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백, 왜 제2의 김용철은 쉽지 않을까?

최근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비리에 대한 폭로선언 시리즈를 보고 있자니 문득 영화 한편이 떠오른다. 테일러핵포드가 감독하고 알파치노, 키아누리브츠가 주연한 “The Devil’s Advocate(악마의 변호사)”가 바로 그 영화다. 실력 있는 변호사인 키아누리브츠가 파격적인 대우를 받으며 한 기업을 위해 충성하는데 그 기업의 우두머리인 알파치노는 사실 악마였다는 초현실주의적인 영화였다.

알파치노가 ‘진짜’ 악마였다는 사실 때문에 초현실주의적이긴 하지만 그것을 비유로 생각한다면 어쩌면 가장 사실주의적일 수도 있지 않을까? 현재 삼성의 우두머리로 계신 그 분을 영화에서의 ‘악마’ 알파치노에 비유한다면 김용철 변호사는 영락없이 키아누리브츠다. 영화 말미에서 결국 키아누리브츠가 악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듯이 김용철 변호사도 그런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사실 어쩌면 ‘악마’는 알파치노나 삼성의 어르신처럼 눈으로 볼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것은 우리 서로를 엮고 있는 강한 그물일 수도 있다. 물욕(物慾)에서 비롯된 이윤동기, 이를 위한 무한경쟁, 종내는 서로가 서로를 갉아먹고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는 먹이사슬,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자신에게 떨어지는 떡고물에 대한 유혹 들이 우리가 우두머리의 가시권에 있지 않아도 스스로를 비양심의 투전판에 끼게 하는 진정한 ‘악마’일지도 모른다.

헐리웃의 반골 마이클무어의 최신작 Sicko를 보면 의료보험 기업의 이익을 대변해오던 한 여의사의 양심고백 에피소드를 볼 수 있다. 그는 오랫동안 이 기업의 임원으로 있으면서 환자를 치료하여야 할 의사의 본분을 내팽개치고 보험료 청구를 거부할만한 합당한 논리를 개발하는데 자신의 능력을 활용하였다. 이를 통해 그는 상상을 초월한 급료를 받았다. 누군가의 치료비로 썼어야 할 돈이었다. 그 역시 ‘악마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가 마침내 탈출에 성공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토록 용기 있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그 이유는 첫째, 그러한 행위가 여태껏 자기가 누리던 기득권의 포기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어느 부자가 가난한 사람에게 함께 기득권을 포기하자고 했다고 한다. 가난한 이는 부자에게 너는 포기할 기득권이 많으니까 쉽게 포기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나는 어렵다고 이야기했다 한다. 그러니 떡고물이 큰 이들은 두말할 것도 없고 사회 구성원 다수를 점하고 있는 서민들은 어쩌면 포기할 기득권이 없어서 그나마 있는 알량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현실과 타협하고 사는지도 모른다.

둘째, 또 내부자고발에 따른 배신자라는 자괴감도 무시할 수 없다. 이는 어쩌면 눈에 보이는 알파치노와 같은 악마보다도 더 무서운 존재인데 악마를 물리치는 과정에서 그간 같이 일해오던 동료들을 배신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똑같이 기득권 없기는 마찬가지이던 동료들이 유탄에 쓰러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 고발자를 괴롭힐 것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내부고발을 했던 한 공공기관 직원에 대한 동료들의 집단 괴롭힘은 한때 화젯거리가 되기도 했었다.

마지막으로 고발의 용기를 꺾는 원인은 그럼에도 세상이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공포감이다. 김용철 변호사가 폭로를 했으니 삼성은 문을 닫게 될까? 삼성을 조각내서 사회화시키자는 데 국민들 중 몇 명이나 동의할까? 김용철 변호사가 이번 고백을 통해 사회에서 그의 용기 있는 행동을 칭송을 받으며 홀가분하게 여생을 보낼 수 있을까? 삼성은 여전히 건재할 것이고 김 변호사는 남은 인생을 죄인처럼 살아갈 개연성이 큰 것이 현실이다. 더 큰 물결과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반향이 아니고서는 이미 견고하게 구축된 ‘악마의 제국’이 무너질 리 만무하다. 앞서 예를 들었던 여의사의 양심고백도 큰 반향없이 스러져 가고 여전히 의료보험 기업은 건재하다.

누구나 조직에 속해 있고 조직의 논리를 익히고 살아간다. 심지어 세상을 등지고 사시는 노숙자분들마저 자체적으로 조직이 형성된다. 그것이 ‘사회적’ 본능을 타고난 인간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 조직논리와 자신이 생각하는, 그리고 인류가 동의해온 보편타당의 논리가 배치될 때 우리는 갈등하고 번민한다. 그러나 그것이 한 사회의 견고한 미시권력을 전복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어쨌든 개개인 스스로는 이 미시권력에 저항할 수 있는 자기반성과 또 다른 조직화, 공론화(어쩌면 블로깅? 어쩌면 정치활동?)를 시도하는 이외에는 뾰족한 방도가 없는 것도 안타까운 점이다.

9 thoughts on “독백, 왜 제2의 김용철은 쉽지 않을까?

    1. foog

      ㅋㅋ 감사합니다. 참 고마운 위원회로군요. 선관위가 좀 보고 배워야 할텐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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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힘찬

    옛날엔 무플 방지 위원들의 활동이 참으로 활발했군요!
    근데 이 글은 몇 년이 지나서 읽어도 참으로 좋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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