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SPC

구조화 금융에 대한 개괄

이번 금융위기의 주요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몇 가지 핵심적인 개념들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다. CDO, CDS, ABS, MBS, 콘듀잇, 레버리지, 파생상품, SPC, 증권화, 유동화, 구조화, 모노라인, 신용평가사 등등… 이름만 들어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이 글에서 모두 설명할 수는 없고 큰 틀에서 사례로 설명해보도록 하겠다.

철수는 월스트리트 투자은행 A에 근무하는 친구다. 철수는 한국에서 직장이 있었지만 더 큰 꿈을 위해 탑클래스MBA에서 공부를 했고 운 좋게 월스트리트에까지 진출하여 얼마 전에 성공담으로 책까지 써냈다. 여하튼 이 친구 실적을 좀 내야겠기에 좋은 사업거리가 없나 고민한다.

어느 날 부동산업자 윌리엄이 그를 찾아와 샌프란시스코에 주택단지 부지를 보아놨으니 돈을 꿔달라고 한다. 윌리엄은 1천만 불이 필요한데 자신과 그의 개인기업 B 등이 다 합쳐야 1백만 불이 있을 뿐이었다. 철수가 알아보니 상당히 사업성이 있어보였다. 그런데 부지매입 문제와 윌리엄의 개인회사 B가 마음에 걸렸다. 부지매입 리스크가 있고 B회사의 재정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철수는 윌리엄에게 이 사업(이름 하여 SF 프로젝트)을 유일한 사업목적으로 하는 회사 C를 설립하도록 권유한다. 이른바 ‘특수목적법인(SPC or SPV ; Special Purpose Company or Special Purpose Vehicle)’이다. 그리고 철수는 부지매입 리스크를 헤지하기 위해 이 리스크를 부담하고라도 돈을 빌려줄 용의가 있는 헤지펀드 D에게 대출을 해줄 것을 권유한다. D는 C에게 부지매입자금 4백만 불 중 윌리엄의 출자금 1백만 불을 제외한 3백만 불을 높은 이자에 빌려준다. 이른바 mezzaine loan(굳이 번역하자면 중간대출 쯤?) 또는 bridge loan(자본금과 본 대출의 가교라는 의미에서).

마침내 부지매입과 인허가가 완료되어 SPC인 C는 D에게 돈을 갚는다. 그리고 투자은행 A로부터 본 대출 6백만 불을 받고자 한다. 철수는 금리를 낮추고 대출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신용평가기관 E로 하여금 SPC C의 평가등급을 요청한다. E평가기관 영이는 최근 부동산 경기도 좋고 철수와 친해서 SPC의 등급을 A등급을 준다.

철수는 그런데 회사에 6백만 불이라는 대출채권을 남겨놓고 싶지 않았다. 대차대조표 상에 표시되고 자기자본비율이 낮아져 더 많은 대출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산담보부채권, 즉 ABS(asset backed securities)를 발행하기로 했다. 채권등급도 좋겠다 시장상황도 좋겠다 너도 나도 산다고 해서 한국의 투자은행, 독일의 투자은행 등에 팔았다.

이것이 대충 구조화 금융(structured financing)의 큰 틀이다. 사업을 증권화(securitization)하여 다른 이들에게 유동화(liquidation)한 과정이 간략하게 설명되어 있다. 모두가 행복하다. 윌리엄은 이 사업을 통해 2천만 불의 매출을 올려 각종 비용, 이자, 세금을 제외하고도 4백만 불을 벌었다. 철수는 이자와 금융수수료를 챙겼다. 영이도 신용평가수수료를 챙겼다. ABS를 인수한 각국 은행들도 안전자산에 투자해 소득을 올렸다.

까지가 기초자산이 붕괴하기 전까지의 이야기다.

이 글에서는 부동산 개발 사업이라는 단기승부의 사업을 예로 들었지만 실제로 미국 전역을 흔든 위와 같은 구조화의 많은 부분이 실수요 소비자들의 모기지 대출에도 쓰였다. 전통적으로 위험대출군으로 간주되었던 많은 저소득층들이 갑자기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가능군으로 분류되었고 그 뒷돈을 대준 것은 수많은 도관체(conduit, 앞서 설명한 SPC들)를 통한 자금들이었다. 즉 위험을 분리하여 나눠가지고 이에 따른 소득도 나눠가지는 자금들. 유동성이 증가한다.

여기에서 양질전화의 법칙이 가동한다. 유동성이 증가하여 자산이 증가하고 소비가 증가하고 수요가 불붙고 또 다른 사업에서 자산에 따른 담보가 증가하고 대출은 늘고 유동성이 더욱 증가하는 그 순환고리에서 자산의 거품이 임계치에 달하자 늘어나는 자산은 어느 순간 환희가 아니라 공포가 된다.

약간의 자산가치 하락이 순간 시장이라는 큰 와인 잔에서 넘치더니(spill over), 시장참여자들을 움츠리게 만들고, 안전자산이라 여겨지던 자산이 한 순간에 부실자산으로 둔갑한다. 마치 자정이 지난 후의 신데렐라의 행색처럼 말이다. 어느 순간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들은 이 유동화 증권을 시가평가 방법에 따라 대규모 상각에 나섰고 그 뒤 상황전개는 많은 이들이 보는 바와 같다.

여기까지 읽었으면 대강 느꼈겠지만 사실 이런 시장행위들을 싸잡아 날강도들이라고 비난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시장은 늘 그렇듯이 합법과 비합법의 경계를 넘나들고 월스트리트건 부동산 업자건 애초 상종 말아야 할 돈벌레인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이는 시스템 리스크인 측면이 강하다. 건전한 경제는 그 안에 숨 쉬는 인간의 도덕성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요는 그들에 대한 타당한 통제의 문제이기도 하다. 물론.. 그 통제를 마비시킨 우두머리들의 부도덕에 따른 폐해는 엄청나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