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밋밋한 성폭행 기사 섹시하게 만드는 비법

사실 우리나라 언론이 좀 과도하게 심각한 면이 없잖아 있다. 특히 서구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방송이 그런 경향이 강한 것 같은데 서구의 뉴스는 쇼적인 성격이 강한 반면 우리네 뉴스도 이러한 경향을 따라가고는 있지만 아직 조금 경직된 듯한 모습이 남아 있다. 얼마 전 어떤 여자 아나운서가 뉴스 끝나갈 즈음 피식 웃었다고(정황상 비난받을 정황인 것은 같았지만) 바로 잘려버린 해프닝은 뉴스, 즉 언론이 가지는 경직된 권위에 대한 사회의 암묵적인 동의 속에 벌어진 일이라 할 수 있다.

신문은…

요즘 뉴스를 안 봐서 알 수 없지만 신문은 특히나 지면에 활자를 통해서 소식을 전달하니 만큼 더 인간적인 면이 배제된 듯한 느낌이 강하다. 그러기에 실은 남들 보기에는 코미디인 내용도(어느 신문이라고 명시하지는 않겠다) 본인들은 매우 심각한 언어와 화법으로 전달한다.

각설하고…

신문도 방송도 사건의 사실관계를 분명히 하고 기자 자신의, 또는 매체 특유의 목소리만 소신 있게 – 물론 왜곡하지 않고 – 담아낸다면 조금은 어깨에 힘 빼고 이야기해도 크게 문제없지 않나 싶다. 신문기사라고 한 두 마디 특유의 농담이나 풍자를 집어넣지 말란 법이 없지 않은가.

그런데…

문제는 농담하지 말아야 할 데서 농담하면 이건 문제다. 연합뉴스가 3월 26일 “부산서 10대 성폭행 사건 잇따라”라는 제목으로 최근 사회를 두려움에 빠트리고 있는 성범죄 사건들의 한 토막을 전하고 있다. 제목은 평범하다. 다만 기사내용이 좀 거시기하다.

“[상략]경찰 조사결과 황군 등은 반항하는 김양의 손을 붙잡고 “맞고 할래, 그냥 할래”라며 협박한 것으로 드러났다. 부산 사상경찰서도 이날 10대 여학생에게 강제로 술을 마시게 한 뒤 성폭행한 혐의(특수강간)로 윤모(18)군 등 3명을 구속했다.[하략]”(출처)

내용이 선정적이다. 황군은 김양에게 저 말 말고도 많은 말을 했을 것이다. 쌍욕도 했을 것이고 온갖 입에 담지 못할 모욕적인 언사를 서슴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경찰은 기자에게 대충 그런 내용들을 함께 전했을 것이다. 그런데 기자는 유독 저 말을 기사에 집어넣은 이유는 뭘까. 아마도 기사가 너무 밋밋해서 그랬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기사 소재가 너무 평범했다. 아니 할 말로 십대들의 성폭행 사건은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디선가 자행되고 있을 것이다. 사건전개도 뭔가 특이한 맛이 없다. 그저 그렇게 묻혀버릴 사건인 것이다. 그런데 이 기사를 살려낸 것이 바로 저 멘트다.

“맞고 할래, 그냥 할래”

기사를 읽는 사람들은 ‘어릴 때 삥뜯는 애들이 이런 말 자주 했는데’ 하며 피식 웃을 것이다. 기사에 한번은 눈길을 던져줄 것이다. 김양이 황군한테 저 말 들었다고 무서워서 성폭행을 당해도 참았을 리는 만무하지만 적어도 기사에 포인트는 준 셈이다. 고로 저 멘트는 바로 기자를 위한 황군의 립서비스였을 뿐이다.

그리고 연합뉴스의 기사를 받아 옮긴 중앙일보는 여기서 더 오버한다. 본래 기사의 제목을 바꾸진 않았지만 메인화면의 제목은 다음과 같이 바꿨다.

원 기사와 같은 취지로 사이트를 편집하는 이의 의도가 다분히 엿보이는 대목이다. 결국 나도 그 제목에 낚였다. 그리고 썩 유쾌하지는 않다. 여하튼 중앙일보의 제목 신공은 이전에도 한번 지적한바 있지만 그런 식은 내가 서두에 언급하였던 ‘어깨에 힘 빼고 뉴스 전하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저열한 방식이라는 것이 개인적인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