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값 폭등을 불러 올 한-EU FTA

대선을 둘러싼 각종 의혹과 스캔들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 가운데 또 하나 우리의 곁에 슬그머니 다가오고는 있는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 바로 한-EU FTA다. 개인적으로 이 나라 언론이 가장 미운 것은 그들이 현실을 왜곡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이 현실조차 알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EU FTA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반대자의 시위로 인한 무질서(?)만 나무랄 뿐 정작 그들이 반대하는 협약이 어떤 내용인지에 대해서는 알릴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어쨌든 현재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한-EU FTA 쟁점 중 서민의 삶과 직결되어 있는 제약의 지적재산권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자료 독점권이 뭐지?

한-EU FTA의 협상이 종점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현재 EU는 지난번 한미FTA와 마찬가지로 한국이 FTA를 체결하기 위해서는 지적재산원에 대한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고 이것이 또 하나의 첨예한 쟁점이 될 전망이다. EU 관리는 특히 한국이 제약시장을 개방하기를 고대하고 있다. 한국은 현재 국외에서 시험되고 공인된 약품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지난 9월 EU 관리는 한국의 의약 감독기관들이 (유럽의) 제약회사가 지난 몇 년간 향유하고 있는 “자료 독점권(data exclusivity)”을 한국 내에서도 법적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료 독점권은 현재 관계당국이 오리지널 상품의 판매승인으로부터 일정기간 동안은 “복제의약품 또는 제네릭 의약품(generic application)”의 안정성이나 효율성을 – 시판은 물론이거니와 – 평가하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다.

제네릭 의약품은 짝퉁?

여기서 잠시 “복제의약품 또는 제네릭 의약품(generic application)(제네릭 의약품에 대한 추가설명)”에 대해서 알아보자. 소위 ‘복제의약품(복제약 또는 제네릭 의약품)’은 속된 말로 ‘짝퉁’이나 값이 싼 저질 의약품이 아니다. 제네릭 의약품에 대한 미국 식품의약국(FDA) 정의에 따르면 ‘원개발사 의약품과 함량, 안전성, 강도, 용법, 품질, 성능 및 효능효과가 같은 의약품’을 말한다.

그런데 EU는 FTA 협약에는 공공의 목적이라는 이유 등으로 자료 독점권이나 지적재산권을 저해하는 예외조항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개발도상국에서 공공보건을 목적으로 특허약품과 같은 효능의 값싼 제네릭 의약품 사용을 인정하는 WTO의 “무역관련 지적재산권에 관한 협정(Trade-related Aspects of Intellectual Property Rights : TRIPS)”(주1)을 무력화시키려는 시도다. 현재 EU의 협상 주류들의 의도는 제네릭 의약품을 이른바 모조품으로 간주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제네릭 의약품이 – 그들 표현으로는 모조품이 – 오히려 환자를 죽일 수도 있다고 위협하고 있다.

약은 기호품이 아니다.

만약 한-EU FTA가 유럽 측의 의도로 관철될 경우 어떠한 일이 벌어질까. 알다시피 제약시장에 관한한 유럽이 한국에 비해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 상태에서 제약에 대한 배타적인 지적재산권을 인정하고 거기에다 자료 독점권을 근거로 제네릭 의약품의 판매 개연성까지 막아버린다면 의약품의 가격은 폭등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약은 자동차와 같이 기호에 따라 또는 형편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기호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백혈병에 걸린 사람은 생존을 위해 백혈병 약을 사먹어야 한다. 하지만 제네릭 의약품을 인정하지 않는 탓에 그는 엄청난 값을 내고 약을 사먹어야 한다. 그리고 얼마안가 가산을 탕진하고 말 것이다.

제약회사는 지적재산을 독점할 자격이 있나?

제약회사는 이러한 도덕적 호소에 제약 산업 특유의 엄청난 초기투자를 무시하는 처사라고 주장하곤 한다. 그러나 많은 제약 산업의 경우 사실 국가의 많은 지원 아래 임상실험 등 약품개발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것은 많은 경우 이미 특허권이 만료된, 또는 특허조차 걸리지 않은 공유의 지적재산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그럼에도 일단 그것이 제품화되면 그것은 오로지 사기업의 ‘배타적인’ 지적재산권으로 묶여버리고 만다.

정부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개별 기업이 지적재산권을 독점한 사례로는 기적의 약으로 불리 우는 글리벡이 있다. 글리벡은 의약품에 포함되어 있는 상품적 성격(이윤 추구)과 공공적 성격(생명 유지와 연장에 기여하는)이 어떻게 충돌하고 있는 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글리벡 개발이 초기 단계에서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은 공공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되었었고 노바티스는 이를 중간에 인수한 것이며 환자 치료를 위해 FDA가 이례적으로 신속한 허가를 내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바티스는 독점적인 특허권에 기대어 전 세계 동일 가격 원칙을 고수하고 이에 따라 수많은 환자들은 엄청난 가격을 지불하며 약을 복용해야 했다.

해적질을 하는 선진국의 바이오 기업

공유자원을 강탈하는 지적재산권으로 인해 대표적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 나라가 인도다. 언제부터인가 서구의 여러 제약업체와 바이오 업체들은 인도나 기타 제3세계의 전통요법이나 한 나라의 동식물을 자신들의 국가에서 지적재산권으로 소유해버리는 짓을 자행해 왔다. 인도 정부는 이에 대해 ‘바이오 지적재산권 해적질(biopiracy)’ 이라고 비난하면서 자국의 이익보호를 위한 조치에 나섰다.(관련기사)

이러한 상태에서 우리는 지적재산권이 올바로 행해지고 있다고 동의할 수 있을까. 과연 이 세상에 ‘배타적인’ 지적재산권이 존재하는가 하는 문제는 철학적인 문제이기도 하거니와 어떤 이에게는 생존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지적재산권의 보호와 공공성의 추구는 항상 충돌할 수밖에 없으며 하루빨리 지적재산권이 공공성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로 개선되어야 한다.

더불어 ‘자료 독점권’ 등 공공성을 현저하게 저해하는 협상안이 한-EU FTA에서 합의되어서는 안된다.

 

(주1) 2001년 11월 ‘도하개발아젠다(DDA)’ 출범을 앞둔 협상에서 ‘TRIPs-공중보건 문제’ 즉, 에이즈(AIDS) 치료제 등 의약품에 대한 특허권 여부가 개도국과 선진국간에 쟁점이 되어 ‘신남북문제’라 불리기도 했다. 이에 따라 WTO 회원국들은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을 출범시키면서 별도의 각료선언문을 통해 에이즈, 결핵, 말라리아 등과 같은 공중보건을 위협하는 질병의 퇴치를 위해 ‘강제실시’ 완화 등 TRIPs 협정의 특허의약품 보호에 관한 규정을 재해석키로 합의했다. http://terms.naver.com/item.nhn?dirId=700&docId=2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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