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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거래세가 가지는 경제적/정치적 의미

11월 8일 EU 27개국 경제재무장관회의에서 금융거래세(FTT : Financial Transaction Tax) 도입과 관련한 논의가 이루어졌으나 독일과 프랑스를 주축으로 한 적극 추진 세력과 영국을 중심으로 한 비(非)유로존 간 상반된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최종 합의 도달에 실패함. EU 집행위원회는 금융거래세 도입 시 초단타매매 등 금융시장 불안과 투기 증폭 행위를 감소시킬 수 있으며, 유로존 재정위기에 책임이 있는 금융업계 및 투자자들에게 책임을 부과하는 방안이 되며, 시장에 큰 부담 없이 연간 570억 유로의 자금 조달이 가능하다고 설명함. 그러나 영국 재무장관은 금융거래세 도입 취지에는 찬성하나 유럽이 먼저 도입할 경우 금융투자자들이 미국 또는 홍콩 등으로 이전할 것이라며 반대 의견을 피력함.[EU, 금융거래세 도입 합의 불발, 보험연구원, 2011년 11월 10일]

이미 2008년 금융위기 이후 EU에서 논의된 금융거래세는 인용문에서도 설명하듯이 1) 금융위기를 초래한 금융권에 대한 징벌적 성격과 2) 경제에 큰 충격을 주지 않으면서 재정위기를 해소하려는 실용적 목적을 가지고 제안된 세금이다. 환율의 변동을 이용하여 자금의 급격한 유출입에서 발생하는 자금 시장의 문제를 줄이자고 제임스 토빈이 제안한 토빈세와는 달리, 주식∙채권∙외환 등의 금융상품 거래 일반에 부과하는 세금의 개념이다.

이제 금융거래의 세계화는 세계경제에 좋든 나쁘든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고, 이를 부정하는 정부는 찾기 힘들다. 금융거래 중 외환거래량을 예로 들어보자. 국제결제은행(BIS)은 3년마다 1일 외환시장의 거래량을 집계하는데, 2010년에는 규모가 4조 달러 정도 된다고 한다. 그럼 전 세계의 상품 수출입 거래량은 얼마나 될까? WTO에 따르면 2010년 기준으로 연간 약 30조 달러다. 8일간의 외환거래량이면 상품의 연간 거래량을 압도한다.

따라서 금융거래에 대한 적절한 통제는 세계경제의 안정성 차원에서 중요하다. 문제는 각국의 이해관계가 극명하게 갈라진다는 점인데, EU 내에서는 독일, 프랑스 진영과 영국의 입장이 첨예하게 다르다. 영국은 독일이나 프랑스보다 경제 규모는 작지만, 금융은 강하다. BIS에 따르면 세계 외환거래 중 36.7%가 영국에서 일어나 미국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빈번하다. 독일과 프랑스에서 일어나는 외환 거래는 각각 2.1%, 3.0%에 불과하다.

일국 차원에서의 금융거래세 도입은 여러 사례가 있다. 브라질은 1993년에 은행 거래활동에 과세하는 ‘은행거래세’를 도입하여, 비교적 성공적인 모델로 거론되고 있다. 반면 스웨덴은 1984년 금융거래세를 도입한 이후 금융거래가 대거 국외로 빠져나가는 실패를 맛보아야 했다. 이는 각국의 경제성장 및 투자매력도 등에 따른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일국 차원의 과세는 결국 수많은 변수를 초래한다는 점이다.

결국 금융거래세의 성공여부는 개연성이 매우 높은 풍선효과를 극복하고 금융거래를 자국의 테두리 안에 묶어둘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인데, 결국 세금을 내고서라도 해당 국가에서 계속 거래를 할 수 있는 매력적인 요소(금융 인프라의 성숙도, 높은 경제성장으로 인한 자금수요 등)가 존재하는가 하는 등의 변수가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일국 차원의 과세는 경제지형의 변경에 따라 그 효과가 바라질 수 있다는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

결국 빛의 속도로 진행되는 금융거래를 통제하는 근본적인 대안은 전 세계적인 규모의 일률적인 과세다. 이 방법에 대해서 티모시 가이스너 美재무장관은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는 전 세계 거의 대부분의 국가가 과세를 하더라도 케이맨 군도와 같은 단 하나의 조세피난처만 과세하지 않아도 그쪽으로 거래가 몰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물론 그의 반대는 이익집단의 로비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사태를 정확히 바라보고 있기는 하다.

개인적으로 금융거래세 과세의 성공여부는 향후 세계경제의 안정화에 있어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기업은 초국적으로 변해가고, 금융거래는 거대화되는 상황임에도 이를 통제할 행정력이 일국 단위에서 국한된다는 상황은 – 협력체를 구성한다 할지라도 – 정상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FTA 등으로 가속화되는 자본의 세계화는 결국 전 세계 모든 국가가 공동의 이해관계 아래서 촘촘히 대응하지 않으면 풍선효과만 불러올 뿐일 것이다.

그리스 의회의 긴축재정안 통과의 의미와 그 앞날에 대한 단상

새로운 프로그램에 따라 공공부문에서 15만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고, 공공지출과 헬스케어에서 감액이 예상되며, 이와 함께 중간 소득에 대한 엄청난 증세가 잇따를 것이다. 술집과 레스토랑에 부과되는 부가가치세는 13%에서 23%로 상승한다. 그리스는 그러한 소규모 비즈니스에 상당부분 의존하는바, 이 조치는 수천 개의 자영업을 도산시키고, 경기후퇴를 가속화시킬 것이다.

여태까지는 긴축프로그램의 옹호자였던 파이낸셜타임스의 수석 칼럼니스트인 Wolfgang Münchau 조차 이번 긴축조치는 “재무적으로 무모하고 정치적으로 무책임한” 조치라 결론내리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현재 상태 그대로 정치적으로, 도덕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정당화되기 어렵다.”라고 그는 적고 있다.

그럼에도 EU는 그리스 의회에게 그 프로그램을 받아들이라고 엄청난 압력을 가해왔다. 경제담당 집행위원인 Olli Rehn은 만약 긴축 패키지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리스는 파산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즉각적인 디폴트를 피하는 유일한 길은 의회가 이 수정된 경제 프로그램을 지지하는 것뿐이다.” 한 연설에서의 그의 발언이다. “금융원조의 다음 트랑쉐(tranche)를 받고 싶으면 그들이 승인해야 한다. 다른 옵션을 기대하는 이들에게, 분명히 말하지만 디폴트를 피하기 위한 플랜B는 없다.”[Greek austerity package: Social counterrevolution in Europe]

결국 그리스 의회는 긴축재정안을 155대138로 통과시켰다. 집권 사회당의 의석이 155석인데, 희한하게 찬성의원수가 이 의석수와 일치한다. 모든 사회당 의원들이 정확히 찬성하진 않았겠지만, 결국 투표 결과는 집권당과 야권의 의견이 이만큼 극명하게 갈라져 있을 정도로 그리스 정치의 분열이 심각한 양상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살인적인 고금리와 긴축조치로 수많은 서민들을 고통 속에 몰아넣었던 우리의 이전 세기 외환위기가 연상되는 이런 조치들은, – 우리는 의회의 승인절차조차 없었다. – 가장 큰 피해자가 우리의 외환위기 때와 마찬가지로 절대다수의 서민들임을 익히 짐작할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좌익” 정당임을 자처하는 사회당 치하에서 자행된 조치다.

한편, 그리스의 최대 채권국인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서 구제방안을 두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독일이 이른바 “강제 채무 조정”을 원하고 있다면, 프랑스와 유럽중앙은행(ECB)은 리파이낸싱을 통한 “연성 조정”을 선호하고 있다. 독일의 안이 채권자들의 상당 부분 희생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주류 안이 아니라는 점은 익히 짐작할 수 있다.

독일은 원금을 깎거나 차환 채권을 새로 발행해 기존 채권을 대체하는 등 채무구조조정에 찬성하고 있습니다. 그리스 사태에서 그리스 국채에 투자한 민간이 보유한 고금리 단기 채권을 저금리 장기 채권으로 전환하자는 것입니다. 독일은 민간 채권자들도 고통분담에 동참하라고 주장하는데 유럽 재정 위기 극복을 위한 기금 EFSF(유럽재정안정기금) 4400억 유로를 조성했는데요.

27%를 부담하는 독일 여당이 지방선거에서 패배했는데 여론때문에 리파이낸싱에 동의하기 쉽지 않습니다. 반면 프랑스와 ECB(유럽중앙은행)은 리파이낸싱 방식을 선호합니다. 즉 추가로 돈을 빌려주고, 이 돈으로 기존 빚을 갚아 돈을 갚는 시점을 뒤로 미루는 방식을 원하는데 프랑스 은행들이 550억 달러 정도 그리스 채권을 보유하고 있어 더 손해를 볼 것이 우려되기 때문입니다.[그리스 재정수혈 ‘난항’··민간참여 놓고 獨· ECB ‘대립각’]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가디언이 보도한 것처럼, IMF 총재였던 Dominique Strauss-Kahn이 성폭행 혐의로 총재 자리를 비운 사이, JP모건 부회장 출신인 미국인 John Lipsky가 집행대행을 맡으면서 갑자기 강경노선으로 돌아서서 독일의 입장을 굽히도록 강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성폭행, 미국인, 독일, 그리스 구제금융의 재밌는 조합이 만들어진다.

독일 은행들이 그리스 구제에 참여키로 함에 따라 그리스 사태가 돌파구를 찾아가고 있다. [중략]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확정되지 않았으나 독일 최대 은행인 도이체방크의 요제프 아커만 회장은 “민간 채무자들을 구제에 참여시키기 위해 프랑스가 제안한 안이 토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도 나섰다…그리스 낙관론 대두]

독일과 프랑스의 안이 온도의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어쨌든 그리스에 대한 채무조정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비록 채권자들이 그리스가 긴축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파산시키겠다고 협박했지만, EU나 IMF가 쉽게 그리스를 버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럴 경우 인접국으로의 위기확산과 채권자들의 큰 손실을 의미할 뿐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상황은 그리스 인민의 희생을 강요하는 긴축재정안을 그리스가 수용하고, 채권자들의 희생을 최소화하는 프랑스안을 수장이 갈린 IMF 등이 독일을 압박하여 관철시키는,  채권자에게는 최상의 결과가 만들어졌다. 결국 그리스는 단기구제는 받을지언정 쉽게 빠져나올 것 같지 않은 악성채무자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과연 그리스를 포함한 유럽의 주변국들이 어떤 사연으로 이런 험난한 길에 접어들었는가에 대해선 갑론을박이 있을 수 있겠으나, 분명한 사실 하나는 현재의 체제 하에서의 이러한 조치들은 결국 위기를 이연시킬 뿐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긴축안이 통과하자 전 세계 증시는 일제히 오르며 그리 길지 않을 즐거운 망중한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