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 트랜스퍼 읽는 중

파란불. 시동이 걸리고 기어는 1단으로 들어간다. 차들은 서로 떨어져 유령 같은 시멘트 도로를 따라 기다란 리본 모양으로 흘러간다. 콘크리트 공장의 검은 창문 사이로, 현란한 광고 간판들 사이로 노랗게 우뚝 솟은 대형 천막극장처럼 밤하늘 속으로 믿을 수 없이 치솟는 도시의 광채를 마주보며.[존 더스패서스 씀, 박경희 옮김, 맨해튼 트랜스퍼, 문학동네, 2012, pp307~308]

소설가 존 더스패서스가 1925년 발표한 그의 대표적인 작품의 일부분이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이 소설은 1920년대를 살아가는 뉴욕시민들의 다양한 군상을 그리고 있다. 작가의 묘사는 인용부분에서 보는 것처럼 짧은 문구 안에서 효율적으로 그 상황의 시각적 이미를 끌어내고 그 이미지가 가지는 의미까지도 뛰어난 솜씨로 해결해낸다.

작가가 묘사하는 저 도시의 모습은 1920년대의 뉴욕이다. 가장 발달한 자본주의 도시의 모습이니 만큼 저 풍경을 현대의 다른 도시에 대입해도 그리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풍경이 그러한 만큼 존이 그리는 인간군상의 모습도 1920년대 답지 않고(?) 현대적이다. 야심만만한 여배우, 망한 주식투자자, 투쟁하는 노조원, 야비한 변호사, 가난한 웨이터 등.

책을 여러 권 같이 읽기도 하는데 이 소설을 읽는 중에 박윤석 씨가 쓴 ‘경성 모던타임스’를 읽었다. “1920 조선의 거리를 걷다”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1920년대의 서울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그러다보니 내 머릿속에는 얼마간 1920년대의 뉴욕과 서울의 이미지가 동시에 머물러 있었다. 동시대에 존재했던 자본주의의 심장과 제국주의의 발뒤꿈치.

사랑하고 번민하고 목말라 하는 모습은 두 도시의 거주민 모두 비슷하다. 하지만 그 물적 조건의 차이는 그들의 삶의 조건을 구성한다. 식민지의 피착취자인 서울 시민은 이제 막 자본주의 문명의 일면만으로도 감읍할 뿐이지만 뉴욕의 시민은 이미 휘황찬란한 마천루 아래서 자본주의 본류의 쓴맛단맛을 다 맛본 상태이다. 매력적이지만 씁쓸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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