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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대가(大家)의 속임수 토론

자유무역과 보호주의는 <독일인노동자협회>에서도 토론거리가 되었다. 맑스와 엥겔스는 논쟁을 활기 있게 하기 위해서 대립하는 양 측을 맡았다. — 맑스는 자유무역을, 엥겔스는 보호주의를 옹호하여 발언했다. 그 논쟁이 보다 많은 청중을 논의에 참가시키기 위해 꾸며진 쇼였다는 것은 끝에 가서 맑스와 엥겔스가 자신들이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고백하고 보호주의와 자유무역 둘 다가 자본주의의 상이한 단계에 속한 경제적 장치 — 보호주의는 보다 이전의 단계들에서 택할 수 있는 것이고 자유무역은 자본주의적으로 발전된 나라의 경제정책 — 라는 것을 말할 때까지 아무도 몰랐다.[프리드리히 엥겔스 삶과 투쟁(1분책), 소련 맑스-레닌주의 연구소 지음, 전진편집부 옮김, 전진출판사, 1991년, p164]

독일인노동자협회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선진적인 노동자들을 양성할 목적으로 1847년 결성한 단체다. 이들은 그 협회를 공산주의를 선전하는 매개체로 상정하였고 음악 및 – 엥겔스가 직접 쓴! – 연극 등의 문화활동도 조직하였다고 한다. 위 인용문은 그러한 선전활동의 일환으로 두 대가가 벌인 가상논쟁을 묘사한 부분이다. 이들이 짐짓 청중을 속이고(?) 서로 의견이 다른 양 논쟁을 벌였다는 사실이 왠지 귀엽다. 요즘으로 치자면 결코 악의는 없는 일종의 ‘몰래카메라’같은 설정이었을 것 같다. 또한 어떤 면에서는 교육효과도 그만큼 더 컸을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인용문에도 나와 있다시피 이미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부르주아 국가 간의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갈등관계에 있어서 어느 하나가 절대 우위를 점하는 교조가 아닌,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경제운용상의 전술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많은 주류경제학자들이 모른 체하고 있지만 영국, 미국 등 모든 선진국들 역시 산업화 초기단계에는 유치산업 육성론 등 보호주의 정책을 취하다가 자국의 생산력이 국가범위를 초월하여야 할 경우에는 말을 바꿔 자유무역을 소리 높여 외치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금융위기로 말미암아 전 세계는 – 특히 선진국들은 – 새로운 보호무역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자국의 금융기관 및 대기업들에 대한 구제금융 자체가 그들이 그동안 줄기차게 불공정하다고 외쳐왔던 자국산업에 대한 편향된 보호조치다. 물론 명분은 금융시스템의 정상화 및 경기회복이다. 구제금융은 자국 내에서조차 산업별로 편중되어 있어 계급적 성격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한 최근 미국에서는 “정부 사업을 수주한 기업들이 미국 제품을 우선적으로 구입하는 `바이 아메리칸` 정책을 펴야 한다는 주장”이 득세하는 등의 노골적인 보호주의 강화 주장도 등장하고 있다.

결국 자유무역이 옳으냐 보호무역이 옳으냐 하는 논쟁은 어떤 의미에서는 사회주의자들 간의 토론에서 ‘수정자본주의가 옳으냐 신자유주의가 옳으냐’에 대해 논쟁하는 것만큼이나 무의미할 수도 있다. 인용문에도 언급되어있다시피 각 사조들은 역사적 맥락과 각국 산업의 특수성에서 살펴야 할 일이며, 결정적으로 각각의 조치들이 한 나라 또는 전 세계의 계급간 또는 산업간 자원분배를 어떻게 하느냐에 대한 고찰이 선행되지 않으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한미FTA가 농업에 피해는 있어도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국부(國富)가 증가한다는 논리는 그런 의미에서 조잡한 덧셈, 뺄셈일 뿐이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에게 농어업피해보상을 위한 목적세라도 부과하지 않는 한에는 말이다.

고전에서 마주친 자유무역론

퀴즈로 글을 시작하도록 하자. 다음 글은 어디에서 등장하는 글일까?

“당신은 당신만의 특별한 무역이나 당신의 사업이 보호관세에 의해 원조 받고 있다고 속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법률은 장기적으로 이 나라의 부를 감소시키고, 우리의 수입품의 가치를 떨어트리고, 이 땅에서의 삶의 질을 저하시키는 것입니다.”
“You may be cajoled into imagining that your own special trade or your own industry will be encouraged by a protective tariff, but it stands to reason that such legislation must in the long run keep away wealth from the country, diminish the value of our imports, and lower the general conditions of life in this land.”

Adam Smith 의 국부론? 아니다. 정답은  Arthur Conan Doyle 경이 1901년에서 1902년에 걸쳐 Strand 잡지에 기고하였고 후에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추리소설의 걸작으로 남은 The Hound of the Baskervilles 이다. 조금은 의외의 공간에서 만난 경제에 관한 글이다.

소설에서 이 글은 Times 신문의 기사로 소개되고 있다. 그리고 이 기사는 음울한 전설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있는 Henry Baskerville 경에게 배달된 익명의 경고장에 오려붙여진 단어들의 원 기사로 사용되었다. 정체모를 사람이 보내온 경고장은 다음과 같다.

“As you value your life or your reason keep away from the moor.”

이 문장을 보면 moor 라는 단어를 빼놓고는 모두 위의 기사에서 찾을 수 있는 단어들이었고 Sherlock Holmes 가 이 사실을 재빠르게 알아차린다는 설정이다.

여하튼 소설에서 등장인물들은 경제에 대해선 그다지 많이 알지 못한다는 언급만을 한 채 다시 자신들의 관심사인 범죄에 관한 대화로 돌아간다. 그렇더라도 어찌 되었든 이 장면은 그 당시 자본주의 최강국인 영국에서 펼쳐지고 있던 무역에 관한 논쟁들의 단편을 보여주는 풍속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에 관한 오랜 투쟁은 이 소설이 발표된 1900년 초입을 더 거슬러 올라가 1800년대 초부터 본격화된다. 대표적인 사례는 1815년에 제정하여 1846년에 폐지한 영국곡물법을 들 수 있다.

‘곡물법(穀物法 , Corn Law)’이란 무엇인가? 이 법은 곡물의 수출입을 규제하기 위한 법률로 같은 이름의 법이 중세에서부터 있었지만 19세기 초반의 영국 법률이 대표적이다. 이 법은 소맥의 가격이 일정 정도가 되기 전까지는 수입을 금지함으로써 표면상의 목적은 곡물 가격의 등락에 대해 자국의 농업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었으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영국 지주계급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대표적인 보호무역주의 악법이었다.

그 당시 자유무역의 선봉장 리카도 David Ricardo 를 비롯한 여러 명망가들이 법의 폐지를 주장하였으나 의회의 다수파를 이뤘던 지주계급은 이 법을 강력히 옹호하여 결국 1846년이 되어서야 법이 폐지되었다. 리카도는 생전에 법의 폐지를 볼 수 없었다.

그 이후 곡물규제는 마침 위의 소설이 발표되고 있던 시점인 1902년과 1932년에 다시 필요하게 되어, 1902년에는 수입 곡물과 밀가루에 최소한도의 관세가 부과되었으며, 1932년에는 해외 수입의존도 증가를 우려하여 제정법으로 영국산 밀을 보호했다.

요컨대 이당시 보호무역주의는 명백히 봉건시대의 지배계급인 지주계급의 계급적 이익을 보호하고자 하는 폭거였다. 즉 지나치게 높은 곡물가격은 임금상승의 요인이 되어 산업경쟁력을 해치게 된다.(주1) 이것이 당시 지주계급에 대항하는 신흥 부르주아의 일반적인 정서였다고 할 수 있다. 노동자의 생계비용의 큰 몫을 차지하는 곡물가격의 앙등은 좀 더 낮은 임금으로 노동자를 부려먹어야 하는 자본가 계급의 계급이해에 합치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 당시의 자유무역 주창자들은 당시의 지배계급인 지주들의 기득권을 깨부수기 위하여 투쟁하였던 일종의 진보주의자들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곡물법의 폐지는 자본가 계급들이 실질적으로 경제의 헤게모니를 쥐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사건이 되었다.

p.s. 어쩌면 이것이 그 당시의 자유무역 주창자들과 오늘 날의 주창자들의 다른 점이다. 쉽게 이야기해서 처지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는 아직까지 사회주류가 아니었다. 프랑스 혁명당시에는 노동자들과 함께 제3계급으로 분류되는 수모까지 겪었다. 하지만 오늘날 자본가 계급은 분명히 지배계급이다. 그리고 농업을 생업으로 하는 이들은 더 이상 지배계급이 아닌 소농들이거나 기업농, 즉 또 다른 자본가계급이다. 요컨대 계급지형이 싹 바뀌었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서는 추후 기회 되면 이야기를 풀어 가보도록 하겠다(maybe or maybe not).

 

(주1) 한편 맬서스는 리카도와 배치되는 입장에서 농업의 보호를 주장하였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오늘날 농업보호를 위해 많이 주장되는 농업의 비교역적 조건, 즉 농업의 식량자원으로의 이용가능성을 들고 있다. 오늘 날에는 이에 덧붙여 농축산물의 위생문제도 많이 거론되고 있다.

미국의 은인이자 날강도인 중국

미국 판 천원샵의 돌풍

오늘 이카루스님의 블로그에서 흥미로운 글을 보았다. 미국에서 소위 ‘99 Cents Only Stores’ – 이른바 ‘달러샵’으로 우리식 표현으로 하자면 ‘천원샵’ – 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소개 글이었다. “43%의 미국인들이 한 달에 한번 이상은 달러샵을 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하니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있음에 틀림없어 보인다. 주요 구매층은 예상할 수 있듯이 중하층의 미국서민들이다.

여하튼 저가 소매점 특유의 음습한 분위기가 아닌 넓고 깨끗한 매장으로 기존의 소매점 거인 월마트를 위협하는 새로운 소매업의 강자로 부상하고 있는 이들 달러샵의 경쟁력은 무엇일까? 역시 “이윤을 남기기 위해 가장 핵심이 되는, 상품들은 Made in China, 바로 중국에서 생산된 공산품들”이다. 이것은 비단 달러샵만의 장점이 아닌 경쟁자 월마트의 전략이기도 하고 다른 모든 소매점들의 전략이기도 하다. 달러샵은 그러한 틈새에서도 새로운 가격경쟁력의 틈새시장을 파고들어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중국산 저가상품에 중독된 미국의 소비시장

이러한 모습은 현재 미국 시장이 얼마나 중국의 저가 공산품에 ‘중독’되어 있는가를 알려주는 좋은 사례다. 이는 미국경제가 현재 처해있는 모순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이미 상당히 오래전부터 쌍둥이 적자, 국내 제조업의 쇠퇴, 이라크 전 등 막대한 안보비용 등으로 위기에 처해 있던 미국경제는 그러한 위기를 사회복지비용의 축소, 노동의 유연성 강화 등으로 해소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소비자들이 생활을 지탱해나가기 위해 대출을 통한 생계유지, 저가상품의 구입 등 허리띠를 졸라매는 소비패턴으로 몰고 갔고 월마트 등 대형소매기업은 이러한 틈새를 저가의 중국 상품으로 파고들어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는 또 다시 국내 제조업의 붕괴를 가져와 미국의 노동계급은 더욱 가난해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졌고, 그 시장을 이제 달러샵이 파고들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사실 비단 미국만의 상황이 아니다. 잘 알려진 중국의 별명은 ‘블랙홀’이다. 최근 몇 년 간 중국은 전 세계의 저가 상품의 주요공급처이자 서구 각국 및 아시아 인접국 기업의 제조업 기지였다. 앞서 언급하였다시피 미국을 비롯한 각국의 제조업은 저임금의 매력을 쫒아 중국으로 몰려갔고 그곳에서 뱉어내는 저가상품이 일자리를 잃어버리거나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노동계급의 쇼핑카트에 쌓이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저가상품이 없었더라면 어쩌면 가처분 소득과 생계비용의 괴리로 인한 폭동이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중국에 대한 모순된 관계에 처해있는 미국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미국을 비롯한 자본주의 제 국가들의 자본과 노동 양 쪽은 중국에 대해 모순되고 복합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자본에 있어 중국은 자국의 노동성 유연화의 은인이지만 또 한편으로 환율조작을 통해 불공정거래를 일삼는 악덕국가이다. 노동에 있어 중국은 저가상품으로 생계에 도움을 주는 나라지만 일자리를 뺏어가는 악덕국가이다. 80년대의 일본상품 불매운동 등의 반일기류와도 흡사하지만 질적으로 다른 차이는 일본이 어디까지나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시스템에 복속되어 있는 국가였던 반면 지금의 중국은 다른 패턴으로 미국을 넘어서는 또 다른 패권주의 국가로 나아가고 있다는 인상이 강하다는 점이다.

어쨌든 이러한 모순된 상황에서 미국 의회는 대중주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바로 보호주의적 본능을 자극하는 것이다. 몇 해 전에 미국 의회는 중국이 환율을 조정하지 않으면 중국의 모든 수출품에 대해 27.5%의 관세를 물리자는 법안을 제출한 일이 있었다. 놀랍게도 당시 여야 의원을 불문하고 67명의 의원이 찬성의사를 보였다. 그리고 ChannelNewsAsia.com에 따르면 최근 또 다시 미국의회는 이와 똑같은 법안을 제출하여 통과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의 고집스러운 통제경제 – 이제 사회주의의 계획경제가 아닌 국가주도 개발독재의 형태로 봐야겠지만 – 도 얄미울 정도이긴 하지만 전 세계 ‘자유무역’ 의 전도사 미국이 이런 고집스러운 보호무역주의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이 지금 얼마나 심한 경제적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자기모순을 남 탓으로 돌리는 정치인들

문제는 만에 하나 법안이 통과되면 통쾌하기는 하겠지만 미국경제는 더욱 심한 동맥경화에 걸릴 것이라는 사실이다. 중국은 그렇지 않아도 지금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른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다. 어쩌면 그동안 전 세계 자본주의 국가들이 누리던 중국 저가상품을 통한 ‘고용 없는 성장’의 꿀맛을 더 이상 누릴 수 없을지도 모를 판이다. 그 와중에 관세까지 매기면 중국은 미국 의회가 바라던 대로 심각한 경제후퇴를 맞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중국의 저가 상품이 수입되지 않음으로써 미국의 인플레이션 억제효과는 크게 감소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버냉키가 스태그플레이션 걱정된다고 하던 차에 불에 기름을 끼얹는 꼴이다. 또 하나 중국은 미국 재무부 채권의 최대 수요자 중 하나이다. 자국의 환율을 조정하기 위한 조치다. 그런데 수출길이 막히면 채권수요가 감소할 테고 어쩌면 보유채권을 시장에 내놓을지도 모른다. 그 경우 재무부가 채권을 다 회수할 자신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니 요컨대 미국 의회의 관세부과 운운은 앞뒤 재지 않은 무리수에 불과하다.

미국경제의 심각성은 어느 것 하나 단기간에 치유되기 어려운 근본적인 문제점이라는 사실에 있다. 서브프라임 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는 과거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의 패턴을 답습하면서도 더 크고 복잡한 규모의 외부효과를 배태하고 있으며, 고유가와 스태그플레이션의 위기는 명약관화한 상황이다. 끝이 안 보이는 이라크 전에 쏟아 붓고 있는 비용은 여태까지도 엄청났지만 앞으로도 예측이 어려울 정도이다. 상당부분은 비효율적인 거대공룡 미국경제의 체제 내 모순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럼에도 의회는 그 원인을 중국 탓으로 돌리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