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식인이 고안해낸 “한국적 민주주의” 이데올로기의 비극적 결과

임방현은 1960년대 말과 1970년대에 박정희 정권을 지지하면서 한국 정부의 정책을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데 앞장섰다. 임방현은 1974년(1973년의 오기인 듯하다 – 편집자)에 출간된 <근대화와 지식인>이라는 저서에서 지식인이 담당해야 할 책임을 열거하면서 동시에 박정희 정권이 지식인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그는 유신체제가 민주주의 제도의 발전을 저해한다고 비판하는 학자들의 주장을 반박하였다. [중략] 그는 “산업화된 국가에서 추구하는 민주주의 논의의 핵심은 복지와 분배다. (…) 하지만 우리가 채택해야 할 민주주의는 소비가 아니라 효율, 분산이 아니라 조화다”라고 주장하였다.[대한민국 만들기 1945~1987, 그렉 브라진스키 지음, 나종남 옮김, 책과 함께, 2012, p304]

박정희 정권 하에서 권력과 지식인 간의 협력 및 긴장관계에 대해 서술하는 장면 중 일부다. 미국의 주류학계는 이 당시 남한에 이른바 근대화론을 이식하려 노력했는데, 이 이론의 고갱이는 “모든 사회를 근대사회와 전통사회로 구분한 후, 저개발 국가의 경우 전통적인 관행과 규범이 근대화를 이루는 데 필요한 합리적인 철학의 형성을 가로막고 있으므로, 유럽이나 미국과 같은 선진 사회의 접촉을 통해 사회 변화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일보의 논설위원이자 학자였던 임방현은 기자들을 뽑아 연구를 지원하는 니만 펠로십을 통해 하버드에서 공부하면서 위와 같은 생각을 발전시켰다. 즉, 서구사회의 근대화론은 받아들이되 어디까지나 현존 권력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독특하게 변형된 근대화론을 발전시킨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독재를 비판하는 쪽이나 옹호하는 쪽 모두 근대화론을 비판의 논거로 삼았다는 점이다. 물론 더 왼쪽으로 가면 다른 논리가 나오지만 말이다.

여하간 임방현은 당시 유신체제를 정당화할 논리를 찾느라 혈안이 되어 있던 박 정권의 맘에 쏙 드는 개념, 즉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제공하였는데 근대화론에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교묘히 비틀었기에 지식인 주류 사이에서는 상당히 강력한 전파력을 지녔으리라 짐작된다. 그리고 이와 상관관계가 있는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임은 그 후 박 정권에서 특별보좌관으로 채택된 후, 공보수석비서관, 민정당 국회의원 등을 거친다.

그의 주장을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자. “산업화된 국가에서 추구하는 민주주의 논의의 핵심은 복지와 분배다.”라는 명제는 그가 이미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책무를 잘 간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용한 책에 따르면 흥미롭게도 임방현이 지식인의 국정에의 참여를 고민하게 된 계기가 저명한 학자이자 스스로 국정에도 깊이 관여한 스웨덴의 경제학자 군나르 뮈르달의 책을 읽고부터였다고 하는데, 앞서의 생각 역시 그의 생각에 따른 게 아닌가 싶다.

즉, 뮈르달은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면서도 스웨덴 등 북구의 국가개입주의적 사회민주주의의 형성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임방현은 이러한 그에게서 ‘지식인은 국가에 협력해야 한다’는 논리와 ‘국가가 경제에 개입하여야 한다’는 논리를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는 역시 결정적인 부분에서 뮈르달의 생각을 비트는데 “소비가 아닌 효율, 분산이 아닌 조화”가 그 부분이다. 스웨덴식 분배는 남한에겐 사치란 소리다.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인용한 책의 논지가 미국이 제3세계에 자신의 체제를 이식하려 시도한 중 유일한 성공사례가 남한이라는 것이지만, 그러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남한은 여전히 “복지와 분배”가 사치스러운 주문으로 남아있는 사회로 고착화되어 있다. “한국적 민주주의”가 형성한, 재벌위주/수출위주의 경제체제인 “박정희 체제”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제 그의 딸이 나서서 그 체제를 바꿔보겠다고 하여 집권했지만 그 시야는 아직까진 뿌옇다.

지식인이 교묘히 비틀어놓은 근대화론이 의외로 이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긴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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