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kind Rewind

어떤 영화에서 본 장면을 이야기해보자. 젊은이 둘이서 길을 걷고 있는데 가판대에서 일하는 한 노인이 야구에서의 투구 동작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래서 한 젊은이가 다른 이에게 노인의 그런 기이한 행동의 이유를 물었다. 다른 이의 대답은 이러했다. 그 노인은 원래 메이저리그 투수였는데 단 한번의 투구가 홈런으로 연결되어 팀이 패했고, 그 이후 노인은 방출되어 선수생활이 끝났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때의 고통이 계속 남아 그런 행동을 하게 된 것이다.

이 정도의 고통은 아니었지만 나도 오늘 비슷한 경험을 했다. 아침에 아내에게 전화가 왔는데 당분간 맡아주기로 했던 남의 집 고양이가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집안 곳곳을 살펴도 나타나지 않았다면서 밖으로 나가면서 고양이를 보지 못하였냐는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럴 일이 없었지만 그 전화를 받고 오전 내내 출근 전의 한 컷 한 컷이 뇌리 속을 어지럽혔다. 어깨가 찌뿌듯해져왔다. 조퇴를 하고 밖을 헤매는 고양이를 찾아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했다. 결국 고양이는 집안에서 찾았다. 주인이 직접 쫓아와 불러대자 교묘하게 숨어있던 고양이가 나타났단다.

살면서 이런 일은 가끔씩 경험하곤 한다. 애인과 다투고 헤어졌을 때 사소한 이유로 싸웠던 그날만 없었더라면, 주식에서 큰 손해를 보고 앞뒤 가리지 않고 돈을 쏟아 부었던 그 거래만 없었더라면, 교통사고가 났는데 사고현장에 존재하였어야 했던 그 사유만 없었더라면… 등등 우리에겐 수많은 우연의 변수들이 메이저리그 투수였던 가판대 노인을 만들고, 고양이 잃어버리고 집에서 쫓겨나는 남편을 만든다. 그리고 그 우연들이 어느 순간 거대한 덩어리의 필연으로 자리 잡는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보면 그 거대한 필연이 사소한 우연들이 뭉쳐지는 장면이 리와인드 장면처럼 자세히 나온다.

어쨌든 집안에서 고양이가 발견되면서 벌써 기억이 서서히 내 뇌에서 지워지고 있던 그 아침의 출근 장면은 더 이상 곱씹을 필요가 없었던 또 다른 평범한 일상으로 분류하여도 상관없게 되어버렸다. 만약 그 장면에서 정말 잽싸게 고양이가 내 발 사이로 빠져나가 밖으로 도망가 버렸다면 나는 죄책감과 망상에 시달리고 아내는 우울증에 빠지고 고양이 주인은 산으로 들로 고양이를 찾아 헤맸을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는 2010년 1월 7일 6시 경이 잊지 못할 시각이 될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다.

당신에게 잊지 못할 어느 시각은 언제였을까?

6 thoughts on “Unkind Rewind

  1. thnoh

    그게 바로 인생에 있어서의 가끔 평균에서 크게 벗어나는 이벤트(블랙스완?)이 아닐까요..괜찮은 쪽으로 일어나면 매우 좋지만, 반대의 경우는 남감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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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괜찮은 쪽이든 반대쪽이든 블랙스완을 안보고 살고싶은 소시민의 소망을 적은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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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Charmless

    그래도 다행이네요
    저는 “그때 다른 선택을 했었다면…
    조금만 더 주의했다면…”
    하고 후회하는 순간이 참 많아서 글을 읽으며 묘한 느낌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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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이정환

    어딘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태엽감는새’를 연상케 하는데, 저는 FOOG님이 소설가로 전업을 하시면 하루키보다 훨씬 더 멋진 소설가가 될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꽤나 오래 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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