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프의 마술

경제에 관한 글을 주로 쓰곤 하지만 그래프를 별로 쓰지 않는 편이다. 생각이 좀 삐딱해서 그래프란 글 쓰는 이의 주장에 따라 얼마든지 – 완전 맘대로는 아닐지라도 상당한 정도로 – 조정(이라 쓰고 조작이라 읽는?)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글로 쓰는 주장 역시도 불편부당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오히려 더 편향될 수도 있다. 다만 그걸 (객관적인 척 하면서) 그래프나 숫자로 표현하면 사람들이 더 잘 믿는 경향이 있다는 – 또는 있을 거라는 – 그 개연성이 개인적으로는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참 피곤하게 사는 듯).

어제 트위터에 이런 평소의 소신(?)에 어울리지 않게 그래프를 하나 소개했다. 아래 보시는 그래프가 트위터에 소개한 미국의 최근 5년간의 설비가동률 그래프다. 2005년 내내 80%이상을 웃돌던 설비가동률 수치가 금융위기를 거치며 2009년에는 70% 아래까지 극적으로 내려갔다가, 현재는 수치가 급격히 상승하고 있는 중이다. 2008~2009년을 포함한 각종 경제 관련 그래프는 이 그래프처럼 모두 유례없는 급격한 하강 또는 상승세를 기록했으니 만큼 놀랍지 않은 편인데 금년 들어 수치가 나아지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여하튼 재밌었던 점은 이 그래프에 대한 트위터 이용자들의 다양한 반응이었다.

@Windholder 하지만 y축의 마술은 주의해야 됩니다.
@jihawkchoi 지나치게 드라마틱해서 지속가능성이 의심스럽네요
@taeri77 2번째 대공황을 막았다는 수많은 증거 중 하나
@nextofsearch_kr 충격적이네요.. 헐…

그래프의 극적인 면에서 놀라는 분, 긍정적으로 바라보시는 분, 약간 회의적으로 보시는 분, 그래프의 착시현상을 지적하시는 분 등 참으로 제각각의 반응을 보이는 것이 흥미로웠다. 일단 @Windholder 님의 의견을 살펴보면 그 분의 말씀은 결국 2009년 최저치가 최고치에서 15%정도 하락한 것인데 y축이 67.5%에서부터 시작하니 느낌이 배가된다는 의견일 것이다. @taeri77 님의 의견은 결국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에 의해서든 뭐든 실질적으로 제2의 대공황의 염려는 사라졌다는 것을 그래프가 말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 모든 분들의 의견에 대해 이 글에서 이견을 제기할 생각은 없다. 그저 서두에서 말한 바, 개인적으로 이 해프닝에서 그래프 역시 – 오히려 더 – 불편부당함과는 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는 정도만 말하고 싶다. 이 글에서 다양한 의견을 소개하긴 했지만, 대부분은 @nextofsearch_kr 님처럼 첫 느낌은 시각적으로 충격적일 것이다(나도 그랬기에 소개를 한 거고). 하지만 이 그래프를 기간을 달리해서(x축의 마술) 아래와 같이 표현해보면 애초 그래프가 일종의 프레임化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즉 설비가동률 통계를 조사한 이래 이 수치는 다른 경기변동 그래프가 그렇듯이 부침을 거듭해왔다. 첫 번째 그래프도 이전의 패턴과 유사함을 금방 알 수 있다. 물론 2009년의 수치는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긴 했지만 금융위기의 심각함을 감안하면 의외로 적게 떨어진 수치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요컨대 기간의 변경만으로도 그래프의 시각적 효과는 달라진다. 이번 위기가 심각하지 않다고 주장하려면 두 번째 그래프를, 심각하다고 주장하려면 2005~2009년 그래프를, 경기 회복됐다고 주장하려면 첫 번째 그래프를 쓰면 된다.

6 thoughts on “그래프의 마술

  1. 루돌

    ㅎㅎㅎ;; 제대로 낚였습니다~~;;; 그런데, 첫번째 그래프 또한 의미있는 정보일 수도 있겠어요. 짧은 싸이클을 정점을 찍었다고 해석하기엔 충분해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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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자작나무

    라는 책에서도 비슷한 언급이 있었던 기억이 나는군요. 착시현상의 위험성을 잘 지적해주셨습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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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charmless

    저 역시 통계나 그래프의 객관성을 강조하는 주장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어요. 덕분에 재밌는 글 잘 읽었습니다. 그래프에 관해 하나 더 생각해보면 설비가동률은 장기적으로는 하락하고 있는 추세군요.

    사람을 돌아버리게 만드는 더위인데 컨디션 관리 잘 하고 계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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