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스프레지던트”는 임원인가 아닌가?

2013년 10월, 뉴저지 연방법원의 케빈 맥널티(Kevin McNulty) 판사는 골드만 삭스(Goldman Sachs)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재직하던 중 소프트웨어 관련 코드(code)를 훔친 혐의로 기소된 세르게이 에일리니코프(Sergey Aleynikov)의 소송 관련 비용(legal fees)을 골드만 삭스가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중략] 이 전직 프로그래머는 러시아계 이민자 출신으로 골드만 삭스의 컴퓨터 트레이딩 그룹(high-frequency trading group)에서 ‘부사장(vice president)’의 직함을 달고 일했다. [중략] 그가 출소한지 6개월 후, 이번에는 맨하탄의 뉴욕 주 검찰이 주법령 위반을 이유로 그를 기소했다. 그의 변호사는 이제 골드만 삭스에게 화살을 겨눈다. 골드만 삭스의 내부 규정(bylaws)이 오피서 재직 당시의 일과 관계된 소송 비용을 회사가 대신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면서, 골드만 삭스가 그의 소송 비용을 대신 부담해야 한다고 뉴저지 연방법원에 골드만 삭스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골드만 삭스는 에일리니코프가 달고 있던 ‘부사장’이라는 직함이 직급 인플레이션을 반영하는 것으로서 실제 하는 일보다 과장된 표현이며, [중략] 맥널티 판사는 앞서 주장한 것처럼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이 전직 프로그래머가 뉴욕 주 소송 방어를 위해 이미 지출한 70만 달러를 골드만 삭스가 대신 지급하도록 명령했다.[코포릿 아메리카, 김성열 지음, 2014년, 페이퍼로드, pp174~175]

월스트리트의 직함 중에 가끔 의아한 직함이 있었는데 바로 이 사례에서 등장하는 ‘vice president’라는 직함이다. 내부인 들은 이 직책을 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며 선입견보다는 낮은 직책이라고 말하곤 하지만 어쨌든 개인적으로도 상당히 과장된 호칭이라 생각했는데 이러한 선입견을 – 혹은 통념? – 월街 외부의 법정 역시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골드만은 그 직함이 “직급 인플레이션을 반영”한 것이라 항변했지만 어쨌든 법정의 눈에는 엄연한 임원이었고 임원의 소송비용을 회사가 대신 지급해주는, 이른바 “indemnification”에 해당하는 것이라 보아 그의 소송비용을 골드만이 부담하도록 판결한 것이다.

골드만 주장대로 ‘vice president’가 대단한 직함이 아님은 골드만 직원 현황에서 알 수 있다. 보도에 따르면 골드만에는 2012년 3월 현재 33,300명의 직원이 재직 중이고, 이 중 ‘부사장(vice president)’에 해당하는 ‘임원(executive director)’이 12,000 명에 달한 반면 ‘관리 임원(managing director)’은 2,500명에 불과했다. 실질적으로 관리 임원이 임원인 셈이다. 월街에서 일하며 그곳의 경험을 글로 쓴 영주 닐슨도 프론트오피스 직급 순서가 Analyst – Associate – Vice President – Director – Managing Director 라고 책에 쓴바 있다. 우리네 직급정서로 생각할 때 잘 봐줘야 과장 또는 차장급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세르게이 에일리니코프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그는 당시 붐이었던 하이프리퀀시 부서에서 일하다 회사를 떠났다. 골드만은 그가 회사의 코드를 훔쳐갔다며 검찰에 제보했고 이때부터 세르게이와 골드만의 갈등이 시작됐다. 인용문은 이 일로 인해 형을 살다 조기 석방된 세르게이가 다시 뉴욕 주 검찰에 기소되면서 벌어진 일이다. 세르게이와 그의 변호사는 세르게이의 직책과 회사 규정을 활용하여 골드만에게 복수의 어퍼컷을 날린 셈이다. 맥널티 판사는 상기의 70만 달러뿐만 아니라 골드만과의 법정투쟁 비용 100만 달러, 그리고 과거의 연방 소송 과정에서 지출한 비용까지 조사하라고 명령했다. 골드만 삭스의 참패.

가장 최근 소식으로 2014년 9월 연방항소법원은 뉴저지에서의 판결을 뒤집었다. 세르게이가 그 직함에 어울리는 “감독”권한이나 “지도적 책임”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판결의 요지다. 우리가 흔히 임원에게 요구하는 그런 실질적인 권한이나 책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법원은 “어떠한 특성이 누군가를 임원(officer)로 규정짓는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말하였다. 한편 연방순회판사 줄리오 퓨엔테스(Julio Fuentes)는 판결에 의견을 달리 하면서, 이 판결로 인해 골드만은 모호한 단어를 유지한 채 어떤 전직 고용인에게 변호사 비용을 대줄 것인지에 대해 취사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주었다고 주장했다.

어쨌든 당신이 혹시라도 월가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명함을 받았는데 명함에 ‘부사장(vice president)’의 직함이 적혀 있더라도 너무 놀라지는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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