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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범 단상

박재범을 비롯하여 한국 대중문화계에서 활동하는 재외교포들은 거의 예외 없이 재미교포다. 재외교포 출신의 연예인 중 1세대라 할 수 있는 이현우에서부터, 박정운, 유승준, 지누션, 다니엘 헤니 등 허다한 교포 연예인들이 모두 미국에서 태어났거나 자란 이들이다. 몇몇 소수의 예외라면 남미음악을 선보였던 임병수나 필리핀 국민가수로 2NE1에 합류한 산다라박 정도다.

이는 당연한 이치다. 한국의 대중문화는 전 세계 대다수의 나라가 그렇듯 영미권의 문화, 특히 미국의 대중문화를 답습하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주한미군부대에 재즈가 선보인 이후에 미국의 대중문화가 체제에 위협적이지 않는 한은, 미국의 대중문화는 거의 무비판적으로 수용되어 왔다. 그러니 어려서부터 미국의 대중문화를 한국의 대중문화에 한수 가르쳐줄 감수성을 지닌 ‘황색의’ 본토인(!)들이 득세하는 것은 당연하다.

같은 랩을 해도 뭔가 본토스러운 영어랩을 해주고 미쿡의 어디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는 신비감이 결합되면서 한국의 연예기획사는 마치 겉멋들은 레스토랑이 내용도 알 수 없는 영미권의 하드커버 도서로 벽면을 장식하듯이, 교포들을 수입하여 문화 아이콘으로 키워왔다. 나중에는 한국토종이어도 미국에서 온 것인 양 미국식 이름을 붙였다. 본명이 ‘순자’거나 말거나. 영어를 할 수 있거나 말거나.

재미교포라는 지위가 우리나라에서 일단 다른 나라 출신의 교포보다 – 특히나 연변출신 등 구공산권 교포들 – 우월적 지위에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역시 한국의 내셔널리즘의 프레임에 휘말리면 – 그들 스스로가 자초한 측면도 부정할 수 없지만 – 차별을 감내해야 하는 외국인으로 분류된다. 군대 안 가려고 미국시민권 획득했다는 혐의를 받고 추방당한 유승준이 대표적이다.

서구적 대중문화 풍토와 별개로 단일민족이라는 신화에 대한 문화적 배타성이 남다른 한국 땅에서 군대 안간 유승준이나 한국인이 싫다고 한 박재범은, 이제 시커먼 피부에 인쇄소에서 일하는 제3세계 이주노동자의 지위로 전락하였다. 연예기획사의 입장에서도 선진외국 출신이 아닌 국외자 내지는 배신자로 분류된 이주노동자를 잡아둘 이유가 없다.

그렇게 우리 대중문화계는 서구, 특히 미국의 문화 코드를 부러워하는 마음으로 소비하면서도 그 문화노동자들은 한국의 배타적 민족성을 수용하여야 한다는 이중적인 기준을 가진 소비자들을 거느리고 있다. 그래서 연예계 종사자들은 여타 사고방식은 굉장히 쿨하고 서구적이면서도 술잔 받을 때나 군대 갈 때쯤 되면 된장 냄새 진하게 날 정도로 한국스러운 토종으로 돌변해야 한다. 연예기획사는 춤이나 가창력 이전에 그걸 가르쳐야 할 것 같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SNS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SNS 이용자들을 위한 팁 하나’를 참고하실 것.

비정규직은 현대판 아동 노동

이 소름끼치는 아동 노예제도는 과연 누구의 책임인 것일까? 누구나에게 책임이 있다. 알라바마주는 그 어린이들을 어느 정도까지 보호하기 위한 한 아동노동에 관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매사츄세츠와 로드 아일랜드에서 온 북부의 자본가들은 이 법률안을 패배시켰다. 남부의 주들이 개혁입법을 시도할 때마다 대부분이 북부 사람들인 공장주들은 공장문을 닫아버리겠다고 협박을 했다. 이 자본가들은 의회에 손을 뻗쳐 의회공작부대를 파견하여 아동 노동법 개정을 반대하는 막후 활동을 벌였다. 그리고 이들이 뿌리는 돈은 – 그 대부분이 북부의 돈이었는데 – 법원을 떡 주무르듯 지배함으로써 개혁법률을 무효화해 버리기에 충분한 힘을 갖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답사를 다니고 있던 당시의(1900년대 초 : 옮긴이 주) 아동노동 실태에 관한 보고서들에 의하면 공장노동자 중 자그만치 25퍼센트가 방직공장에서 일하는 14세 이하의 아동들이었다는 것이다. 이 엄청난 숫자의 아동들이 그 자그마한 배를 채우기 위하여 하루 여덟 시간, 아홉 시간, 또는 열 시간씩을 밤낮으로 일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공장주들이 공공연하게 밝힌 배당이윤은 50퍼센트 내지 90퍼센트에 달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동노동은 다루기가 쉽단 말이야.”
“파업도 안하지. 도대체 노동분규란게 안생기거든.”
[마더존스, Mary Jones 씀, 이옥경 옮김, 평민사, 1978년, pp127~128]

Mother Jones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미국의 노동운동가 Mary Jones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전미의 노동투쟁 현장을 쫓아다니며 투쟁했던 전설적인 인물이다. 100세까지 산 그는 90세가 넘어서도 운동을 계속했던 불굴의 의지를 가진 여인이었다. 이 인용문은 그의 자서전에 나오는 내용으로 당시 미국에서 일상화되고 있었던 아동노동의 참상을 고발한 글이다.

이 글에서 아동노동이 성행하는 이유가 잘 나와 있다. 첫째, 배당이윤을 극대화시킬 수 있을 정도의 낮은 임금의 노동력이다. 둘째, 그들은 다루기가 쉽고 파업을 하지 않는 순종적인 노동력이다. 이러한 이유로 아동노동은 서구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에서조차 끈질기게 살아남아온 것이다. 오늘 날에는 제3세계에서 여전히 아동노동이 근절되지 않고 있지만 적어도 염치가 있는 국가들 사이에서는 명목상으로 아동노동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역시 이윤추구 무한도전의 자본주의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냈다. 위 인용문에서 ‘어린이/아동’을 대체할 단어를 찾아냈다는 이야기다. 그 단어들은 아마도 ‘외국인’, ‘비정규직’ 이 될 것이다. 인용문을 이들 단어로 대체하여 읽어보면 크게 어색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자본의 논리도 유사하다. ‘그런 일자리라도 얻으려는 이들에게 일자리는 줘야 하지 않느냐’가 그것이다.

마더존스의 책을 읽어봐도 아동노동을 반드시 자본가들이 억지로 강요한 것만도 아니다. 저임금에 사는 것이 팍팍했던 부모들은 자식들이 젖을 떼자마자 공장으로 데려갔다. 그들은 아이들의 나이를 속여 취직을 시켰고, 스스로가 공장에 취직하여 일종의 이들의 감독관 노릇까지 하여야 했다. 그러니 아동노동이 금지되면 노동자들은 더 굶주린다는 것이 완전 헛소리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러한 주장은 실질적으로 노동자의 빈곤이 누구의 책임인가 하는 본질이 희석된 주장이다. 즉 가장(家長)의 ‘노동재생산 비용’이라는 별명이 붙은 임금이 노동의 재생산 – 즉 가족을 꾸리고 자신의 노동을 위한 충분한 휴식과 소비가 보장되는 – 에 충분하지 않은 상태라면, 그것은 실질 노동임금의 상승이어야지 아동노동을 통한 생활비 보충은 답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비정규직/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임금에 대해 자본이 주장하는 바, ‘아무것도 벌지 못할 바에야 그런 일이라도 하는 것이 낫지 않느냐’는 주장은 동일노동에 대하여 비정상적일 정도로 차별적인 임금체계를 가지고 있는 사회모순을 통한 노동착취의 본질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비정규직의 노동기간을 연장시키는 것의 의도의 본질은 임금으로 대표되는 노동조건 차별의 온존이다. 그들은 다루기 쉽고 파업도 일으키지 않는 현대의 아동 노동력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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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erican Apparel의 도발적 광고, 장삿속인가 정치적 항거인가

가만 보면 의류광고는 다른 상품광고보다 좀 튀는 면이 있는 것 같다. 일단 패션이라는 테마를 알리니 만큼 어떻게 해서든 튀는 행동으로 주위를 환기시킴으로써 브랜드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또 한편으로 패션계에 기인들이 제법 있기 때문이 아닐까도 싶기도 한데 뭐… 패션하고는 조금 거리가 멀어서 그런가보다 하는거다.

여하튼 이런 튀는 광고의 대표 격은 잘 알다시피 베네통이다. 루시아노 베네통이 1969년 한 옷매장의 문을 열면서 시작된 베네통 브랜드는 ‘United Colors of Benetton’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이후 유럽 최대의 의류업체로 성장한다. 그런데 정작 이 브랜드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것은 광고의 상식을 뛰어넘는 도발적인 주제와 형식을 담은 광고 때문이었다. 강한 정치적 메시지, 충격적인 비주얼, 대담한 아이디어는 이후 베네통 광고의 특징으로 자리 잡고 베네통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버렸다.

베네통 광고 사진 맛보기

최근 베네통만큼 충격적이지는 않지만 보다 직접적인 정치적 메시지를 선보이는 의류광고가 미국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바로 미국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는 브랜드인 American Apparel의 광고다. 최근 이 회사의 광고의 광고모델로 등장한 이는 바로 이 회사의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남미 출신의 노동자들이었다. 그리고 이 사진을 찍은 이는 회사의 설립자이자 CEO Dov Charney다.

뉴욕타임스에 게재된 어메리칸어패럴의 광고

LA타임스와 뉴욕타임스 등에 지난달부터 게시된 이 광고의 의도는 분명하다. 이 사진은 이주정책의 개혁을 목적으로 하는 사진이다. 즉 현재 미국의 이주정책은 일종의 차별정책이며 불법화된 이주노동자들이 법적인 지위를 얻을 수 있도록 합법적인 경로를 열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 사람들은 이동의 자유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들은 그늘에서 살고 있다.”라고 Dov Charney는 이야기하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회사들이 광고에서 정치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지 않은 가운데 앞서 말한 베네통이나 나이키 등 일부 업체에서만 다소 도발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보다 직접적인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이런 광고에 대해 시장은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 한 광고회사의 CEO는 “이 이슈는 선거에서 결정될 문제다.(주1) 그러나 그들은 어쨌든 매우 급진적인 회사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물론 이 광고를 좋아하는 이들도 있다. American Apparel에 따르면 회사로 그들을 지지하는 편지들이 답지하고 있다고 한다. Charney 씨는 대부분의 대기업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해 비밀스러운 로비를 선호하지만 자신은 공개적인 방법을 선호한다면서 자신의 광고를 옹호하였다.

“우리의 옷을 만드는 이들에 대해 분명히 하자면 그것은 미국 태생의 노동자들과 미국 이외 지역 태생의 노동자들의 협업을 통해 만들어진다. 나는 이민을 지지하는 것이 나의 브랜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 이러한 것들은 우리가 책임 있는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게끔 하는 면이 있다.”

어찌 보면 다분히 비즈니스적 마인드에 철저한 발언이다. 그럼에도 어쨌든 American Apparel은 오랜 동안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대우를 해주어야 한다는 주창자였으며 과거에도 꾸준히 이주정책에 관한 광고를 지역신문에 게재해왔다고 한다. 좋은 일이다.

한편으로 일부 이주정책 전문가들은 이 광고에 대해 비판적이다. 코넬 대학의 Vernon M. Briggs Jr 교수는 불법이주에 대한 대응은 차별이 아니라 단순히 범법행위에 대한 단속이며 해당 광고는 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저임금 노동을 영속화시키려는 자족적인 프로파간다에 불과하다고 혹평하였다.

저임금 노동착취를 목적으로 하든, 브랜드이미지 제고를 위해서든, 또는 정말 순수하게 Dov Charney의 정치적 목적이든 다 좋다. 어쨌든 일개 기업이 다분히 민감한 주제인 이주노동자 정책에 대해 도발을 한 것이다. 그것으로 의미가 있다고 본다. 한편 우리의 사정은 어떠한가. Dov Charney와 같은 사회적 이벤트는 별로 기대도 하지 않지만 사태는 미국에 비해 나쁘면 나빴지 좋을 것 하나 없다.

인권을 존중한다면서 인권위원회까지 설치한 참여정부는 이 땅의 이주노동자들을 3D 업종을 메워주는 소중한 이웃이라고 여기기보다는 범법자라고 여기고 있다. 업주의 저임금 착취노동, 과잉단속, 불법추방으로 이어지는 탄압 속에서 많은 이주노동자들은 산업재해로 죽기도 하고 심지어는 도망치는 과정에서 사고로 죽어갔다.

이천 냉장창고 사태는 그러한 한반도 이주노동자 현황의 결정판이었다. 그럼에도 현 정부는 출입국관리법 개정을 통해 단속반이 공장이든, 길가든, 집이든 ‘불법체류자’라고 의심되면 언제라도 이주노동자를 심문하고 단속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려 하고 있다. 우리의 형과 아버지가 타국에서 그러한 수모를 당했다고 생각해보라. 실제로 몇 십 년 전만해도 선진국에 광부로 일하러 갔던 우리의 선배들의 모습이 그러했을 것이다.

[인권오름] ‘인간사냥’에 쫓기는 이주노동자

흔히 이 사회의 주류는 당연하다는 듯이 자유무역을 지지한다. 물론 그것은 좋은 것이다. 그런데 자유무역은 이동성이 뛰어난 자본에게 더욱 유리한 형태인 것이 사실이다. 오늘 날 거대자본은 임금의 많고 적음, 국가의 세금이나 우대정책 등에 따라 전 세계를 무대로 자유롭게 생산기지와 오피스를 옮긴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해주는 서류들이 바로 WTO의 각종 조약이나 FTA들이다.

한편 노동자들은 자본에 비해 훨씬 이동성이 떨어진다. 살고 있던 곳을 떠나기 쉽지 않고 바로 대부분 국가들이 그러하듯이 타국의 노동자들은 정부의 탄압을 받기 때문이다. 무역의 자유를 신봉하는 이들이 바로 노동의 자유는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적 이유도 있고 또한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지 않은 체제적 속성이기도 하다. 사실 자국 노동자마저 생산비용으로 환원하는 이들이니 살갗이 틀린 이들에게야 더 모진 것이 당연한 일일게다.

 

(주1) 현재 미국 내 불법노동자의 수는 1천5백만에서 2천만 명으로 추산되며 이로 인한 각종 사회문제 때문에 사실상 이주노동자 문제는 2008년 대선의 최대 이슈 중 하나가 되고 있다(관련기사)

몰락을 자초하는 봉건적인 운동단체 범민련

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범민련)가 그들의 기관지 ‘민족의 길’에서 성적소수자와 이주노동자에 대해 사회병리현상으로 간주하는 글을 싣고 이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는 인권단체 및 관련단체들의 요구를 묵살하여 운동단체들로부터 고립의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이른바 통일운동세력 들의 수구 주의적이고 봉건적인 사고방식은 예전부터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지만 현재 진행상황을 보니 또 한 번 순혈주의적인 민족주의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느낄 수 있었다.

발단은 이러하다.

“한편 발단이 된 ‘민족의 진로’ 3월호에 실린 <실용주의의 해악에 대하여>라는 글에는 “외국인노동자문제, 국제결혼, 영어만능적사고의 팽배, 동성애와 트렌스젠더, 유학과 이민자의 급증, 극단적 이기주의 만연, 종교의 포화상태, 외래자본의 예속성 심화, 서구문화의 침투 등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상상할 수 없는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90년대를 기점으로 우리 사회에 신자유주의 개방화, 세계의 일체화 구호가 밀고 들어오던 시점부터 이러한 문제들이 사회문제로 대두되었음을 알 수 있다는 주장이 실렸다.”(관련기사 보기)

이들의 고루한 민족주의적 사고방식으로는 이주노동자(외국인노동자란 표현도 가급적 쓰지 말자고 했는데 본문에는 버젓이 쓰고 있다)의 유입이랄지 동성애의 문제가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상상할 수 없는 문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때문에 동성애가 창궐(!)했다는 이러한 인식은 동성애에 대한 온갖 편견을 가지고 있는 보수적 기독교계의 무지와 편견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또 하나 우스운 게 국제결혼은 왜 언급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소위 “혼혈아”를 낳게 되니 그렇다라는 극단적인 순혈주의 아닐까?

여하튼 이후 관련단체 들이 지속적으로 사과요구를 하여왔으나 범민련 측은 불성실한 답변으로 일관하다가 지난 6월에야 이주노조에게만 해명 글을 발송해 사과 입장을 밝힌 바 있다고 한다. 여전히 동성애 관련부분에 대해서는 일말의 해명도 없었다고 한다.

결국 진보네트워크센터는 6일 공식 성명을 통해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행위를 하는 단위와는 연대가 불가능하다”며 “더 이상 연대라고 부를 수 없는 것에 연대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을 것”이라고 범민련과의 ‘연대 중단’ 입장을 피력했다고 한다. 더불어 이들은 “이 사안에 대해 제 인권사회단체들의 지지와 연대가 이어질 것이며 이어져야한다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관련기사 보기)

이러한 해프닝은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사회의 다양성과 부문운동의 중요성을 간과한 채 시종일관 ‘조국통일의 위업’이라는 거대담론에만 천착해온 후진적 운동단체의 삐뚤어진 가치관의 본질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같은 뜻을 지향하고 행동하는 단체라 여긴다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예의마저 갖추지 않은 채 서구문화 침투니 극단적 이기주의를 논하는 것은 자기모순에 불과하다.

정말로 동성애를 사회병리학적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있을 이 도덕적 근본주의자들이 주목하여야 할 소식이 있다. 그들이 최근 부러운 눈길로 바라마지 않는 베네주엘라의 제헌의회 소식이다.

“차베스 대통령이 제안한 개헌안에 일부 의회가 제안한 안이 포함된 첫 번째 부분에서는 대통령 임기연장 및 임기제한 폐지, 선거에서 외국계 재정지원 금지, 노동시간 축소 등이 포함된다. 두 번째 부분에는 의회가 제안한 비상시 기본권 제한, 건강 및 성적 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금지 등의 내용이 담겨져 있다.”(관련기사 보기)

여하튼 반성과 사과가 없는 이들이 영입하여야 할 인물이 한 명 있다. 차별금지법에서 ‘성적지향성’을 뺀 바로 그 서기관.

차별금지법인지 차별보호법인지

동성애자도 아니고 더군다나 레즈비언도 아닌데 언제부터인가 레즈비언권리연구소라는 곳에서 메일을 보내온다. 내가 언제 이들의 메일링 리스트에 가입했을까 기억이 나지 않고 스팸 처리할까도 생각했지만 사실 이런 곳의 정보를 알아두어도 나쁠 것 없다고 생각하고 (사실은 게을러서) 메일오면 가끔씩 열어보기나 하는 정도로 해두었다.

차별금지법이란?

며칠 전 온 편지는 꽤 흥미로웠다. 그들의 성명서였는데 성명서에 따르면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차별금지법에서 결국 성적지향 항목이 삭제” 될 것이라고 한다.

먼저 차별금지법에 대해서 알아보자.

차별금지법은 당초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현 대통령의 공약 중 하나로 처음 언급되었다. 이후 2006년 7월 국가인권위원회가 정부에 법안을 제정토록 권고하는 과정을 거쳐, 올 10월 법무부가 입법을 예고하였다. 이후 법무부는 당초 인권위가 제안한 20개의 차별금지 조항 중 성적지향 항목 등 7개 항목이 삭제된 차별금지법안을 2일 규제개혁위원회로 제출했으며, 이 위원회에서는 심의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법안은 법제처의 심사 이후 대통령 차관회의, 국무회의를 거쳐 국회에서 입법을 결정한다.

문제는 앞서와 같이 앞서 연구소의 주장처럼 현재까지의 법안에는 ‘성적지향’이 빠져있다는 것으로  담당 서기관은 “(규제개혁위원회로) 넘어간 법안에서 ‘성적지향’이라는 단어는 전혀 찾아볼 수 없을 것”이라고 분명히 확인하고 있다.

동성애자는 차별해도 된다?

이에 대해 레즈비언권리연구소는 “동성애자에 관한 기초적/사회적 안전망이 전무한 상황에서 차별금지법의 제정은 당연”한데도 “법무부의 이번 결정은 그 동안의 노력을 일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드는 처사”라고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반면 기독교계에서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성시화(聖市化)운동 등의 보수단체들로 이루어진 저지의회선교연합이 서명운동 등을 벌였으며 이들은 “동성애는 윤리도덕에 어긋난 성적행위로써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사회악”이며, “동성애차별금지법안은 동성애 확산을 막으려는 모든 건전한 노력을 금지시키며 오히려 처벌하는 법안”이라는 것, “동성애차별금지법안은 동성애확산을 조장하여서 결혼율의 감소, 저출산 문제, AIDS의 확산 등의 사회병리현상을 심화”시키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동성애에 대한 기존 사회의 편견을 모두 담고 있는 내용이다.

교계가 이렇게 동성애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앞서 주장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이 동성애를 성경에서 금기하는 죄악이자 가족해체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동성애 차별금지법안 반대 운동에 앞장서 왔던 부산대 길원평 교수는 “동성애자들을 위한 보호와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하여 동성애를 생물학적인 특성이 아니라 질병으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차별금지법인지 차별보호법인지

‘성적지향’이외에도 인권위의 20개 차별금지 조항에서 삭제된 조항은 학력, 병력,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출신국가, 언어, 범죄 및 보호 처분 등 총 7개 사항이다. 내용을 보면 이 사회의 보편타당한 상식에 비추어 차별하여서는 안 되는 부분이 많다. 그런데도 이를 차별금지 범위에서 삭제한 조치는 이제 법으로 명백하게 위의 사항에 대하여 차별을 해도 된다는 면죄부를 발행해준 셈이다.

사실 어쩌면 이 법안의 맹점은 보다 근본적인 것일 수 있다. 즉 개인적으로 차별금지 법안이라면 ‘어떠어떠한 범위 내에서는 일정정도 차등을 두는 것이 맞고 나머지는 모두 차별을 하여서는 안 된다’라는 네가티브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런데 현행법안은 인권위 권고안에서부터 포지티브 방식을 당연시 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리스트 안에 들어있지 않은 다른 것은 차별해도 된다는 인식을 갖게 되는 것이다.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발생하는 다양한 변수를 법안이 포용할 수 없는 것이다.

더불어 현 법안에는 차별시정기구가 차별 가해자에게 시정명령과 강제이행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이 제외되어 실효성도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차별이 악의적인 경우 법원이 차별로 인한 재산상 손해액의 2~5배 배상금을 물릴 수 있도록 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도 시기상조라는 논란 끝에 조정안에서 빠졌다. 또한 입증책임을 피해자에게도 물린 점도 법의 적용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조항이다.

이번 법안은 위헌적인 법안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결국 이번 차별금지법안이 차별을 조장하는 법안이라고 의견을 밝히고 있다. 또한 동성애 조항 관련 삭제도 “대선을 앞두고 표에는 영향을 주지 않을 거라 생각되는 가장 주변부에 있는 사람들을 제외시킨” 법안마련 자체에서의 차별이 아닌가 하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회남의 귤을 회북으로 옮기어 심으면 귤이 탱자가 된다는 격언이 있다. 이번 법안을 보니 탱자 정도가 아니라 아예 썩은 과일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럴 바에 차라리 법을 만들지 않는 것이 낫다. 왜냐하면 헌법에는 이미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라는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금 법무부는 선언적이라 할지라도 그나마 헌법에 호소할 수 있는 약자와 소수자를 위헌적인 법안으로 더욱 차별을 심화시키려 하고 있다. 마치 비정규직 보호법이라 자처하는 법들이 비정규직을 옥죄는 악법이 되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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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tong.nate.com/ajtwlsrmagml/41609192
http://www.ildaro.com/Scripts/news/index.php?menu=ART&sub=View&idx=2007110200004&art_menu=4&art_sub=7
http://www.cbs.co.kr/chnocut/show.asp?idx=659991
http://blog.khan.co.kr/97dajak/6224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