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은인이자 날강도인 중국

미국 판 천원샵의 돌풍

오늘 이카루스님의 블로그에서 흥미로운 글을 보았다. 미국에서 소위 ‘99 Cents Only Stores’ – 이른바 ‘달러샵’으로 우리식 표현으로 하자면 ‘천원샵’ – 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소개 글이었다. “43%의 미국인들이 한 달에 한번 이상은 달러샵을 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하니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있음에 틀림없어 보인다. 주요 구매층은 예상할 수 있듯이 중하층의 미국서민들이다.

여하튼 저가 소매점 특유의 음습한 분위기가 아닌 넓고 깨끗한 매장으로 기존의 소매점 거인 월마트를 위협하는 새로운 소매업의 강자로 부상하고 있는 이들 달러샵의 경쟁력은 무엇일까? 역시 “이윤을 남기기 위해 가장 핵심이 되는, 상품들은 Made in China, 바로 중국에서 생산된 공산품들”이다. 이것은 비단 달러샵만의 장점이 아닌 경쟁자 월마트의 전략이기도 하고 다른 모든 소매점들의 전략이기도 하다. 달러샵은 그러한 틈새에서도 새로운 가격경쟁력의 틈새시장을 파고들어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중국산 저가상품에 중독된 미국의 소비시장

이러한 모습은 현재 미국 시장이 얼마나 중국의 저가 공산품에 ‘중독’되어 있는가를 알려주는 좋은 사례다. 이는 미국경제가 현재 처해있는 모순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이미 상당히 오래전부터 쌍둥이 적자, 국내 제조업의 쇠퇴, 이라크 전 등 막대한 안보비용 등으로 위기에 처해 있던 미국경제는 그러한 위기를 사회복지비용의 축소, 노동의 유연성 강화 등으로 해소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소비자들이 생활을 지탱해나가기 위해 대출을 통한 생계유지, 저가상품의 구입 등 허리띠를 졸라매는 소비패턴으로 몰고 갔고 월마트 등 대형소매기업은 이러한 틈새를 저가의 중국 상품으로 파고들어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는 또 다시 국내 제조업의 붕괴를 가져와 미국의 노동계급은 더욱 가난해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졌고, 그 시장을 이제 달러샵이 파고들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사실 비단 미국만의 상황이 아니다. 잘 알려진 중국의 별명은 ‘블랙홀’이다. 최근 몇 년 간 중국은 전 세계의 저가 상품의 주요공급처이자 서구 각국 및 아시아 인접국 기업의 제조업 기지였다. 앞서 언급하였다시피 미국을 비롯한 각국의 제조업은 저임금의 매력을 쫒아 중국으로 몰려갔고 그곳에서 뱉어내는 저가상품이 일자리를 잃어버리거나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노동계급의 쇼핑카트에 쌓이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저가상품이 없었더라면 어쩌면 가처분 소득과 생계비용의 괴리로 인한 폭동이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중국에 대한 모순된 관계에 처해있는 미국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미국을 비롯한 자본주의 제 국가들의 자본과 노동 양 쪽은 중국에 대해 모순되고 복합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자본에 있어 중국은 자국의 노동성 유연화의 은인이지만 또 한편으로 환율조작을 통해 불공정거래를 일삼는 악덕국가이다. 노동에 있어 중국은 저가상품으로 생계에 도움을 주는 나라지만 일자리를 뺏어가는 악덕국가이다. 80년대의 일본상품 불매운동 등의 반일기류와도 흡사하지만 질적으로 다른 차이는 일본이 어디까지나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시스템에 복속되어 있는 국가였던 반면 지금의 중국은 다른 패턴으로 미국을 넘어서는 또 다른 패권주의 국가로 나아가고 있다는 인상이 강하다는 점이다.

어쨌든 이러한 모순된 상황에서 미국 의회는 대중주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바로 보호주의적 본능을 자극하는 것이다. 몇 해 전에 미국 의회는 중국이 환율을 조정하지 않으면 중국의 모든 수출품에 대해 27.5%의 관세를 물리자는 법안을 제출한 일이 있었다. 놀랍게도 당시 여야 의원을 불문하고 67명의 의원이 찬성의사를 보였다. 그리고 ChannelNewsAsia.com에 따르면 최근 또 다시 미국의회는 이와 똑같은 법안을 제출하여 통과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의 고집스러운 통제경제 – 이제 사회주의의 계획경제가 아닌 국가주도 개발독재의 형태로 봐야겠지만 – 도 얄미울 정도이긴 하지만 전 세계 ‘자유무역’ 의 전도사 미국이 이런 고집스러운 보호무역주의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이 지금 얼마나 심한 경제적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자기모순을 남 탓으로 돌리는 정치인들

문제는 만에 하나 법안이 통과되면 통쾌하기는 하겠지만 미국경제는 더욱 심한 동맥경화에 걸릴 것이라는 사실이다. 중국은 그렇지 않아도 지금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른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다. 어쩌면 그동안 전 세계 자본주의 국가들이 누리던 중국 저가상품을 통한 ‘고용 없는 성장’의 꿀맛을 더 이상 누릴 수 없을지도 모를 판이다. 그 와중에 관세까지 매기면 중국은 미국 의회가 바라던 대로 심각한 경제후퇴를 맞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중국의 저가 상품이 수입되지 않음으로써 미국의 인플레이션 억제효과는 크게 감소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버냉키가 스태그플레이션 걱정된다고 하던 차에 불에 기름을 끼얹는 꼴이다. 또 하나 중국은 미국 재무부 채권의 최대 수요자 중 하나이다. 자국의 환율을 조정하기 위한 조치다. 그런데 수출길이 막히면 채권수요가 감소할 테고 어쩌면 보유채권을 시장에 내놓을지도 모른다. 그 경우 재무부가 채권을 다 회수할 자신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니 요컨대 미국 의회의 관세부과 운운은 앞뒤 재지 않은 무리수에 불과하다.

미국경제의 심각성은 어느 것 하나 단기간에 치유되기 어려운 근본적인 문제점이라는 사실에 있다. 서브프라임 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는 과거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의 패턴을 답습하면서도 더 크고 복잡한 규모의 외부효과를 배태하고 있으며, 고유가와 스태그플레이션의 위기는 명약관화한 상황이다. 끝이 안 보이는 이라크 전에 쏟아 붓고 있는 비용은 여태까지도 엄청났지만 앞으로도 예측이 어려울 정도이다. 상당부분은 비효율적인 거대공룡 미국경제의 체제 내 모순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럼에도 의회는 그 원인을 중국 탓으로 돌리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7 thoughts on “미국의 은인이자 날강도인 중국

  1. 댕글댕글파파

    오늘도 foog님의 글 잘 보고 갑니다~~
    rss 최상단에 foog님이 있으니 항상 하루의 시작은 foog님과 함께 하네요 ㅎㅎ
    주말 잘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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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Pingback: Trivial Thoughts of Ikarus

  3. Ikarus

    미국 경제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 잘 보았습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수출하지 않고도 달러를 찍어내는 것만으로 수입할 수 있었던 그동안의 미국 경제가 이제 서서히 한계에 다다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위기 의식이 이라크전을 통해 상황을 개선해 보려는 시도를 불러 왔지만 이 또한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에 발목 잡혀 오히려 엄청난 전비 부담까지 떠 안게 되는 악순환을 불러 왔다고 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인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선택은 자신들의 문제를 남의 탓으로 떠 넘기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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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저 역시 천원샵~ 글 잘 읽었습니다.

      여하튼 문제는 미국이 망해도 혼자 망하지 않는다는 거겠죠. 전 세계 나머지 국가들이 함께 수렁텅이에 빠지는 도미노 게임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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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참.. 요즘은 스팸댓글도 번역해서 보내는군요. 본보기로 하나만 남겨놓고 다른 댓글을 지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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