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量)은 질(質)을 바꾸는 방향으로만 변화하는 것일까?

“그들은 의식을 가질 때까지 절대로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며, 반란을 일으키게 될 때까지는 의식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1984, 조지 오웰, 정희성 옮김, 민음사, 2003년, p100]

소설 ‘1984년’의 주인공 윈스턴 스미쓰가 당(黨)의 눈길을 피해 몰래 쓰고 있는 일기에 적은 말이다. 무산계급인 노동자들이 가게에 나온 냄비를 사기 위해서는 피터지게 싸우면서 정작 체제 전복을 위해선 함성을 지르지 않는 사실에 대해 든 생각을 적은 것이다.

오직 하나의 캐치가 있는데 그것은 캐치22이고, 이것은 실재하고 임박한 위험을 눈앞에 두었을 때의 자신의 안전에 대한 염려는 합리적 사고의 과정이라는 것을 구체화한 것이다. Orr는 미쳤고 비행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요청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요청하자마자 그는 더 이상 미치지 않은 것이고 더 많은 미션만큼 비행해야 한다.[출처]

윈스턴의 저 독백을 읽고 생각난 다른 소설 조셉 헬러의 ‘캐치22’의 일부다. 캐치22라는 이 부조리한 조항은 소설 내내 저자가 구사하는 유머의 근간을 이룬다. 이러한 부조리는 마치 변증법적 유물론에서의 ‘양질 전화의 법칙’을 무용하게 만드는 상황 같다.

‘양(量)이 계속 변화하면 질(質)까지도 바뀐다’는 것이 양질 전화의 법칙의 원리다. 물이 섭씨 100도 이상으로 끓게 되면 기화되는 현상이 대표적인 그 법칙의 사례다. 하지만 캐치22 상황에서는 액체가 기화되는 일은 없다. 양의 변화 자체를 인정하기 않기 때문이다.

물론 현실에서는 양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의식도 그러하다. 문제는 그것이 질을 변화시키는 순방향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변증법적 유물론의 이론은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요새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역방향도 꽤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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