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이 내용을 배반하는 신문기사 하나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단어들 중에는 특히나 다른 단어들보다 정치사회적 의미가 커서  사용하는데 주의를 요하는 것들이 있다. 그러한 단어들은 그것을 쓰는 사람들이 살아 움직였던, 또는 움직이고 있는 역사를 관통해오는 과정에서 가졌던 애초의 의미와 사회적 맥락, 그리고 여러 선입견들이 짧은 단어 하나에 녹아들어 있다.

예를 들자면 예전에 한번 언급하였던 ‘천민자본주의’라는 표현이 있을 수 있고, ‘386’, ‘빨갱이’, ‘깜둥이’, ‘병신’ 등등은 그것과 유사한 표현과 사뭇 다른 정치사회적 함의를 담은, 사용에 매우 주의를 기해야 하는 단어들이다. 그리고 또 하나 사용에 주의를 요하는 단어가 있는데 오늘 발견한 어느 신문기사에 이 표현이 여과 없이 드러난 것을 발견했다.

‘동성연애자’

이 단어는 우리사회에 아직 동성애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이 서슴없이 피력되던 시기에 쓰이던 표현이었다. ‘호모’보다는 덜 모욕적인 표현이긴 하나 성적취향을 표현함에 있어 ‘연애’라는 표현이 주는 미묘한 느낌에 부정적인 의미가 실려 최근 몇 년간 부정적인 표현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래서 최근에는 ‘게이’, ‘동성애자’, ‘레즈비언’ 등등의 표현으로 동성애자들을 호칭하고 있다.

아래 퍼온 신문기사는 동성애자의 성적취향이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에 대한 오랜 논쟁의 와중에 선천성에 손을 들어주는, 어찌 보면 동성애자들이 맘에 들어할만한 기사다. 그런데 문제는 이 외신을 인용 보도한 기자의 표현이다. 제목에서부터 이미 금기시되고 있는 ‘동성연애자’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본문에 들어가면 더 치명적인 실수를 하고 있다. 기자는 “연구결과 정상 남성들과 동성애여성들은” 이라고 써 결국 <이성애 남성=정상 남성, 동성애 남성=비(非)정상 남성>이라는 등식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스스로 내비췄다. 기사의 내용과 형식이 아주 극단적으로 배치된 꼴이 되고 만 것이다.

‘동성연애자 ‘ 뇌 구조 부터 다르다

【서울=메디컬투데이/뉴시스】
동성연애자가 되기 쉬운 사람은 이미 자궁속 태아기 부터 이 같은 소인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17일 스웨덴 연구팀이 ‘미국립과학원보’에 발표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동성연애남성들과 여성들은 좌우측 뇌 크기가 절반씩 거의 같은 반면 동성연애여성들과 남성들은 우측 뇌가 좌측 뇌보다 큰 것으로 나타났다.

뇌영상촬영을 통해 진행된 이번 연구결과 동성애자들은 특히 뇌 속 ‘편도(amygdala)’라는 영역이 일반인들과 크게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결과 정상 남성들과 동성애여성들은 편도내 오른쪽 부위의 신경 연결이 왼쪽에 비해 더욱 많은 반면 여성들과 동성애남성들은 좌측 편도부위의 신경연결이 더욱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 같은 차이로 인해 태아기 부터 동성애자가 될 소인을 타고 나게 된다고 밝혔다.

원나래 기자 wing@md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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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기사는 다음 포털서비스에서 퍼왔다. 이 기사를 제공한 메디컬투데이에 가보았다. 그랬더니 그 사이트에 있는 기사는 흥미롭게도 당초 기사의 ‘동성연애자’를 ‘동성애자’로, ‘정상 남성’을 ‘남성’으로 바꿔놓았다. 아마도 기자나 편집자가 다음 게시판에서의 빗발치는 비난을 본 모양이다.

여기서 한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언론은 어느 특정한 지적에 대해 그 지적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원래 기사를 바꾸는 행위는 – 특히 웹사이트에 올려진 기사에 대하여 – 자초지종의 설명 없이 바꾸는 것이 온당한 것인가?

과거 종이신문에서는 이미 발행한 신문에 실린 기사를 어찌 할 수 없는 노릇이니 당연히 다음날 신문에라도 ‘고칩니다’다 하고 정정 기사를 내곤 했다.(주1)그렇다면 웹사이트에서도 정정기사에 대해서는 그 정도의 공지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메디컬투데이의 해당 기사는 그런 공지를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주1) 물론 그 사회적 파장의 크고 작음에 관계없이 정정기사는 아주 눈에 뜨이지 않는 조그만 구석에 싣곤 하지만

4 thoughts on “형식이 내용을 배반하는 신문기사 하나

    1. foog

      어느 직업이나 그렇지만 특히 기자라는 직업은 사회에 대한 이해와 소양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이 기자는 약간 곤란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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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도 어제 그 기사 보고 ‘동성연애자’라는 표현을 쓰다니 이거 21세기 기사 맞아?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아주 최소한의 소양도 안 되는 기자들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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