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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ig Short 感想文

전에 읽었던 마이클 루이스의 책을 스크린에 옮긴 동명의 작품 The Big Short를 어제 감상했다. 원작자가 같이 근무한 적이 있는 “금융폭탄” 중 하나인 MBS의 발명가 루이스 라니에리를 언급하며 시작하는 이 영화는 자칫 영화감상의 맥락을 끊을 수 있을 정도로 난해한 CDS니 CDO니 하는 복잡한 금융공학 발명품의 개념을 모델, 요리사 등 비전문가의 입을 통해 유머러스하게 설명한달지 극중 배우들이 카메라를 보며 이야기한달지 하는, 굳이 구분하자면 스탠드업 코미디의 스타일을 빌려 매끄럽게 극을 진행시켜 나간다.

2005년 5월 19일 마이크 버리(Mike Burry)는 그의 첫 서브프라임 모기지 계약들을 성사시킨다. 그는 도이치뱅크로부터 6천만 달러의 신용부도스왑(이하 CDS)를 구입했는데, 여섯 개의 서로 다른 채권에 각각 1천만 달러를 지불했다. [중략] 그는 모기지 풀 중 가장 부실한 것을 찾아다니며 수십 권의 투자설명서를 읽고 수백 권의 투자설명서를 샅샅이 뒤졌다. 그리고는 여전히 그때까지도 매우 확신하고 있었던 것은 그가 그것들을 작성한 변호사들을 제외하고는 그것들을 읽은 유일한 인간이었다는 것이다. [The Big Short, Michael Lewis, Norton, 2010, pp49~50]

크리스찬 베일이 연기한 마이크 버리는 영화에서 주택시장의 붕괴에 베팅한 소수 중에서 가장 처음 등장하는 인물이다. 버리는 “음악이 흐르는 동안은 춤을 춰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외골수적인 기질을 타고난 펀드매니저였다. 그래서 그는 – 당연히 해야 할 일인 – 모기지 채권의 투자설명서를 샅샅이 읽고 시장이 붕괴될 것임을 직감한다. 스티브 카렐이 연기한 마크 바움을 비롯한 다른 이들도 역시 면밀한 점검을 통해 춤을 추는 대신 음악이 꺼질 것이라는 것에 돈을 걸고, 시장의 붕괴를 기다린다.

영화는 이들이 어떻게 그렇게 뛰어난 안목으로 시장의 붕괴를 예측했는가 보다는 – 그런 부분을 다 설명하다보면 영화가 코미디가 아니라 지루한 다큐멘터리가 될 터이니 – 이들의 선지자적 태도와 이후의 시장의 어리석음이 어떻게 서로 긴장감을 유지해가며 갈등하게 되는지를 주로 조명한다. 부실이 증가함에도 그 자산과 연계된 CDO 채권의 값은 상승한달지, 신용평가사가 투자은행을 상대로 채권등급 장사를 한달지, 기자는 시장상황을 정확히 알리는 기사쓰기를 거부한달지 하는 등의 부조리가 선지자들을 괴롭히는 상황 말이다.

영화의 결말은 – 스포일러라 할 것도 없이 –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바 주인공들의 승리로 결말이 난다. 마이크 버리는 400%가 넘는 수익률을 시현하였고, 마크 바움은 개인적으로도 1억 달러를 번다. 하지만 마지막에 웃는 이들은 이들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비극적인 코미디다. 우리가 알다시피 월가나 금융당국 그 어느 곳에서도 시장의 붕괴에 대해 책임진 이는 (거의) 없다. 오히려 영화는 후일담으로 버리만 네 차례의 회계조사를 받는 등 당국의 괴롭힘을 당했다는 사실을 전한다. 승리자는 결국 부조리한 세상이었다.

여하튼 우리는 이제 어느 정도 평온해진 상황에 놓여있는 것 같다. 시장도 안정을 찾은 듯 하고 Fed도 금리를 인상했다. 그렇다면 이제 경기는 늘 그랬듯이 경기변동설에 따라 다시 상승기로 접어드는 것일까? 하지만 최근 전 세계 주식시장은 동반 폭락하였고, 유가는 30달러 바닥을 뚫고 내려갔고, 중국시장에 대한 경고신호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금은 마치 투자은행이 증권화와 부외금융을 통해 버블 붕괴를 이연시켰던 것처럼, Fed 등 중앙은행이 양적완화와 긴축재정을 통해 더 큰 버블의 붕괴를 이연시키고 있는 상황이 아닐까?

미국가계의 종류별 자산 패턴이 부의 집중에 미친 영향에 대하여

재밌는 그래프가 있어 소개한다. 1913년부터 2013년까지 100년 동안의 미국의 가계가 보유한 종류별 자산을 국가소득에 대한 배수로 표현한 그래프다. 이 그래프를 보면 가계자산이 국가소득대비 어느 정도 일정한 배수를 유지하다 큰 두 번의 위기에 급격히 축소되었음을 볼 수 있다. 종류별 자산에서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연금자산의 비중이 1980년대 이후 급격히 커졌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추세는 연기금의 발달 및 인구의 노령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상대적으로 부동산의 비중이 크지 않은 것도 눈에 띈다. 우리나라는 이 비중이 더 크지 않을까 짐작된다.

그래프의 출처가 되는 논문에는 또 다른 두 개의 흥미로운 그래프가 있다. 바로 상위 0.01%의 부자와 하위 90% 계층의 종류별 자산과, 이 자산이 전체 가계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표시한 그래프다. 그래프를 보면 들고 있는 자산의 종류 차이가 완연하다. 상위 0.01%는 주식과 고정자산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하위 90%는 연금과 부동산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연금의 비중은 일정한 패턴을 유지하는 반면 주식, 고정자산, 부동산의 변화는 극적이다. 부동산은 당연히 금융위기에 폭락했고 주식과 고정자산은 폭등했다. 폭등의 원인은 Fed 등의 양적완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자본가들과 평생 저축하는 이들의 자산 보유의 구성은 다르다. 그래서 자본가들이 들고 있는 자산들에게 차별적으로 혜택이 되는 여하한의 정책은 보다 심각한 불평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양적 완화가 그러했다. [중략] 노동자들과 자본가들은 둘 다 자본의 소유자다. 그러나 다른 종류의 자본이다.“ 저소득과 중소득의 미국인들은 주로 확정소득(fixed-income)의 자산에 의존하는 반면 고소득의 개인들은 더 높은 수익을 제시하는 주식이나 보다 위험한 자산에 투자하는 경향이 있다.[Stiglitz: Fed’s Zero-Rate Policy Boosts Inequality]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런 물고기 모양의 그래프도 그려진다.

디플레이션이 꼭 나쁜 것일까?

맥킨지는 지난 달 내놓은 보고서에서 호주와 말레이시아와 함께 태국과 남한을 가계부채가 지속 불가능할 수 있는 곳으로 꼽았다. 남한의 소득 대비 가계부채 수준은 가용 가능한 최신 자료인 작년 2분기 말 현재 144%다. 이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위기 직전보다 높은 수준이다. [중략] 한국은행은 집값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신용 강화를 원하지 않는다. 스탠더드차터드에 따르면 그 경우 가계자산의 4분의 3이 부동산인 – 미국의 25% 수준보다 훨씬 높은 – 이 나라에는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Asian Central Banks’ Dilemma: Balancing Debt and Growth]

예상대로 한국은행이 금리를 내려 사상 최초로 1%대 기준금리 시대에 접어들었다. 얼마 전 경제부총리가 “디플레이션”을 거론하던 상황에서 이미 짐작할 수 있었던 결과다. 국가경제 차원에서 보자면 디플레이션이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개별 경제주체별로 보면 그 손익분석이 다를 것이다. 무주택자에 무차입자라면 – 임금하락을 빼놓고는 – 디플레이션이 나쁠 것 없다. 현금을 모아놓으면 그 가치는 떨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빚을 내어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자라면 손해다. 실물가치가 내리는 와중에 실질금리는 상승하는 이중고에 시달릴 것이기 때문이다. 자산 중 압도적인 비중이 부동산인데다 가계부채 수준도 높은 이 나라는 역시 금리인하라는 모르핀 이외에는 뾰족한 방도가 없는 것일까? 언제까지 이 모르핀을 맞아야 할 것인가?

우리가 “자본주의”라 부르고 있는 어떤 경제 체제

Fed의 2015년 1월 8일 현재 자산 현황2009년 1월 8일 현재 자산 현황을 비교하면 흥미 있는 사실을 하나 알 수 있다. 2015년 현황에는 기록되어 있는 ‘모기지담보부증권(Mortgage-backed securities)’ 항목이 2009년 현황에는 없다는 사실이다. 이 증권은 자산을 담보로 하여 발행하는 증권 중에서도 모기지를 그 재원으로 하는 증권으로 금융위기 당시 위기의 핵 중 하나로 지목받은 상품이다. 그런 상품을 현재 Fed가 시장조성자라는 전통적인 역할을 뛰어넘은 시장참여자로 나서서 1조7천억 달러가 넘게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사회의 H.4.1 통계 발표, “예금기관들의 보유 자산과 연방준비은행들의 현황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에 연방준비제도가 구입하는 패니메, 프레디맥, 그리고 기니메가 보증하는 모기지담보부증권의 정보를 포함시키는 것으로 수정되었다. 2008년 11월 25일 연방준비제도는 패니메, 프레디맥, 그리고 지니메가 보증하는 모기지담보부증권을 구입하는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이 증권의 구입은 2009년 1월 5일 시작되었다.(출처)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모기지와 주택 시장을 지원하고 금융시장의 향상된 조건을 보다 광범위하게 육성하기 위함이다.(출처)

2009년 1월 15일 발표된 Fed의 통계 발표문 전문과 뉴욕Fed 홈페이지의 해당 프로그램에 대한 FAQ에 적혀 있는 글이다.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다시 2008년으로 돌아가 보자. 패니메와 프레디맥은 2008년 당시 미국 내의 12조 달러의 모기지 시장에서 반절에 육박하는 금액을 보유하거나 보증하고 있었다. 빠르게 악화되고 있던 부동산 시황으로 말미암아 이들 회사의 자산을 빠르게 악화되고 있었고 주식은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2008년 9월 7일 연방주택금융청은 이들 회사의 실질적인 국유화를 선언했다. 그 상태는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Fed의 MBS구입 프로그램은 이러한 배경 하에 시작되었다. 망할 회사에 정부가 주식을 취득하여 국유화시키고 그 회사의 대표적인 상품을 Fed가 구입해주는, 사상 초유의 업태가 시작된 것이다. 이는 Fed가 정부의 시장구제 프로그램에 직접 개입한 명시적인 사례다. 美정부가 언제 이들 회사로부터 빠져나오느냐 하는 것이 실질적인 경제위기 탈출의 바로미터인 것처럼 Fed가 이 자산을 언제 처분하는가 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그러하기에 Fed는 버냉키 시절부터 계속 증권을 팔든가 또는 매입을 중지하려 했다. 하지만 그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금리가 상승한다면 美재무부에 줄 연간 배당을 위험에 빠트릴 손실을 촉발하면서 자산 가치가 폭락할 수도 있다. 중앙은행은 작년 884억 달러의 수익을 거두었다. 벤 버냉키 의장은 6월 Fed가 재무상태표를 축소할 의도의 일환으로 모기지 부채를 궁극적으로 매각하는 계획을 포기한다고 발표했다. 그 대신 그는 증권이 만기까지 가도록 내버려두겠다는 계획을 발표한다. 증권 보유를 통해 이자소득으로 운용비를 조달할 Fed는 현재 1조4천억 달러의 모기지 증권을 보유하고 있다.[Fed Seen Avoiding Historic Loss by Holding Mortgage Debt]

Fed 경제학자의 보고서에 보면 Fed는 2011년에 MBS를 매각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는 장부가 이하의 판매로 손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컸기에 대안에서 제외됐다. 이후 버냉키는 MBS를 만기까지 보유하겠다고 천명했고 옐렌의 시대에도 MBS 자산은 지속적으로 늘어왔다. Fed는 미국 경제가 호황에 접어듦에 따라 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조치는 역사적 저점에 구입한 채권1 수익률을 악화시킴으로써 스스로의 재무 상태를 악화시킬 수 있는 개연성이 크다. 이게 MBS 보유에 따른 Fed의 딜레마다.

미국 자본주의에서 부동산 시장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크다. 그리고 미국의 부동산 시장에서 모기지가 차지하는 역할은 심대하다. 패니메와 프레디맥, 그리고 지니메는 이러한 모기지 시장에서 정부의 보증을 받는 회사라는 이미지를 등에 업고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이러한 회사들이 이제는 정부의 소유가 되었고 그들이 파는 상품의 10%가 넘는 물량을 Fed가 소화해주고 있다.(2014년 3분기 현재 MBS 미결제분은 13조 달러 이상) 정부의 자기거래나 다름없는 손바꿈으로 유지되고 있는 사적 경제를 현재 우리는 “자본주의”라 부르고 있다.

0.01%가 다시 앞서가고 있는 미국의 자본주의

런던 경제학 스쿨의 Saez씨와 Gabriel Zucman의 새 보고서는 이전에는 최상위 부자들의 부(wealth)의 지분을 매우 과소평가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중략] 1920년대에 하위 90%는 미국의 부의 단지 16%를 소유하였을 뿐이다. 이는 1929년의 붕괴 이전까지 전체 부의 4분의 1을 통제한 상위 0.1%의 것보다도 한참 모자라는 것이었다. 대공황의 시작부터 제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까지 전체 부에 대한 중산층의 지분은 꾸준히 들었는데, 이는 주요하게는 부유한 가구가 망가진 탓이다. 그 이후로 중산층의 지분은 보다 광범위한 자본 소유, 중산층의 소득증가, 그리고 주택소유 상승률 덕분에 국부와 함께 증가하였다. 퇴직연금에 대한 세금면제 확대도 또한 기여했다. 1980년대 초반까지 중산층의 가구의 부에 대한 지분은 36%까지 증가했고 거칠게 볼 때 상위 0.1%의 지분의 네 배에 달했다. 그러나 1980년대 초반부터 이러한 추세는 역전된다. [중략] (차트를 보라) 1986년에서 2012년까지 상위 1% 가구의 실질소득은 연 3.4% 증가한 반면 하위 90% 가구는 0.7% 증가하였다. 그러나 Messrs Saez와 Zucman은 추락하는 중산층의 순수자산 추이의 주된 원인은 치솟는 부채 탓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치솟는 주택가격은 모기지 부채 역시 늘어났기 때문에 중산층의 부의 증가에 거의 기여하지 못했다. 하지만 초라한 주택의 가격이 떨어져도 부채는 그대로 남아 중산층의 부를 더욱 쥐어짠다.[It is the 0.01% who are really getting ahead in America]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다양하게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화, 미국 산업에서의 금융업의 예외적 성장, 배당과 소득 비중의 역전, 인터넷 산업의 융성, 노조운동의 쇠퇴 등이 떠오른다. 미국이라는 한 나라만 놓고 본다면 소위 “자본주의의 모순”에서 비롯된 현상도 있을 것이지만 산업구조의 변화라는 피하지 못할 원인에서 비롯된 현상도 있다. 상황이 그러하다면 과연 부의 불평등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던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는 자본주의 체제의 부의 집중 경향에 있어서의 예외적인 시기였던 것인가 하는 의문도 든다.


(출처 : cfr.org)

최근에 빌 게이츠가 토마 피케티의 책을 읽고 이에 반박하면서 최상위 부자들이 상당수 이전 세대의 부자들에서 바뀌었다는 정황을 들어 피케티의 논지를 반박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자산 축적의 작동방식은 그리 많이 바뀌지 않았음은 분명하며 이를 이용해 부를 쌓는 이에 대한 부의 집중도가 계속 높아지고 있음은 추세적인 것 같다. 즉, 자본(equity)의 소유는 소득 없이 부를 축적할 수 있는 보편화된 수단이며 금융위기 전까지 정치권은 “자본 소유의 민주주의”를 통해 자본 평등을 주창하였지만 부동산 거품 붕괴와 함께 그 신화는 무너져 내린 것이다. 반면 최상위층의 자본 소유와 축적 방식은 세계화와 더불어 더 세련되어 지고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이런 “자본 소유의 민주주의”에 어느 나라보다 앞선 나라였다. 한때는 망국병이라 할 만큼 부동산 투자, 즉 자본소유를 통한 시세차익의 시현은 국민적 붐을 이루었고 이는 차입을 통해 레버리지를 들어 올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며칠 전에 발생한 일가족 자살사건에서 알고 보니 가족 명의로 열다섯 채나 집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 화제가 되었는데, 바로 그들이 그렇게 많은 집을 갖게 된 것이 부채를 통한 주택 구입이었다. 자본의 부의 축적 방식은 진화하고 있는데 아직도 중산층의 부동산 신화는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파트를 둘러싼 재산권 투쟁

아파트라는 독특한 주거형태는 그 물리적 형태뿐 아니라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단독주택과는 매우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 동일한 평형, 동일한 설계, 동일한 자재, 동일한 입지에 지어지는 아파트는 분양할 때에도 이른바 “로열층”과 같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유사한 분양가에 판매된다. 주거, 즉 상품의 사용이 시작된 이후에도 한 가구의 판매가가 바로 다른 가구의 판매가에 영향을 미치는 등 군집적인 가격형성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인구밀도 탓에 우리나라는 근대화 이후 아파트를 주거문제 해결을 위한 가장 일상적인 수단으로 삼아왔다. 일제 강점기의 몇몇 공동주거양식의 주택이 건설되었고 해방 이후에는 1958년 종암 아파트, 1964년 마포 아파트 등이 세워지며 본격적인 아파트 시대가 열렸다. 이후 아파트 전성시대는 공기업의 주택공사의 주공아파트나 압구정 현대아파트와 같은 고급형 아파트가 인기를 얻으면서 본격적으로 아파트 주거문화와 시장이 형성되어왔다.

그 뒤 1970~80년대 고도 성장기를 거치면서 아파트는 우리나라에서 주거안정이나 자산형성의 범위를 넘어 신분상승의 수단으로 간주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 이에 따라 아파트 수는 전체 주택수 대비 1975년 현재 8만9천여 개로 1.89%에 불과했지만 2010년 현재 8백만 개를 넘어 58.96%를 차지하고 있다. 동기간 전체 주택수는 2.93배 늘어난 와중에 아파트 수는 91.71배 늘었다. 이쯤 되면 가히 “아파트 공화국”이라 불러도 하자가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연도별 종류별 주택수 추이1

이 아파트 공화국에서 최근 서울의 한 아파트 주민들이 새 입주민이 이사하는 것을 막는 사건이 벌어졌다. 신용위기 이후 미분양 아파트가 늘고 건설사가 위기타개를 위해 할인분양에 나서면서 이런 볼썽사나운 사태가 벌어진 적이 종종 되지만 이번에는 특히 새 입주민이 “사회적 배려 대상자”였다는 점에서 비난이 더 거세다. 기존 주민들은 “재산권 침해”라면서 새 입주민의 출입을 방해하기도 했다. “사회적 배려”는 “재산권 침해” 앞에서 설 자리가 없었다.

이러한 부동산을 둘러싼 “재산권” 보호 투쟁이 특히 아파트라는 주거형태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벌어지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서 말했듯이 아파트는 비슷한 조건으로 만들어진 공동주택이기에 할인분양이나 급매물로 인한 가격하락이 본인의 집값에 직접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 여기게 마련이고 실제 그런 경우가 많다. 이로 말미암아 집값 유지를 위한 투쟁은 ‘이불 베란다에 널지 않기’에서부터 ‘싼 값에 들어오는 입주민 가로막기’까지 다양하다.

아파트의 가격 형성이 군집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이런 특성 이외에 “재산권 침해”에 대한 반응이 이토록 격렬한 근본 배경은 우리나라 가계의 자산구성 때문일 것이다. 2014년 5월 현재 국내 가계의 총자산대비 금융자산 비중은 34.3%로 미국, 일본의 70.4%, 60.2% 등에 비해 현저히 낮다. 자산 중 주택을 비롯한 부동산 비중이 압도적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상적인 시장가격의 형성과정인 할인판매가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가진 것을 다 뺏기기 때문에.

이번이 처음도 아니며 끝도 아닐 것이다

DTI를 올리면 경기가 살아날까?

최경환 의원이 경제부총리에 내정된 이후 경제정책에 관해서는 온통 LTV와 DTI 완화와 같은 부동산 이야기다. 그동안 존재감도 없던 현오석 현 부총리와 달리 최경환 의원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서는 바로 중앙은행이나 금융당국이 화답하는 일사불란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언론도 이에 동조하는 모양새인데 오늘자 조선일보 종이신문은 “政爭에 발 묶인 ‘부동산 살리기’”라는 헤드라인을 뽑으며 이런 추세에 동승했다.

그렇다면 과연 민심도 정부의 이러한 부동산을 통한 경기부양책에 동의하고 있을까? 민심의 단초는 현대경제연구원이 2014년 6월 전국의 성인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통해 알아볼 수 있다. 이 설문조사는 조사대상자의 “경제적 행복지수”를 측정함을 목적으로 하였고, 이를 위해 구체적인 세부항목으로 경기회복 체감 여부, 소비위축 요인, 제2기 경제팀의 과제 등 경제현안에 대해서도 조사하였다.

조사결과 조사대상자의 87.1%가 경기회복을 체감하지 못한다고 응답하였다. 대부분 경기가 나쁘다고 여기는 상황이다. 한편 경기회복을 체감하지 못하는 원인은 뭘까? ‘일자리 불안’(35.3%)과 ‘가계빚 증가’(28.8%)가 1,2위다. 제2기 경제팀이 올인하고 있는 부동산 관련은 몇 위일까? ‘부동산 시장 침체’(14.5%)는 ‘소득감소’(18.6%)에 이어 4위다. 일자리와 소득 등 가처분소득 관련이 경기침체를 체감하는 압도적 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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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를 위축시키는 요인은 무엇일까? 1위는 응답자의 25.1%가 선택한 ‘자녀 교육비 부담’이다. 한국만의 특수한 현상이랄 수 있는 이 자녀교육 올인은 가처분소득의 감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아무리 소득이 줄어도 교육비는 줄이지 않는 개인도 어리석지만 그런 상황을 방치하고 있는 – 심지어는 학교서열화로 부추기고 있는 – 정부도 어리석다. 한편 전월세 상승은 설문항목 중 꼴찌로 불과 6.3%다.

가장 중요한 설문항목 중 하나가 ‘새 경제팀이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할 과제’일 것이다. 이 설문의 1위는 ‘내수 활성화’(33.1)고 2위가 ‘소득분배’(29.3%)다. 개인적으로 이 설문항목이 좀 잘못 설계되었다고 여겨진다. 내수활성화는 말하자면 수출주도형 경제와 대치되는 매크로 목표다. 같은 설문항목인 소득재분배, 공기업 개혁, 규제개혁, 환율안정 등 구체적 실천방안이 종합적으로 이행될 때 달성될 수 있는 전략적 목표인 것이다.

이런 한계에도 감안하고 살펴보자면 ‘내수 활성화’는 어쨌든 주로 부동산 경기 등 내수산업의 활성화와 관련 있을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 항목은 자영업자, 60세 이상 고령자, 고소득/고자산 그룹이 많이 응답하였다 한다. 그리고 소득분배는 직장인, 공무원, 저소득/저자산 그룹이 많이 응답하였다. 현 정부의 경제 로드맵에 올라와 있지 않은 소득분배에 대한 요구가 매우 높다는 사실이 가지는 시사점이 크다.

이상에서 볼 수 있듯이 국민 대다수는 경기침체로 고통 받고 있으며 그 주된 원인은 일자리 불안, 가계부채, 과도한 자녀 교육비 등으로 인한 가처분소득 여력 부족이다. 그리고 설문조사에 근거하여 판단할 때 부동산 경기 침체로 인해 추가적으로 힘든 이는 주택소유자 등 자산가 그룹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새 경제팀의 과제는 무엇일까? 사교육비 부담 경감, 고용안정, 가계부채 상환 등을 통한 가처분소득 증가 독려다.

DTI를 올리면 이 모든 일이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