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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후의 세계] 비대면(非對面) 경제

코로나19 사태를 소재로 무언가 글을 쓰려는 전업 작가가 있다면 이번 사태가 미치는 그 방대한 영향력으로 인하여 어떠한 주제로 글을 써야 할지 고민이 많이 될 것 같다. 앞으로는 전 세계를 공간적 배경 삼아 정치, 사회, 경제, 기술, 법률, 문화, 환경, 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 코로나19 이전과는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는 불안감 혹은 기대감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사태가 몇몇이 말하는 “문명사적 전환”의 서막이라는 것이 호들갑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나는 총론을 쓸 능력이 없는 경제적인 관심사나 블로그에 끼적거리는 블로거이므로 그때그때 생각나는 각론에 대해서나 사견을 적어놓을까 생각하고 있다.

오늘 논할 키워드는 “비대면(非對面) 경제(Non-face-to-face Economy)”다. 감히 예언하자면 앞으로의 시대는 이전과 다른 차원의 비대면 경제의 시대가 될 것 같다. 사실 우리는 이미 다양한 경제활동을 비대면으로 영위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온라인 쇼핑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이제 시장에서 상인을 대면할 필요 없이 원하는 상품을 집에서 받아볼 수 있게 되었다.1 인터넷의 발전, 온라인 결제, 배달업의 발전 등으로 인해 가능해진 경제활동이다. 한국은 온라인 쇼핑에 있어서만큼은 이미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세계적인 수준이라 할 수 있고2 여타 국가들 역시 온라인 쇼핑은 전체 쇼핑 활동 중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한편 비대면 경제는 온라인 쇼핑과 같은 소비의 영역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사전적 의미로 ‘얼굴을 접하지 않고 경제활동을 영위하는 것’은 생산의 영역에서도 가능한 일이고 앞으로 그 비중이 획기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즉,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에는 이전의 ‘소비의 비대면화’를 넘어서 ‘노동의 비대면화’ 시대로 접어들 것이라 판단된다. 이번 사태로 인해 재택근무가 반강제적으로 활성화되며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의외로 재택근무로도 기업이 제법 원활하게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기업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던 주5일제 노동이 당연시되듯 앞으로 ‘주3일 사무실 + 2일 재택 옵션’이 자연스러워 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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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간 우리는 왜 정해진 시간과 공간에서 함께 노동을 했던 것일까? 그것은 일종의 규율이다. 사실 기업은 경제활동을 영위하는 군대라 할 수 있다.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기업’이라는 경제단위가 경제의 큰 축을 차지하면서 자본가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군대식 규율이었다. 특히 제조업 공장에서의 규율이 강한 편이었고, 이는 사무직 노동자의 근무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3 그렇기에 노동자가 한 공간에 모여 규율을 지키는 것은 일종의 부가 노동이랄 수 있다. 그렇기에 노동의 비대면화는 어찌 보면 업무 진행에는 큰 차질이 없을지라도 이러한 규율을 효과적으로 아우르기에는 부족하였기에 아직까지 일상화되지 못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면에서 기업은 노동자들이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 제대로 규율을 지켜가면서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까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또 한편 기업의 전면적인 재택근무를 막는 장애물은 관성(慣性)과 보수주의다.4 기업역시 시도해보지 않았던 영역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5 하지만 팬데믹이라는 외부의 충격에 의해 사태가 심각한 동안 꽤 많은 기업이 자율 반 타율 반으로 재택근무 체제로 전환하였고 의외로 업무성과가 생각만큼 나쁘지 않다는 사실도 어느 정도 인지하게 됐다. 일종의 재택근무에 대한 패러다임 적 전환의 순간이 온 것이다. 사태의 조기종식이 요원한 현 상황에서 이에 많은 기업은 진지하게 강도 높은 재택근무를 고려할 것이다.

향후 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재택근무가 활성화되면 노동환경에는 어떠한 변화가 올까? 트위터에 재택근무가 ‘잠옷을 입고 근무할 수 있어 장점, 잠옷을 입어도 근무해야 하는 게 단점’이라는 취지의 트윗이 인기를 얻었는데 어쨌든 노동자로서는 출퇴근 시간의 절약이라는 꿀 같은 시간을 얻을 수 있다. 주 52시간 노동과 결합하면 꽤 많은 여가를 즐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6 한편, 반면 기업이 노동자의 퍼포먼스를 노동시간이 아닌 별도의 퍼포먼스 측정 수단으로 측정할 경우 이전과는 다른 종류의 노동의 유연화 헬게이트가 열릴 수도 있다.7 또한 노동시간 이외 추가적인 노동을 강요받는 의사(擬似)노동의 증가8라는 악영향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유연적 축적이 자본주의의 생존기제로 자리 잡기 시작한 즈음부터 그러했지만, 노동자와 노조로서는 변화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 하는 존재론적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전통적인 노동조합은 기업의 군대식 문화를 親노동적인 조직에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9 따라서 기업이 脫공간 脫규율적으로 행동하며 보다 교묘하고 질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노동을 규율하게 되면 노동자와 그 조직 역시 그 방식에 적응하여 변해야 할 것이다. 현대차노조, 대한항공노조, 금융노련과 같은 기업별/산별조직이 아닌 뭔가 더 큰 그림에서의 조직이 필요할 것이다. 재택근무가 산업민주주의의 대안이 될지 새로운 군사적 기업문화의 변태가 될지는 아직은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