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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

클림트하면 개인적으로 안 좋은 추억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십년도 훨씬 전 그가 우리나라에서 아직 유명세를 떨치지 못하던 시절, 나는 지금의 아내와 ‘친구’사이였다. 그리고 따로 애인이 있었다. 크리스마스엔가 아내를 애인보다 먼저 오전에 만났는데 그 당시로서는 희귀한 클림트 달력을 선물로 줬다. 뒤늦게 애인에게 줄 선물이 없는 것을 깨닫고 그걸 도로 회수해서 애인에게 갖다 줬다. 그 뒤로 여태까지 아내에게 ‘선물 줬다 뺏어간 X’ 으로 낙인찍혀 있다. 아마 평생 갈 것 같다.

어쨌든 오늘 짬을 내서 동양에서 최초로 연다는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의 전시회에 다녀왔다. 어렸을 적 수학여행에 가서 첨성대 실물을 보고 실망한 적이 있어 그 뒤로 유명작가의 유명작품들에 대해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작품을 보면 ‘역시 클림트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공력이 대단함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습작에서조차 느껴지는 놀라운 머리카락 세부묘사랄지(그림보기), 단색의 검은 옷에서의 풍부한 색감표현(그림보기) 등이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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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stav Klimt 039” by Gustav Klimthttp://www.belvedere.at/en/sammlungen/belvedere/jugendstil-und-wiener-secession/gustav-klimt.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사실 ‘키스’와 같은 그의 대표작 상당수가 이번 전시회에서 제외되어 있다. 가장 유명한 작품이라면 홍보용 걸개그림을 장식하고 있는 ‘유디트 I’(그림보기) 정도다. 그렇더라도 앞서 말한 것처럼 다른 그림들에서도 충분히 클림트의 실력과 화풍을 느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맘에 드는 작품은 오히려 우키요예를 연상시키는 그의 현란한 색채나 황금장식과는 거리가 먼 ‘마리 브로이니크 초상’(그림보기) 이다. 성공한 사업가의 부인이었던 이 여인은 차분히 옆을 바라보고 있지만 자신의 몸을 감싼 옷가지 중에서 오른쪽 장갑을 벗어 틀에서 벗어나 방종해지고픈 욕망을 암시하고 있다. 이 점이 오히려 홍조를 띤 하얀 얼굴과 함께 어울려 노골적인 전라의 여성보다 더 에로틱한 매력을 뿜어내고 있다. 클림트는 그런 여인을 극사실주의에 가까울 정도로 치밀하게 표현해냈다.

옆 전시실에서 진행 중인 – 내일 끝난다 – 요섭 카쉬(Yousuf Karsh)의 사진전도 보았다. 명사들의 사진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담아낸 20세기 최고의 인물사진가라는데 역시 멋진 작품들이 많았다. 그의 작품들에서 주목할 것은 인물의 얼굴도 있지만 바로 손이다. 손이 어떤지, 어떤 손 모양을 하고 있는지가 그 인물의 됨됨이를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사례 보기) 버트란트 러셀의 사진은 역광을 통해 아예 실루엣으로 처리했는데 그러한 과감성이 재밌었다.

사족 : 분리파의 다른 작가들 작품도 전시되어 있던데 혹시나 하고 기대했던 에곤 실레(Egon Schiele)의 작품은 웬 생뚱맞은 배를 그린 그림 한 점이 달랑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