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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고속도로 통행료, 어떻게 하는 것이 공익일까?

개통한 지 40년이 넘어 곳곳의 도로 노면이 훼손됐고 방음벽 시설도 노후했다. 그런데도 통행료 800원을 내야 한다. 시민 김진형(50·인천시 옥련동)씨는 “시도 때도 없이 막혀 고속도로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인데 왜 통행료를 내야 하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인천시민과 시민단체가 경인고속도로 통행료 폐지운동에 나섰다. 경실련 시민권익센터 등 4개 시민단체와 30명의 공익소송인단은 1일 한국도로공사를 상대로 경인고속도로 통행료 징수 중단을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수원지법에 냈다. 2000년에 이어 두 번째다.[“경인고속도 통행료 폐지하라”]

경인고속도로의 이용자로서는 분통터질만한 일이다. 불가피한 이유로 계속 그 도로를 이용해야만 하는 이용자라면 자신이 내는 통행료가 해당 도로의 정비개선에 쓰이는 것 같지도 않는 그런 상황에 화가 날 법도 하다. 더구나 공익소송인단이 주장하는 바, 1968년에 개통된 이 도로가 유료도로법 시행령에 정해져 있는 “30년의 범위안에서의 수납기간”을 어기고 있다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유료도로법 시행령 제10조 (통행료의 수납기간 등) ① 유료도로관리청은 법 제16조의 규정에 의하여 30년의 범위안에서 통행료의 수납기간을 정하여야 한다.

하지만 인용기사에 따르면 이미 지난 2002년, 법원은  유료도로법에 명시된 ‘통합채산제’를 근거로 “고속도로 추가 건설을 위한 재원 확보 차원에서 전국적으로 동일한 요금체계를 적용하고 있는 만큼 특정 고속도로에 대한 통행료 인하나 폐지가 불가능하다”고 판결했다. 결국 경인고속도로의 관리청인 한국도로공사는 통합채산제로 운영되니까 제10조의 수납기간의 제한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여겨진다.

유료도로법 제18조(통합채산제) 유료도로관리청 또는 유료도로관리권자는 2 이상의 유료도로가 다음 각호의 요건에 해당하는 경우 당해 유료도로를 하나의 유료도로로 하여 통행료를 받을 수 있다. 이 경우 유료도로관리권자는 유료도로관리청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1. 유료도로에 대한 유료도로관리청 또는 유료도로관리권자가 동일할 것
2. 유료도로가 교통상 관련을 가지고 있을 것
3. 유료도로에 대하여 통행료를 통합하여 받는 것이 적당하다고 인정되는 특별한 사유가 있을 것

2002년 법원 판결의 내용을 정확히 알지 못하여 판단하기가 어렵지만, 유료도로법 제18조의 통합채산제의 내용을 근거로 한 도로의 수납기간이 30년을 넘어도 된다는 취지는 약간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시행령 제10조의 입법취지가 한 개의 도로만으로 사업을 영위하는, 이를테면 민간투자사업의 사업시행자를 염두에 둔 것이라면 법원의 판결이 전혀 엉뚱한 것만 아닐 것이다.

즉, 한국도로공사는 전국에 수많은 도로들을 개설하고 운영하는 일을 업태로 하여 유지되는 회사이고, 도공이 운영하는 도로들이 독립채산제로 운영되지 않는 한은, 경인고속도로와 같이 통행료 수입이 좋은 도로에서의 수입으로 다른 지방에 도로를 깔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할 리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 이러한 자금운용은 여러 공공기업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운용행태이다.

약간은 역설적이게도 만일 경인고속도로가 민간투자사업으로 지어진 도로라면, 공익소송인단이 법정에서 질 일은 없을 것이다. 민간투자사업은 예외 없이 한 개의 사업장에서만 영업을 하므로, 예외 없이 시행령 제10조의 수납기간을 적용하고, 실제로 경인고속도로의 하단에 지어진 제3경인고속도로 역시 통행료 징수기간이 30년으로 한정되어 있다. 그리고 당연히 통합채산제가 아닌 독립채산제다.

이러한 독립채산제를 광의로 해석하면 소위 오염자부담원칙(PPP ; Polluter Pay Principle)이라 할 수 있다. 환경오염을 일으킨 자가 그 비용을 부담한다는 이 원칙은 도로사업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데, 제3경인고속도로는 그 도로를 이용하는 이로부터의 통행료 징수만으로 건설비와 운영비를 포함한 모든 비용을 회수한다는 개념이다. 경인고속도로는 이를테면 이러한 원칙을 어기고 있는 셈이다.

즉, 이용하는 시민들이 몸으로 느끼고 있는 것처럼, 통행료는 내고 있지만 그 돈이 해당 도로에 적절히 재투자되고 있지도 않은 것 같고, 실제로 법원도 언급한 것처럼 그 돈은 “고속도로 추가 건설을 위한 재원 확보”에 쓰이고 있을 확률이 높다. “공익”적 차원에서 말이다. 이쯤 되면 도공이 생각하는 “공익”과 공익소송인단이 생각하는 “공익”은 서로 모순되는 듯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도공은 지불능력이 있는 경인고속도로 이용자가 낸 돈으로 도서지방의 도로를 까는 것이 “공익”이라 할 것이고, 공익소송인단은 통행료로 적정한 서비스도 제공받지 못 할 바에는 통행료를 폐지하는 것이 “공익”이라 할 것이다. 둘 다 별로 물러설 틈이 없어 보이지만 절충점은 결국 도공이 경인고속도로의 수입금 일부라도 해당 도로에 합리적인 수준에서 재투자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 싶다.

요컨대, 이런 사회간접자본이나 공공서비스에서는 – 특히 도로와 같이 지역적으로 제공되는 서비스에 대해서는 – 소위 “공익”이란 것의 개념규정이 참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기여도에 관계없이 모든 이에게 일정하게 서비스가 제공되는 것이 공익인지, 또는 더 나아가 오염을 유발한 – 도로에서는 교통체증을 유발한 – 이가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공익인지, 지불능력 있는 이가 더 지불하여 지불능력 없는 이를 돕는 것이 공익인지는 여전히 만장일치로 통일된 의견은 없는 것 같다.

민영화는 절대악인가

이 글은 현재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민영화 논리에 대한 반대급부로 국가의 공공서비스 기능을 수호하자는 주장에 대해 보다 세세한 면에서 그러한 주장에 대한 대안을 내놓아야 되지 않을까 하는 문제인식에서 쓴 글이다. 필자 역시 아직은 걸음마 수준으로 생각하는 주제이기에 논리가 다소 튈 수도 있고 모순될 수 있지만 아이디어 공유차원에서 공개하기로 한다. 따라서 생산적인 딴죽은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공공서비에 대한 민영화(또는 사유화) 또는 공공기관 매각은 80년대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 본격화되었다. 사실 더 올라가자면 수에즈 운하, 미국의 철도사업들도 공공서비스이면서도 민간에 의해 건설, 자금조달, 운영이 되었던 민간위주의 사업이었다. 또한 프랑스의 경우 나폴레옹 시절부터 상하수도를 민간기업에 맡겨 운영하였다.

그렇지만 그러한 민영화 현상이 범세계적인 보편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영국 쌔처 정부의 정부조달 사업에 대한 민간의 참여허용, 제3세계에서 공공시설의 설치에 민간의 자금을 끌어들인 BOT(Build-Operate-Transfer) 등을 통해서이다. 그리고 이러한 추세를 가속화시킨 것은 WTO, FTA 등 자유무역협정과 무역의 세계화다. 이를 통해 각국은 자본자유화, 공공서비스의 표준화의 작업 등을 거쳐 해외투자자의 투자를 수월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민영화는 1990년대 초반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현재 공급되는 사회기반시설의 10%이상이 민간에 의해 서비스를 제공받게 되어 있다. 세계적으로는 물산업(상수도 및 하수도 건설 및 운영)을 예로 들면 현재 전 세계 인구의 9%가 민영화된 서비스를 공급받고 있으며 2015년에는 약 12%의 인구가 민영화 서비스를 받게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명박 인수위가 대운하, 금융기관, 방송, 의료보험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민영화의 이슈를 제기하자 블로고스피어 등 여러 곳에서 저항의 목소리가 높아져 가고 있다. 어쩌면 반가운 현상이지만 한편으로 이에 대한 대안도 마련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1) 공공서비스의 형평성, 또는 계급편향의 문제

자본주의라고 해서 모든 것이 다 시장에 의해 공급될 수 없는 이유는 이른바 통신, 도로와 같은 공공재는 비배제성, 비경합성이라는 고유의 특성 때문에 시장에서 공급될 수 없는 ‘시장의 실패’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그동안 자본주의 체제에서도 보편적으로 국가에서 공급을 해왔고 상대적으로 싼 가격을 유지하여 인플레이션을 차단하였다.

문제는 이러한 서비스 공급체계가 이른바 무임승차(free ride)의 문제를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이것은 오염자부담원칙(polluter pay principle)과 배치되는 개념인데 한편으로 계급간 형평성 또는 평등주의 논리에 의해 보완되기도 한다. 예컨대 건강보험같은 경우 부자들의 소득으로 빈자들의 의료비를 채우는 고통분담의 차원에서 공공서비스를 바라봐야한다는 취지기에 수긍이 가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충분히 부담능력이 있는 이가 무임승차할 수 있는 개연성은 남는다. 예를 들어 서울과 인천간 고속도로를 국가보조금으로 지었다면 이 도로를 이용하지 않는 지방 사람들에게는 억울할 노릇이다.

또한 도로공사가 직영하는 도로와 민자도로가 가격에서 차이가 나는 점은 근본적으로 민자도로가 시설의 투자비를 상각하여 통행료에 반영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면 도로공사처럼 투자비를 반영시키지 않는 방식이 좋은 것인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결국 어떤 식으로든 빚으로 남든지 국가가 보조하든지 해서 현 세대와 미래세대에게 부담을 주는 행위다. 도로 만들 돈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 하나가 자본주의 체제에서도 국가는 결국 지배계급의 지배도구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들이 공급하는 공공서비스 역시 계급편향적일 수밖에 없다는 문제다. 예를 들자면 지속적으로 적자가 나는 철도운영에 있어 예전에 찾아본 바에 의하면 여객부문은 흑자인데 수송부문은 적자였다. 이는 결국 기업의 물류비용을 국가가 개인의 여객부문에서 보충하고 있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회복지적 성격이 강한 의료보험 등도 역시 어떻게 보면 기업이 책임져야 할 노동재생산비용임에도 국가가 책임지는 구조라 볼 수도 있는 것이다.

2) 공공서비스의 비효율 문제

이는 특히 환경관련 시설의 공공서비스에서 제기될 수 있는 문제인데 현재 상수도 민영화 등을 골자로 하는 정부의 물산업 육성정책과 관련 있다. 결국 정부의 민영화 논리는 우리나라의 상하수도 서비스가 기초자치단체에 의해 공급되고 있어 비효율과 시스템의 부재로 인해 불필요한 비용이 과다지출되고 있고 관리와 효율적인 투자 또한 제때 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는 일정정도 사실이다. 상하수도의 누수율은 심각한 지경이고 시설도 노후화되었다. 그리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대안이 민영화, 광역화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관리주체의 난립이나 영세성으로 인한 비효율의 문제는 실제로 심각한 문제다. 어찌 하였든 사실은 공공서비스의 과점체제를 인정하는 문제를 논의선상에 올려야 하는 것도 사실인데 실은 이러한 논의는 진보진영에게 있어 일종의 계륵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필연적으로 해당 공무원의 고용불안의 문제, 공정경쟁 우선논리와의 상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지난 세기 현실 사회주의 등 진보적인 대안이 제시했던 사회상은 사실 똑 까놓고 말해 국가가 주인인 독점자본주의 시스템과 유사함을 인정하여야 한다. 진정한 사회화를 통한 대안경제 체제는 이러한 독점자본의 형태에서 점차적으로 각 사회세력이 통제능력을 갖춘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에서 바로 독점과 공정경쟁의 모순이 작동하는 것이다.

3) 갈수록 높아져만 가는 유지비용의 문제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할 수는 없지만 전 세계적으로 사회기반시설이나 공공서비스의 양은 급격하게 늘어났다. 제1세계나 제3세계나 모두 보편적인 현상이다. 이로 인해 어떠한 문제가 발생하는가. 바로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유지관리비용이다. 양적으로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서비스의 내용이 달라지기에 그 유지관리비용이 이전과는 다른 수준임에는 분명하다. 도로만 하더라도 이전의 도로와는 질적으로 다른 기능을 제공하니 그만큼 비용이 증가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국가로서는 이러한 비용이 예산에 차지하는 비율이 늘어나 이를 감당하기 어렵게 되고 그 위험비용 또한 엄청나다. 얼마 전에 미국에서도 다리가 무너진 사건은 현재의 사회기반시설 유지체제가 한계점에 도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할 때 국가로서는 어떠한 유혹에 빠지는가 하면 바로 민간에게 상당수의 반대급부를 주고서라도 민영화하여 위험을 이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계량적으로 측정되기는 어렵지만 이러한 위험이전효과도 상당할 것이다. 민간이 실제로 그 위험을 감내할 수 있는 가는 또 다른 문제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향후에 공공서비스를 계속하여 국가가 책임지는 구조로 가져가 달라고 요구할 것 같으면 이에 대한 재원마련의 대안도 내놓아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즉 국민들이 세금을 더 내서라도 이러한 부분에 대한 가격 차이를 메워줘야 하는 것이다. 이를 어떻게 조세저항 없이, 그리고 세금의 무임승차 없이 예산을 마련하는가가 관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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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올바른 공공서비스 제공의 모습은 그 형식에 있다기보다는 그 내용에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실제로 어느 공사가 주인 없는 회사라고 방만한 경영을 일삼는다면 그것은 차라리 국민세금 더 들어가기 전에 매각해버리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민간 기업이 제공하는 공공서비스라도 국가가 통제를 통해 가격과 서비스를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조정할 수 있다면 고려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현재 privatization 이 민영화로 이해되는 현상일 것이다. 즉 민(民)이라 불리는 주체 중 개인이나 사회운동단체 들은 실제 민영화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극히 제한적인 반면 자금조달 능력이 있고 이윤추구가 목적일 수밖에 없는 기업들이 민영화의 이슈를 독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현실적으로는 일종의 사회적 타협의 방법을 통해 올바른 방향으로 유도할 수도 있을 것인데 현재의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특히 한미FTA 등 자유무역협정은 오히려 사회적 타협의 가능성을 원천봉쇄하는 한편으로 기업에게는 국가를 제소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