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liquidation)의 계급차별성

이번 위기 해법의 어려움은 사실 서로 모순된 해법들이 결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섣부른 청산은(바하문트님의 다음 글 참조) 대공황처럼 견디기 어려운 침체를 지속시킬 것이므로 지양하여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는 거품이 끼어있는 자산을 청산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자산의 거품을 걷어내지 않으면 투자에 따른 자산가치 증가를 기대하기 어렵기에, 앞서 글에서의 risk taker는 찾아보기 힘들게 된다. 시장에서 hedger만 있고 risk taker가 없으면? 시장은 존재할 수 없다.

“급격한 청산을 지양하되, 결국에는 청산되어야 한다.”

이 교묘한 줄타기가 관건이다. 그 줄타기 중 하나가 미 행정부의 금융기관 및 자동차 기업들에 대한 조치이다. 사유화되어 있는 기업들의 흥망성쇠는 시장에 맡겨야 하는 것이 여태까지의 게임의 법칙이었지만 – 사실 고지식하게 잘 지켜졌는지는 의문 – 그 기업들의 사회적 중요성을 감안할 때에는 생존시켜야 하는 딜레마, 시장의 거품을 정부의 거품으로 막을 경우 정부 부실화 우려에 대한 딜레마가 공존하고 있다. 결국 터트릴 것을 터트려야 하는데 망하게 할 것이냐, 정부지원 또는 국가가 인수할 것이냐가 그나마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다.

개인적으로는 주요국가가 금융기관을 포함한 주요기업들을 국유화하여 빅딜의 형태로 부채들을 상쇄시키는 등 청산해버리는 것이 해법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국가간 계급간 이해관계가 다른 부르주아 자본주의 시스템의 특성상 그러한 대타협이 쉽사리 이루어지겠는가 하는 것도 의문이고 그것을 기존 주주들, 노동계급들이 저항 없이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것도 의문이다.

한편 우리나라는 어떠한 형태로 가치청산 vs 가치온존의 딜레마가 진행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그것은 다른 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게 계급 차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모양새는 더욱 조악해서 눈에 거슬리기도 한다. 일단 주로 자산계층에 피해가 편향될 부동산 자산가치 하락에 대해서는 정부에서 안쓰러울 정도로 방패막이를 해주고 있다. 반면 노동계급에게 피해가 갈 임금삭감 또는 동결 – 실질적으로 임금가치에 대한 부분적인 청산 – 은 폭력적으로 관철되고 있다. 요컨대 자본의 이익률은 매출의 상승이 아닌 비용의 하락을 통해 보전해주는 꼴이다.

8 thoughts on “청산(liquidation)의 계급차별성

  1. Ha-1

    그런데 사실 그 임금노동자들은 퇴근하면 한푼두푼 모아 자기집 한채가 전재산인 소규모의 부동산자산가들이니까요.

    물론 개중에는 임금도 적고 부동산 자산도 없는 빈곤층들도 있지만 사실 위기시의 구제란 구명보트에 살만한넘만 골라태우는 것인지라… 정치적으로는 얼마나 세련되고 인간적인 척하냐의 차이만 있을 따름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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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문제는 임금노동자들이 – 전체 또는 의미있는 숫자가 – 집을 레버리지 없이 소유하고 있다면 그야말로 자본주의가 이룰 수 있는 이상향이겠지만 대부분이 모기지론 등을 통한 대부경제를 통해 부동산을 소유하게 되었다는 것이 문제랄 수 있죠. 그것이 체제의 보수화에 기여하기도 하고 또 이번 서브프라임 사태처럼 그 거대한 부동산 경제 순환 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공황 사태로까지 치닫게 되니까요. 이에 대한 저의 짧은 생각은 http://foog.com/376 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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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Rierra

    부동산은 그 딜레머를 대표하는 자산중에 하나이죠. 쉽사리 터뜨리면 핵폭탄 위력이 되고 그러나 안터뜨리면 경제전체의 리스크는 계속 증가하고요. 우리나라의 경우 일본의 전철을 밟고 있다고 보여지는데 앞으로도 ‘경착륙’ 예방을 명목으로 계속 정부의 돈으로 부동산 시장의 파열압력을 막으려 들겠지요. 요행히 정부가 K.O.당하기 전에 세계경제가 회복되고 신용창출과 순환과정이 정상화된다면 ‘한동안’은 다시 부동산 자산의 가격상승을 통한 투기이익으로 부동산 시장이 유지되겠지만 그 가능성이 그리 높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개인적으로는 그게 우리나라 입장에서 제일 부정적인 시나리오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부동산을 사야하는 경제주체들의 체력은 장기적으로 볼 때도 그리 튼튼하지는 않아보이고 인구구조의 변화(통계청에서 얼마전에 언급했었죠.)나 분양주택들이 공급과잉인 수급상황(유효수요에 비해 그렇게 느껴진다는 것이지요.) 등이 부동산 시장에 그리 우호적인 시그널은 아닌 것 같구요. 문제는 정부가 못버티고 무너질 때까지도 세계경제 상황이나 국내 경기 및 신용상태나 그런 것들이 개선될 가능성이 그리 높지는 않다는 데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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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적정 부동산 가격이 얼마냐 하는 문제는 갑론을박이 있지만서도 부동산 가격이 적정선을 유지하여야 건전한 경제 시스템이랄 수 있겠죠. 미국은 지난 반세기 집값이 계속 상승하였어도 그 집값이 오랜 기간 연봉 대비 4~5배의 수준을 유지하였다고 합니다. 이번 서브프라임 사태때는 그것이 7~8배, 국지적으로는 10배 이상도 올라가서 그 임대료와 매매가의 스프레드가 현격하게 벌어지는, 다시 말해 매매가에 거품이 끼는 사태가 지속되었고 결국 그 거품이 터진거라 할 수 있죠. 우리의 경우는 연봉의 몇 배일까요? 수도권 지역만 봐도 얼추 계산할 수 있죠. 사실 나머지 지역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수도권이 우리나라 부동산 권력의 핵이고 그 안에서 수많은 이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만큼 이 정권이 그 권력유지에 혈안이 되고 있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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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silent man

    가카의 뜻에 따라 그린벨트도 밀고 강도 밀어가며 땅파고 아파트 좀 짓고, 다리 좀 지으면 나아지겠지요(…).

    가카의 뜻에 따라 어디서든 일만 시켜주면 임금이 깍이든 어쩌든 그저 굽신거리며 네 시간만 자고 일해야겠구요(…)

    너무도 조악한 청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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