 강화 시행방안을 적어도 위 기사로 판단하자면 사회안전망 구축 방안은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노동유연성 강화와 관계없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노조 전임자 임금을 주지 않아서 어떻게 노동유연성이 강화된다는 것인지 내 짧은 지식으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한편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보고서는 노동유연성 강화를 위한 사회안전망 구축에는 결국 재정준비가 필수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현재와 같은 사회복지 지출 비율로는 해고자의 보호는 어려운 실정이고 결국은 더 많은 재정확보를 통한 사회보장장치의 강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 정부는 노동유연성 강화와 감세를 통한 경기부양, 그리고 SOC예산 증액(특히 4대강 정비)이라는 모순된 정책을 수행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총체적인 유연성의 문제로 돌아가 보자. 개인적으로는 급변하는 사회경제구조에서 경제 시스템의 유연성 확보는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쌍용차 사태는 어떤 측면에서는 한국 및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의 산업구조조정이 (폭력적으로) 관철된 측면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생산품목, 디자인, 제공할 서비스, 노동시장 등 총체적인 경영요소들이 실시간으로 변해감에 따라 생산주체의 대응 역시 그만큼 유연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구글을 생각해보라 이제 구글을 검색 사이트라 부르는 이는 없다)

문제는 계급갈등이 온존하는 시스템에서는 가진 자들은 허다한 유연성 중에서 손쉽게 노동유연성 제고를 택하려 하고 있고, 노동자들은 그 자신이 다른 노동으로 대체할 수 있는 바로 그 “유연성”이 떨어지기에 저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경제체제가 현재와 다르다면 이러한 갈등을 민주적인 통제에 따른 산업재배치로 해소할 개연성을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남한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만만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잡셰어링”은 임금기금설의 변주곡

임금을 낮추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정부의 발상은 아주 오래 전에 폐기된 임금기금설을 연상시킨다.

일정 시기의 일정사회에서 임금지급에 충당되는 자본(임금기금)은 일정하며, 따라서 개별노동자의 임금은 임금기금을 노동자수로 나눈 몫이라는 이론이다. 밀 Mill, J. S. 은 임금은 자본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원료, 설비에 투하되는 자본과 같이 선대한 자본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데 착안하여 임금기금설을 수립하였다. 즉, 임금기금의 증가나 노동자수의 감소에 의하지 않고는 임금은 상승하지 않고, 또 기금감소나 노동자수의 증가에 의하지 않고는 임금은 하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임금인상은 다른 노동자의 희생으로 이루어지게 되기 때문에 노동조합에 의한 임금인상운동은 헛된 노력에 그치게 된다.[경제학사전, 조용범/박현채 감수, 풀빛편집부 편, 풀빛, 1988년]

이 임금기금설을 턴테이블에 걸고 거꾸로 돌리면 이 정부의 ‘잡셰어링’이 등장한다. 즉 이 사회가 임금지급에 충당되는 자본은 정해져 있으므로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으면 자본가들은 남는 자본을 소비할 목적으로 신규인력을 고용하게 된다는 원리다. 이건 단순히 웃어넘기기 어려운 블랙코미디다.

첫째, 경제가 심각하게 위축되고 있는 상황에서 각 기업들은 생산을 늘릴 수 있는 여지가 없고, 확장적인 계획보다는 수축적인 계획을 짜게 마련이다. 임금은 반절로 줄임에도 같은 생산력을 얻을 수 있는 기업이 굳이 설정된 노동비용을 지출하기 위해 생산력을 2배로 늘일 이유가 현재로서는 없는 것이다. 한 예로 해운업체들은 현재 기수주한 계약이 취소되고 있는 상황이다.

둘째, 임금이 줄어들면 노동자들의 가처분소득이 줄어 가뜩이나 위축된 소비가 더욱 줄어들게 된다. 수출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긴 해도 내수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경기진작 수단인데, 임금삭감은 이 시장을 포기하겠다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그나마 노동자들의 소비를 유지시켜주던 가계대출마저 어려운 상황이다.

셋째, 정부가 급기야 공공부문의 신규고용에 대해 임금을 삭감하라는 지시(!)를 내렸는데 계급 간의 갈등뿐 아니라 세대 간의 갈등까지 본격화시키자는 이야기나 진배없다. 벌써부터 이 소식을 전하는 인터넷사이트 게시판에 깎으려면 다 깎아야지 무슨 말이냐며 험한 소리가 오가고 있다. 물론 그 분노는 저 발상을 한 이들에게 향해야 함에도 그 공동의 피해자들이 이전투구하고 있는 모양새라 그것도 블랙코미디다.

이정환씨가 적절하게 지적하고 있듯이 대안은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감축이다. 또는 정 기업내부의 차원에서 임금삭감 – 꼭 그것이 궁극의 해법도 아님은 두말할 나위 없다 – 을 통해서라도 위기를 돌파하여야 한다는 노사간 합의가 있다면 그것은 기업 스스로의 경영상의 판단에 맡길 일이다. 이것을 정부 차원에서 밀어붙이겠다는 것은 박정희 식의 흘러간 ‘자본주의 계획경제’를 떠올리게 할 뿐이다.

밀의 저 이론은 1820년부터 1870년에 걸쳐 영국경제를 지배하는 이론이 되었으나 영국의 자본축적이 크게 증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의 임금이 상승하지 않자 말 자신이 그 이론을 포기하였다. 즉 떡줄 놈은 생각도 안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소비부진에 대한 공감 가는 원인분석, 엉뚱한 해법

2000년대 이후 국내경제의 소비부진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고 한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최근 보고서 ‘장기적 소비부진의 원인분석(2008.8.27)’(이하 보고서)에 따르면 민간소비증가율은 외환위기 이전의 7%대에서 2000년대 들어 3%로 급락하였으며, 실질 GDP내 민간소비 비중도 57.6%(1990~97년)에서 51.7%(2000~07년)로 5.9% 축소되었다고 한다.

보고서에서는 소비부진을 설명하는 변수로 1) 소비여력의 약화 2) 고용창출력의 약화 3) 소득불균형의 심화 등을 들고 있다. 그러나 보고서는 이러한 전통적인 설명을 분석모형에 적용할 결과 약 67%정도의 설명력을 가진다고 말하고 있다.

이에 따라 보고서는 또 다른 핵심변수로 ‘미래소득에 대한 불안감’을 들고 있다. 즉 이러한 불안감은 소비자들로 하여금 현재소비를 줄이는 대신, 저축을 늘려 미래소비를 확보하게끔 한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이러한 불안감에 영향력을 미치는 요소를 조사한 결과 각각 그 탄력성의 크기에서 고용불안(1.02), 교육불안(0.41), 노후불안(0.36), 금융불안(0.01)의 순서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중에서 앞서의 두 요소가 현재의 사회적 위치 또는 소비패턴의 범주라면 후자의 두 요소는 이로써 귀결되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금융이라는 거시경제의 범주라는 점에서 가장 큰 설명인자는 역시 고용불안과 교육불안(즉 교육비 부담)일 것이다. 한마디로 신자유주의 도래와 더불어 양산된 비정규직 등으로 인한 고용유연화와 이를 자식대에서 벗어나기 위한 필사의 노력이 현재의 삶을 짓누르고 있다는 이야기다.

보고서는 그러나 – 익히 예상할 수 있듯이 – 그 대안을 고용유연성의 포기에서 찾지 않는다. 보고서는 보다 완곡하게 – 또는 보다 교묘하게 –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고용불안감 해소’라는 상충되는 두 가지 목표를 양립시키는 방안을 적극 모색”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물론 아시는 바와 같이 김대중 정부, 참여정부를 거쳐 여태의 정부는 전자의 강화에만 주력해 왔다.

수출주도형 경제에서 본격적인 내수주도형 경제로 경제체질을 바꿔야 할 시점에서 시의적절하게 소재를 선택한 이 보고서는 덴마크와 네델란드의 경우와 노동유연성을 높이는 가운데 실업자를 위한 사회안전망과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을 구사하는 이른바 ‘유연안정성(flexicurity)’을 제안하고 있다. 나름 현실적인 대안이다.

문제는 보고서가 제시하고 있는 그 세부적인 실천방안이다. 우선 보고서는 ‘사회안전망 확충’이라는 상식적인 대안을 제시하면서 고용불안감에 대해서는 ‘고용정보의 질적제고’, ‘생애교육 차원에서의 직업훈련 강화’라는 다분히 교리문답식의 대안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인 대안은 현재 양산되고 있는 비정규직 및 파견직에 대한 기업들의 불법적인 노동착취 근절이 우선이다. 그럼에도 보고서는 앞서 전통적인 설명요인 중 ‘2) 고용창출력의 약화’ 부분에서조차 고용창출력 약화가 산업구조가 IT산업 등으로 고도화됨에 따른 현상이라고 설명하고 있을 뿐 비정규직 양산을 통한 고용의 질 악화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그러니 당연히 정책적 시사점에도 이에 대한 언급이 없다.

다음으로 소비자가 현재소비를 희생하는 소비행태를 개선하기 위해 내놓은 대안에서 보고서는 “공적연금 이외에 기업연금 및 개인연금을 활성화해 노후보장 수단을 다양화”하자는 엉뚱한 주장을 하고 있다. 물론 획일화된 공적연금이 아닌 다양한 상품을 소비자가 활용한다는 의의는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한 상품들이 현재소비를 희생하는 소비행태의 개선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기업연금’, ‘개인연금’이 ‘공적연금’보다 현재의 소비를 악화시키지 않는다는 전제조건이 있어야 한다. 보고서 작성자는 이들 연금이 공적연금보다 싸다고 생각하는지?

삼성경제연구소의 – 다른 기업연구소들도 대개 마찬가지이지만 – 보고서를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은 보고서의 작성자가 늘 무언가에 억눌려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떤 보고서들은 적절한 소재를 찾아 적절한 연구방법을 통해 적절한 설명요인을 찾는다. 거기까지는 좋다. 역시 실력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 정책적 시사점에 들어서면 여지없이 친기업적인, 또는 현실을 애써 외면하는 시사점을 병렬식으로 늘어놓곤 한다.

이 보고서 역시 바로 그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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