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인출권(special drawing right)의 탄생 과정

처음에 미국은 달러의 기축 통화 역할을 축소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특별 인출권과 같은 수단을 만드는 것에 반대했다. 1964년 IMF 연례총회에서 달러의 비대칭적 위상을 반대하던 프랑스는 그러한 수단을 만들자고 제안했으나 미국에 의해 좌초되었다. 드골은 이에 굴하지 않고 국제 체제의 대칭성을 회복하기 위해 남은 유일한 길로서 금본위제로의 복귀를 제시했고 프랑스중앙은행은 달러를 금으로 급히 교환했다. 이러한 은근한 협박은 미국의 공식 입장을 변하게 만들었다. [중략] 미국은 미국의 대외 통화 위상이 더 이상 난공불락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고 1965년에 입장을 바꿔 특별 인출권 창출에 동의했다.[글로벌라이징캐피털, 배리 아이켄그린 지음, 강명세 옮김, 미지북스, 2010년, p178]

국제 통화 체제에서의 프랑스의 역할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서구강국이긴 하지만 통화 체제나 금융 체제에서 선두주자가 될 가능성이 낮은 나라, 그렇기 때문에 강대국들 간의 모임에서도 반골(反骨)의 스탠스를 유지하고 있는 그런 나라가 프랑스다. 프랑스의 이러한 입장이 어떤 경우에는 제3세계의 입장과 동일한 선상이기도 하였지만, 많은 경우 그 반발의 동기는 결코 1인자가 될 수 없는 2인자의 앙탈 같은 느낌이 강하다. 1차 대전 이전에는 영국에, 브레튼우즈 체제 하에서는 미국에, 그리고 유로존의 위기 중에는 독일에게 각각 들이대는 “영원한 2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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