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의 독립은 “신자유주의적”인가?

‘중앙은행 독립성’이라는 규범은 그 자체로 민주주의적 가치와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도 있다. 진보적 성향의 경제학자인 매사추세츠 대학 엡슈타인 교수는 “‘중앙은행 독립성’은 세계금융위기를 불러온 시스템의 사상과 정책 중 하나”라고 주장한다. ‘신자유주의 교리’의 일종이라는 이야기다. 사실 ‘중앙은행 독립성’의 이론적 배경엔, 국가개입 없는 금융시장이야말로 자금을 최적 배분할 수 있다는 신념이 깔려 있다. 국가가 통화량을 조절해서 인위적으로 경기를 부양하려 해도 고용 등 실물경제를 움직일 수는 없으며 기껏해야 물가인상으로 귀결될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중앙은행의 역할은 정부를 견제하며 통화량을 실물경제가 성장하는 정도 내로 억제해서 물가인상을 저지하는 것으로 정리된다.[한국은행 독립은 불멸의 진리인가]

과문한지라 중앙은행의 독립이 “민주주의적 가치와 거리가 먼 신자유주의 교리”였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인용한 부분이나 나머지 기사들을 읽어보면 그 취지는 전혀 새로운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예를 들어 중앙은행 음모론의 경우엔 FRB가 민간은행의 소유라면서 결국 중앙은행의 독립은 정부로부터의 독립이란 명분하에 시장에로의 종속을 야기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신용위기 이후 FRB가 보여주는 모습은 정부로부터의 독립은 허울 좋은 명분일 뿐이고 금융자본, 특히 월스트리트의 거대 투자은행에 상당히 밀착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정황이 상당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내가 드는 의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중앙은행의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 그 자체가 “신자유주의적”인가? 둘째, 물가인상의 저지가 금융자본의 이해와 일치하는가?

첫 번째 의문에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중앙은행의 독립은 실제로는 금융자본으로의 종속이다. 본질이 그러하므로 “신자유주의적”이다. 대강의 흐름에 일리가 있다고 간주하여도, 예를 들어 자본주의를 극복한 그 어떠한 체제로 이행했을 때는 어떨까? 그때는 중앙은행이 정부의 직속기관으로 귀속될까?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일 것 같다. 중앙은행이 실제 얼마나 독립성을 가지고 그것이 경제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실증연구가 있겠지만 역시 그 독립성은 마치 정치권력 안에서의 삼권분립처럼 오랜 시행착오 끝에 끄집어낸 역사적 맥락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북한의 3대 세습과 관련하여 진보진영 내에서조차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본질은 결국 그러한 정치권력의 형태가 국가의 발전에 유효한 것인가 – 절차적 합리성과 목적적 합리성 양면에서 – 여부에 대한 갑론을박일 것이다. 여하튼 북한 등 몇몇 국가를 빼놓고는 분권형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집중형 정치체제에 대한 장점을 포기하는 대신 소위 ‘집단지성’의 장점를 택하겠다는 것이 아닐까?(물론 그마저도 오늘날 금권정치에 찌들어 있음은 사실이지만) 나는 중앙은행의 독립성도 같은 맥락으로 바라보고 싶다. 삼권분립이 “신자유주의적”이 아닌 것처럼 중앙은행의 독립도 그러하다고 본다.

엡슈타인 교수는 물가관리가 지상 목표인 중앙은행은 자연스럽게 금융자본의 대변인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중앙은행의 정치적 동맹자는 월스트리트 은행가들이다. 중앙은행 인사들과 은행가들은 매일 만나고 교류하며 호의를 나누는 가운데 경제를 보는 시각까지 공유하게 된다. 단적으로 말해서 중앙은행의 독립성 같은 것은 없다.” 중앙은행의 목표(물가안정)는 금융자본의 ‘갈망’이기도 하다. 돈을 투자하고 금융수익(이자나 배당금)을 얻는 금융자본의 입장에서 물가인상은 그 자체로 수익성에 치명적 타격을 가하기 때문이다. 캠브리지대 장하준 교수는 “적절한 물가인상은 경제성장을 촉진할 수도 있다. 이런 측면에서 물가인상 저지라는 중앙은행의 설립목적은 금융자본만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같은 기사]

오늘날 월스트리트가 중앙은행의 정치적 동맹자임은 – 나아가 정부마저 – 이제 다 증명된 일이다.(그 시초를 들자면 케네디에게 발탁되어 국방장관을 역임했던 로버트 맥나마라를 들 수 있는데, 포드 자동차의 CEO였던 그는 국방장관, 그리고 세계은행의 총재를 역임하며 산업자본, 정부, 금융자본의 회전문의 기초를 다진 인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중앙은행의 설립취지인 물가인상 저지가 금융자본의 이해만 대변한다고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물가인상이 결국 화폐가치를 절하하여 금융의 이익을 저해한다는 것은 한쪽만을 본 것이다. 사실이 그렇다면 왜 2000년대 중반 동안 FRB는 저금리를 유지하며 시장에 유동성을 불어넣었을까? 그 기간 동안 폭등한 집값은 금융자본에게 손해였는가? 익히 알다시피 월스트리트는 그 와중에 유동화와 증권화를 동원하여 사상 최대의 이익을 시현하였다. 물가인상이 좋은지 인하가 좋은지는 그때그때 다르다.

요컨대 다른 많은 것들과 마찬가지로 중앙은행의 독립, 그 자체는 본질에 있어 어떤 선악의 기준으로 볼 것은 아니다. 증권화나 유동화 기법이 그러하듯이, 나아가 금융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옛사람들은 – 심지어 막스 베버 같은 대학자마저 – 금융은 천한 유태인들이나 하는 것이니 그들은 “천민자본주의”라고 비난하였고 오늘날 신용위기로 인해 고통 받는 수많은 이들이 금융자본을 욕하지만 금융기능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듯이 중앙은행도 그러하다. 근본적으로 변혁하여야 할 대상이 아니라면 고쳐서 써야 하고 전술적으로 운용할 수밖에 없다. 암튼 만약 ‘중앙은행이 어떤 상태가 좋으냐?’ 묻는다면 난 독립을 택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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