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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심’을 이용한 정치

그러나, 그 굶주림은 끝끝내 히틀러를 휘몰아, 정상적인 일자리를 찾는 최후 수단을 강구하는 데에까지 이르게 하지는 못했다. <나의 투쟁>에서 명시하고 있듯이, 히틀러는 프롤레타리아, 육체노동자의 계급으로 전락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쁘띠부르죠아의 불안을 끊임없이 지니고 있었다. 훗날, 그는 이 불안을 이용하여, 국가 사회주의당을 쌓아 올린 것이다. 나치의 基盤이 된 것은, 자기들은 적어도 <노동자>보다는 사회적으로 유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착각을 품고 있는 수백만의, 그때까지 이렇다 할 지도자를 가지지 못하고, 값싼 월급에 얽매여 있던 쌜러리맨 계급이었다.[第三帝國의 興亡1, 윌리엄 사이러 著, 安東林 譯, 學問社, 1974년, p48]

자본가들은 노동자계급이 투표권을 얻을 경우 정치권력이 사회주의 세력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심각하게 고민하였다. 실제로 서구에서 사회민주당이나 공산당은 20세기 초반 노동자 계급의 지지를 기반으로 강력한 야당, 심지어는 집권으로까지 나아가기도 했었다.

하지만 위에서 보듯이 나치는 그러한 계급전선에서 블루오션을 찾았다. 하층계급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에 대한 공포심을 지니고 있는 쁘띠부르죠아가 그들의 공략대상이었다. “계급”으로까지 부를 수 있는 성질인 것인가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있을 수 있으나 적어도 이러한 현존재로서의 계급과 그것의 지향이 다른 이 애매한 계층은 오늘날까지 이른바 중산층, 부동층, 화이트칼라 등 다양한 표현으로 불리며 선거의 향방을 좌지우지하는 대상으로 자리잡아왔다.

정치가가 선거에 임해 사회공동체의 공동선(公同善)을 추구하는 것이 이익이냐, 혹은 개개인의 물적(物的)욕망을 충족시켜주는 것이 이익이냐를 가늠할 적에 이들 계층이 어떤 지향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은 중요한 판단기준이 되었다.

적어도 물질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서구사회에서는 68년 세대라는 짧은 일탈의 경험을 제외하고는 그들은 보수화의 경향을 보여 왔고, 반면 이른바 후진국에서는 정치적 민주화라는 의제와 맞물려 보다 헌신적인 쁘띠부르죠아 계층이 형성되어 – 소위 학생운동 세력 들 – 일정 정도 정권교체에 일조하게 된다.

하지만 오늘날 형식으로서의 정치적 민주화가 달성된 나라는 그 투표성향, 나아가 정치성향이 서구의 그것과 비슷하게 개개인의 물적욕망의 실현을 용이하게 하는 정책에 보다 많은 지지를 보내는 경향이 있다. 이제 그들은 민주화 투사라기보다는 스스로가 자본주의자인 것이 더욱 친숙하기 때문이다.

현대의 민주대의제 시스템에 있어 이들의 성향에 대한 분석과 정책대응은 날로 중요해질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나치는 참 선진적인 정치의식을 가진 정치집단이었던 셈이다. 바로 ‘공포심’이라는 심리적 측면을 이용한 정치를 창안한 셈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