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은 현대판 아동 노동

이 소름끼치는 아동 노예제도는 과연 누구의 책임인 것일까? 누구나에게 책임이 있다. 알라바마주는 그 어린이들을 어느 정도까지 보호하기 위한 한 아동노동에 관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매사츄세츠와 로드 아일랜드에서 온 북부의 자본가들은 이 법률안을 패배시켰다. 남부의 주들이 개혁입법을 시도할 때마다 대부분이 북부 사람들인 공장주들은 공장문을 닫아버리겠다고 협박을 했다. 이 자본가들은 의회에 손을 뻗쳐 의회공작부대를 파견하여 아동 노동법 개정을 반대하는 막후 활동을 벌였다. 그리고 이들이 뿌리는 돈은 – 그 대부분이 북부의 돈이었는데 – 법원을 떡 주무르듯 지배함으로써 개혁법률을 무효화해 버리기에 충분한 힘을 갖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답사를 다니고 있던 당시의(1900년대 초 : 옮긴이 주) 아동노동 실태에 관한 보고서들에 의하면 공장노동자 중 자그만치 25퍼센트가 방직공장에서 일하는 14세 이하의 아동들이었다는 것이다. 이 엄청난 숫자의 아동들이 그 자그마한 배를 채우기 위하여 하루 여덟 시간, 아홉 시간, 또는 열 시간씩을 밤낮으로 일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공장주들이 공공연하게 밝힌 배당이윤은 50퍼센트 내지 90퍼센트에 달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동노동은 다루기가 쉽단 말이야.”
“파업도 안하지. 도대체 노동분규란게 안생기거든.”
[마더존스, Mary Jones 씀, 이옥경 옮김, 평민사, 1978년, pp127~128]

Mother Jones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미국의 노동운동가 Mary Jones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전미의 노동투쟁 현장을 쫓아다니며 투쟁했던 전설적인 인물이다. 100세까지 산 그는 90세가 넘어서도 운동을 계속했던 불굴의 의지를 가진 여인이었다. 이 인용문은 그의 자서전에 나오는 내용으로 당시 미국에서 일상화되고 있었던 아동노동의 참상을 고발한 글이다.

이 글에서 아동노동이 성행하는 이유가 잘 나와 있다. 첫째, 배당이윤을 극대화시킬 수 있을 정도의 낮은 임금의 노동력이다. 둘째, 그들은 다루기가 쉽고 파업을 하지 않는 순종적인 노동력이다. 이러한 이유로 아동노동은 서구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에서조차 끈질기게 살아남아온 것이다. 오늘 날에는 제3세계에서 여전히 아동노동이 근절되지 않고 있지만 적어도 염치가 있는 국가들 사이에서는 명목상으로 아동노동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역시 이윤추구 무한도전의 자본주의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냈다. 위 인용문에서 ‘어린이/아동’을 대체할 단어를 찾아냈다는 이야기다. 그 단어들은 아마도 ‘외국인’, ‘비정규직’ 이 될 것이다. 인용문을 이들 단어로 대체하여 읽어보면 크게 어색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자본의 논리도 유사하다. ‘그런 일자리라도 얻으려는 이들에게 일자리는 줘야 하지 않느냐’가 그것이다.

마더존스의 책을 읽어봐도 아동노동을 반드시 자본가들이 억지로 강요한 것만도 아니다. 저임금에 사는 것이 팍팍했던 부모들은 자식들이 젖을 떼자마자 공장으로 데려갔다. 그들은 아이들의 나이를 속여 취직을 시켰고, 스스로가 공장에 취직하여 일종의 이들의 감독관 노릇까지 하여야 했다. 그러니 아동노동이 금지되면 노동자들은 더 굶주린다는 것이 완전 헛소리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러한 주장은 실질적으로 노동자의 빈곤이 누구의 책임인가 하는 본질이 희석된 주장이다. 즉 가장(家長)의 ‘노동재생산 비용’이라는 별명이 붙은 임금이 노동의 재생산 – 즉 가족을 꾸리고 자신의 노동을 위한 충분한 휴식과 소비가 보장되는 – 에 충분하지 않은 상태라면, 그것은 실질 노동임금의 상승이어야지 아동노동을 통한 생활비 보충은 답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비정규직/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임금에 대해 자본이 주장하는 바, ‘아무것도 벌지 못할 바에야 그런 일이라도 하는 것이 낫지 않느냐’는 주장은 동일노동에 대하여 비정상적일 정도로 차별적인 임금체계를 가지고 있는 사회모순을 통한 노동착취의 본질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비정규직의 노동기간을 연장시키는 것의 의도의 본질은 임금으로 대표되는 노동조건 차별의 온존이다. 그들은 다루기 쉽고 파업도 일으키지 않는 현대의 아동 노동력인 셈이다.

4 thoughts on “비정규직은 현대판 아동 노동

  1. Henry

    정말 자본의 논리는 시대를 뛰어넘어서 계속 유사한 희생자를 찾아내는 군요.

    그나저나 인용문 중 “1990년대 초”는 오타인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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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sonofspace

    요새 ‘자본론’을 읽고 있는데 노동일을 다룬 부분에서 19세기 공장주들의 논리가 21세기 자본가들의 논리와 너무 똑같아서 깜짝 놀랐죠. 아동 노동을 쓰지 않으면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 사업을 할 수 없을 거라느니, 12시간에 달하는 아동 노동 시간을 줄이면 그만큼 더 나태해지고 타락할 뿐이라느니, 아동들이 노동을 하게 되면서 일하는 법을 배울 수 있으니 좋은 일이라느니… 정말 변하지 않는 자본의 속성이란 무섭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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