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hone과 자유무역

애플(Apple)사의 최고 히트작 중 하나인 아이폰(iPhone)이 국내에 들어오느냐 아니냐를 가지고 인터넷에서 말이 많다. 얼리어답터(early adopter)의 성격이 강한 한국인들을 – 적어도 아이폰에 있어서만큼은 – 레이트어답터(late adopter)로 만들어버린 아이폰의 출시지연에 대해 많은 이들은 좌절하고, 분노하고, 초조해하고 있다.

왜 많은 이들이 스마트폰 중 한 기종에 불과한 아이폰의 국내출시에 애달파하는지에 대한 상세한 기술적 분석은 이미 많은 테크블로거들이 해주셨으므로 이 글에서는 생략하도록 하겠다.(주1) 다만 이 글에서는 아이폰이 가지는 경제적 의미, 그 중에서도 이른바 자유무역이라는 관점에서의 아이폰의 위치를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말해두자면 나는 ‘자유무역’ 반대론자가 아니다. 이 블로그에서의 나의 주장은 다만 현실세계에서 통용되고 있는 ‘자유스럽지 못한 자유무역’에 대해 반대한다는 것이다. 즉, 주류 측에서 경제적 효용이 계급무차별적으로 적용되는 것처럼 선전하고 있는  현실 세계의 자유무역이 실제로는 특정 계급, 특정 국가에게만 이로울 개연성이 높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일 뿐이다.

다시 본 주제로 돌아가 그렇다면 아이폰이 자유무역 경로를 통한 국내시장 접근을 통해 소비자의 이익을 증대시킬 것인가 아니면 그 반대일까?(주2) 기술 문외한이지만 그동안 주워들은 정보를 근거로 바라보건데 아이폰은 국내 이동통신 기기 시장에 전자의 효과를 가져다줄 개연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즉, 아이폰의 도입은 무선인터넷 등 데이터이용 등에 있어 독점을 행사하려는 국내 이동통신사의 기득권을 파괴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알려진바 그동안 국내 이통사는 사실상 과점의 상태에서 기기 공급사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며 국내 소비자들에게 전 세계적인 통신의 대세와는 역행하는 시장 환경을 강요하여 왔다는 심증도 있다. 즉 통신망이라는 소프트 성격의 서비스를 공급하는 이통사는 하드웨어 공급자들인 기기 제조업체보다 우월적 지위에 서서 그 스펙을 조정해오고 있다는 의심이 짙다는 이야기다.

국내 출시 모델은 무선인터넷 `와이파이(WiFi)`가 빠지고 멀티태스킹을 지원하는 중앙처리장치(CPU) 성능도 제트에 비해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략] 특히 와이파이가 빠진 것을 두고 이통사들이 무선 인터넷 사용이 줄어들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에 대해 이통사 관계자는 “고성능 CPU에 3.5인치 대화면, 와이파이 기능 등을 추가하면 가격이 급격히 올라간다”며 “이통사가 원해서가 아니라 소비자가 살 수 있는 폰을 내놓기 위해 제조업체 스스로 기능을 조정한 것”이라고 해명했다.[삼성 `제트` 한국선 못사…인터넷ㆍCPU 기능 조정]

이통사 관계자는 “와이파이 기능을 추가하면 가격이 급격히 올라가서 소비자가 살 수 없는 폰이 된다는” 논리인데 그럼 서구에서는 왜 그런 몹쓸 폰을 내놓고 있는지, 그리고 소니 에릭슨은 왜 국내출시된 엑스페리아에 와이파이 기능을 추가했는지 궁금하기도 하거니와, 실상은 “와이파이 칩셋을 집어넣으려면 몇백원 수준이면 가능하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설명”(관련글 보기)이라는 데 왜 가격이 급격히 올라가는 지도 궁금하다. 결국 무선인터넷이 잡히는 곳이라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와이파이 기능과 이통사가 가격을 부과하고 있는 데이터통신과의 마찰이 더 설득력 있는 와이파이 기능 삭제의 논리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현재로서는 전 세계 같은 스펙으로 통일하여 출시된다는 아이폰이 – 다만 오늘 중국에서는 아이폰도 와이파이를 빼기로 했다는 슬픈 소식이 – 그 협상력을 기반으로 국내 이통사들의 (삼성전자도 못 깨는) 통신독점을 깨버린다면 피동적이기는 하나 국내 소비자들의 선택범위가 더 넓어지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일단 그 과정에서 애플에 의한 새로운 독점이 아이폰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효과는 제켜두고 말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19세기 초중반 영국경제의 핫이슈였던 ‘곡물법’ 논쟁을 연상시킨다. ‘곡물법(穀物法 , Corn Law)’은 곡물의 수출입을 규제하기 위한 법률로 19세기 초반의 영국 법률이 대표적이다. 이 법은 소맥의 가격이 일정 정도가 되기 전까지는 수입을 금지함으로써 표면상의 목적은 곡물 가격의 등락에 대해 자국의 농업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었으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영국 지주계급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대표적인 보호무역주의 악법이었다.

신흥 부르주아들은 자신들의 고용인인 노동자들이 비싼 식료품비로 인해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것에 대항하여 자유무역의 선봉장 리카도 David Ricardo 등 명망가를 동원하여 이 법의 철폐를 강력히 요구한다. 결국 이 법은 1846년 폐지된다. 어쨌든 자본가들은 그들이 원했던 산업경쟁력 회복이라는 목표를 달성했고, 소비자들인 노동자 계급 역시 소비부담을 덜게 되어 지주를 제외한 모두에게 이득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당시 이러한 시도는 수구계급인 지주에 대항한 혁신 주도계급 부르주아에 의한 진보였다.

이제 이런 역사적 경험을 현재의 아이폰 해프닝에 빗대어보자. 굳이 비교해보자면 이통사를 지주계급, 애플을 외국 곡물업자, 이통사의 서비스를 영국산 곡물, 아이폰을 외국산 곡물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차이점은 국내 소비자들의 통신비 등 생계비용으로 인해 임금상승 압박을 받는 국내 고용주들(빗대자면 영국의 부르주아들)과 국내 이통사들의 독점적 지위를 보장해주는 곡물법이 없다는 점이다.(주3) 또한 이통사의 서비스와 아이폰이 곡물들처럼 상호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주4)

이렇게 비교를 해보니 결국 곡물법의 폐지가 영국의 지주층을 제외한 나머지 참여자들에게 이익이 되었던 것처럼 아이폰의 도입이 국내 이통사를 제외한 나머지 참여자들에게 이익이 되는 구조가 될 개연성이 높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적어도 이통사가 배타적으로 누리던 주파수 독점에 작은 균열을 일으킬 정도는 되지 않을까? 서로 챙길 것 챙겨가면서 말이다. 물론 그 전제는 과연 애플사가 스스로 또 하나의 독점공급업자가 되어 데이터이용료 등에서 전횡을 부리지 않는 구도를 만든다는 전제가 남아있긴 하지만 말이다.

이처럼 자유무역은 분명 잘만 작동하면 혁신을 전 세계에 저렴한 비용으로 전파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이 사례에서는 또한 단순히 하드웨어적인 우수성 뿐 아니라, 그것에 덧붙여 앱스토어라는 멋진 플랫폼을 통해 개발자들이 함께 뛰어들어 새로운 사업기회를 가지게 되고, 이를 소비자들이 합리적인 유통경로를 통해 향유할 수 있는 시장의 혁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교훈도 안겨주고 있다. 어쩌면 이는 MP3의 출현을 물리적으로 막으려 한 기업보다 그것에 능동적으로 대처한 기업이 오래 살아남았던 사례의 재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러한 소비자의 선택범위 확대, 저렴한 비용 등의 동일한 논리가 얼마 전에 다른 상품에 적용된 사례가 있음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바로 미국산 쇠고기 문제였다. 이 사태에서는 분명 소비자 상당수가 저렴한 비용의 쇠고기보다는 불특정다수에게 발생할지도 모르는 적은 확률의 광우병이라는 사유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 사례다. 앞서 글 “공공의 정신(public-spiritedness)”에서처럼 불특정다수의 안전에 대한 요구가 다수의 경제적 효용을 압도할 뻔했던 – 그리고 정부에 의해 진압 당했던 – 사례다.

따라서 자유무역을 통해 혁신전파 또는 경제적 혜택이 가지는 효용을 지나치게 신격화하는 것도 무리가 있음을 감안하여야 할 것이다. 자유무역이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상품이나 용역 그 자체뿐만 아니라 그것을 향유하는 소비자층의 선택권과 접근경로가 진정으로 자유로울 때만이 올바로 구현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자유무역을 주장하면서도 해당 업체, 전문가, 그리고 당사자 국가에서 그러한 소비자 선택의 기반이 되는 정보제공을 게을리 하거나, 심지어 왜곡할 때는 그 자유는 일방적인 자유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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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솔직히 잘 알지도 못하거니와 내가 아이폰을 기다리는 이유는 기존에 써오던 육중한 아이팟과 휴대전화를 한 기기에 쓸 수 있다는 작음 바람 때문일 따름이다

(주2) 계급무차별적일까 계급차별적일까 하는 의문은 우선 접어두도록 하겠다. 기술에 대한 습득의 계급차별적 효과를 논하는 이들도 있으나 적어도 휴대전화에 있어서 그 차별성은 이용가격에 의한 차별보다는 주로 능동적 선택군과 수동적 선택군의 차이에 의해 나뉘어 진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주3) 전자는 진입장벽을 낮추는 효과가 있을 것이고 – 어떤 면에서는 이 역할을 KT가 하고 있고 – 후자는 진입장벽을 높이는 기능을 하는데 이 규제가 없다는 점이 아이폰에게는 호재라 할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곡물법에 상응하는 또는 더 높은 진입장벽이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통사의 사업권에 의한 주파수 독점일 것이다.

(주4) 이 또한 곡물법 상황보다 좋은 여건이다

17 thoughts on “iPhone과 자유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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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daremighty

    전체 소비자의 효용 측면에서는 비슷한 생각입니다만, 통신회사 입장은 좀 모르겠습니다. 결국 지금의 문제는 단말보다 플랫폼 시장을 열어줄거냐 말거냐의 이슈인데, 사실 통신사 입장에서는 시장 커져봐야 자기들이 못먹는 시장이면 의미없거던요. 그 좋은 전례로 초고속인터넷 시장이라는게 있는거죠. 돈은 네이버가 다 벌고, 자기들은 겨우 똔똔하던가 손해보던가라는.. 트랙백 두개 걸어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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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네 글들 잘 읽었습니다. 전문용어가 많아서(역시 daremighty님은!) 다 이해는 못했지만 플랫폼의 배타성이라는 같지만 새로운 이슈가 등장하는군요. 저도 제 글에 어설프게나마 애플의 또 다른 독점을 우려하였는바 바로 이런 점이죠. 폐쇄적인 면에서는 아이튠스나 앱스토어 또한 기존 이통사들의 그것과 별로 다를 바는 없다는 생각이 드니까요. 진정 개방적이라면 도시락이건 아이튠스건 마치 트위터가 그런 것처럼 서로 호환가능하여야 하지 않을까요? 문외한의 시각에선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소비자 주권이 아닐까 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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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sonofspace

    자유무역 좋죠, 상호간에 이득이 된다면. 그런데 소고기 개방의 경우는 피해 보는 집단이 영세한 농가라는 점에서 좀 쟁점이 좀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반대의 주된 논리는 안전성 문제이기는 했지만…사실 그래서 좀 씁쓸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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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자유무역을 가장 미세한 단위로 쪼개면 결국 분업과 이를 통한 거래이고 그것이야말로 생산력 발전의 기초니 원칙이야 맞는거죠. 다만 그것의 범위와 개념이 커져가면서 자연스레 개입하는 정치적 요소가 관점을 다양하게 분화시켜버리는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쇠고기 개방의 경우 아이폰의 경우와는 다른 정치/문화/보건/경제주권 등의 문제가 결부되어 한층 더 복잡한 양상을 보였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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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최후의생존자

    스마트폰으로 무선인터넷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은가요? 저는 답답해서 안 볼거 같은데… iPhone에 WiFi가 탑재되어 무선인터넷 접속이 가능하게되면 SKYPE와 같은 인터넷기반 VoIP 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로그렘을 다운받아 설치한 다음 VoIP 통화를 하는거지요. 그러면 이동통신사의 통화서비스를 이용할때 보다 통화요금이 몇십분의 1 밖에 안 나올겁니다. 이미 iPhone 기반의 VoIP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가 있는것으로 알고 있고요,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걸 국내 이통사들이 보고만 있지는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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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aremighty

      제가 아는 한에서는 공식적으로 아이폰에서 VoIP 쓸 수 있는 어플은 없습니다. 아마도 AT&T와 협약사항일 겁니다. 아이폰의 무선인터넷유저는 사실 다른 거죠. 아이폰에 구글맵 연계시켜놓은 어플들 보면 이동단말에 최적화된 인터페이스와 컨텐츠의 결합이라는게 생각보다 쓸모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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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열매맺는나무

    제 경우에 아이폰을 반기는 이유는 괘씸한 이통사들이 아이폰에 와이파이를 허락한다면(삼성에도 하지 않았기에 더욱 괘씸!), 제트폰 등등 많은 국내 기기에도 적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되겠고, 그렇게된다면 가격또한 착해지지 않을까 하는 바램입니다. 아마 많은 분들도 그렇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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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aremighty

      사실 그 이유때문에 SKT나 KT가 더 쉽게 움직이지 못할거라는 관측이 있습니다. 이통사 입장에서는 기껏해야 100만대 팔면 성공일 아이폰 하나가 문제가 아니고 1천만대의 삼성에게 단말스펙과 앱스토어 등에 대한 주도권을 내주는게 큰일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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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charmless

    한-EU FTA에서도 자동차와 전자 등이 수혜 산업으로 꼽히고, 농축산업과 화학 등이 피해 우려가 있다고 하더군요. 언론의 예상대로라면 이번에도 거대기업들만 재미를 보고 영세 기업은 피해 혹은 별 다른 이익은 없다는 건데, 이렇게 나가다는 한국은 자동차와 전자의 초거대 기업의 영향력이 더 막강해져서 아예 점령되다시피 하겠네요. 이미 어느 정도 그렇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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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농축산 피해가 3천억으로 예상된다네요. 하튼 정부의 고무줄 산정은 .. 그리고 대책은 태스크포스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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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exedra

    곡물법에 비유될 수 있는 “WIPI 의무화법”이 있었지요. 그 법이 철폐되면서 당연히 iPhone 이 들어올 수 있을 것으로 사람들이 생각했는데,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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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Premist

    이제.. MB가 말한 ‘디엠비를 모든 폰에 다는 건 어떠냐’ 논리가 적용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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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뭐 이제 자기자신도 자기가 하는 말의 신뢰성에 대해선 거의 포기하는 수준인가 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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