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읽다가 샘터 주인인 척 했던 어떤 인간이 떠오르다

“아니, 내가 뭐, 버는 게 있어서? 빨래라야 그저 여름 한철이지, 그것두 이제 장마나 지면 다 쓸려내려가구…. 흥! 그야말루 오 전 십 전 빨래 값 받어가지구 해마다 세금 바치려면 쩔쩔매는 판인데….”
그리고 그는 잠깐 말을 끊었으나, 칠성아범이,
“허지만….”
하고, 또 이의를 제출하려는 기색에, 그는 즉시 말을 이어,
“더구나, 소문을 들으면, 뭐 청계천을 덮어버린단 말이 있지 않어? 위생에 나쁘다던가… 그러니, 정말 그렇게나 되구 본댐야, 인젠 삼순구식두 참 정말 어려울 지경이니…. 흥! 말두 말어.”[천변풍경, 박태원 저, 문학과지성사, 2014년, p168]

소설가 박태원이 1936년 8월부터 10월까지 『조광』에 연재한 ‘천변풍경’의 일부다. 이 소설은 청계천 주변에 사는 당시 사람들의 모습을 소묘(素描)하듯 담백하게 그린 소설이다. 인용한 부분은 그 중에서도 제17절 샘터 문답에서 샘터 주인이 칠성아범과 민주사 집 행랑아범과 나누던 대화의 일부다. 샘터 주인이란 말 그대로 청계천 중 일부를 자기 것으로 하여 빨래하는 이들로부터 사용료를 받는 이었다. 이런 권리가 어떠한 법적 권리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소설에 나와 있지 않다.

Frame house along Seikei-Sen.JPG
미상 –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일제 침략 아래서의 서울(1910-1945)」의 “Frame house along Seikei-Sen“. 위키미디어 공용에 의해 Public domain으로 라이선스됨.

일제강점기 시절의 청계천 모습

청계천은 원래 그냥 개천으로 불렸으나 일제강점기에 청계천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한다. 인용문을 보면 박태원이 이 소설을 연재하던 시점에는 이미 개천의 이름이 청계천으로 바뀌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소설에서 샘터 주인이 이야기하듯 실제로 일제 총독부는 청계천을 복개(覆蓋)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한다. 하지만 예산의 문제로 실행되지 못하고 한국전쟁 이후 1950~70년대에 걸쳐 복개공사가 이루어졌고, 이 공사는 일종의 근대화의 한 사례로 홍보되었다고 한다.

천변주민들에게는 빨래터이자 쓰레기 투기장이었고, 샘터 주인에게는 영업장이었던 그 곳이 “근대화”를 위해 덮여지고, 다시 “현대화”를 위해 덮개가 뜯어져 친환경(?) 관광 상품이 된 곳이 바로 청계천인 것이다. 청계천은 샘터 주인에게는 오 전이나 십 전 빨래 값 받아서 연명하게 해주는 도구였지만, 후에 이걸 보다 큰 이익에 이용해먹은 이가 있다. 2011년 건축가에 의해 최악의 건축물 3위에 뽑힌, 복원된 청계천으로 대통령이 되어 4대강으로 그 스케일을 확대시킨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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