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 紀行文 – 열기구를 탈 수 있을 것인가?

이스탄불에서 서울로 돌아온 지 일주일이 조금 더 넘었다. 하지만 벌써부터 그곳의 풍경이 아득하다. 기록을 더 이상 지체한다면 간단한 비망록(備忘錄)조차 쓰지 못할 것만 같은 저주 받을 기억력 탓에 지금이라도 손가락을 놀려 기행문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이 글이 비망록 성격인지 또는 여행정보의 성격1인지는 구체적인 글 얼개조차 생각하지 않은 터라 애매하지만, 여하튼 머릿속 잔상이 더 희미해지기 전에 글로 남겨두기 위해 늦었지만 기행문을 시작할까 한다. 더 좋은 형식이 생각나지 않아 우선은 편년체로 글을 시작한다.

2014년 12월 20일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공항 도착

터키는 우리나라보다 일곱 시간이 느린 관계로 인천공항에서 20일에 출발하여 12시간 동안 난 비행기는 같은 날인 20일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공항에 도착하였다. 다들 설레는 마음으로 내린 공항은 터키의 대표 공항답게 깔끔한 인상이었다. 돌아다니는 사람이나 광고판이 다른 나라에 왔다는 사실을 실감케 할뿐 국제공항은 어디나 비슷한 풍경이었다. 첫날 일정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먼저 이스탄불에 와있던 아내와 카파도키아(Cappadocia)를 갈 예정이었기에 공항에서 아내를 만나 다음 목적지인 카이세리 공항 행 비행기로 갈아타야 했다.

카파도키아는 터키 중부의 아나톨리아(Anatolia) 지역 중에서도 네브쉐르(Nevşehir), 카이세리 등의 지역을 포괄하는 지역으로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네브쉐르 지역의 괴레메 국립공원(Göreme National Park)이었다. 애초에 여행계획을 짤 때에는 행선지에 포함하지 않았지만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자연경관이 유명한 그곳에 가서 열기구를 타면 좋을 것 같다는 아내의 설득에 1박2일의 짧은 여행계획을 새로 포함시켰다. 카이세리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다시 한 시간여를 셔틀 버스로 달린 후인 저녁 늦게야 괴레메에 예약한 한 호텔에 도착했다.

Goreme Panorama From Southeast.JPG
Goreme Panorama From Southeast” by Bjørn Christian Tørrissen – Own work by uploader, http://bjornfree.com/galleries.html.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호텔은 미쓰라 케이브 호텔(Mithra Cave Hotel). 이름처럼 동굴 방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산 중턱에 위치해 있으면서 동굴모양으로 방을 꾸민 호텔이었다. 2인실임에도 불구하고 사우나를 즐길 수 있는 욕실까지 갖추어진 좋은 방이었다. 여장을 풀고 우리는 서둘러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새벽에 있을 열기구 탐험을 위해서. 참고로 열기구 탐험은 다양한 여행사를 통해 예약할 수 있지만 나는 네이버 카페 중 ‘리얼터키’란 이름의 카페를 차린 여행사 패키지를 택했다. 이 여행사에 공항 픽업, 열기구, 투어 등을 포함한 상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2014년 12월 21일 열기구를 탈 수 있을 것인가?

새벽 다섯 시에 셔틀버스에 몸을 싣고 여행객이 삼삼오오 모여 있는 열기구 여행사 캠프에 도착했다. 가이드들은 여행객들에게 이런저런 색깔의 스티커를 – 이 색이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 붙여주었다. 한 구석에 놓인 맛있는 터키 빵과 조금은 느끼한 터키식 커피를 마시며 다양한 국적의 여행객들이 곧 있을 열기구 투어에 기대에 부풀어 수다를 떨고 있었다. 하지만 흥분도 잠시 너무 짙은 안개 때문에 기구가 뜰 수 없다는 것을 가이드가 공지하였다. 내일 다시 기구를 띄울 테니 그때 탈 사람은 미리 말하라는, 나에게는 황당한 공지도 덧붙였다.


열기구 여행사 캠프에 설치된 열기구 모형

후에 안 사실이지만 열기구를 타겠다고 – 그것도 겨울에 – 1박2일의 일정을 짠 것은 굉장히 무리한 일정이었다. 트위터 멘션으로 확인한 바인데 어떤 이는 3일 동안 괴레메에 머물면서도 내내 비가 와서 기구를 못 탔으며, 어떤 이는 괴레메에 두 번 갔어도 기구를 못 탔다고 한다. 그만큼 기상 상황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인데 겨울에 안개가 잔뜩 끼어있는 상황이니 비행은 아무래도 무리였을 것이다. 이보다 더 식겁한 일은 아내가 나중에 검색해보니 우리 일정의 불과 3일 전에 열기구 사고로 중국인 등 몇 명이 사상당하는 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실망감을 안고 숙소에 돌아온 나는 아내와 상의하여 하루 더 머물더라도 기구를 타기로 하고 – 비록 일기예보에는 다음날 눈이 온다고 하였지만 – 국내선 항공사인 터키 항공에 전화로 예약을 변경했다. 그리고 안개가 잔뜩 낀 풍경만이 보이는 호텔 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식단이랄 것이야 별다를 것이 없었지만 역시 터키의 빵과 올리브 등 이런저런 음식은 매우 맛있었다. 제빵을 배우고 제과를 직업으로 하는 아내에 말에 의하면 터키의 빵은 천연발효 빵인데다 GMO 수입에 매우 엄격한 나라여서 안심하고 음식을 먹어도 되는 나라라고 한다.


한국말을 못하는 자칭 “김수현” 투어가이드

식사 후 우리는 소위 “레드투어”에 나섰다. 괴레메를 여행하는 여행상품 중 비교적 짧은 코스인 레드투어는 스스로를 “김수현”이라고 소개한 가이드와 한 무슬림 가족 그리고 우리 부부가 다였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로케이션 중 하나였다는 괴레메는 과연 온갖 모양의 아름다운 기암괴석으로 관광객의 눈을 미혹시켰다. 그 기암괴석 들 사이는 종교박해를 피해 피난 온 기독교도들의 거처가 숨겨져 있었다. 그들은 단순히 삶을 위한 장소만 만들어놓은 곳이 아니라 곳곳에 교회당을 만들어 놓았다. 종교란 인간에게 어떤 것인가를 생각게 하는 곳이었다.

1박2일의 무리한 일정을 짠 우리에게 행운의 순간이 찾아왔다. 아침을 덮고 있던 안개가 걷히고 날씨가 좋아져 오후에 열기구가 날 수 있다는 소식이었다. 지형이 스머프 마을을 닮은 곳에서 셔틀은 내내 무뚝뚝했던 무슬림 가족을 내려놓고 우리 부부를 열기구 착륙지로 데려갔다. 영어를 못하던 운전기사가 아는 한국말이 있었으니 “빨리빨리”. 우리는 서둘지 말라고 했지만 그는 서둘러 우리를 목적지에 데려다 주었다. 기구는 벌써 더운 공기를 가득 채운 채 사람을 태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를 포함하여 사람들이 하나둘씩 기구에 올라탔다.


비행할 준비를 마친 열기구

열기구에서 바라 본 카파도키아는 명불허전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영겁의 기간 동안의 침식작용으로 생긴 기형의 바위기둥은 굴뚝과 닮아 “fairy chimney”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특히나 카파도키아에는 이런 기암괴석이 집중적으로 모여 있기에 열기구를 타고 감상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지역일 것 같았다. 맑은 날씨에 오후인지라 날도 춥지 않아 경치를 감상하기에는 딱 좋았다. 오랜 비행경력으로 다져진 유머감각을 뽐내는 비행사의 재치 덕으로 비행은 한층 즐거웠다(게다가 이때는 이전의 사고도 모르고 있었고). 멋진 비행이었다.

감칠 맛 나는 비행에서 돌아와 잠시 쉰 저녁 무렵, 우리는 호텔 밑 다운타운에 나와 터키에서의 실질적인 첫날밤을 즐겼다. 이날 처음, 그리고 이후부터 마음껏 즐기게 된 길냥이와의 만남이 있었고(특히 길고양이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터키는 그야말로 신세계다), “터키 신라면”이라는 신박한 가게 앞 광고를 보며 웃었고, “아나톨리아 키친”이라는 식당에서 맛난 본고장의 케밥도 즐겼다. 카파도키아라는 유서 깊은 지역을 알기에는 턱없이 짧은 일정이었지만 그래도 억세게 운 좋게 열기구를 탄 여행객의 기분 좋은 하루는 그렇게 저물어 가고 있었다.


“어서 와 터키 신라면은 처음이지?”

  1. 여행정보 성격으로 이 글을 읽기에는 정보가 부정확할 개연성이 크므로 그렇게 활용하지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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