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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ch-22

정부의 간섭을 배제하면서 정부 차원의 해법을 요구하는 이런 모순은 경제개혁연대의 태생적 한계에서 비롯한다. 합리적인 시장경제를 꿈꾸는 이들이 관치금융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시장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을 때 결국 최후의 보루는 정부 권력의 개입, 관치일 수밖에 없다는 것 또한 자명하다. 애초의 부실의 원인이 과도한 규제완화와 관리 감독의 부재, 곧 관치의 부재에서 비롯한 것이라는 사실이 간과되고 있다.

문제는 관치의 주체가 이명박 정부라는 건데 진보진영이 방향을 못 잡고 있는 것도 바로 이 지점에서다. 관치는 필요하지만 이명박에게 맡겨 두기에는 위험하다는 이야기인데 정부가 배제되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결국 자본과 시장의 논리가 된다. 과감하고 선제적인 구조조정이라는 것도 결국은 살아남는 자들의 기득권을 보호하고 독점 구조를 강화하는 결과를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이정환닷컴, 관치금융과 공적자금의 딜레마., 2009. 2. 28.]

이 글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단어가 하나 있었는데 Catch-22다. 이 단어는 전쟁과 관료주의에 대한 최고의 풍자소설로 칭송받는 소설 Catch-22(원작 Joseph Heller)에서 등장하는 단어로 모순(矛盾)의 의미와 비슷한, 서로 공존할 수 없는 상황을 낳게 되는 일종의 작품 중의 군대 규칙의 한 조항이다.

오직 하나의 캐치가 있는데 그것은 캐치22이고, 이것은 실재하고 임박한 위험을 눈앞에 두었을 때의 자신의 안전에 대한 염려는 합리적인 생각의 과정을 구체화한 것이다. Orr는 미쳤고 비행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요청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요청하자마자 그는 더 이상 미치지 않은 것이고 더 많은 미션만큼 비행해야 한다. Orr는 더 많은 미션만큼 비행하면 미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멀쩡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멀쩡하면 비행을 해야만 한다. 그가 비행을 하면 미쳐버리고 그것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가 하고 싶지 않으면 그는 멀쩡하고 그것을 해야 한다. Yossarian는 캐치22의 조항의 절대적인 단순함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존경스럽다는 듯이 휘파람을 불었다.
“정말 대단한 캐치네요. 그 캐치22는.” Yossarian이 논평했다.
“그래 정말 최고지.” Daneeka 박사가 동의했다.
There was only one catch and that was Catch-22, which specified that a concern for one’s safety in the face of dangers that were real and immediate was the process of a rational mind. Orr was crazy and could be grounded. All he had to do was ask; and as soon as he did, he would no longer be crazy and would have to fly more missions. Orr would be crazy to fly more missions and sane if he didn’t, but if he was sane he had to fly them. If he flew them he was crazy and didn’t have to; but if he didn’t want to he was sane and had to. Yossarian was moved very deeply by the absolute simplicity of this clause of Catch-22 and let out a respectful whistle.
“That’s some catch, that Catch-22,” Yossarian observed.
“It’s the best there is,” Doc Daneeka agreed.[출처]

요컨대 더 이상 비행을 하고 싶지 않으면 미쳐버리면 되는데 자기가 미쳤다고 의사를 찾아가 이야기할 정도면 정상으로 간주되고 그러면 다시 비행을 해야 되는 것이다. 이도저도 못하고 옴짝달싹 비행기 안에서 미쳐가는 Orr와 Yossarian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정환씨가 언급하는 경제개혁연대를 비롯한 경제자유주의자들의 현 상황이 그렇지 않을까 싶다. 더 큰 나락에 빠지고 싶지 않아 정부지원을 요청하는데, 그런 한편으로 관치(官治)는 싫다는 그런 상황이다. 관치를 포기하면 또 나락에 빠지는 상황이 연출될 것이다. 씨티그룹은 그게 무서워서 국유화의 길을 택했다.

물론 해법은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우익 독재적인 관치도 시장독재적인 신자유주의도 아닌 세금납세자, 즉 사회구성원 대다수의 이해와 요구사항을 대변하는 권력에 의한 관치가 그해법이랄 수 있다. 그러면 그것이 국유화라는 이름이 되었건, 관치라는 이름이 되었건, 또는 사회주의라는 이름이 되었건 지금보다 더 나은 길로 갈 것이라는 개연성은 커질 것이다. 하지만 사실 문제는 오바마건 심지어 이명박이건 간에 대의 민주주의라는 합의된 승부에서 이긴 이들이라는 점이다. 이것이 더 큰 외연을 둘러싼 Catch-22다.

사족 : Catch-22는 1970년 ‘졸업’의 감독 마이클 니콜스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영화 역시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존 보이트, 오손 웰즈, 앤써니 퍼킨스, 마틴 쉰, 아트 가펑클 등 배역도 호화배역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존 보이트의 능청스러운 코믹연기가 맘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